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witter’s “Teacher Li” became the central hub of China protest information

中 시위 정보를 트위터로 생생히 전달한 ‘리선생’

‘제로 코로나’ 정책 반대 시위가 격렬하게 일주일내 진행되는 동안 중국인 화가 ‘리선생’ 은 트위터를 통해 시위 소식을 전했다. 어떻게 그는 1인 뉴스룸의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리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지난주[편집자 주: 11월 말], 중국 당국의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반발하는 시위 소식이 소셜 미디어를 뒤덮으면서 @李老师不是你老师 (“리 선생은 네 선생님이 아니다”)라는 한 트위터 계정이 이 시위 정보의 중심 출처로 떠올랐다. 중국 전역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트위터 계정으로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보내 시위 영상과 실시간 업데이트를 전달했다. 두려움과 불확실성이 만연한 시기이므로 사람들은 소식의 출처를 익명으로 유지했고, 리 선생은 그들을 대신하여 트윗을 올렸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중국 화가 ‘리’는 위험에 처하게 될까봐 성(姓)으로만 대화를 나누자고 요청했다. 그는 저널리즘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트위터 계정으로 1인 뉴스룸을 운영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위가 절정에 이른 지난 주말에는 매 순간 마다 수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리는 신뢰할 수 없는 시위 정보를 걸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여러 팔로워들이 보내준 정보를 트위터에 올렸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는 이미 오랫동안 온라인에서 중국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2021년이 되자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Weibo)를 통해 자신들을 대신하여 글을 올려달라는 다이렉트 메시지들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했다.

그의 게시물은 중국 당국의 검열에 의해 삭제되었고 2월에는 계정이 정지되었다. 그 후 두 달에 걸쳐 그의 49개 계정들이 정지되었다. 그러나 그의 팔로워들은 계속 더 많은 계정을 만들 수 있도록 너그럽게 전화번호를 빌려주었다. 2022년 4월, 더 이상 신규 웨이보 계정에 접속이 어려워 되자 그는 마침내 트위터로 터전을 옮겼다. 리는 그곳에서 많은 해외 이용자들과 가상 사설망(VPN)을 이용하여 차단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하는 중국인 팔로우 수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그러던 지난주엔 정저우에 있는 한 폭스콘(Foxconn) 공장의 노동자들이 경영진과 폭력적 대치가 시작되었고, 리는 중국 내의 소셜 미디어와 팔로워들이 보내준 메시지를 분석하여 시위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그날, 그는 3시간밖에 잠들지 못했다.

그 후 주말 동안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더 많은 시위가 일어났고 리는 또다시 실시간 시위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이는 중국에 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얻어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고, 해외에 있는 사람들에겐 실제로 중국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기 위함이다. 리는 나에게 “그들이 지금 중국에 있지 않더라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들이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지난 한 주 동안 그의 팔로워는 60만 명을 넘겼다. 그의 계정은 현재 중국 내 시위 관련 정보의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그의 작업은 상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중국 내 웨이보와 위챗(WeChat)을 포함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그의 계정을 언급하는 모든 글이 검열되고 삭제되었다. 그는 살해 협박과 모욕이 담긴 메시지들을 받았고, 중국 공안은 중국에 사는 그의 가족들을 찾아갔다.

그는 해외에서 트위터에서 시진핑의 이름을 언급하는 포스팅을 걱정 없이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해방감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리는 자기 트위터에 낙서한듯이 그린 고양이 아바타가 당대 가장 유명하고, 가장 위험한 고양이가 되었다고 농담을 했다.

이번 주[편집자 주: 12월 첫째주]에 그와 긴 대화를 나누었을 때, 리는 엄청난 압박을 받는 경험이 어떤 것이고 뉴스 정보의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깨어있는 시간의 일분일초를 모두 중국 시위 정보의 전달에 사용하면서 보냈지만 그는 월요일을 휴식일로 지정해 쉬기로 했다. 이런 결정은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뜻밖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아래는 리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이다. 명확한 전달을 위해 필자가 약간의 번역과 편집 작업을 거쳐 정리했다.


신원 공개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

나의 트위터 계정은 수많은 일반 트위터 이용자들과 다르지 않다.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 직업과 관련된 몇 가지 주제,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나누는 통로이다.

그러나 내 트위터 계정은 다른 목적도 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점차 메시지를 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연락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보내주며 내가 그들을 대신하여 게시물을 올려주길 바랬다.

나는 이것이 계속 강력해지고 있는 인터넷과 시진핑 집권 이후 생긴 중국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언론 통제에서 생겨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계정이 익명임에도 불과하고 온라인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꺼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여전히 표출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대신 말해주길 원한다.

웨이보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팔로워가 만 명도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내가 그들 대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나를 찾아왔다. 그러던 2월, 여덟 명의 아이를 낳은 한 엄마의 소식이 뉴스에 나왔을 때 [편집자 주: 그녀는 창고에서 사슬에 묶인 채 발견된 인신매매 피해자였다], 나는 누군가가 얼마나 그의 여동생을 찾고 싶어 했는지에 대해 업로드하여 그를 도왔다. 이 게시물은 웨이보에서 3만 번 이상 재게시되었고 그 후 내 계정은 정지되었다.

계정이 없어진 후 몇 달 동안 계속해서 새 계정을 만들었는데 매번 정지되었고, 약 2개월 동안 총 50개의 계정이 정지되었다. 계정이 만들어진 후 없어진 가장 빠른 기록은 10분이었다. 검열이 내 계정을 파해버리면 나는 즉시 새 계정을 만들었다.

나의 팔로워들은 용케 나를 바로 찾아낼 수 있었고 순식간에 수천 명의 팔로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검열자들이 웨이보 계정을 구입한 웹사이트를 찾아내어 해당 웹사이트를 정지시켰다. 그래서 더 이상 계정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웨이보는 전화번호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데 수많은 온라인 친구들이 나에게 전화번호를 빌려주면서 “괜찮습니다, 리 선생님, 제 번호를 사용하셔도 됩니다. 괜찮아요”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더 이상 새로운 계정을 만들 수 없게 되었고, 나는 트위터로 옮겨갈 수 밖에 없었다.

내 트위터 계정은 2020년에 만들어졌는데 실제로는 2022년 4월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막 시작했을 때부터 사람들은 나에게 항상 최신 뉴스를 보내줬다. 10월에 사람들이 흰색 현수막을 들고 있던 상하이에서의 사건을 포함하여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장에는 나에게 즉시 무언가를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이 항상 있었다. 서서히 팔로워 수는 늘어났다. 폭스콘 사건 취재 전에는 팔로워가 14만 명 정도였는데, 취재를 마치고 나니 19만 명이 되었다. 현재는 몇 명의 팔로워가 있는지 모를 지경에 왔다. [편집자 주: 인터뷰 당시 리의 트위터 팔로워는 67만 명이 넘었으며, 이 글을 올린 당시 78만 4천 이상으로 증가했다.]

1인 뉴스룸이 된다는 것

요즘은 5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트위터에 집중하고 있다. 함께 돕는 사람은 없다. 내 여자친구도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오로지 나 혼자하고 있다.

사실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온라인에 있었던 것은 지난 며칠 동안이 아닌 폭스콘 시위 때였다. 상황이 너무 빨리 전개되고 있어서 그들이 끝나지 않으면 나도 끝이 나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잠이나 자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결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더 광범위한 시위의 물결을 촉발시킨 우루무치에서의 화재 사건은 많은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모두가 집에 갇혀 외출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재 가능성은 모두의 걱정거리이다.

이전엔 유사한 사건이 있었을 때에는 정부의 책임이 있든 없든 간에 항상 해당 뉴스를 검열했다. 계속해서 입을 막으려 하자 사람들은 분노했다. 사람들이 가진 인내심의 한계를 넘는 선이 있다. 오늘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내일이나 모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11월 26일 밤에 있었던 신장에서의 시위는 역사에 남을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시통교(Sitong Bridge) 시위에서 유래한 슬로건을 외쳤을 때 나는 “아이고, 상하이 한복판에서 이 슬로건을 외친다면 매우 심각한 일이 될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이는 트위터에서마저 금방 잊혀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문서화해야 했다. “당장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이후 머뭇거리지 않고 시작했다. 

그 후의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마치 모두가 당신을 찾아오고, 전 세계의 다양한 정보들이 당신에게 모여들고,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이봐, 여기 이런 일들이 있어; 저기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지금 광저우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 알아?; 난 지금 우한인데 우한은 이런 상태야; 난 북경인데 지금 큰 무리를 따라 같이 걷고 있어. 나는 이렇게 갑자기 모든 실시간 정보를 받고 있었고 이 느낌이 어떻다고 설명하기 힘들다. 또한 그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내 심장은 매우 빠르게 뛰었다. 트위터 웹 버전에서는 영상을 저장할 수 없기에 내 손과 머리는 여러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다. 나는 계속해서 소프트웨어를 변경하고, 비디오를 편집하고, 완성하여 트위터에 올렸다. [편집자 주: 리는 자막 추가, 계정 정보 차단, 짧은 동영상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을 한다.] 결국 더 이상 영상을 편집할 시간이 없었고, 누군가 12초 짜리 위챗 영상을 찍어 보내주면 그냥 그대로 썼다.

11월 27일 일요일 밤 6시 경에 가장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당시 중국의 5대 주요 도시인 베이징, 상하이, 청두, 우한, 광저우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래서 그때 기본적으로 매초 십여 개의 다이렉트 메시지들을 받았다. 끝내 더 이상 정보를 가려낼 수도 없어 보고, 클릭하고, 올릴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하면 바로 올렸다.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실시간 상황을 전했다.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직접 시위 현장에 가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내주었다. 예를 들어 몇 팔로워들은 난징의 대통령궁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사진을 찍어 그 도시의 현장 상황을 알려주었으며, 모두에게 조심하라고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이런 당부가 정말 감동적인 배려심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점차 방송국에 앉아 전국의 현장 취재진들에게 끝없는 정보를 접하는 앵커가 된 기분이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 중국 항저우에 사는 5~6명의 사람들이 나에게 최신 뉴스를 업데이트해 줬다. 하지만 공안이 해산시켜 모두 도망가는 바람에 중간에 업데이트가 끊겼었다.

객관적 정보의 중요성

진실을 미화하는 트윗이 많다. 그들의 관점에서 그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분노를 극대화해야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움직인다면 결국 나는 중국 공안이 말하는 ‘외부 세력(foreign influence)’의 일부가 되는 셈일까?

그러나 중국 밖에 있는 뉴스 계정이 실시간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기록을 할 수 있다면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뉴스 보도가 되지 않는 이런 매우 극단적인 상황에서 거의 몇 초에 한 개 트윗을 하는 속도로 전국의 뉴스를 업로드하는 계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모두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애국심을 키워 직접적이거나 반대되는 것들을 말하기 부끄러워하거나 말을 못 꺼낸다. 그래서 군중들이 시위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붉은 깃발과 국기를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애국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정부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때에도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정보를 기꺼이 전달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내가 이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진실한 방식으로 보도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계정들의 경우, 중국 내부에서 듣는 것처럼 자신들이 외국 세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짜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꺼려 한다.

이들은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는 싶지만 너무 과격하게 사용되지는 않기를 바란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들은 중간에 머물고 싶어하고, 나는 실제로 그 중간 지점이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도하지만, 그 외에 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중심 허브가 된 것 같다. 물론 꾸준히 게시물을 올리다 보니 중심 허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받은 정보에 대해서만 보도하려고 하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양을 받아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한 사건의 사실을 확인하려면 여러 각도의 동영상이 필요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어젯밤 같은 경우 우한, 청두, 시안에서 총격 사건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 없어 결국 트윗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은 내가 중국 공안의 잘못을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있다고 오해하게 되었다.

중국에 있는 일부 사람들은 내가 시위를 선동했다고 생각하고, 해외에 있는 일부 사람들은 내가 중국의 선전가라고 오해하는 어색한 상황이 되었다. 이런 처지는 참으로 곤란하다. 중간점을 선택하게 된다면 확실히 양쪽 진영에서 압박을 받게 되지만 나는 괜찮다.

디지털 혼돈과 속임수를 다루는 방법

기본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여유가 없이 몇 초에 한 번씩 업로드하다 보니 피드가 매우 조밀하고 혼란스러워졌다. 몇몇은 같은 영상을 반복해서 보내줬다. 내가 만든 영상들이 위챗 모먼트(Wechat Moment) 같은 다른 플랫폼으로 퍼졌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일들도 많았다. 게시물은 북경에 관한 것이고, 광저우와 상하이에서의 시위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상이 나에게 전송됐는지 여부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영상을 나에게 다시 보내야만 했다. 예컨대 9시에 이미 올라온 영상인데도 그것이 실시간으로 올라온 영상이라고 믿고 12시 무렵에 다시 보냈다.

일요일 밤에 내가 가장 많이 받은 가짜 영상은 아마도 공안의 차량이 육교 아래로 운전하면서 사람들을 덮치는 영상일 것이다. 그 영상은 60~70번은 본 것 같다. 이 영상은 시통교 등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소개되었지만 사실 중국 현지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류의 영상을 기꺼이 믿고 싶어 한다.

이번 월요일 아침, 큰 위기를 느낀 것은 모르는 누군가 혹은 중국 당국의 관계자가 계속해서 거짓 뉴스를 보냈을 때였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메시지를 받았었지만 그 사건은 그들이 말하는 장소에서 생겨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일부 메시지는 두드러지게 가짜 티가 났다. 아마도 그들이 이런 방식으로 나를 쓰러뜨릴 수 있길 바랬을 지도 모른다.

내게 트위터로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오는 사람들 중 행동을 촉구하는 트윗이나 슬로건을 요약하여 올리거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선포해 주길 원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

나는 다들 각자의 임무가 주어져있다고 믿고, 나의 임무는 일어난 일을 보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갑자기 그런 활동가들을 합류한다면 특히 현장에 없었던 나는 실제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만약 사상들이 발생한다면 내가 그들의 행동을 지시했으므로 그들이 흘린 피는 나의 책임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나는 보도하는 것까지만 할 수 밖게 없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끝까지 자립심을 지킬 수 있다면 나는 내 힘으로 서있는 촛불과 횃불이 될 수 있다.

작업에 들어가는 정신적 비용

이것을 어떤 감정으로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불안하다. 길을 건너다가 고의적으로 차에 치인 다음에 우연한 교통사고로 위장될까봐 두렵다. 하지만 이는 내가 컴퓨터를 껐을 때만 하는 걱정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땐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대부분 느낌은 단지 지친다는 것이다. 오늘은 억지로라도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보통은 그냥 앉아서 시작하면 끝까지 거의 일어나지도 않고 작업을 한다.

하지만 오늘 몇 가지 위협들을 받기 시작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일부러 자신에게 휴가를 줬다. 휴가까지는 아니고 그냥 오랜 시간 동안 걷으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꽤 놀라운 하루였다. 어젯밤에 살해 위협을 받았었는데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다. “니가 사는 곳을 이미 알고있다. 기다리고 있어라”라는 메시지였는데 스크린샷을 찍을 새도 없이 다른 메시지에 의해 빠르게 밀려나버렸다. 한 번 쓱 본 메시지가 바로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본 이후 그 메시지는 나의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고양이 사료를 사러 나갈려 하는데 문에 있는 작은 구멍 앞에 서서 밖에 누가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했고 가는 내내 누군가가 나를 미행하지 않을까 수시로 확인했다. 집에 돌아온 후, 계단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문 옆에 물건들을 내려놓고 10분 동안 작은 구멍 앞에 서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평생 서서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가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켜서, 그 사람을 찾은 후, 나가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알고보니 거기엔 아무도 없었고 대신 정말 작고 작은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있었다. 왜 거기에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으로 데려왔고 지금 여자친구가 고양이 밥을 먹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있었던 놀라운 일이다. 고양이 이름은 우루무치로 할까 생각 중이다.

2013년 시진핑의 집권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난 꽤 억울하다고 느꼈다. 그동안 나는 계속해서 말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나 자신을 검열하고 계속해서 조심스럽게 지내왔었다.

그러던 어제, 나는 갑자기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계속 포스트를 올렸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일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들이 “시진핑은 물러나라”라고 외쳤을 때 갑자기 그동안 했었던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다. 나는 이런 일들을 보도하고 이런 단어들을 쓸 수 있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글로 적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게 다이다.

이 세 한자가 글로 써질 때에는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단어들과 차원이 다르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죽었다가 살아나고 해방감과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는 아주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 작성: Li
  • 정리: Zeyi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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