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IST, 신호 길 여닫고 계산까지 한 소자로 처리…우주·6G 통신 전력 줄인다
위성은 한 번 쏘아 올리면 제한된 태양광과 배터리로 모든 기능을 버텨야 한다. 부품 하나가 전력을 계속 먹거나 자리를 많이 차지하면 시스템 전체에 부담이 된다. 그래서 통신 칩의 ‘전력’과 ‘크기’는 곧 생존의 문제다.
신호의 길을 여닫는 스위치와 데이터를 계산하는 연산을 하나의 소자로 처리해, 통신 칩의 전력과 크기를 줄이는 반도체 소자가 개발됐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과 김명수 교수팀은 산화된 2차원 반도체 소재를 기반으로 한 다기능 멤리스터(memristor, 전압·전류에 따라 저항이 바뀌고 전원을 꺼도 그 상태를 기억하는 비휘발성 소자) 반도체 소자를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소자는 통신 고주파 신호의 길을 여닫는 RF 스위치와 연산 소자로 모두 쓸 수 있어, 두 기능을 따로 두던 기존 방식보다 칩 면적과 전력을 줄일 수 있다. 전력과 공간 제약이 극심한 위성 통신 장비나 6G 기지국에 적합한 기술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6월 6일 온라인 공개됐다.
위성과 6G에선 ‘전력’과 ‘크기’가 곧 성능
차세대 6G와 위성통신은 초고속·대용량 전송을 위해 기존보다 훨씬 높은 주파수 대역을 쓴다. 이 고주파 신호의 전달 경로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여닫는 RF 스위치(무선통신에서 고주파 신호의 길을 선택적으로 연결·차단하는 반도체 소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특히 위성통신이나 레이더처럼 전력과 공간이 제한된 시스템에서는 스위치가 쓰는 전력과 차지하는 면적이 곧 시스템 설계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그런데 기존 RF 스위치들은 저마다 약점을 안고 있었다. 널리 쓰이는 반도체 기반 스위치는 집적과 양산에 유리하지만, 고주파로 갈수록 신호 손실과 누설이 커진다. 또 상시 대기 전력을 소모한다는 한계도 있다. 신호 손실이 적은 MEMS 스위치는 구동 전압이 높고 소자 면적이 크며, 상변화 물질 기반 스위치는 전원 없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별도의 히터 구조와 열 간섭 문제를 동반한다.
문제는 스위치만이 아니다. 기존 RF 시스템은 고주파 신호를 다루는 부분과 계산을 맡는 디지털 신호처리부가 분리돼 있다. 안테나로 들어온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꾸고, 데이터를 별도의 프로세서로 옮겨 계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전력 소모와 처리 지연이 함께 커졌다. 신호 경로를 초저전력으로 제어하면서 계산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소자가 필요했던 배경이다.

이황화몰리브덴을 ‘구워’ 만든 다기능 소자
연구팀의 해법은 소재를 산화시키는 데서 출발했다. 2차원 반도체 소재인 이황화몰리브덴(MoS₂, 몰리브덴과 황 원자층이 결합된 원자 수준으로 얇은 반도체 물질)을 400℃에서 산화시켜 멤리스터 소자를 만들었다. 산화된 이황화몰리브덴은 전압을 걸면 저항이 낮아져 스위치가 켜지고, 반대 방향으로 걸면 저항이 높아져 꺼진다. 별도로 전압을 걸지 않는 한 저항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한 번 설정해 두면 전원을 끊어도 켜짐·꺼짐 상태가 유지돼 대기 전력 소모가 없다.
핵심은 이 단일 소자가 두 가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첫째는 RF 스위치다. 신호를 다른 회로로 옮기고 변환하는 과정에서 드는 전력과 지연을 낮추면서, 비휘발성 덕분에 대기 전력까지 없앤다. 둘째는 연산 소자다. 이 소자를 바둑판처럼 배열한 회로에서는 각 소자의 저항(전도도)이 행렬 계산의 가중치 역할을 할 수 있다. 통신에서는 여러 안테나로 들어온 신호가 섞여 있어 원하는 신호를 골라내려면 각 신호에 알맞은 비율을 곱해 더하는 행렬 연산이 필요한데, 이를 소자 배열 안에서 직접 처리하는 것이다.
이는 데이터를 옮기지 않고 메모리 안에서 계산하는 인메모리(in-memory,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배열 안에서 연산까지 수행하는 구조) 방식에 해당한다. 기존에는 이 계산을 위해 아날로그 고주파 신호를 디지털로 바꾸고 별도 프로세서로 데이터를 옮겨야 했지만, 같은 소자 플랫폼으로 신호 경로 제어와 행렬 연산을 함께 다루면 칩 면적과 데이터 이동에 따른 전력·지연을 함께 줄일 수 있다.
140pJ·67GHz로 입증…위성·레이더·6G로 확장
성능은 여러 지표에서 확인됐다. 소자를 한 번 켜거나 끄는 데 드는 스위칭 에너지는 140pJ(피코줄)로 매우 낮았고, 상태를 바꾸는 동작 전력도 1mW(밀리와트) 이하로 측정됐다. 한 번 바뀐 저항 상태는 4만 초 이상 유지되는 비휘발성과 1,000회 이상 반복 동작에서의 안정성을 보였다. 초고속 통신에 쓰이는 고주파 대역의 스위칭 성능은 실험에서 67GHz까지 검증됐으며, ON 저항과 OFF 커패시턴스를 기반으로 계산한 차단주파수는 33.2THz에 달했다. 여기서 67GHz는 실제 실험으로 확인한 주파수 범위이고, 33.2THz는 소자의 고주파 스위치 성능을 나타내는 계산 지표다.
연산 성능은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했다. 연구팀은 소자 회로의 연산 성능을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해, 1024-QAM 신호 복조와 MIMO 신호 복원이 이뤄짐을 확인했다. 신호 경로 제어뿐 아니라 통신 신호처리 계산에도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결과다.
제1저자인 손주호 연구원은 “기존 상용 반도체 고주파 스위치는 지속해서 대기 전력을 소모하고 고주파 대역에서 신호 손실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 소자는 이러한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김명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산화 2차원 반도체 기반 멤리스터가 고성능 밀리미터파 RF 스위치뿐 아니라 6G 신호처리에 필요한 인메모리 행렬 연산 하드웨어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비휘발성·저전력·고주파 특성을 동시에 확보한 만큼, 위성통신, 레이더, 방산용 전파 제어 시스템, 6G RF 프론트엔드의 소형화와 에너지 효율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