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료硏, 극미량 세균 1시간 만에 검출…패혈증 신속 진단 나노기술
혈액 속에 극히 적은 양만 존재하는 살아있는 세균을, 배양 과정 없이 1시간 안에 찾아내는 검출 기술이 개발됐다.
한국재료연구원(KIMS) 바이오·헬스재료연구본부 이민영·박성규 박사 연구팀은 박테리아의 표면과 주변에 금속 나노구조를 직접 키워 극미량의 세균을 신속하게 검출하는 분석 기술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이 기술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패혈증 진단의 ‘시간 싸움’이 있다. 패혈증은 감염에 대한 우리 몸의 과도한 반응으로 장기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중증 질환으로, 원인이 되는 세균을 빨리 찾아 알맞은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 생사를 가른다.
하지만 감염 초기에는 혈액 속 박테리아가 극소량이라 직접 찾아내기 어렵고, 지금 널리 쓰이는 혈액배양 검사는 세균을 충분히 늘린 뒤에야 원인균과 항생제를 확인할 수 있어 결과까지 수십 시간에서 수일이 걸린다. 연구팀의 기술은 이 배양 단계를 건너뛰고 살아있는 세균을 곧바로 검출하며, 항생제가 듣는지까지 2시간 안에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패혈증은 시간 싸움…며칠 걸리는 진단이 문제
패혈증은 세균 같은 병원체에 대해 몸이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반응하면서 여러 장기가 손상되는 위중한 상태다. 치료의 핵심은 속도에 있다. 어떤 세균이 원인인지 빨리 파악해 그 세균에 효과적인 항생제를 신속하게 투여해야 하며, 이 판단이 늦어질수록 환자의 위험은 커진다.
하지만 진단은 쉽지 않다. 감염 초기 단계에서는 혈액 속에 떠다니는 박테리아의 수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넓은 바다에서 몇 마리 안 되는 물고기를 찾는 것과 비슷해, 소량의 세균을 직접 검출하는 일 자체가 기술적으로 까다롭다.
그래서 현재는 ‘혈액배양 검사’가 널리 쓰인다. 혈액 속 박테리아를 인위적으로 증식시켜 수를 충분히 늘린 뒤, 어떤 원인균인지 확인하고 어떤 항생제가 듣는지 검사하는 방식이다. 세균을 눈에 보일 만큼 키운 다음 분석한다는 점에서 확실하지만,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이 배양에 최종 결과까지 수십 시간에서 수일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촌각을 다투는 패혈증에서 이 시간 지연은 치명적일 수 있다. 그동안 의료진은 정확한 원인균을 모른 채 광범위 항생제를 우선 투여하기도 하는데, 이는 부적절한 치료나 항생제 내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살아있는 원인균을 빠르게 검출하고 효과적인 항생제를 신속히 판단하는 기술이 요구돼 온 이유다.
박테리아를 신호에 맞추는 대신, 신호를 박테리아에 키운다
연구팀이 활용한 기반 기술은 ‘SERS(표면증강라만산란)’다. 모든 물질은 빛을 쬐면 고유의 미세한 신호(라만 신호)를 내는데, 이 신호는 너무 약해 그대로는 검출하기 어렵다. SERS는 금이나 은 같은 금속 나노구조 사이에 형성되는 강한 전자기장인 ‘핫스팟(hot spot)’을 이용해 이 신호를 크게 증폭하는 기술이다. 별도의 표지물질(형광 표식 등)을 붙이지 않고도 물질을 검출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런데 SERS를 박테리아 검출에 쓰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신호를 증폭하는 핫스팟은 크기가 수~수십 나노미터(㎚)에 불과한데, 박테리아는 그보다 훨씬 큰 약 1마이크로미터(㎛) 수준이다. 크기 차이가 수십 배에 달해, 박테리아 표면의 일부만 겨우 신호 증폭 영역에 닿을 수 있었다. 넓은 세균 표면 대부분이 신호 증폭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연구팀의 발상 전환은 여기서 나왔다. 큰 박테리아를 작은 핫스팟에 억지로 맞추는 대신, 박테리아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 핫스팟을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박테리아 자체를 나노구조가 자라나는 중심으로 삼아, 세균의 표면과 주변에 금속 나노구조를 직접 성장시켰다. 그 결과 표지물질 없이도 박테리아 고유의 라만 신호를 크게 증폭할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은 세 단계에 걸쳐 고도화됐다. 먼저 용액 속 박테리아 주변에 금속 나노구조를 키우고, 다음으로 전기를 이용해 박테리아 표면에 직접 금속을 입히는 도금 방식으로 발전시켰으며, 마지막으로 세균을 분리·농축하면서 나노구조를 추가로 키우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여기에 AI 분석을 접목해 서로 다른 8종의 박테리아를 구별하는 데도 성공했다.
1시간 검출, 2시간 항생제 평가…한 기판에 다 담다
기술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핵심은 ‘하나의 기판에서 모든 과정을 처리한다’는 데 있다. 연구팀은 여과 기능을 갖춘 SERS 기판을 만들어, 시료 속 박테리아를 걸러 한곳에 모으고 그 주변의 신호를 증폭하도록 했다. 세균을 분리하고 농축하는 과정부터 검출까지를 별도 장비 없이 한 기판에서 수행하도록 통합한 것이다.
성능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이 기술은 1~10 CFU/mL 수준의 극미량 박테리아를 1시간 이내에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CFU는 살아있는 세균의 수를 나타내는 단위로, 1 CFU/mL는 1밀리리터의 시료에 세균이 약 1개 존재하는 수준을 뜻한다. 감염 초기의 극소량 세균도 잡아낼 수 있는 민감도라는 의미다.
검출에 그치지 않고 ‘치료 방향’까지 겨냥한 점도 주목된다. 연구팀은 살아있는 박테리아에 항생제를 처리한 뒤 나타나는 SERS 신호의 변화를 분석해, 2시간 이내에 항생제가 효과가 있는지를 평가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원인균을 찾는 것을 넘어, 어떤 항생제를 써야 하는지까지 빠르게 판단할 길을 연 것이다. 혈청과 소변에 살아있는 박테리아를 넣은 모사 시료에서도 검출 성능이 확인됐다.
다만 이 기술은 아직 실제 임상 적용 이전 단계다. 연구팀은 앞으로 실제 혈류 감염과 패혈증 환자의 혈액을 대상으로 임상 검증을 추진하고, 원인균 검출과 항생제 감수성 평가를 통합한 패혈증 신속 정밀진단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민영 선임연구원은 “박테리아가 있는 곳에서 나노구조를 직접 성장시키고 분리·농축 기술을 결합해 극미량 세균 검출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핵심”이라며 “실제 감염 환자의 혈액에서 원인균을 신속하게 검출하고 항생제 반응까지 평가해 패혈증의 빠른 치료 결정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