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 늘려도 안 찌그러지는 화면 만들었다…전자피부·웨어러블 길 열어
화면을 잡아당겨도 그 안의 글자·그림이 찌그러지지 않고 가로·세로 모든 방향으로 같은 비율로 커지는 신축(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 플랫폼이 구현됐다.
KAIST는 전기및전자공학부 유승협 교수 연구팀이 동아대학교 문한얼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오그제틱(auxetic)’ 구조를 이용해 화면 전체는 물론 내부의 미세한 이미지까지 균일하게 확장되는 디스플레이 플랫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8일 밝혔다. 그동안 신축 디스플레이 연구는 잡아당겨도 소자와 배선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데 집중돼 왔다. 하지만 화면이 늘어나는 순간 그 위에 표시된 정보가 뭉개진다면 디스플레이로서의 쓸모는 사라진다. 이번 연구는 신축 디스플레이의 성능 기준을 ‘얼마나 잘 늘어나는가’에서 ‘늘어나는 동안 정보가 얼마나 정확히 유지되는가’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잘 늘어나는 화면은 있었다, 정확히 늘어나는 화면이 없었을 뿐
디스플레이는 평면에서 휘어지고 접히는 형태로 진화해 왔다. 다음 단계는 화면 자체가 고무처럼 늘어나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다. 평소엔 작게 쓰다가 필요할 때 잡아당겨 넓게 보는 화면, 피부에 붙여 쓰는 화면이 여기서 나온다.
문제는 재료의 물리적 성질에 있다. 기존 신축 디스플레이는 신축성 기판(디스플레이를 떠받치는 고무 같은 바닥층) 위에 빛을 내는 소자를 얹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무 재질은 ‘양의 푸아송 비’를 갖는다. 고무줄을 옆으로 당기면 위아래로는 오히려 얇아지는 현상이다. 화면을 가로로 당기면 세로가 줄어드니, 그 위의 글자와 그림은 납작하게 눌린 모양이 된다.
해법으로 등장한 것이 오그제틱 구조다. 잡아당기면 수직 방향으로도 함께 넓어지는, 즉 ‘음의 푸아송 비’를 갖도록 설계한 인공 격자 구조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오그제틱 적용 사례는 화면 바깥 테두리의 가로·세로 비율을 지키는 데 그쳤다. 화면 전체 모양은 유지돼도 그 안에 새겨진 작은 글자와 그림은 여전히 국소적으로 일그러졌다. 연구팀이 겨냥한 지점이 바로 이 간극이다.

‘전부 붙이지 않는’ 설계가 답이었다
기존 방식은 오그제틱 격자와 신축성 기판을 면 전체에 걸쳐 접착했다. 겉보기엔 튼튼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러나 오그제틱 격자는 늘어나는 과정에서 각 단위 셀이 회전하며 변형된다. 전면 접착을 하면 이 비틀림이 그대로 기판 표면에 전달되고, 결국 화면 안쪽 이미지가 찌그러진다.
연구팀은 반대로 갔다. 정교한 계산을 통해 격자와 기판을 필요한 위치에만 선택적으로 연결하는 설계를 제안했다. 회전 사각형 기반 오그제틱 프레임워크의 확장 거동은 기판 전체에 전달하되, 회전에서 비롯되는 국소 변형은 걸러내는 구조다. 그 결과 화면의 각 지점이 제자리를 기준으로 바깥쪽을 향해 고르게 밀려나면서, 전체 비율과 작은 영역의 형태가 동시에 보존된다.
연구팀이 강조한 또 하나의 성과는 평가 지표다. 기존에는 최대 신축률, 소자 안정성, 전기적 특성 변화 정도로 성능을 쟀다. 연구팀은 각 지점의 변위 벡터가 이상적인 등방성 확장(모든 방향으로 같은 비율로 커지는 상태)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상관계수 개념으로 수치화한 ‘등방성 확장 지수(isotropic expansion factor)’를 도입했다. ‘왜곡이 적다’는 감각적 표현을 설계 기준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 지표 덕분에 여러 구조와 결합 조건을 비교해 최적 설계를 도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연구팀은 모든 결합 방식이 왜곡을 줄이지는 않으며, 무작정 전체를 붙이면 오히려 변형 불균일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5% 늘려도 밝기 감소 2% 미만
검증은 두 단계로 이뤄졌다. 먼저 문자와 그림을 새긴 기판을 가로·세로 방향으로 반복해서 잡아당겼다. 기존 방식에서는 패턴이 부분적으로 변형된 반면, 새 플랫폼에서는 글자와 그림의 형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화면 외곽뿐 아니라 내부의 미세한 이미지까지 왜곡 없이 확장된다는 증거다.
이어 연구팀은 이 플랫폼 위에 LED 어레이(여러 개의 LED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한 구조)를 집적해 실제 디스플레이로서의 동작을 확인했다. 가로·세로 각 방향으로 15%까지 늘려도 전기가 안정적으로 흘렀고 화면 밝기가 유지됐다. 15% 인장 동작을 반복한 뒤에도 밝기 감소는 2% 미만에 그쳤다. 기계 구조가 아니라 작동하는 디스플레이로서 성립한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웨어러블 전자기기, 전자피부(e-skin·피부처럼 늘어나면서 감지와 정보 표시가 가능한 전자소자), 의료용 바이오센서, 소프트 로봇, 자동차·항공기용 곡면 디스플레이 등 형태가 자유롭게 변하는 차세대 전자기기의 핵심 플랫폼으로 쓰일 것으로 기대했다. 지도, 문자, 아이콘, 의료 영상처럼 작은 왜곡도 사용자 인식에 영향을 주는 콘텐츠일수록 가치가 크다. 유승협 교수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가 실제 정보 표시 장치로 활용되려면 단순히 잘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늘어나는 과정에서도 화면 속 정보가 정확하게 유지돼야 한다”며 “이번 플랫폼은 화면의 작은 영역부터 전체 화면까지 균일한 확장을 구현해 고해상도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 상용화를 앞당길 핵심 기반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