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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나노 사포’ 개발로 AI 반도체 표면 가공 새 길 열었다

일상의 사포 원리를 나노 기술로 확장해, 기존 공정의 정밀도 한계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넘었다.

머리카락보다 수만 배 가는 탄소나노튜브를 연마재로 활용해 반도체 표면을 원자 수준까지 균일하게 가공하는 ‘나노 사포’ 기술이 개발됐다.

KAIST 기계공학과 김산하 교수 연구팀은 탄소나노튜브를 수직으로 정렬한 뒤 폴리우레탄 내부에 고정하고 표면에 일부만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나노 사포를 구현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기술은 기존 반도체 평탄화 공정에 쓰이는 화학액(슬러리) 없이도 정밀 가공이 가능하며, 실험에서 기존 공정 대비 주요 결함을 최대 67%까지 줄이는 결과를 보였다. 연구 결과는 복합재료 및 나노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컴포짓 앤 하이브리드 머티리얼즈(Advanced Composites and Hybrid Materials)》에 올해 1월 8일 게재됐으며, 제31회 삼성휴먼테크논문대상 기계공학 분과 금상(1위)을 수상했다.

나노사포 모식도

일반 사포의 50만 배, 탄소나노튜브가 연마재가 된 이유

반도체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 AI 서버에 쓰이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여러 층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전송 속도를 극대화한 반도체)처럼 첨단 소자일수록 표면의 미세한 굴곡이 성능과 신뢰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반도체 업계의 표준 방식은 CMP(Chemical Mechanical Polishing·화학기계적 평탄화)로, 연마 입자를 화학액에 분산시킨 슬러리를 흘려보내며 표면을 갈아낸다. 그러나 이 방식은 공정 후 슬러리 잔여물을 제거하는 별도의 세정 공정이 필요하고, 폐기물이 대량 발생하는 환경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일상의 사포에서 찾았다. 사포의 핵심 원리는 표면에 촘촘히 고정된 연마 입자가 균일하게 소재를 깎아내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개념을 나노 수준으로 확장해, 탄소나노튜브(탄소 원자가 육각형 그물 구조로 연결된 원통형 나노 소재로, 강철보다 강하면서도 전기가 잘 통하는 특성을 가진다)를 수직으로 정렬한 뒤 폴리우레탄 패드 안에 고정하고 끝부분만 표면 밖으로 조금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나노 사포를 구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노 사포의 연마재 밀도는 단위 면적당 연마 알갱이 수를 나타내는 지표인 ‘입방수’ 기준으로 10억(1,000,000,000) 이상으로, 시중에서 가장 고운 일반 사포보다 약 50만 배 촘촘하다. 연마재가 패드 안에 고정돼 있어 가공 중 입자가 떨어져 나가 표면을 긁는 문제도 구조적으로 차단했다.

이 구조 설계에서 핵심은 탄소나노튜브를 단순히 표면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정렬해 고정했다는 점이다. 탄소나노튜브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세워져 있기 때문에, 반도체 표면과 접촉할 때 각 튜브가 균일한 힘으로 같은 깊이만큼 깎아낸다. 튜브 끝부분만 폴리우레탄 밖으로 조금씩 노출된 구조 덕분에, 압력이 가해져도 튜브가 이탈하지 않고 반복 사용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구조는 연마재 이탈을 구조적으로 억제해 표면 손상 우려를 없앴으며, 반복 사용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한다.

나노사포 세부 이미지

디싱 결함 67% 감소…HBM·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의 새로운 가능성

나노 사포의 실제 성능은 구리 표면 가공 실험에서 확인됐다. 거칠게 처리된 구리 표면을 수 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원자 몇 개를 나란히 놓은 두께) 수준까지 매끄럽게 가공할 수 있었다. 반도체의 치명적인 결함인 디싱(dishing)을 최대 67%까지 줄이는 결과를 얻었다. 디싱이란 반도체 배선 중앙부가 움푹 파이는 현상으로, 마치 접시 모양처럼 가운데가 꺼지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회로 배선이 불균일해지면 전기 신호가 왜곡되거나 소자의 수명이 줄어들기 때문에 HBM처럼 성능 기준이 엄격한 첨단 반도체에서는 특히 고질적인 문제다.

디싱 결함이 크게 줄어든 것은 나노 사포의 균일한 연마재 분포 덕분이다. 기존 CMP 방식에서는 슬러리 속 연마 입자가 액체 안에서 불규칙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배선 중앙처럼 오목한 부분과 가장자리가 다른 속도로 깎이며 디싱이 발생한다. 반면 나노 사포는 수십억 개의 탄소나노튜브가 고정된 위치에서 동시에 균일하게 접촉하기 때문에, 배선 전체 면적을 같은 속도로 평탄화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HBM 공정 외에도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반도체 칩과 칩을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미세한 간격으로 직접 접합하는 차세대 연결 기술로, 표면이 조금이라도 울퉁불퉁하면 접합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극도의 평탄도가 요구된다. 나노 사포는 슬러리 없이 작동하기 때문에 세정 공정을 줄이고 폐슬러리 발생을 없앨 수 있어, 반도체 제조 공정의 친환경화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김산하 교수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사포의 개념을 나노 수준으로 확장해 초미세 반도체 제조에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독창적인 연구”라며 “반도체 성능 향상뿐 아니라 친환경 제조 공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