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팔 전쟁으로 분열된 과학자들…편 가르기 심화되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명 피해가 확산되면서 과학계에도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본지에서 다뤘던 학계 생물학자 중 일부는 온라인에 이번 분쟁에 대한 의견을 게시했다가 이미 경력에 심한 타격을 입었다. 전쟁을 둘러싼 이러한 상황은 과학의 핵심이기도 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10월 7일 가자지구를 지배하고 있으며 미국이 테러 단체로 지정한 바 있는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1,400여 명을 살해하고 인질을 붙잡았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통해 대응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천 명이 추가로 사망하면서 사망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1,000만도 되지 않지만,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상당히 큰 역할을 맡고 있다. 이스라엘은 수많은 생명공학 스타트업이 있는 곳이고, 코로나19 백신이 처음 대규모로 시도된 국가이며, 저명한 생물학자들이 탄생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줄기세포 전문가인 제이컵 한나(Jacob Janna)는 본지에서 다뤘던 학자이며,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첨단 과학의 방향에 대한 예측을 내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한나는 이스라엘 시민권자이자 이스라엘 레호보트에 있는 국영 바이츠만 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의 교수이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도 팔레스타인인이기도 하다. 그의 소셜미디어 프로필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비난하는 욕(“F*ck the Occupation”)과 “아랍인과 유대인은 적이 되기를 거부한다(Arab and Jews refuse to be enemies)”라는 메시지가 적힌 이미지가 게시되어 있다.
공습 다음 날 한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자지구에 ‘감금’되어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야만 행위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점령과 18년에 걸친 포위도 그중 하나”라는 글을 공개적으로 게시했다.
한나는 즉시 소속 대학의 일부 과학자를 포함한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한나가 하마스를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그가 계속해서 연구비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워싱턴 대학교 세인트루이스(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의 면역학자 조너선 킵니스(Jonathan Kipnis)는 한나가 이스라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킵니스는 X(구 트위터)에 “그런 생각이라면 한나는 가자지구로 가서 그곳에서 최고의 과학자가 되어 자신의 동포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적었다. (킵니스는 나중에 필자에게 “내가 그런 글을 남긴 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나는 글을 삭제하고 사과했다”고 밝혔다.)
한나는 이러한 반응들을 “인종차별적이고 경멸적”이라고 느끼며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모든 폭력에 반대하며 하마스를 ‘끔찍한 폭력 조직이자 테러 조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나는 하마스만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마스만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과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비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동조하면서 그들과 함께 일종의 ‘비난 게임’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나는 설명했다.
그러나 동료 과학자들의 압박은 효과가 있었다. 한나는 야만 행위에 대한 게시글을 비롯해 여러 게시물을 삭제했다. 한나는 필자에게 “나는 내 피드에 정치적인 내용이 남아 있는 것을 더는 원하지 않으며 싸움도 원하지 않는다”며 “내 게시물들은 싸움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내 생각과 좌절감을 표출한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동에는 이제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일부 이스라엘 대학은 ‘테러 지지’를 표명하는 이들에게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으며, 아랍계 이스라엘 학생들이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글로 인해 징계를 받았다는 보고도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고액 기부자들과 전직 대학 총장들이 “교육 기관은 하마스의 공격을 명확히 비난해야 하며 ‘양비론’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하마스가 대량학살을 저질렀다는 것을 교육 기관들이 인정하기를 원한다.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이스라엘 군은 최근 언론인을 대상으로 공격 당시의 무삭제 영상을 공개했는데, 해당 영상에는 사람들이 차에서 끌려가거나 집에서 살해당하거나 테이블 아래에 숨어 있다가 총에 맞는 장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마스에 대한 비난을 이끌어내려는 이러한 노력에는 효과가 있었고, 이에 따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등 여러 기관에서 더 강력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암연구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Cancer Research)가 이번 분쟁에 대해 모호한 성명을 발표하자 한나가 근무하는 대학교의 연구자 50여 명이 해당 협회에 보내는 서한의 초안에 서명했다. 서한에서 이스라엘 연구자들은 해당 성명이 “잔학 행위와 그 가해자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테러 공격’ 같은 단어가 사용되지도 않았다”고 항의했다.
정치적 갈등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언제나 중립을 유지하는 건 아니다. 10월 말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유전자세포치료학회(European Society of Gene and Cell Therapy)의 연례 회의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러시아 또는 벨라루스 기관에서 참가비를 지불한 참석자의 참가는 받지 않았다.
학회 측은 이에 대해 “러시아의 많은 학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의 등록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스토니브룩 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의 유전학자 조시 더브나우(Josh Dubnau)는 필자가 두 상황을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한쪽 편을 드는 것은 점령을 비난한다는 의미”라며 “반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외국 군대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현 상황에서는 양측이 모두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달리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만한 ‘도덕적 명료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더브나우는 “이스라엘의 잔학 행위를 비판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발언을 비난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1950년대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공포가 할리우드와 대학의 블랙리스트로 이어졌던 상황을 언급하며 “이번 상황도 일종의 매카시즘(McCarthyism)”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첫 번째 희생자 중 하나는 마이클 아이젠(Michael Eisen)일지도 모른다. 초파리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인 그는 ‘공개 출판’을 옹호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까지 <이라이프(eLife)>라는 영향력 있는 학술지의 편집자였다.
10월 14일 아이젠은 ‘죽어가는 가자지구 주민들, 하마스를 비난하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다(Dying Gazans Criticized For Not Using Last Words To Condemn Hamas)’라는 제목의 풍자적인 기사를 ‘어니언(The Onion)’에 게재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X에 게시했다. “어니언은 모든 학술 기관 지도자들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용기와 더 뛰어난 통찰력 및 도덕적 명료성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어니언(@TheOnion) 대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게시글을 보고,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의 지원을 받는 이라이프는 10월 24일에 그를 해고했다. 이라이프는 이에 대한 성명에서 아이젠이 이전에도 그의 (악명 높은) 표현 방식으로 인해 경고를 받은 적이 있으며, 이러한 행위가 추가로 발생함에 따라 해고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대학교 소속 과학자들이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이라이프의 이러한 결정은 아이젠을 지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이젠의 발언이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협박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까지 대거 사직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라이프의 이사회 구성원인 페데 펠리시(Fede Pelisch)는 10월 25일에 아이젠에 대한 해고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공개서한을 통해 “통설에 부합하지 않는 의견을 표명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침묵을 강요받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는 ‘개방성, 진실성, 형평성, 다양성, 포용성을 중시하는 연구 문화를 장려’해야 하는 학술지에 매우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과학에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다시 이스라엘 얘기로 돌아오면, 한나는 분쟁이 계속되면서 자신의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연구 속도가 현저히 줄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그는 여전히 상처받고 있다. 그에 따르면 그의 학생 중 한 명은 가자지구의 어떤 교회를 대상으로 벌어진 공습으로 인해 형제를 잃었다.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의 생물학 연구에 추가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을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는 “이스라엘계 유대인 친구들 및 학계와 생명공학 분야의 동료들에게. 가택연금에 처해지거나 위해와 연구 취소 위협을 받지 않고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고통과 공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연구 취소 위협은 자금조달, 투자, 채용과 관련하여 기업, 연구소, 개인 과학자 등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장기적으로는 연구 생태계가 실제로 국제적이고 다양해져서 인재를 유치할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될지, 아니면 때때로 파시즘과 매카시즘이 작용할 수 있다는 신호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스템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아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번 전쟁은 아직 초기 단계일 가능성이 크다. 전쟁 장기화로 폭력이 확대되면 그만큼 그로 인한 여파도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