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 시장의 변화와 삼성전자의 도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팹리스, 파운드리, 센서 등 반도체의 거의 모든 분야 사업을 동시에 하는 세계 유일의 회사다. 삼성전자의 도전에 눈길이 쏠린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은 상식처럼 통한다. 그러나 한국은 반도체 중 메모리 부분 세계 1등과 2등 기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메모리 이외의 반도체를 시스템 반도체 또는 비메모리 반도체라고 한다. 컴퓨터 두뇌라고 일컫는 CPU, 그래픽카드에 들어가는 GPU,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 카메라에 들어가는 이미지 센서 등이 바로 시스템 반도체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19년 1651억 달러인데 비해서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메모리의 2배인 3129억 달러이다. 2배이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58%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강자는 아니다. 더구나 메모리 반도체의 수익성은 시스템 반도체를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서 한국이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확실한 선두를 차지하려면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2019년 시스템 반도체 시장 참여를 선언하면서, 133조를 투입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를 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당시 뉴스에 ‘좀 과한 것 아냐’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과감한 도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는 어떤 모습?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의 시장 구조는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 회사가 설계, 생산, 조립 검사를 다 한다. 따라서 자본과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전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기본이다. 이 시장은 치킨 게임이다. 어떤 회사가 더 낮은 가격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그러나 비메모리 반도체는 지식재산(IP) 기업, 팹리스, 파운드리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이 전체를 혼자 다 하는 인텔 같은 종합 반도체 회사도 있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이 이렇게 분화된 이유가 있다.

1980년대 대형 컴퓨터 시대에는 컴퓨터 제조사들이 반도체까지 만들었다. 이 시대를 장악한 회사가 IBM이다.  종합 반도체 회사면서 메인프레임 대형 컴퓨터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IBM을 대적할 회사가 없었다.

1990년대에 들어오자 비싼 IBM 대형 컴퓨터를 버리고 좀 더 싸고 작은 컴퓨터로 이동하려는 ‘다운사이징’ 현상이 일어났다. 다운사이징 트렌드에 가장 적합한 컴퓨터로서 UNIX 운영체제를 탑재한 서버가 등장하였다. UNIX 서버도 사이즈만 작았지 중형 컴퓨터였다. HP, DEC, SUN 등이 값비싼 IBM 메인프레임에 대항하는 UNIX 서버를 만들었고, 심지어 IBM 도 UNIX 서버를 만들게 되었다. 이 때도 UNIX 서버에 들어가는 CPU는 각 회사가 직접 만들었다. 이들은 각자 RISC 기반 CPU칩을 생산했다. 이들 각자가 모두 종합 반도체 회사였다.

한편 80년대에 탄생한 개인용 컴퓨터인 PC는 IBM이 최초로 만들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인용 컴퓨터에 쓰이는 MS-DOS를 일반 PC를 만드는 회사에도 팔게 되면서 드디어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와 CPU를 만드는 회사가 나뉘었다. 당시 PC가 급격하게 확산되자 무수히 많은 PC 회사들이 생겨나고 이들에게 CPU를 공급하는 인텔은 빠르게 성장했다. 인텔은 CISC 기반의 x86이라는 아키텍처로 만들었다.

(여기서 유명한 RISC vs CISC 논쟁이 일어났다. RISC는 길이가 동일한 매우 간단한 명령어를 처리하는 반면, CISC는 길이가 다양하고 복잡한 명령어를 처리하는 구조였다.)

텔은 PC 시장을 장악했고, 점점 빠른 CPU를 개발해 내놓으며 유명한 ‘무어의 법칙’을 완성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286, 386, 486을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인텔 CPU의 이름이긴 하지만 2년마다 새로운 CPU가 나와서 기존의 시장을 빠르게 대체했기 때문에 CPU의 세대를 구분 짓는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을 정도이다. 인텔이 이렇게 빠르게 세대 교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PC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인텔의 CPU는 여전히 무어의 법칙을 따라 빠르게 성장해서 기존 UNIX 서버 시장까지 치고 올라왔다. RISC 기반 UNIX 서버를 만드는 기업들이 자체 사용을 위해 소규모로 생산한 반도체는 평소 우습게 알았던 인텔 CPU보다 성능이 뒤졌고 가격은 비쌌다. 결국 DEC는 문을 닫고, SUN은 오라클에 흡수되고, IBM은 생산을 포기했다. 인텔은 PC와 서버 시장을 통일한 시스템 반도체 기업이 되었다. 그래서 인텔은 종합 반도체 회사라고 불린다.

반도체 게임 체인저 – 모바일, 클라우드, 코로나19,

한편, 인텔의 x86 아키텍처에 대항해 예전 UNIX 시대 RISC 기반의 CPU 설계 기술을 발전시킨 ARM이라는 영국 회사가 있었다. ARM은 CPU를 직접 설계하지는 않지만, CPU를 설계하는 노하우를 라이센스 판매하는 회사이다 인텔의 x86은 인텔이 독점하고 있지만, ARM 기술은 라이센스 비용만 내면 누구나 가져다 CPU를 설계할 수 있었다. ARM은 ‘지식재산(IP)기업’에 해당한다. 애플, 퀄컴, 삼성전자가 모두 ARM을 라이센스 해서 AP를 만들고 있다. ARM으로 인해 CPU 제조 노하우가 개방되어서 이전처럼 처음부터 개발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인텔의 독주는 2010년대 스마트폰 탄생과 함께 끝난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CPU를 AP(Application Processor)라고 부른다. 스마트폰은 전력 소비 최소화가 중요하고, 공간이 작아 많은 칩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AP 안에 CPU, RAM, 통신, 센서 등을 합쳐서 넣어야 했다. 이를 시스템온칩(SOC, System On Chip)이라고 한다. 인텔은 스마트폰 AP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

ARM은 이 분야에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ARM의 노하우를 받아 애플이 자체 AP인 A시리즈를 만들고 있고, 퀄컴의 스냅드래곤과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등이 시장을 장악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칩을 개발하지만 실제 제작은 파운드리라고 하는 제조 공장에 외주를 준다. 이런 방식으로 칩을 개발하는 회사를 팹리스(fabless)라고 한다. 보통 반도체 제조공장을 ‘fab’이라고 부르는데, 이 공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2010년대 인텔은 서버와 PC 시장에서 여전히 95%의 시장을 장악 하고 있었다. 애플의 노트북PC인 맥북이나 맥프로도 여전히 인텔 칩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분야 경쟁사라고 해봐야 AMD인데 PC 시장에서 겨우 5%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인텔은 2013년 브라이언 크르자니크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 성과에만 집중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미국 CEO들은 전문경영인이다. 따라서 주주들과 계약을 맺을 때, 주가를 올리면 그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당연히 CEO는 주가 올리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매출 증대는 당연한 일이고, 비용도 줄이려고 노력한다. 크르자니크는 의도적으로 R&D 인력을 감축했다. 당장 돈 되지 않은 부서이기 때문이다. 이때 인텔을 나온 R&D 인력이 경쟁사인 AMD, 삼성전자, TSMC,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 간다.

또한 이때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폐기한다.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이름을 딴 무어의 법칙은 18개월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를 CPU가 2배씩 빨라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텔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후 인텔의 기술력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18개월마다 반도체 집적도를 2배로 증가시키려면 미세 공정 생산 설비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14나노, 10나노, 8나노, 5나노 공정이 바로 이것이다. 이를테면, 14나노 공정에서 10나노 공정으로 가야 반도체의 집적도를 증가시킬 수 있고, 더 빠른 CPU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공정을 만드는데 30조원 정도가 들어간다. 인텔은 이러한 비용을 18개월마다 투자할 수 없기도 했다. 현재 인텔은 10나노 공정에 머물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어난다. 많은 산업이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또한 몇몇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사람들이 재택 근무를 하게 되면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대대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고, 비대면 상황에서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해주는 AI가 성장했다.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고,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개발 되기 시작한다.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비싼 인텔 칩을 구매하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결정을 내린다. 애플 역시 자체 개발한 CPU M1칩을 장착한 노트북PC를 2020년 출시했다.

AI가 빠르게 성장하자 엔비디아가 그래픽카드에 들어가던 GPU를 AI 데이터 처리에 맞게 개발한 GPGPU 시장을 석권한다. 더구나 아성이라 생각했던 PC와 서버 시장에서 AMD가 성장하면서 인텔은 총체적 난국을 맞는다. 2010년대 전체 시장 점유율 95%라고 하는 화려한 시대를 마감하고 서버와 노트북 CPU 시장만이라도 방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인텔은 결국 자체적으로 x86 기반의 CPU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 지위를 포기하고 7나노 공정을 삼성전자 또는 대만 TSMC에 아웃소싱 하기로 결정했다. TSMC는 시스템 반도체를 주문 받아서 제조하는 파운드리만 하는 회사이다.

TSMC는 파운드리 시장의 54%를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7.4% 정도이다.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앞세워 꾸준히 애플, 인텔, 엔비디아, AMD 등의 물량을 주문 받아 생산해 왔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통신장비, AP등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애플은 절대로 삼성전자에 파운드리를 맡기지 않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도전의 의미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IBM, 퀄컴, 엔비디아 일부 물량을 수주해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TSMC와 삼성전자는 미세 공정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나 짓는데 30조원씩 들어가는 미세 공정 라인을 4~5개씩 지어야 물량 소화가 된다. 시스템 반도체는 주문 생산이기 때문에 납기와 품질이 생명이다. 주문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시스템 반도체의 납기와 품질을 못 맞추면 자사 제품 출시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TSMC와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밀릴 수 없는 경쟁을 하고 있다. 사실 TSMC의 아성에 삼성전자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시대는 자율주행차 시대로 접어 들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거의 전자 제품이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카메라, 라이다와 같은 센서, 여기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 처리, 인식, 제어하는 ECU라는 시스템 반도체, 자동차 내부의 콕핏(cockpit)과 인포테인먼트 등을 구동하는 디스플레이와 칩이다.

카메라, 라이다 데이터는 기존 자동차 장비에서 나오는 데이터와는 달리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이를 실시간 처리해야 하므로 메모리 용량이 커야 하고 ECU가 매우 빨라야 한다. 이 분야에서 삼성은 기존 스마트폰을 위해 개발한 엑시노스를 발전시킨 ‘엑시노스 오토’를 출시했고, 하만을 중심으로 인포테인먼트를 가진 전장사업을 이미 시작했다. 카메라에서 영상을 인식하는 이미지 센서 분야에서는 2억화소 센서를 출시해서 소니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팹리스, 파운드리, 센서 등 IP를 제외한 반도체의 모든 분야를 동시에 지향하는 세계 유일의 회사이다. 사방이 적이고 도처에 경쟁자들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메모리 반도체 수퍼싸이클이 열리고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보면, 애플은 어렵겠지만 그 외 인텔 및 엔비디아,AMD 등 팹리스 기업들에게 기존 TSMC 외에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이들에게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아주 중요한 옵션으로 여겨지고 있다. 경쟁은 경쟁이고 가격, 납기, 품질을 보증할 수만 있다면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TSMC와 협상에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도 가능하다.

2030년 반도체 산업 1위라는 목표를 걸고 시스템 반도체 업계에 진출한 삼성전자의 세계 반도체 역사상 전무후무한 도전에 눈길이 쏠린다.

※ 장동인 대표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비자카드, EDS 등에서 근무했으며, 한국오라클 컨설팅 본부이사, 시벨코리아 지사장, SAS코리아 부사장, 언스트앤영 컨설팅본부장, 한국테라데이타 부사장, 국방과학연구소 빅데이터 PM을 지냈다. 현재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분야 신기술을 개발하는 AIBB LAB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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