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중국은 왜 ‘기술 패권국’을 노리는가? – 한양대학교 백서인 교수
2025년 현재, 인공지능과 반도체, 에너지 기술은 단순한 산업의 영역을 넘어 국가 안보와 세계 질서 재편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그 중심에서 가장 날카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국가가 있다면 단연 중국이다. ‘세계의 공장’에서 ‘기술 패권국’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중국의 의지는 최근 몇 년간 미국과의 첨예한 기술 갈등을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전략적으로 진화해왔다.
한양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부의 백서인 교수는 중국 칭화대에서 정밀기계공학을 전공하고 KAIST에서 기술경영을 공부한 공학 기반의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로서, 중국의 기술 굴기와 산업 전략을 오랜 시간 밀도 높게 추적해왔다. 그에게 중국은 단순히 기술을 베끼는 국가가 아닌, 기술을 둘러싼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하고자 하는 ‘전략국가’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백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 기술 정책의 철학부터 AI·반도체·에너지로 이어지는 미래 기술 전략까지 심도 있게 짚어보았다.
기술 자립의 논리와 중국의 속도전
백 교수는 중국의 기술굴기(技術崛起, 기술의 부상을 의미하는 중국어 표현)를 단순한 산업 전략이 아닌 ‘생존 전략’이라 표현한다. 성장, 안보, 사회 통합 등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기술이 책임져야 하는 만큼, 단기적으로 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R&D) 단계부터 자립하겠다는 명확한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기술 전략은 단기적 실행력과 장기적 비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구조라고 설명한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기술을 가능한 빨리 대체하고, 전략산업의 독립을 추구하는 ‘속도전’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AI 칩, 항공우주, 드론,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이러한 추격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 연구소, 대학, 민간기업 간 협업을 통해 기술의 외부 의존도를 빠르게 낮추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화웨이, SMIC, CATL 등의 주요 기업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예를 들어 중국에게 필요한 10개의 전략기술 중 5개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을 경우, 그중 미국만이 보유하고 있는 2~3개 기술에 대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립을 추구한다. 그것이 바로 화웨이의 예처럼 전방위적인 공급망 독립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 이후 이런 전략이 더욱 두드리고 있다. 특히 화웨이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미국의 제재 이후에도 화웨이는 2023년 메이트60 프로라는 고급 스마트폰을 재출시하며 자체 칩 기술을 공개했다. 백 교수는 “화웨이 스마트폰을 분해해 보면 중국에서 자체 제작한 부품 비율이 90%에 육박하며, 나머지 수입한 10%의 부품 중에도 미국산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단순한 국산화가 아니라, 중국이 미국의 기술 제재에 대응하며 설계-조달-제조의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또 다른 전략은 장기적인 기술 자립 비전을 바탕으로 한 기초 R&D 확대다. 이는 연구개발 분야에서부터 해외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특히 AI, 양자컴퓨팅, 핵융합, 합성생물학 등 아직 글로벌 상용화가 본격화되지 않은 분야에 대한 투자를 통해, 미래 산업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은 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연구 조직과 딥테크 기업을 수직 계열화해 상장시키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략적 복합 모델로 진화중인 중국의 기술 정책
기술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백 교수는 예산, 인재, 생태계 등 3가지를 꼽는다. “중국은 2027년이면 연간 R&D 예산만 한화 기준으로 10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순히 대량의 자금이 R&D에 투자된다는 것을 넘어, 국가의 주도로 목표를 향해 치밀하게 설계된 방식으로 기술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증거다.”
중국식 생태계 모델의 핵심은 ‘국가-산업-학계’ 삼각 협력 구조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은 이를 제품화하며, 대학은 인재와 지식 공급의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삼각형 구조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은 기술 생태계의 고도화를 이뤄내고 있다”고 그는 평가했다.
중국은 단순히 복제(catch-up)를 넘어 ‘전략적 복합 모델(여러 기술과 정책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국가 경쟁력을 극대화하려는 체계적 접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은 단순한 카피캣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카피한 후 재해석하고, 전략적으로 재설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술굴기의 본질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술 자립은 기술력 그 자체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집합적 역량인 정책과 예산, 사람, 생태계에 달려 있다. 중국은 지금 그 모든 요소를 갖춘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고,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 중국의 생존 전략
중국의 기술굴기 전략은 단지 기술의 발전이나 자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권력 경쟁의 한복판에서의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중국은 제재에 대한 정면 대응이 아니라 회피, 유인, 우회 등 다양한 생존 전략을 병행하며 체계적인 대응 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백 교수는 이러한 대응 전략을 ‘생존형 유연 전략’이라 정의하며, “중국은 리스크를 회피하면서도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유기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대응보다는 장기적 시스템 설계에 가깝다”며 중국의 생존 전략은 우회 전략, 차선 기술 활용, 역방향 협상 전략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회 전략의 대표적인 예는 GPU 수급이다. 미국은 AI 훈련의 핵심 자산인 GPU, 특히 엔비디아 제품의 수출을 제한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싱가포르, 중동, 홍콩 등 제3국 경유로 우회 수입하거나, 자국 내 클라우드나 슈퍼컴퓨팅 인프라를 통해 자체 훈련을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백 교수는 “이러한 우회 전략은 단순히 조달 경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구조 자체를 변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글로벌 기술표준에 포함되지 않았던 ‘차선 기술’의 재활용이다. 과거 글로벌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잡지 못하고 밀려나 묻혀있던 기술을 자국 표준으로 정착시키거나, 아예 새로운 기술로 전환해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중국은 통신 분야에서 TD-SCDMA와 같은 독자 표준을 채택한 전례가 있으며, AI나 블록체인, 자율주행 플랫폼에서도 이런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세 번째 전략은 미국 빅테크 기업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중국 시장의 매력을 극대화해 이들의 잔류를 유도하는 ‘역방향 협상 전략’이다. 백 교수는 “중국은 보복보다는 유인 전략을 선택했다. 자국 시장, 데이터 접근성, 투자 기회를 통해 글로벌 기업을 붙들어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애플, 테슬라, 퀄컴 등 미국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를 지렛대로 삼아 기술 유출은 방지하면서도 경제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선 이들 기업의 잔류가 기술 습득과 시장 영향력 양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술 질서에서의 주도권 재편
중국의 전략은 단순한 내부 대응이 아닌, 국제 외교와 기술외교 차원의 복합 작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과의 기술 협력을 확대하며, 자국 기술표준의 국제화를 추진 중이다. 중국과학원의 ‘AI for SDGs’ 같은 프로젝트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해 설계된 400여 개의 AI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이 프로젝트는 개도국을 위한 공힉적인 프로젝트로 성범죄 예방이나 소수 어종 보호 등 사회문제 해결에 AI를 활용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백 교수는 “중국은 기술 규범을 무기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개도국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며 국제적 우호를 다져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 정책 역시 미중 기술경쟁의 핵심 축 중 하나다. 천인계획을 통해 해외 인재를 대거 영입하고, AI·로보틱스·양자컴퓨팅 등 첨단 분야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학생 리턴을 장려하며, 고액 연봉과 연구 자율성 보장을 내세운 ‘차세대 인재 리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백 교수는 “기술경쟁은 결국 사람의 싸움이다. 중국은 단기간 내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 풀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짚는다. 바로 중국이 글로벌 규범, 즉 기술 통제의 룰셋을 재정의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는 “중국은 오픈소스 플랫폼 ‘Gitee’를 자체 개발해 깃허브(GitHub)를 대체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규범도 자국 중심의 틀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이는 단순한 자립이 아닌, 글로벌 기술 질서에서의 주도권을 다시 짜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기술 표준의 선점’이야말로 패권 장악의 실질적 수단이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 기술 주도권 — 중국이 설계하는 AI·반도체·에너지 전략
중국은 지금, 과거 산업혁명이나 정보화 혁명과는 결이 다른 새로운 기술 혁신의 길을 걷고 있다. 그것은 ‘기술 자립’과 ‘패권의 재편’을 동시에 꿈꾸는 야심 찬 프로젝트이자, AI·반도체·에너지라는 세 개의 축 위에 세워진 미래 전략이다.
백 교수는 이러한 전략을 “중국이 설계하는 기술 패권의 지도”라고 부른다. 그는 “기술 패권은 단일 기술의 우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기술군(clusters)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구성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중 첫 번째 축은 AI다. 중국은 논문 수, 특허 수, 연구기관 수, 국가 투자 규모 등 모든 지표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추월하고 있다. 칭화대, 북경대, 중국과기대는 이미 세계 상위 10% AI 논문 생산 기관으로 자리 잡았으며, 인재 유입과 투자 속도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AI 응용 분야에서도 중국은 공격적이다. 얼굴 인식, 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 컴퓨터 비전 등에서 상용화 제품을 이미 다수 보유하고 있다. AI 칩 개발도 자국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글로벌 LLM(대형 언어 모델) 경쟁에서도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화웨이, 텐센트 등 주요 빅테크가 독자 모델을 연이어 출시하고 있다.
둘째 축은 반도체다. 중국이 기술적으로 가장 취약하지만 동시에 가장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분야다. 자급률은 여전히 5~15%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SMIC, YMTC, CXMT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은 꾸준히 기술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펀드 1·2기’를 통해 총 40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해 IC 제조, 파운드리, 패키징, 설계 소프트웨어 전반에 걸친 산업 육성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반도체 대학원 설립, 중고 장비 확보, 제3국과의 기술 협력 강화 등으로 ‘실질적 자립 기반’을 빠르게 확충 중이다.
백 교수는 “반도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데이터, 공급망과 연결된 복합 구조”라고 지적한다. 중국은 이 연결고리를 끊지 않기 위해 AI 칩에서부터 데이터 센터, 전력망을 수직 계열화하는 구조를 시도하고 있다.
세 번째 축은 에너지다. 중국은 기술 패권을 뒷받침할 ‘기저 인프라’로서 에너지를 보고 있으며, 그중 핵심은 원자력과 핵융합이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진행 중이며, 2035년까지 핵융합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핵융합은 단순한 과학적 실험이 아니라, AI, 반도체, 수소경제까지 연결된 중국 기술 전략의 ‘엔진’이다. 백 교수는 “중국은 핵융합 발전을 통해 에너지의 자립과 글로벌 에너지 질서 재편까지 겨냥하고 있다”며 “이 기술이 성공하면 에너지 패권 역시 재편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3대 전략의 중심에는 결국 ‘통제력’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 중국은 기술 자체보다 기술을 둘러싼 정책, 인재, 자본, 생태계, 에너지까지 포함한 총체적 구조를 통제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백 교수는 “기술 패권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이 있는가의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더 이상 카피캣이 아니다. 이제는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는 기술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는 이 변화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백서인 교수는 한양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부 교수이자, 과학기술정책 및 중국 산업전략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다. 공학을 기반으로 한 융합적 시각을 바탕으로, 중국의 기술굴기, 산업 정책, R&D 생태계 변화 등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특히 AI, 반도체, 에너지 분야를 포함한 중국의 국가 기술 전략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학계와 정책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