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ASML과 ’12인치 마스크’ 개발…2028년 D램에 차세대 노광 도입
반도체에 미세 회로를 새길 때 쓰는 ‘틀’을 지금보다 네 배 넓은 크기로 키워, 차세대 노광 장비의 성능을 온전히 끌어내려는 협력이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네덜란드 반도체 노광설비 기업 ASML이 주도하는 ‘대형 마스크 컨소시엄’에 참여해 차세대 12인치 포토 마스크를 공동 개발하고, 2028년 업계 최초로 첨단 D램 제조에 차세대 노광 장비 ‘High NA EUV(고개구율 극자외선)’를 도입하는 협력을 강화한다고 8일 밝혔다.
이 협력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반도체 미세화가 부딪힌 한계가 있다. 반도체 성능은 회로를 얼마나 촘촘하게 새기느냐로 결정되는데, 그 회로를 그리는 핵심 도구가 ‘노광(빛으로 웨이퍼에 패턴을 새기는 공정)’이다. 최근 등장한 High NA EUV는 이 노광을 한층 정밀하게 해주는 차세대 장비지만, 지금까지 쓰이던 작은 마스크로는 그 성능을 절반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삼성전자와 ASML은 이 병목을 마스크 자체를 키우는 방식으로 풀고, 나아가 그동안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정에 주로 쓰이던 차세대 노광을 메모리 영역까지 넓히기로 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혁신 기술과 강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첨단 반도체 제조 리더십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새기는 ‘틀’을 키운다
포토 마스크는 반도체 제조의 숨은 핵심 도구다. 미세한 회로 패턴을 정교하게 새겨 넣은 정밀한 ‘틀’로, 노광 장비 안에서 이 마스크에 빛을 통과시켜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회로를 그려낸다. 사진을 인화할 때 필름 역할을 하는 셈인데, 이 틀에 새긴 패턴의 정밀도가 곧 반도체의 성능과 수율(양품 비율)을 좌우한다.
지금까지 반도체 노광 공정에는 6인치 크기의 마스크가 쓰여 왔다. 문제는 마스크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패턴의 면적이 제한된다는 데 있다. 특히 최신 High NA EUV 장비는 빛을 더 정밀하게 다루는 대신, 한 번에 새길 수 있는 영역이 기존 장비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큰 칩을 만들려면 패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새긴 뒤 이어 붙여야 하는데, 이 ‘나누어 새기고 연결하는’ 작업을 스티칭(stitching)이라 한다.
스티칭은 생산성과 비용 모두에 부담이 된다. 하나의 칩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 나눠 노광하고 정밀하게 이어 붙여야 하므로 공정이 복잡해지고 시간이 더 걸린다. 특히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배치하는 첨단 반도체일수록 이 제약이 커진다. High NA EUV라는 좋은 장비를 들여도 그 이점을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해법이 바로 마스크를 6인치에서 12인치로 키우는 것이다. 틀이 커지면 한 번에 새길 수 있는 면적이 넓어져, 나눠 새기고 이어 붙이는 스티칭 제약을 해소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공장(팹) 생산성이 높아지고 칩 제조 비용은 낮아진다. 삼성전자가 참여하는 대형 마스크 컨소시엄은 이 12인치 마스크 개발을 목표로 공동 연구와 표준 개발을 진행하는 협의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양쪽에서 오랜 EUV 사용 경험을 쌓아온 만큼, 이 전환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8년 D램에 ‘High NA EUV’ 도입
협력의 두 번째 축은 차세대 노광 장비 High NA EUV를 메모리 제조에 도입하는 것이다. EUV는 빛의 파장이 매우 짧은 극자외선을 이용해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 기술인데, ‘High NA’는 여기서 빛을 모으는 능력(개구율)을 더 높인 차세대 버전이다. 더 정밀하게 회로를 그릴 수 있어 미세화의 다음 단계를 여는 장비로 꼽힌다.
주목할 점은 적용 대상이다. 그동안 High NA EUV는 주로 파운드리, 즉 다양한 설계의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공정에 먼저 쓰여 왔다. 삼성전자는 이를 2028년 첨단 D램 제조에 업계 최초로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D램은 데이터를 임시로 저장하는 메모리로, 이번 협력은 차세대 노광 기술이 메모리 제조에도 적용될 준비가 됐음을 의미한다.
기대되는 효과는 ‘미세화 로드맵의 연장’이다. 반도체 업계는 회로를 계속 더 작게 만들며 성능을 높여 왔지만, 물리적 한계에 다가서면서 미세화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더 정밀한 패터닝이 가능한 High NA EUV를 D램에 적용하면 이 미세화를 한 단계 더 이어갈 수 있고, 동시에 공정을 단순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다.
두 협력은 결국 ‘AI 반도체’라는 목표로 모인다. AI 연산에는 고성능 메모리와 고집적 반도체가 대량으로 필요한데, 이를 경제적으로 생산하려면 노광 기술의 진전이 뒷받침돼야 한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CEO는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ASML의 가장 중요한 혁신 파트너 중 하나”라며 “AI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에 차세대 반도체 제조 혁신을 함께 이끌어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12인치 마스크 전환과 D램 High NA EUV 도입은 각각 표준 개발과 2028년 도입을 목표로 한 진행 단계로, 실제 양산 적용까지는 추가적인 기술 검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