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버스에서 벌써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다
12월 둘째 주 메타(Meta, 구 페이스북)가 가상현실(VR) 소셜 미디어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Horizon Worlds)’를 개방했다. 호라이즌 월드에 관한 설명을 보면, 이곳은 마인크래프트와 유사한 재미있고 유익한 플랫폼으로 느껴진다. 호라이즌 월드에서는 한번에 최대 20개 아바타가 함께 모여서 가상 공간 안에서 탐험을 하거나 시간을 보내거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모든 일이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돌아간 건 아니었다. 메타에 따르면 11월 26일 베타 테스트 기간 중 한 테스터가 심각한 문제가 될만한 일을 보고했다. 자신이 호라이즌 월드에서 낯선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12월 1일 메타는 그녀가 페이스북에 있는 ‘호라이즌 월드 베타 테스팅 그룹’에 해당 내용을 포스팅했다고 밝혔다.
메타의 내부 검토 결과, 해당 베타 테스터가 호라이즌 월드에 포함된 안전장치의 일부인 ‘세이프존(Safe Zone)’을 사용했어야 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세이프존은 유저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낄 때 활성화할 수 있는 ‘보호용 거품’이다. 그 안에서는 세이프존을 해제하겠다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누구도 유저에 접촉하거나, 말을 걸거나, 유저와 어떤 식으로도 소통할 수 없다.
비벡 샤르마(Vivek Sharma) 호라이즌 부사장은 <더 버지(The Verge)>와의 인터뷰에서 본 성추행 사건을 “매우 안타까운 일”로 칭하며, “그래도 우리에게는 좋은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저들이 차단 기능을 더 쉽게 찾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가상현실에서 유저가 성추행을 당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안타깝기는 하지만 아마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회사가 참여자들을 보호할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메타버스(metaverse)가 결코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상세계에서 나는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다”
메타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에런 스탠턴(Aaron Stanton)은 2016년 10월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조던 벨라마이어(Jordan Belamire)라는 게이머가 ‘퀴VR(Quivr)’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공개 편지를 미디엄(Medium)에 적었던 일이다. ‘퀴VR’은 활과 화살로 무장한 플레이어들이 좀비를 잡는 게임으로, 스탠턴이 공동 개발했다.
편지에서 벨라마이어는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캐릭터의 모든 것이 완전히 똑같은 멀티플레이어 모드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물리쳐야 하는 좀비와 악마들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나는 다음 공격을 기다리며 ‘BigBro442’라는 유저 옆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BigBro442의 헬멧이 나를 똑바로 마주 봤다. 공중에 둥둥 떠 있던 그의 손이 내 몸을 향해 다가왔고, 그가 내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만둬!’라고 나는 소리쳤다. … 내 비명은 도리어 그를 자극한 듯했고, 내가 그에게서 몸을 돌려 피하자 그가 내 주변을 계속 따라오며 내 가슴 근처에서 가슴을 움켜쥐거나 꼬집는 듯한 동작을 반복했다. 대담해진 그는 심지어 자신의 손을 내 가랑이 쪽으로 밀어 넣고는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 가상세계에서, 그 눈 쌓인 요새에서 남편과 시동생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나는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다.”
스탠턴과 게임의 공동개발자 조너선 솅커(Jonathan Schenker)는 곧바로 상황에 대해 사과하고 게임을 수정했다. 이들은 게임 속에서 아바타가 손으로 V자를 그리며 팔을 뻗으면 자동으로 성추행범들을 날려버리는 기능을 추가했다.
현재 ‘건강 및 운동 VR 연구소(VR Institute for Health and Exercise)’를 이끌고 있는 스탠턴은 퀴VR이 그런 기능을 추가하기는 했지만, 해당 기능에 대한 데이터를 추적하지도 않았으며, “그 기능이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탠턴은 벨라마이어 사건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이 2016년에 그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더 확실한 대책을 세우고 행동할 수 있었다면 몇 주 전에 호라이즌 월드에서 일어났던 성추행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있다. 그는 “여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이용자가 VR 경험에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VR 성희롱도 당연히 성희롱이다
벨라마이어가 겪었던 사건에 관해 최근 <디지털 게임 연구 협회(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 저널에 발표된 검토 결과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대부분의 온라인 반응은 벨라마이어의 경험을 무시하거나 가끔은 그녀에 대해 모욕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태도를 보이는 식이었다. … 사건을 모든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사건이 벌어진 곳이 가상 세계이며 놀이공간이라는 맥락에서 성추행 행위를 이해하려고 애썼다”고 언급했다. 벨라마이어는 점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녀를 온라인에서 찾을 수 없었다.
벨라마이어가 미디엄에 글을 올린 이후에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 꾸준히 등장한 논쟁거리 하나는 누군가가 실제로 그녀의 몸을 만진 것도 아닌데 그녀가 겪은 일을 ‘진짜’ 성추행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부였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가상현실의 사회적 영향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 제시 폭스(Jesse Fox) 부교수는 “성추행이라는 것이 꼭 물리적인 행위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사람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만으로도 성추행이 성립되며, 당연히 가상 경험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대학교에서 온라인 성추행을 연구하는 캐서린 크로스(Katherine Cross)도 가상현실이 실제와 가까울 때 그런 환경 안에서 벌어지는 해로운 행위들도 실제와 가깝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결국 가상현실이라는 것은 이용자들이 어떤 특정 공간에 실제로 있다고 착각하도록 설계된 공간이므로 이용자들의 모든 신체적 행위도 3D 환경에서 일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감정반응은 더 강해질 수 있는 것이며, 가상현실이 실제와 같은 정신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설명은 호라이즌 월드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성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 버지> 기사에 따르면, 그 여성의 포스팅 내용은 이러했다. “일반적인 인터넷 환경에서도 성추행이 심각한 문제이지만, 가상현실에 있게 되면 그런 성추행이 더 강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난밤에 내가 성추행을 당했을 때 그곳에는 그런 성추행 행위를 지지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플라자(호라이즌 월드의 중앙 모임 공간)’에서 고립감을 느꼈다.”
가상세계에서의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새로운 일도 아니고, 그런 문제가 완전히 사라질 세상을 기대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컴퓨터 스크린 뒤에 숨어서 도덕적 책임감을 저버릴 사람들이 있는 한, 그런 성 관련 문제는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실질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거나 가상세계에 참여할 때, 스탠턴의 표현에 따르면 ‘개발자와 플레이어 사이에 계약’이 존재한다는 인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스탠턴은 “플레이어로서 나는 개발자가 만든 세상에서 그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계약이 깨지고 내가 더는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순간, 회사가 해야 할 일은 플레이어들을 그들이 원하는 장소로 돌려보내서 다시 편안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용자에게 편안함을 보장하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메타는 이용자들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도구를 제공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책임을 효과적으로 전가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밀리언(Kristina Milian) 메타 대변인은 “우리는 호라이즌 월드에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안전 도구를 활용해 모두가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제공한 모든 기능을 이용자들이 활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 이용자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UI(user interface)를 개선할 것이고, 우리가 마련한 도구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하는지 더 제대로 이해하여 이용자들이 더 쉽고 확실하게 상황을 보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호라이즌 월드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밀리언은 이용자들이 호라이즌 월드에 접속하기 전에 세이프존 사용법을 알려주는 ‘온보딩 프로세스’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기적으로 스크린에 알림이 뜰 것이고, 호라이즌 월드 안에서도 포스터 형태로 알림이 나타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크로스는 메타에서 성추행을 겪은 피해자가 세이프존을 떠올리거나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내게는 구조적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온라인 폭력 문제를 처리할 때, 그들의 해결책은 이용자에게 문제를 떠넘기고 ‘우리가 이용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권한을 부여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식의 해결은 부당하며 효과적이지도 않다. 안전은 간편하게 접근 가능해야 하며,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존재한다. 스탠턴의 경우 필요한 것은 퀴VR의 ‘V 제스처’처럼 가상현실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중재자에게 보여줬을 때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이 전달될 수 있는 어떤 신호였다. 폭스는 두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기로 합의한 적 없는 상황에서 ‘자동적인 개인간 거리두기’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다. 크로스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훈련 세션에 명시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나 더듬지 않는 것처럼, 같은 태도를 가상세계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용자를 보호하는 것이 누구의 책임이 되어야 하는지 결정할 때까지 더 안전한 가상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 하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계속 온라인 세상에 참여할 수 있었다. 폭스는 “우리에게는 행동을 억제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나쁜 행위를 한 사람을 찾아내어 접속을 금지하거나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성추행 혐의자에게 메타가 어떤 제재를 가했느냐는 물음에 밀리언은 “메타는 개별 사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탠턴은 게임 산업계 전체에 더 강력한 안전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하고, 벨라마이어의 성추행 사건을 더 공론화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 그는 “잃어버린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때 제대로 움직였다면 이번에 메타에서 일어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무언가 분명한 점이 있다면, 가상세계는 고사하고 온라인 어느 장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안전에 분명하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무언가가 바뀔 때까지 메타버스는 위험하고, 문제가 많은 공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