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 간 생물학적 차이가 면역체계에 어떤 차이를 만들까
사브라 클라인(Sabra Klein)은 ‘생물학적 성(sex)’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연구를 진행하면서 클라인은 성호르몬이 뇌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호르몬이 우리의 신진대사, 심장, 골밀도 등 수많은 생리적 과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면역체계에도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8년 박사과정을 마쳤을 때 클라인은 면역체계에서 성적 차이, 줄여서 ‘성차(性差)’에 관한 연구가 자신의 박사후과정 연구를 위한 가치 있는 주제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성차에 관한 연구를 허락할 미생물학자나 면역학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논문 위원회 구성원 중 한 명의 연구실에서 박사후과정 연구원 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녀는 학교의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Bloomberg School of Public Health)에 자신의 연구실을 설립하면서 성염색체, 성호르몬, 생식 조직 같은 생물학적 속성에 의해 정의된 생물학적 성이 면역 반응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펼쳐왔다.
동물 모델과 인간에 대한 연구를 통해 클라인의 연구팀은 남성과 여성의 면역체계가 독감 바이러스, HIV, 특정 암 치료에 어떻게 그리고 어째서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어째서 대부분의 여성이 백신의 보호 효과를 더 크게 누리는데도 중증 천식과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큰지 보여주었다.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밴더빌트 대학병원(Vanderbilt University Medical Center)의 면역학자 던 뉴컴(Dawn Newcomb)은 “클라인의 실험실에서 나온 연구는 남성과 여성의 백신 반응과 면역 기능 차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 글에서 사람을 지칭할 때 ‘남성’은 XY염색체와 남성의 성기, 고환을 가졌으며 테스토스테론이 지배적인 사춘기를 겪은 사람, ‘여성’은 XX염색체와 여성의 성기를 가졌으며 에스트로겐이 지배적인 사춘기를 겪은 사람을 의미한다.)
연구뿐만 아니라 관련 학술토론회와 회의까지 주선하면서 클라인은 성차가 중요하지 않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면역학 분야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임상시험은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그 결과는 공중보건과 의학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남성 위주의 임상시험으로 인해 여성은 생명을 구해줄 수 있었을 HIV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남성과 같은 양의 약물 투여와 백신 접종으로 인해 최악의 부작용을 견뎌야 했다.
학술지와 정부 기금 기관의 변화와 클라인과 동료 연구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양성을 모두 다루는 면역학 연구 비중은 2009년에 16%에서 2019년에는 46%로 증가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덴마크 남부대학교의 세계보건 분야 교수 크리스틴 스타벨 벤(Christine Stabell Benn)은 “클라인은 컨퍼런스를 조직하고 학술지 편집자들에게 성이나 젠더에 따라 계층화한 자료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기존의 치료법을 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면역학에서 성차를 바탕으로 하는 메커니즘을 조사하는 것은 새로운 치료법을 위한 길도 열어줄 수 있다. 다발성경화증과 천식에 대한 임상시험은 이미 일부 유망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면역학자이자 감염병 연구원 아일린 스컬리(Eileen Scully)는 “두 그룹이 서로 차이를 보이는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 쏟아져 나올 금광을 발견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성차와 관련한 면역학적 발견을 활용하려면 과학자들은 건강에 영향을 주는 사회문화적, 환경적 요인과 그러한 요인과 생물학적 성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스컬리는 “나는 이것이 개개인에게 맞춤치료를 제공하겠다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을 향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남성과 여성은 감염병이나 자가면역질환을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여성이 루푸스(lupus)에 걸릴 확률은 남성보다 9배나 더 높으며 일부 독감 변종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할 가능성도 지금까지 남성보다 여성이 더 컸다. 한편 남성은 결핵에 걸리거나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
1990년대에 과학자들은 이러한 차이가 생물학적 성(sex)보다는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에 기인한다고 여기는 일이 많았다.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규범, 역할, 관계, 행동 등 사회문화적 요인이 면역체계에 영향을 준다고 본 것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신경면역학자 론다 보스쿨(Rhonda Voskuhl)에 따르면 예를 들어 다발성경화증의 경우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3배나 더 많은데도 1990년대에 면역학자들은 이러한 차이에 생물학적 근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무시했다. 보스쿨은 “사람들은 ‘여자들이 불평이 더 많고 히스테릭하다’고 말하곤 했다”며 “따라서 성별에 따라 특정 질병의 발병률이 다른 것이 모두 주관적이거나 환경적인 이유 때문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물학의 차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납득시켜야 했고 그것은 매우 힘든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성차를 고려하지 않는 ‘비키니 의학(bikini medicine: 비키니에 가려지는 부위 외에는 성별에 따른 큰 차이가 없다는 개념)’이라는 의학적 관행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이제 신진대사나 심장이나 면역체계를 볼 때 생물학적 성차와 사회문화적 젠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는 모두 질병에 대한 민감성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남성은 여성보다 결핵 발병률이 2배 정도 높은데, 남성과 여성의 면역체계 차이도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남성 중에 흡연자가 더 많다는 점과 남성이 폐의 면역 방어를 손상시킬 수 있는 독성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광산이나 건설 현장에서 더 많이 일한다는 점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성과 젠더의 영향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여기서 동물 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 여성 건강 연구소(US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Office of Research on Women’s Health)의 기초 및 중개연구 분야 부소장 시렌 헌터(Chyren Hunter)는 “젠더는 우리가 인간과 연관 짓는 사회 구조이므로 동물은 젠더를 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같은 효과가 동물 모델과 인간 양쪽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것은 면역 반응이 생물학적 성에 의해 조절되는지 여부를 알아내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성만 연구해서는 성별에 따른 차이를 알아낼 수 없다. 클라인은 어떤 회의에서 기생충의 일종인 선충을 연구하는 한 연구원이 암컷 쥐는 선충에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는 수컷 쥐만 가지고 진행했다고 말했던 일을 기억한다. 그녀는 해당 연구원이 ‘선충이 암컷을 감염시키지 않는 이유’에 관해 연구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에 크게 놀랐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맙소사! 그걸 알아내면 대혼란을 일으키는 선충에 대한 치료법을 발견할지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했다.
1992년 미국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은 수면에 도움을 주는 엠비엔(Ambien)이라는 약을 승인했다. 그런데 이 약의 활성 성분인 졸피뎀(zolpidem)이 몽유병과 비슷하지만 훨씬 위험한 ‘수면 중 운전’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한다는 것이 나중에 분명해졌다. 2013년까지 진행된 각종 실험실 연구와 운전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졸피뎀을 복용하고 8시간 후에 여성의 혈액에는 운전을 방해하고 교통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약 성분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그해에 FDA는 여성의 엠비엔 복용량을 남성의 절반 수준으로 정했다.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여성(암컷)이 남성(수컷)보다 약을 대사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약물의 효과에도 더 민감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약물 승인 전에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면 유해하고 잠재적으로는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효과가 발생할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연구에서 애초에 성차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임상시험은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수행되었다. 그로 인해 여성은 종종 최악의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1997년에서 2001년 사이에 FDA가 시장에서 철수시킨 약물 10개 중 8개는 여성에게 중대한 건강 위험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FDA 승인 후에 발견되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소속으로 클라인의 동료 중 하나인 로즈메리 모건(Rosemary Morgan)은 “시장에 출시된 약물들은 사실 남자들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임상시험 이전에 진행되는 임상 전 동물 연구 역시 이와 유사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최근 5년 전까지만 해도 설치류 약물 연구의 75% 이상이 수컷만을 이용해서 이루어졌다.
동물 실험을 수행할 때 암컷과 수컷을 모두 사용하려면 더 큰 노력과 더 많은 연구비가 필요할 수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암컷 동물의 생식주기(reproductive cycle)를 다루고 싶지 않아서 암컷 동물 사용을 피한다. 하지만 각종 연구에서는 유전자 발현부터 호르몬 수치까지 다양한 특성에서 암컷 쥐나 햄스터가 수컷만큼 변화가 적고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변화가 덜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다른 연구원들은 우리에 함께 넣었을 때 수컷들이 서로 싸울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이유로 암컷만 사용하기도 한다. (클라인은 연구원들이 이차 성징에 도달하지 않은 수컷 동물들을 데려와서 몇 주 동안 함께 성장시키면 그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그룹이 서로 차이를 보이는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 쏟아져 나올 금광을 발견한 것과 같다”
1990년대 중반에 보스쿨은 여성이 루푸스와 다발성경화증 같은 자가면역질환에 훨씬 취약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수컷과 암컷 쥐를 모두 이용하기로 했다. 다발성경화증에 관해 잘 연구된 쥐 모델이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수컷 쥐가 큰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발성경화증이 암컷 쥐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보스쿨은 다발성경화증이 암컷 쥐와 수컷 쥐에게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 집중했다. 특히 그녀는 한쪽 성별의 쥐에서 가져온 면역 세포를 다른 성별의 쥐에 이식하는 방법을 통해 암컷에서 가져온 면역 세포가 수컷의 면역 세포보다 다발성경화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생물학적 성이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민감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젠더 같은 다른 요인도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여성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보스쿨은 “우리가 진행한 실험은 성에 따라 매우 기본적인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는 중요하다. 생물학적 성이 하나의 요소임을 보여주는 것이 면역 메커니즘의 작용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전 단계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에는 임상시험의 상황도 개선되고 있었다. 1993년 미국 의회는 국립보건원(NIH)이 연구비를 지원하는 모든 임상시험에 여성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동물 실험에 대해서는 2016년 NIH가 척추동물과 인간에 대한 연구 설계, 분석, 보고에서 생물학적 성을 고려하도록 하는 ‘생물학적 변수로서의 성(Sex as a Biological Variable)’ 정책을 도입했다. 캐나다와 유럽에서는 이미 비슷한 정책이 제정되어 있었지만, NIH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생물의학 연구 공공 기금이므로 그 의의가 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시작에 불과했다. 특히 면역학에서 그랬다. 2011년에 있었던 검토에 따르면 면역학은 발표 논문에서 인간이나 동물 피험자의 성별을 보고했는지에 따라 매긴 순위에서 10개의 생물학 분야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예를 들어 2010년 클라인은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효과적인 황열병 백신과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이용 가능한 자료를 다시 분석했다. 해당 자료를 만든 연구원들은 자료를 성별에 따라 분석하지 않았다. 클라인은 성차에 따른 분석을 통해 백신에 대한 면역 반응에서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차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여성이 더 강한 면역 반응을 보였고 잠재적으로는 더 나은 보호 효과를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벤은 “그 발견은 면역학 분야에 큰 공헌이 되었고 성에 따라 계층화한 자료를 분석하는 것의 가치를 증명했다”며 “원래 연구 결과는 전체적으로 약간 모호했는데 거기에 남성과 여성의 면역 반응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차이가 숨겨져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클라인은 여성에게 독감 백신의 보호 효과가 더 높게 나타나는데도 여성이 독감에 더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탐구하는 것을 연구 목표로 삼았다. 클라인은 독감에 걸린 암컷 쥐가 일반적으로 수컷 쥐보다 폐에 더 많은 염증과 조직 손상을 보이며 더 강한 면역 반응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면역 반응을 유도하면 암컷 쥐들이 수컷보다 훨씬 강한 면역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클라인의 연구는 이러한 생물학적 성차가 우리가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은 백신을 접종한 후 더 많은 부작용을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랫동안 이것이 생물학적 성차가 아니라 ‘젠더의 차이’ 때문인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남성은 그런 부작용을 보고하는 것을 꺼린다거나 여성이 고통에 관해 보고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0년대 말 클라인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그런 차이뿐만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같은 항체반응을 보이려면 훨씬 적은 양의 백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벤은 이러한 발견이 “매우 획기적”이었다며 “클라인이 진행한 연구를 보면 우리에게는 성차를 고려한 백신 프로그램이 확실히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독감 백신 투여량을 줄여서 이전과 같은 효과를 보장하면서도 부작용은 절반으로 줄이면 백신 접종에 대한 망설임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클라인은 수많은 강연, 인터뷰, 과학 기사뿐만 아니라 2009년에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여성에게 그렇게 많은 양의 독감 백신이 필요한가?(Do Women Need Such Big Flu Shots?)’라는 칼럼을 통해 성차에 따라 백신 투여량을 조정하는 정책을 옹호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러한 생각이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아기가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 강한 면역 반응은 여성이 나이를 먹을수록 자가면역질환 위험성을 높인다.
벤은 왜 그 생각이 관심을 얻지 못했는지에 관해 다양한 이유를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비슷한 결과를 보장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다루는 것이 직관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연구원들은 정책입안자들이 그쪽으로 움직이기 훨씬 전에 합의에 이를 수 있다”며 “물론 행정적인 부분은 살짝 복잡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라인은 남성과 여성의 백신 접종에 차이를 두는 것이 젊은 성인에게 접종할 때보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더 적은 양의 백신을 접종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노인과 일반 성인의 백신 투여량을 다르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일이다.
성차를 고려한 백신 정책이 시행된다면 이를 통해 혜택을 볼 대상은 여성뿐만이 아니다. 클라인, 모건과 함께 최근 박사학위를 마친 재나 샤피로(Janna Shapiro)는 독감이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노년 남성의 면역 반응이 노년 여성의 면역 반응과 비교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코로나 백신 3차 접종은 노년 남성에게 특히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샤피로는 현재 그런 접종은 없지만 시즌 중간에 맞을 수 있는 독감 부스터샷이 있다면 노년 남성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여성이 더 강력한 면역 반응을 보이는 현상은 인간뿐만 아니라 성게와 초파리부터 새와 설치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에서 나타난다. 클라인은 “다윈의 관점을 취한다면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에는 진화와 관련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가설은 암컷 포유동물에게 나타나는 강력한 면역 반응이 자궁에 있는 아기에게 또는 출산 후 젖을 통해 아기에게 더 많은 항체를 전달하여 아기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기가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 강한 면역 반응은 여성이 나이를 먹을수록 자가면역질환 위험성을 높이지만 진화적인 관점에서는 이것이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
우리 게놈에서 면역체계의 성차는 주로 X염색체에 작용한다. X염색체는 면역 신호와 반응에 관여하는 많은 유전자를 담당한다. 캘리포니아의 스탠퍼드 여성 건강과 성차에 관한 의학센터(Stanford Women’s Health and Sex Differences in Medicine Center in California) 책임자 마시아 스테패닉(Marcia Stefanick)은 “X염색체를 두 개 갖고 있는 것은 면역 문제 측면에서 X염색체와 Y염색체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X염색체가 두 개 있으면 면역 유전자 일부를 두 배로 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칙적으로는 한 가지 복제만 활성화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복제 유전자가 많으면 더 강한 유전자 표현과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TLR7(toll-like receptors 7: 톨 유사 수용체 7)’이라는 X염색체 유전자는 수많은 면역학적 성별 차이에 관여해왔다. TLR7은 병원균을 인지하고 면역체계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이것은 특히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높은 여성 유병률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클라인은 “우리가 TLR7을 제거하면 백신 접종 이후에 여성 편향적으로 나타나는 면역과 보호 효과를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TLR7은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HIV에 대해서 더 강한 면역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연구원들은 1990년대에 이러한 면역학적 성차에 관해 알지 못했다. 따라서 스컬리에 따르면 당시에는 ‘바이러스양(viral load)’에 따라 HIV 치료 대상을 결정했다. 그러나 HIV가 에이즈(AIDS)로 진행될 때 지배적인 변수는 바이러스양이 아니라 면역 반응이다. 바이러스양을 기준으로 삼는 바람에 치료를 받아야 했을 많은 여성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ROSEM MORTON ROSEM MORTON
스컬리는 “바이러스양을 기준으로 삼는 바람에 여성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었다”며 “HIV 이야기는 바이러스양 같은 생체지표(biomarker)가 남성과 여성에게서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그것이 치료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성염색체는 또한 테스토스테론,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같은 성호르몬과 상호작용하며 이러한 성호르몬은 그 자체로 면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우리 몸에 있는 거의 모든 면역 세포는 성호르몬이 결합하여 유전자 발현을 조정할 수 있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클라인은 에스트로겐이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백신에 대한 항체반응을 증가시켜 독감으로부터 암컷 쥐를 보호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클라인은 “우리는 젊은층과 노년층 여성에서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을수록 독감 백신에 더 나은 항체반응을 보인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춘기나 폐경 이후 또는 임신 중에 질병에 관한 면역 반응이나 증상이 변화하는지 알아보면 성호르몬의 관여에 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보스쿨은 “임신은 다발성경화증 환자에게 매우 좋은 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러한 효과를 추적해서 임신 중에 특이하게 생성되는 에스트로겐인 ‘에스트리올(estriol)’에 도달했다. 에스트리올은 항염 및 신경보호 효과를 가지고 있다. 보스쿨은 임상시험에서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잠재적인 치료제로 에스트리올을 테스트해왔다. 그녀는 지금까지는 결과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천식은 성호르몬이 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질병이다. 천식 유병률은 사춘기 이후에 급격하게 변화한다. 어릴 때는 천식이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에게 더 많이 발생하지만 사춘기가 지나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흔하고 더 심각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뉴컴은 쥐 실험에서 테스토스테론처럼 남성에게 지배적인 호르몬을 총칭하는 안드로겐(androgen)을 제거하면 천식 관련 기도 염증이 증가하지만 에스트로겐을 제거하면 천식이 감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 결과는 기도 염증이 에스트로겐에 의해 증가했고 안드로겐에 의해 감소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테스토스테론 등 안드로겐은 천식 전용 치료제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현재 전신 효과가 없는 ‘DHEA’라는 관련 호르몬의 효과를 테스트하고 있다. 만약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DHEA는 천식을 예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루푸스나 다발성경화증 같은 일부 자가면역질환과 관련해서도 유용할 수 있다.
“임상 연구에서 성소수자는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
성호르몬과 성염색체의 역할에 관해서는 조사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성염색체 외부 유전자를 통해서나 우리 소화기 계통의 미생물 활동을 통해서 등 다른 방식으로도 성차가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우리 내장에 살고 있는 10조에서 100조에 달하는 미생물과 그와 관련된 유전체를 의미하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역시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면역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여성이 자가면역질환에 취약한 것에도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면역학적 성차의 기저를 이루는 이러한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있지만 미래는 밝은 편이다. 보스쿨은 “이 분야는 새로운 치료법들이 탄생할 개척지”라고 말했다.
성차에 관한 연구를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려면 과학자들은 생물학적 성이 젠더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생물학적 성과 젠더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20년 중국에서 발표한 초기 보고서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코로나19로 사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면서 그 원인으로 보이는 초기 가설로 젠더 차이에 주목했다. 샤피로는 “초기에는 사람들이 흡연이나 의료서비스 이용률 차이 때문에 성별에 따른 사망률 차이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남성의 사망률은 점점 악화되었다(적어도 인종에 따른 영향을 제외한다면 그랬다.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는 흑인 여성의 사망률이 백인 남성과 아시아인 남성의 사망률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클라인은 “내가 보기에 그러한 상황은 무언가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클라인은 서둘러 코로나19 감염에서 성차 이면에 어떤 메커니즘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햄스터를 이용한 실험에서 인간에게 보고된 것처럼 햄스터도 수컷이 더 심한 증상을 겪고, 폐에 더 많은 손상을 입으며, 폐렴과 더 유사한 증상을 겪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인간이 감염병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해석하는 것은 인종과 젠더 같은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더 복잡하다. 스컬리는 “마스크 사용, 백신 접종, 일터에서의 노출 등 병에 걸릴 위험을 증가시키는 행동적 요인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여성은 간호사, 교사, 아픈 가족을 보살피는 사람으로서 코로나 감염에 노출되는 위치에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연구원들은 또한 논바이너리(non-binary)나 트랜스젠더에 해당하는 사람을 포함해 전체적인 젠더 스펙트럼에 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샤피로는 “역사적으로도 제대로 대변되지 못했고 의학 연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등 다양한 이유로 임상 연구에서 성소수자는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와 다른 연구원들은 젠더와 관련한 행동과 태도에 대한 조사를 ‘젠더 점수’를 생성하기 위한 연구에 포함해왔다. 이러한 평가를 통해 과학자들은 생물학적 성의 영향이나 심지어 스스로 보고하는 성 정체성의 영향과 별개로 젠더가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수행된 흔치 않은 면역학 실험에서 스컬리는 트랜스젠더 여성 집단에서 호르몬 요법과 성정체성의 영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 여성은 특히 HIV 감염 위험이 매우 큰 집단”이라며 “따라서 그들을 위해 가장 좋은 치료법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호르몬 요법은 개인의 면역 반응을 바꿀 수 있고 사회적 요인도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면역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컬리의 목표는 이러한 영향을 이해하고 잠재적인 HIV 치료법을 연구할 때 그것들을 고려하는 것이다.
간성(intersex), 즉 생식기나 성호르몬, 염색체 구조와 같은 신체적 특징이 이분법적 구조(남성과 여성)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처럼 아직 면역체계가 제대로 연구되고 있지 않은 집단도 있다. 그들은 성염색체, 생식계통 해부학, 유전자, 호르몬 등에서 일반적인 남성이나 여성 신체 개념에 들어맞지 않는 차이를 가질 수 있다.
생물학적 성과 젠더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에 관한 건강과 질병 지식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성염색체, 성호르몬, 유전자, 젠더가 상호작용하며 면역체계와 질병에 대한 민감성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 관한 통찰을 제공할 수도 있다. 모건은 “우리는 남성과 여성과 성소수자가 서로 다르게 영향을 받는지 살펴보면서 더 나은 의료, 약물, 백신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클라인은 성차에 관한 연구를 더 확장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2022년 5월 미국 면역학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Immunologists)를 위한 면역 반응의 성차에 관한 첫 번째 주요 심포지엄을 마련한 후에 클라인은 2023년 4월 면역학의 성차에 관한 첫 번째 고든 리서치 컨퍼런스(Gordon Research Conference)에서 주요 국제 과학자 모임을 조직하고 있다. 클라인은 “나는 암을 연구하는 사람들, 자가면역질환을 연구하는 사람들, 뇌의 면역 반응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다”며 ‘성차의 생물학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 아래서 우리가 함께 모여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관된 진실이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클라인이 성차에 관해 이야기하며 혼자라고 느꼈던 면역학 초창기 때와는 다를 것이고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면역에서 성차에 관한 연구를 주류 연구 분야로 가져오기 위해 지난 20년 동안 노력해온 클라인은 “상황이 바뀌었다”며 “면역학 분야에서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이 글을 쓴 Sandeep Ravindran은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과학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