
미세플라스틱이 바닷새의 장내 미생물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들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도 있고, 마시는 물속에도 있고, 먹는 음식 속에도 있다. 어떤 추정에 따르면 일부 사람들은 매주 신용카드 크기 정도의 플라스틱을 섭취한다고 한다.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은 사람의 혈액, 태반, 배설물에서도 발견됐다. 그러나 이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들이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닷새에 관한 새 연구는 미세플라스틱이 장내 미생물 군집, 즉 장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장내 미생물 군집이란 내장에 서식하는 수조 개에 달하는 미생물들을 의미하며 이들은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건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바닷새는 바다에서 플라스틱을 섭취하는데 이렇게 섭취한 플라스틱은 바닷새의 위장에 축적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면 바닷새의 내장에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 등 잠재적으로 해로울 수 있는 미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 참여진은 아니지만,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Norwegi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에서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에 플라스틱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하는 생물학자 마르틴 바그너(Martin Wagner)는 “이번 연구는 플라스틱 오염이 야생동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넓혀준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가 ‘염려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플라스틱이 동물에게 독성을 유발하며 신체적 상해까지 일으킬 수 있음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플라스틱이 동물의 장내 미생물 군집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번 연구 결과는 “플라스틱 오염, 그중에서도 특히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우리에게 미치는 광범위한 악영향을 실제로 보여준다”고 그는 말한다.
플라스틱 행성
미세플라스틱은 직경이 5mm에도 미치지 않는 아주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의미하며 전 세계 생태계에서 발견되는 오염 물질의 일종이다. 독일 울름 대학교(Ulm University)의 미생물학자 글로리아 파켈만(Gloria Fackelmann)은 “미세플라스틱은 심해, 북극, 티베트고원 등 아주 먼 곳까지 도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에도 미세플라스틱이 있고, 토양 속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연구도 많이 시작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연구원들은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에 노출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특히 바닷새가 플라스틱에 취약한 것은 명확하다. 바닷새들은 공해(公海)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수면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이 과정에서 바다에 떠다니는 수많은 플라스틱도 섭취한다.
이전 연구들은 이 플라스틱들이 바닷새에 매우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의 위장이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면 동물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먹이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고 굶어 죽게 된다. 플라스틱 조각에서 새어 나오는 화학물질들도 해로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염증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생물들은 플라스틱 표면에 들러붙을 수 있기 때문에 파켈만과 동료 연구원들은 미세플라스틱이 동물의 장내 미생물 군집을 이루는 미생물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쁜 세균
지금까지 플라스틱이 장내 미생물 군집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을 조사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연구는 주로 쥐에게 플라스틱을 먹이는 것과 같은 실험실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파켈만과 동료 연구원들은 이와 같은 실험실이 아닌 실제 환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파켈만의 연구팀은 캐나다와 포르투갈의 바닷새들을 조사했다. 과학자들은 캐나다 북부 누나부트 준주의 키키크타류아크(Qikiqtarjuaq) 인근에서 이누이트 사냥꾼들과 협력하여 북방 풀머갈매기 27마리를 채집했고, 아조레스 제도에서는 건물과 충돌해 죽은 코리슴새 58마리를 채집했다. 과학자들은 장내 미생물 군집을 조사하기 위해 각 새에서 장 양쪽 끝에 위치한 전위(proventriculus)와 배설강(cloaca)을 표본으로 추출했다.
연구팀은 또한 새들의 위장관을 세척해 그 안의 플라스틱 조각을 세고, 각 동물의 장 내부에 있던 플라스틱 총량을 측정했다.
내장에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많았던 새들은 장내 미생물이 더 다양했다. 원래는 장내 미생물이 다양하면 더 좋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파켈만은 늘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장내에 자리 잡은 세균이 해로운 세균이라면 다양한 미생물이 존재하는 것이 이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내에 자리 잡은 미생물들이 ‘좋은’ 것인지 또는 ‘나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파켈만과 동료 연구원들은 장내 미생물 군집을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각각의 미생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사했다. 연구팀은 장내에 플라스틱이 더 많으면 플라스틱을 분해한다고 알려진 미생물도 더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생물과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미생물 수도 더 많았다.
파켈만과 연구팀은 새들의 건강을 평가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장내 미생물들이 실제로 새의 건강을 악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다. 바그너는 “하지만 소화기 계통에 병원균과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미생물을 축적하면 분명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자연에 존재하는 플라스틱의 양이 이미 동물의 장내 미생물 군집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파켈만은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 단계는 이것이 새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건강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그너는 “이 연구를 읽으면서 해변에 떠밀려 올라오는 고래의 배 속에서 수 킬로그램의 플라스틱 파편들이 발견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 새들의 소화기 계통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이 고래와 돌고래를 비롯한 다른 해양 생물들에게도 발생하는지 알아내는 일은 흥미로울 것이다”라고 말한다.
플라스틱 오염과 인간
우리는 사람이 섭취하는 플라스틱의 양이 우리의 장내 미생물 군집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줄 정도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영국 플리머스 대학교(University of Plymouth)의 해양생물학 교수 리처드 톰프슨(Richard Thompson)은 사람들이 바닷새보다는 훨씬 적은 양의 플라스틱을 섭취한다고 말한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플라스틱의 양은 우리가 사는 곳이나 일하는 곳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플라스틱에 노출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 몸에 들어오는 미세플라스틱에 들러붙어 있는 미생물을 섭취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톰프슨은 인간이 이미 플라스틱에 붙어있는 세균이 아니더라도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수많은 미생물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들이 폐수에 있는 나쁜 병균에 오염되어 있을 수 있고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함으로써 그런 병균이 우리 몸에 침입할 수 있다고 걱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폐수는 주기적으로 범람하면서 해변과 식수를 직접 오염시킨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우리 장내에 자리 잡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는 과연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미생물은 빠르게 진화할 수 있고 다른 미생물과 유전자를 교환할 수 있다. 파켈만은 “우리가 플라스틱을 섭취하는 쪽으로 진화할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내장에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 수가 늘어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플라스틱 오염이 우리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새와 다른 동물들의 몸에 병원성 미생물이 늘어나면 질병이 발병할 수 있다. 게다가 연구팀이 새의 내장 속 플라스틱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한 미생물 중 하나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와그너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플라스틱을 통해 바닷새에게 옮겨간 미생물이 결국 사람에게 질병 발병을 초래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자연계를 더 많이 교란할수록 동물원성 질병(동물에서 인간으로 감염되는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연구원들은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는 미세플라스틱의 특징으로 미루어볼 때, 인간을 비롯한 살아있는 생명체에 플라스틱 오염이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이 같은 연구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그너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지구를 ‘플라스틱화’해왔다. 모두가 미세플라스틱과 플라스틱 속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다. 이것이 우리의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게다가 플라스틱 섭취가 우리에게 이로울 가능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