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yghurs outside China are traumatized. Now they’re starting to talk about it

해외거주 위구르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고향 사람들의 실종 소식을 접한 위구르인들은 중국 밖에 살면서도 무기력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원격 의료와 소셜 미디어가 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무스타파 악수(Mustafa Aksu)는 상담가와 관련된 나쁜 기억이 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위구르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족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이후 그는 늘 불안감에 시달렸고 신경성 복통이 심해 종종 음식을 게워 내기도 했다. 그를 걱정하던 선생님이 상담 치료를 권유했지만, 악수는 이 손길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중국을 떠나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곳에서 살 날을 기다려왔다.”

2017년, 중국 정부가 위구르족을 포함한 소수 민족을 탄압한다는 뉴스가 퍼지기 시작했을 당시 악수는 미국 일리노이 주 블루밍턴 시에 위치한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중앙아시아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그때 위구르인 대부분이 거주하는 중국 북서쪽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실종 사례들이 있었다. 경찰은 새롭게 제정된 규정을 빌미로 위구르인들을 계속 잡아들였다. 턱수염을 기른다거나, 결혼 피로연을 연다거나, 해외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연락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졌다. 수십만 명의 위구르인들은 중국 공산당 정부에 의해 임시 수용소에 억류되었다. 공산당은 이 시설을 ‘직업 훈련 센터’라고 불렀으나 실상은 강제 수용소에 가까웠다. 그 안에서 위구르인들은 고문받고 학대당했다. 결국 억류된 사람은 숫자는 백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 시점에 악수는 30대 초반이었고, 이미 해외에서 수년간 살아온 경험이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기 이전에도 이스탄불과 두바이에서 거주했었다. 그래도 그는 언제나 고향의 가족과 자주 연락하고 지내면서 짧은 통화조차 20분이 넘었고, 긴 통화를 할 때면 몇 시간씩 소식을 나누곤 했다. 하지만 현재 신장에서 벗어나 살고 있는 다른 위구르인들처럼 악수도 그의 가족들과 전혀 연락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그는 우울증과 불면에 고통받기 시작했다. 밤마다 가족의 안전에 관한 걱정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018년 한 해 동안 악수는 그의 형, 삼촌과 사촌 두 명이 고향에서 숨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불안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악수는 그 지역의 한 상담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상담가와의 첫 만남은 끔찍했다.

다른 많은 미국인처럼 상담가는 ‘위구르’나 ‘신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악수는 상담 시간 내내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해야 했다. 그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잇따른 방문에서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대신에 대부분의 시간을 위구르족에 관해 설명하는 데 보냈다.” 악수 씨가 말했다. “몹시 지치는 일이었다.”

악수는 다른 상담가와 만나보기도 했다. 이전 상담가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악수씨는 여전히 그의 문화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힘들었다. 낙담 끝에 그는 상담을 그만두었다. 2019년 워싱턴DC로 이사하면서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불면증이 그를 뒤따르긴 마찬가지였다.

위구르 디아스포라 다수가 악수와 유사한 경험을 겪는다. 중국에서 벗어난 지 오래든, 탄압을 피해 비교적 최근 중국을 떠났든 상관없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실종되고 삶의 방식이 부정당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경험은 사람들의 마음에 너무나도 명백한 정신적 외상을 남겼다. 하지만 많은 위구르인들은 도움을 청하길 주저했으며 심지어 지난 몇 년간의 슬픔과 고통을 인정하기조차 거부했다. 그 덕에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이러한 주제를 입 밖으로 꺼내길 주저치 않는 몇몇 위구르인들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애도와 정신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원격 진료를 통해 자원봉사 상담가들과 전국의 위구르인들을 연결하고 있다.

소위 ‘위구르인 웰니스 계획(Uyghur Wellness Initiative)’이라고 명명된 이 프로그램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지금까지 단지 수십 명만이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을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신장 자치구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악화되는 만큼, 이를 주도한 이들은 이 프로그램이 위구르 디아스포라들의 마음을 회복시켜주길 바란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이 시기에 위구르인 공동체가 손 뻗을 수 있는 구명줄이 되길 희망한다.

“위구르학 개론(Uyghur 101)”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인권 침해는 위구르인의 삶 도처에서 일어났다. 수천 개의 모스크가 파괴되었고, 학교에서 위구르어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수천 명이 강제 노역에 처했는데, 이는 2차 대전 시기 나치 독일의 유대인 분리 정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민족 강제 수용이다. 최근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및 영국 정부는 중국의 정책을 공식적으로 ‘대량학살’이라고 규정했다.

중국을 벗어난 위구르인 – 미국에서는 주로 워싱턴DC나 북버지니아에 거주하는 – 들에게 최근 몇 년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거의 모든 위구르인들의 가족이나 친구가 캠프에 격리 수용되었다. 만약 이들도 고향으로 돌아가면 캠프로 격리 수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처음에 신장 자치구 위기의 정신적 고통은 위구르인 공동체 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다고 루샨 압바스(Rushan Abbas)가 말했다. 그는 워싱턴DC를 기반으로 한 ‘위구르인을 위한 행동(Campaign For Uyghurs)’이라는 위구르인 지지 단체의 대표다. 우선 많은 이들은 자신이 직접적인 위협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위구르 사태로 그들이 느끼는 괴로움을 돌아볼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정신 건강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위구르 문화권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편견이 뒤따르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압바스는 설명했다.

여전히 공동체가 겪고 있는 고통은 명백하며 이를 공론화하기 꺼리는 분위기 또한 그대로다. “나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아, 예전에는 평범한 삶을 살았었는데.’” 압바스씨는 말한다. “이제는 무언가를 하거나, 그냥 웃거나 즐거운 일을 하기만 해도 우리는 죄책감을 느낀다.” 

2019년에서 2020년 초까지, 뉴욕의 위구르계 미국인 의학 연구자인 메멧 에민(Memet Emin)은 미국 거주 위구르인 1,100명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여기서 절망감, 분노, 우울감이 쉽게 관찰되었다. 응답자의 약 4분의 1 정도는 그들이 주기적으로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는데 이는 미국 성인 평균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리고 이 숫자조차도 실제보다 적게 보고된 것일 수 있다고 에민씨는 말한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밖에 거주하는 위구르인들에게 갖가지 압력을 정기적으로 가한다. 위구르에 대한 지지 표명에 대해 경고하거나, 위구르 디아스포라 자신이나 다른 이들의 개인 정보를 요구하거나, 공산당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위구르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 보복을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방식 등으로 말이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익명으로조차도 정보를 공유하길 꺼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위기가 또 다른 위기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지지 모임으로부터 모인 위구르인 지도자들은 위구르인 공동체의 정신 건강 위기가 이제 그들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2020년 5월, 미국의 대표적 위구르인 단체 세 곳 – 위구르 인권 프로젝트(Uyghur Human Rights Project), 위구르 미국 협회(Uyghur American Association), 위구르를 위한 행동(Campaign For Uyghurs) – 의 대표가 종교적 비영리단체인 평화 촉진 인터내셔널(Peace Catalyst International)도 함께 – 상담치료사들을 대상으로 ‘위구르 개론 (Uyghur 101)’이라고 이름 지은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 비디오 컨퍼런스에서 그들은 위구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교육했다. 또 현재 신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들 자신의 어려운 상황과 고통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그리고 이제 공은 위구르인들에게 넘어왔다. 많은 위구르 디아스포라들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이들은 비밀 상담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스스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치료받는 것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압바스의 경우 그의 위구르 지지 활동이 구실이 된 탓인지, 그의 누이가 신장의 감옥에 갇혀 있다. “나는 좌절했다.” 압바스가 말한다. “나는 누이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한밤중에도 잠에서 깬다. 이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에 도움 된다.”

누구에게라도 자신에게 맞는 상담치료사를 찾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다. 가격, 장소, 전문 분야와 시간의 제약 등 많은 어려움으로 인해 사람들은 종종 상담을 포기한다. 위구르인 웰니스 계획은 상담을 무료로 진행함으로써 이러한 장벽을 낮추고자 한다. 원격 상담을 통해, 이들은 다른 제약도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

비록 많은 위구르인들이 워싱턴DC 혹은 북버지니아에 거주하고 있지만, 소수는 미국 전역에 걸쳐 살고 있다. 어디에서나 원격 상담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대도시에 거주하지 않아 정신적 외상이나 이민 등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치료사를 찾기 어려운 경우에도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하게, 위구르인이 많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치료상담가 역시 위구르인에게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구르인 웰니스 계획의 상담치료사 그룹을 통해서 위구르인들에게 맞춤형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상담치료사는 위구르인들에게 관심이 있고 이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인력들이다.

위구르 공동체에서 정신 건강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여기까지 일이 진행되기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벽은 점점 허물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도움을 받고 있다.

새로운 연결

2019년 12월의 어느 날, 악수가 워싱턴DC로 이사 오던 날에는 비가 내렸다. 하지만 그는 이 도시에 금방 적응했다. 친구를 사귀었고, 연구 및 지지 활동을 진행하는 위구르 인권 프로젝트에서 직장을 구했고, 이러한 일을 즐겼다. 그는 행복을 느꼈는데, 심지어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후에도 그랬다. “나는 언제나 여기에 오고 싶었고, 결국 해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억압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었다.

2020년 신장 자치구 공안은 악수에게 위챗과 왓츠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악수에게 협력을 강요했고 그의 가족들을 위협했다. 악수는 응답하지 않았고, 메시지는 더 많은 번호로부터 전송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는 본토 중국이 아닌 홍콩과 터키에서도 오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은 직접적인 위협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위구르 사태로 그들이 느끼는 괴로움을 돌아볼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9월에 악수는 옛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악수와 그는 고등학교 4년 동안 기숙사 2층 침대를 나눠 쓴 사이였다. 지금은 경찰이 된 그 친구는 친절했다. 그는 옛 기억을 이야기했고, 예전에 악수가 그를 도왔던 일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가 전화한 이유가 단순히 옛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는 내가 정보를 제공하기를 원했다.” 악수가 말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악수는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록 워싱턴DC로 이사하면서 많은 것들이 개선됐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가족을 걱정하고, 특히 그의 형제의 죽음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오랜 친구로부터의 전화가 결정타였다. “나는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그가 말한다. “나는 울면서 이렇게 혼자 되뇌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가 있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지?’”

그 전화를 받은 날, 그는 결국 기절했다. 다음 날 아침, 그의 동료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을 때 그는 비로소 일어났다. 악수는 그날 회의에 불참했고 동료들은 그가 걱정되던 참이었다. 그의 불안이 돌아왔다. 길고 긴, 잠들 수 없는 밤도 함께였다. 며칠 후 그는 또 기절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멍청하게도 자살을 떠올렸다.”

“나는 정말로 걱정됐다.” 악수가 말한다. “오 신이시여, 왜 내가 이따위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는 동료에게 이러한 사실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는 그들의 보스인 루이자 그레브 (Louisa Greve)에게 말했다. 그레브는 위구르 인권 프로젝트의 국제 지지 디렉터(global advocacy director)인데, 그녀는 악수를 클리블랜드 공원 근처에 있는 유명한 위구르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다. 매운 국수를 먹으면서 그녀는 그를 위로했고 그에게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악수는 물론 이전에도 이러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는 다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주저했지만, 결국 다시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레브는 그를 북버지니아의 심리학자인 찰스 베이츠 (Charles Bates)에게 소개했다. 그는 위구르 웰니스 계획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첫 번째 상담도 훌륭하게 끝났다. 베이츠는 신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 역시 라이베리아에서 망명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민자의 어려움과 정신적 상처에 대해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한 달에 두 번씩 구글의 화상 통화 앱을 통해 악수와 베이츠는 정신적 고통을 최소화하고 극복하기 위한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베이츠의 사려 깊은 태도에 감동했다. “그는 우리가 상담할 때 종종 노트를 적곤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한번 이야기한 것, 다음 만남까지의 목표와 같은 것들을 전혀 잊어버리지 않는다.”

“나는 그가 위구르에 대해 굉장히 잘 파악하고 있다고 느낀다.” 악수가 말했다.

원격 상담을 신뢰하기

신장에 거주하고 있는 위구르인들은 수십 년 넘게 이등 시민으로서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위구르 사태는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일이었기 때문에 위구르 디아스포라의 정신적 고통의 특징에 집중한 정식 연구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 심리학자이자 정신적 트라우마 전문가인 캐시 말치오디(Cathy Malchiodi)는 과거의 비슷한 사례를 통해 지금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북미 원주민, 즉 인디언과 홀로코스트가 벌어지던 당시의 유대인들 사례를 참고하면, 말치오디는 ‘이차적 정신적 트라우마(secondary trauma)’와 ‘세대 간 트라우마와 고통 (intergenerational trauma and grief)’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개인은 자신이 맞닥뜨린 사태에 대해 개별적으로 반응하지만, 공동체로 묵일 때 위구르인들은 고통과 상처를 더 공유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부터 계속된 억압 및 최근 자행되고 있는 문화 말살 정책 모두 이들의 고통에 기여한다. 말치오디의 설명에 따르면, 위구르 사태로부터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조차도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상담 치료 자체만으로는 이러한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족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많은 심리학과 심리치료는 서구 편향적이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웰니스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문화적인 행사에 참여하고 투자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할 수 있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반면 상담 치료는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급성 외상 증상을 치유하는데 좀 더 효과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한가운데 미국 심리학자의 4분의 3 정도는 화상 통화를 통한 원격 상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상담가 면허가 주별로 분화된 체계 탓에 상담가들은 다른 주에 거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할 수 없다. 또한, 원격 진료를 통해서는 상담 대상이 앉는 자세나 발을 탁탁 구르는 행동 등 대상이 보내는 비언어적 신호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러한 신호를 통해서 피상담자가 말하지 않는 감정을 파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도 미국 심리학 협회에 따르면 원격 상담도 대면 상담만큼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피상담자가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긍정적 치료 경험에 좋은 영향을 준다.

이 마지막 요소는 위구르인 커뮤니티에 특히 중요하다. 베이츠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전 세계에 거주하는 위구르인들을 불편하게 하는데 굉장히 효율적이었다고 한다.

“종종 위구르인과 상담하다 보면, 그들이 직접적으로 말하는 이야기와 그들이 은연중에 내비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위구르인들이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 가족에 대한 보복과 심지어는 그들 자신에 대한 보복까지도 말이다.”

원격 상담은 피상담자들이 우선 상담을 시작해볼 수 있게 한다. “신뢰가 필요하다. 만약 신뢰가 있다면,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베이츠의 이야기다.

고통을 나누기

신중하게 첫발을 뗀 작년 이후, 올봄 위구르 웰니스 계획은 활동을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도 고용했다. 지금까지 상담받은 수십 명은 당초 위구르인 지도자들이 바랐던 숫자보다는 적지만, 이는 단지 거시적 문화 변동의 일부분이라고 그들은 보고 있다. 유럽과 호주 등 전 세계에서 위구르인들은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의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상담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변화이고, 새롭게 시작되는 운동이다.” 위구르 인권 프로젝트의 그레브가 말한다.

일이 진행되는 동안 프로젝트 지도자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미세 조정하고 있다. 높은 연령대의 피상담자와 이민 1세대들에게는 ‘회복(resilience)’이나 ‘웰니스’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정신 건강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을 피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보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우울(depression)’이나 ‘치료(therapy)’와 같은 직접적인 단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캠페인을 널리 알리기 위해 프로젝트 지도자들은 정기적으로 비대면 모임을 가진다. 그들은 소셜 미디어에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페이스북 라이브나 클럽하우스와 같은 라이브 플랫폼을 통해서도 공개 대화를 진행한다. 4월에는 라마단을 맞이하여 그들은 온라인으로 위구르 문화 음식 축제를 열었다. 5월에는 악수와 두 명의 심리학자가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생존자가 가지게 되는 죄책감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도 온라인 공간을 통한 접근은 도움이 되었다. 많은 위구르인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는데, 여기에는 안전과 관련된 이유도 있지만 소문의 대상이 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온라인 환경의 익명성은 이들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낮추는 역할을 하였다.

북버지니아에 거주하는 30대 여성인 딜라레(Dilare)가 이번 3월 클럽하우스 토론에 참여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에서 위구르인들의 정신 건강과 관련된 온라인 모임이 있다는 광고를 보았고, 결국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듣기만 할 거니까 괜찮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만약 신뢰가 있다면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찰스 베이츠, 위구르인들과 함께하는 심리학자.

딜라레는 드문 경우다. 비록 그녀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지만 신장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의 연락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한 그녀의 가족 중에 중국의 격리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은 없다. (딜라레는 그녀의 프라이버시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가 정한 가명이다) 그녀의 친구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봤을 때 그녀는 그녀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신장의 상황은 점차 악화하였고, 그녀의 부모님은 친척들이나 친한 친구의 소식을 전할 때 그들이 “병원에” 있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 사람들이 진짜로 병원에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구금된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딜레어는 그녀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녀는 자기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의 먹구름을 인식하게 되었다. “항상 우울하고 멜랑콜리한 느낌이다. 심지어 이럴 땐 무엇을 봐도 갑자기 이전만큼 밝게 빛나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의 클럽하우스 모임에서는 딜레어와 같은 수십 명의 사람이 모였다.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모임에서 공동체의 유명 인사들이 그들의 경험을 공유했는데, 딜레어는 그들의 경험이 자신이 겪었던 것과 너무도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사람들을 상담가에게 연결해준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나는 바로 외쳤다. ‘바로 이거다.’”

현재, 딜레어는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상담가와 페이스타임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진행한다. 처음에 그녀는 그녀가 잘못된 것을 이야기할까 봐 걱정됐다. 그녀는 ‘너무 감정적’인 것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 내가 너무 망가져 있다고 생각하는 게 싫었다.” 하지만 상담가가 도움이 되었다. 상담가는 그녀에게 완곡어법을 쓰지 않고 그녀의 감정을 또렷하게 표현하도록 격려했다. 또한 그녀는 상담가의 권유에 따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녀의 감정을 인식하고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 그녀는 매번 상담을 시작할 때마다 긴장되었지만, 일단 그녀가 상담을 시작하면 이런 감정은 이내 사라졌다. “지금은 상담이 매우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그녀가 말했다.

악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신장의 상황은 암울하다. 악수는 여전히 그의 활동이 그의 가족들에게 피해 끼칠까 봐 걱정한다. “가끔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 때문에 그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악수가 말했다. 하지만 상담의 마지막에 악수는 새로운 에너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받고 조금 더 많이 웃게 되었다. 그는 상담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그와 이야기할 때면 나는 따스함을 느낀다. 마치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처럼 무언가 연결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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