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viets turned the Volga River into a machine. Then the machine broke

여러 개의 댐으로 가로막혀 기계처럼 변해버린 볼가강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

유럽에서 길이가 가장 긴 강이기도 한 러시아의 ‘볼가강’은 소련 시절에 수력발전을 위해 건설한 수많은 댐으로 분절돼 있다. 물길이 가로막히면서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된 볼가강에 기후변화 위기까지 닥치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볼가강을 다시 살릴 방법이 있을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두브나(Dubna). 이 마을 이름과 비슷한 ‘더브늄(dubnium)’이라는 이름을 주기율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자번호 105번인 더브늄은 이곳 두브나에 있는 연구 센터에서 발견되어 이 마을의 이름을 딴 원소이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두브나는 숲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이지만, 이곳은 강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두브나 마을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수십 년에 걸쳐 진행한 대규모 수력발전 프로젝트 ‘빅 볼가(Big Volga)’의 첫 번째 부분인 이반코브스코(Ivankovskoe) 저수지 제방 위에 위치해 있다. 이 수력발전소는 볼가강과 볼가강의 가장 큰 지류인 카마강에 건설된 11개의 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가 러시아 전체 전기 발전량의 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반코브스코 저수지는 이 수력발전 시설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볼가강 가장 상류에 위치해 있다.

길이가 약 3,700km에 달하는 볼가강은 유럽에서 길이가 가장 길고 유수량도 가장 큰 강으로, 모스크바 북서부에서 카스피해까지 호를 그리며 흐르고 있다. 러시아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거의 6,000만 명이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에서 약 1/10에 걸쳐 있는 볼가강 유역에 살고 있다. 인구 1,200만의 모스크바도 식수 대부분을 모스크바 운하를 통해 볼가강에서 가져온다. 볼가강 하류에는 이전에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전략적 항구 도시 ‘볼고그라드’가 위치해 있으며,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가장 결정적이고 유혈 낭자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무역의 동맥이자 에너지와 식수의 원천이며 역사를 전달하는 통로로서 볼가강은 러시아 사람들의 삶에서 거의 모든 측면에 닿아 있다. 미국의 미시시피강이나 독일의 라인강과 마찬가지이다.

1930년대에 두브나에 수력발전소 건설이 계획됐던 당시 이 지역은 산업 발전을 가속하여 서구의 자본주의 도시들에 발맞추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러한 산업화를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 발전이 필요했다. 1980년대에 마지막 수력발전소가 건설됐을 때 당시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했던 소련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을 끝내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규모 민주주의 개혁 프로그램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를 시행하려던 참이었다. 이런 식으로 ‘빅 볼가’ 프로젝트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소련의 산업화를 보여주는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미국과 경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당시 수십 년 동안 소련은 더 크고 더 인상적인 댐들을 건설했다.

빅 볼가 프로젝트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자연을 변형하는 계획이었다. 볼가강에 있는 인공 저수지들의 면적을 모두 합치면, 미국의 거대한 호수 ‘이리호’의 크기와 비슷하다. 이 프로젝트는 볼가강을 활용해 러시아 사람들에게 필요한 에너지, 교통, 식수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너무 과도한 시도이기도 했다.

프로젝트로 인해 볼가강은 오염됐고, 토사가 쌓였으며, 생태계도 파괴되었다. 러시아 항구 도시 톨리아티에 있는 ‘볼가강 유역 생태계 연구소(Institute of Ecology of the Volga River Basin)’ 소속 연구자들의 추정치에 따르면, 볼가강의 유속도 댐 건설 전보다 1/10로 줄어들었다. 광범위한 녹조현상도 이제는 평범한 일이 되었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서 봄철과 여름철에 볼가강 유역의 강수량이 줄어들고 있으며, 겨울철 강설량은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오브코프 대기물리학 연구소(Obukhov Institute of Atmospheric Physics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수석 과학자인 이고르 모코프(Igor Mokhov)는 봄철과 여름철에 집중호우가 증가하면서 강물의 최고 수위를 계획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수문학자 연구팀은 2021년 8월에 생태수생학 저널(‘Ecohydrology & Hydrobiology’)에 게재한 논문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러시아에서 물이 충분히 많은 지역에는 물이 늘어날 것이고, 물이 필요한 지역에는 물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런 위험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볼가강 유역을 꼽았다.

러시아의 어머니와 같은 볼가강이 망가지고 있다는 우려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나는 바람이 많이 부는 어느 11월 아침에 두브나에 방문했다. 저수지 주변을 따라 사람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그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저수지 반대편에는 침엽수 나무들이 빽빽한 벽을 이루고 있었고, 그 벽은 옅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나는 이 저수지에 대해 잘 알려진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졌을지 정확한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1941년 11월 말에 독일 군대가 모스크바로 진군하면서 얼어붙은 볼가강을 건너려고 했다. 그들을 막기 위해 수력발전소 직원들은 저수지의 물을 빼서 얼음을 녹이기로 하고, 강의 수위를 갑자기 2m 정도 낮췄다. 그 결과 강의 얼음이 깨지면서 독일 군대는 진군하지 못했고, 도시는 시간을 조금 벌 수 있었다. 80년이 지난 현재, 그 이야기가 있던 때와 비슷한 11월이었는데도 이제는 저수지에 얼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력발전소는 제한 구역으로 철조망과 경고 표지들과 타워 크레인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댐에서 물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가끔 갈매기 소리나 자동차 소리가 섞였다. 이날은 ‘국민 통합의 날’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는 공산주의 기념일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러시아의 국경일이었다. 댐을 지나는 지역 주민들은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동상’을 보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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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품 소개
러시아 국립 사이클링 연합(Russian National Cycling Federation) 소속 벨로드롬 레이서였던 스토얀 바세프(Stoyan Vassev)는 스포츠를 그만두고 2009년부터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기사에 함께 실린 사진들은 그가 현재 작업 중인 ‘No Fish’ 시리즈에서 가져온 것이며, 이 시리즈를 통해 그는 볼가강 삼각주에 위치한 작은 어촌마을 키롭스키에서 환경 착취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도로 끝에서 레닌의 등을 볼 수 있었다. 동상은 청록색 전나무로 둘러싸여 있었고, 아무것도 특별한 것 없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동상과 한 쌍인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동상은 소련 정부가 ‘탈스탈린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1962년에 철거됐다. 각각 높이가 거의 40m에 달하는 이 두 기념상은 한때 볼가강과 모스크바강을 연결하는 모스크바 운하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내 키보다도 크지 않은 듯한 기념비 하나가 서 있었다. 어디서 아무거나 주워온 화강암처럼 보이는 이 기념비는 강한 물살에 의해 레닌 동상 아래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 돌은 운하 건설 과정에서 죽어간 2만 2,000명 이상의 수감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2013년에 그곳에 세워졌다. 매년 10월 30일에 열리는 연례 추모식에서 러시아 사람들은 전국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비슷한 추모비 앞에서 국가에 의해 박해당하고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크게 읽으며 그들을 추모한다.

노란색 재킷을 입은 아이 하나가 추모비 근처에 주차된 자동차에 물건을 싣고 있던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돌에 뭐라고 적혀 있어요?”

“운하를 건설한 이들에게”라고 그녀는 추모비를 보지도 않고 답했다.

대답을 들은 아들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건설한 사람들이에요? 볼가강은 진짜 강이 아니라 만든 강이에요?”

어떤 면에서 볼가강은 더는 진짜 강이라고 할 수 없다. 더 이상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볼가강의 흐름은 인간의 개입으로 조정되고 있으므로 어떻게 보면 볼가강을 ‘기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33년 11월, 두브나의 댐 건설 예정지에 첫 번째 굴라크(gulag, 소련의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이 도착하고 딱 두 달이 지났을 때, 소련 과학 아카데미 연구원들이 모스크바에 모여 볼가강과 카스피해의 상태에 관해 논의했다. 두브나에서 강 하류 쪽으로 1,450km 정도 떨어진 울리야놉스크의 볼가 마을 역사학자 예브게니 부르딘(Evgeny Burdin)은 당시 회의에서 발표됐던 보고서 하나를 내게 읽어줬다. 보고서는 저수지들이 “홍수로 인한 습지 형성, 토양 자가복구가 힘든 열악한 상황, 주택 지하실 침수, 미세 기후 변화, 녹조현상으로 인해 오염된 수질, 오염, 유량 속도 저하, 해당 지역의 말라리아 발병 위험” 등을 초래할 것으로 예측했다.

볼가강은 오염됐고, 토사가 쌓였으며, 생태계도 파괴되었다. 광범위한 녹조현상도 이제는 평범한 일이 되었다.

콜비 칼리지의 러시아 및 소련 역사 교수 폴 조지프슨(Paul R. Josephson)은 “대중들이 상황을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분명 수문학자나 공학자 대다수는 댐 건설로 인해 매우 심각하고 피할 수 없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당시에는 뭐라고 말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에 정부에 반하는 의견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감히 정부를 비판하면 중노동을 선고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는 정부의 의견에 동조하다가 숙청당할 위험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콘스탄틴 보고야블렌스키(Konstantin Bogoyavlensky)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그는 1910년에 울리야놉스크보다 약간 하류에 위치한 사마라 지역에서 볼가강의 첫 번째 수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설계했던 공학자이다. 지역 정부와 성직자들은 지역의 많은 땅을 침수시켜야 하는 그의 계획에 반대했고, 그로 인해 이 계획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이후까지도 보류되어 있었다. 마치 어떤 광신도처럼 그는 수년의 시간을 들여서 발전소 건설을 위해 정부에 로비를 했고, 로비에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결국 스파이이자 혁명의 적으로 간주되어 시베리아에 있는 굴라크 수용소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부르딘은 “볼가강에서는 산업에 필요한 에너지와 모스크바로 이동할 수 있는 좋은 물길을 얻을 수 있다”고 내게 설명했다. 당시 기술관료적이며 목표 지향적인 사고방식에서는 과학자들의 정중한 이의 제기도, 산업 발전을 방해할 수 있는 어떤 반대 의견도 용납되지 않았다.

1941년 4월, 소련이 독일에 공격을 당하기 두 달 전에, 공학자들이 두브나에서 북동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세 번째 저수지인 리빈스크(Rybinskoe) 저수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당시 두 번째 저수지도 채워지고 있었지만, 그 저수지는 크기가 이곳의 1/20에 불과했다.)

당시 리빈스크 저수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저수지였다. 이 저수지에 물을 채우기 위해 12세기에 처음 역사 연대기에서 언급되는 ‘몰로가’라는 마을에 살던 6,000명의 주민을 포함해 총 13만이 넘는 인구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다. 몰로가에서 가장 높이가 높은 건물이었던 교회들도 폭파되어야 했다. 이 댐과 저수지 역시 전쟁 중에 굴라크 수감자들이 건설했다.

실외, 하늘, 잔디이(가) 표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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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빈스크 저수지는 비교적 적은 양의 전기 생산을 위해 수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농경지를 파괴했다. 발전소를 업그레이드한 이후에 이제 이 발전소에서는 376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하지만, 이는 미국 후버댐이 생산하는 발전량의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1980년대에는 소련조차도 이 발전소를 약간 쓸모없는 곳으로 보기 시작했다. 소련의 국가 계획 경제 기관 고스플란(Gosplan)은 이 저수지의 물을 전부 빼는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리빈스크 저수지의 물을 빼낼 경우 예상되는 결과가 애초에 이 저수지에 물을 채웠을 때 발생한 결과보다 훨씬 극단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물 문제 연구소(Water Problems Institute, WPI) 연구 책임자 빅토르 다닐로프 다닐리얀(Victor Danilov-Danilyan)이 밝혔다. 그는 산업과 가정의 오염 물질들로 뒤덮인 이 지역이 스스로 회복하려면 적어도 수백 년이 걸릴 것이며, 인간이 개입해 이곳을 회복시키려고 하더라도 필요한 작업은 러시아에서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들여 “그 끔찍한 퇴적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저수지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몰로가 동네 주민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여전히 매년 8월 중순이면 근처 마을 리빈스크에서 모임을 갖는다. 그들 중 일부는 강수량이 부족할 때면 가끔 물 밖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마을의 폐허를 보기 위해 저수지까지 방문하기도 한다. 2021년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강 하류에 물이 부족해질 정도로 여름철 저수지 수위가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항공 사진들을 보면 저수지에 잠겨 약간 으스스해 보이는 몰로가의 거리와 건물의 흔적들이 드러나 있다.

댐으로 인해 볼가강은 서로 연결된 여러 개의 저수지로 바뀌게 되었다. 강의 상부에서 하부로 흘려보낼 물의 양을 결정하는 것도 이제는 불확실성과, 우려되는 전 세계적 경향을 모두 고려해 판단하는 복잡한 기술적 프로세스에 달려있다. 로모노소프 모스크바 주립대학교의 수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나탈리아 프롤로바(Natalia Frolova)는 2021년의 강수량 변화가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설명했다. 봄철에 볼가강 수위가 높았던 것은 예측했던 일이었고 어느 정도 정상 범위에 있었다. 그러나 지난여름에 몰로가 마을 폐허가 드러날 정도로 저수지에 물이 마르면서 다른 저수지 수위도 정상 수준보다 훨씬 아래로 떨어졌다.

볼가강 근처 도시 주민들에게는 그런 상황이 물의 양뿐만 아니라 수질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다. 볼가강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염된 강 세 곳 중 하나이며, 러시아 내의 오염된 모든 폐수 중 거의 40%를 차지한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물 문제 연구소 소속 강 연구자 알렉산더 데민(Alexander Demin)은 하수관 같은 곳에서 나오는 모든 폐수 중 고작 10% 정도만이 러시아 규정에서 요구되는 수준으로 처리된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효과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많은 오염원들이 존재한다. 농업 유출액, 빗물, 눈 녹은 물, 배에서 발생하는 폐수, 심지어 강에 퇴적물 형태로 밀려드는 오염된 토양과 다른 폐기물 등이 모두 오염원이다.

man in his boat on the Volga
STOYAN VASSEV

볼가강 유역의 거의 모든 도시와 마을뿐만 아니라 운하를 통해 연결된 모스크바까지 볼가강을 물 공급원으로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오염을 해결하고 식수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데민은 “볼가강 수질이 나빠질수록 그곳을 식수로 정화하는 비용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볼가강 유역에 거의 6,0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러시아 산업의 거의 절반이 위치해 있고, 상당한 규모의 농지까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볼가강의 오염을 처리하는 비용은 더 올라갈 것이다.

영국의 기후변화 언론 ‘카본 브리프(Carbon Brief)’가 발표한 최근 분석에서는 소련과 러시아를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온실가스를 세 번째로 많이 배출한 곳으로 선정했다. 러시아 기후과학자들이 2014년에 종합한 국가 평가 보고서에서는 인간이 초래하는 기후변화로 인해 러시아의 연평균 기온이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또한 그러한 경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련이 추구한 산업 발전으로 인해 가속된 기후변화의 영향이 이미 러시아에서는 영구동토층 오염에서 농업 중심인 러시아 남부 지역의 사막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빅 볼가’ 프로젝트를 탄생시키고 강물에서 전력을 얻은 이 대규모 산업 발전은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문제에도 기여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볼가강 유역 마을에 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물 부족 위협을 가져오고 있다.

내가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595km 정도 떨어진 체복사르스크(Cheboksarskoe) 저수지에 방문했을 때, 강은 녹조현상으로 인해 마치 마녀의 수프처럼 보였다.

저수지 근처에 있는 러시아의 추바시야 공화국 수도 체복사리는 나무가 많고 조용하며 방문객을 환영하는 듯한 도시였다. 나는 이전에 저수지 수위를 높이자고 정부에게 로비하기도 했던 수력발전소 운영사 루스하이드로(RusHydro)가 기획한 언론 투어에 참여하고 있었다. 저수지 수위는 수년이 지난 이후에도 회사가 원하는 것보다 5m 낮게 유지되어 있었는데, 이 체복사르스크 저수지가 40년의 영광스러운 시절 이후에 빅 볼가 프로젝트가 마침내 실패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중순,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는 소련에서 언론의 자유와 투명성을 조금 더 보장하여 소련을 국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심지어 정부 결정을 비판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결정하고, 이를 위한 ‘글라스노스트(glasnost)’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되돌릴 수 없는 볼가강의 환경 피해는 점점 더 대중들의 대화 주제가 되고 있었다. 볼가강에 관해 1989년에 발표된 어떤 책은 저수지 건설 배후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생명을 주는 볼가강을 죽은 강으로 만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했다”고 비판했다.

“다른 누군가가 돈을 벌게 하려고 누구의 땅을 파괴하고 누구의 물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인가?”

이제는 몰로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조상 때부터 계속해서 살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두 달 전에 통보해서 고향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으로 보인다(몰로가에서도 실제 주민들이 다 떠나는 데 4년의 시간이 걸렸다). 추바시야 공화국과 국경이 닿아 있는 유럽 쪽 러시아의 두 지역은 체복사르스크 저수지의 수위를 높일 경우 홍수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되는 곳이다. 그 두 지역은 서쪽의 니체고로드스카야 오블라스트와 북쪽의 마리 엘 공화국으로, 이 두 곳은 저수지 수위가 상승하면 묘지와 도시 교회 같은 귀중한 역사적 장소들과 함께 영토를 잃을 것으로 예측됐다. 두 지역은 저수지 수위 상승에 항의했고, 중앙정부의 자금이 고갈될 것을 확신해 계속해서 계획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이 옳았다. 1989년에 소련 정부는 그곳에 있는 수력발전소가 원래 계획한 발전 용량의 60% 정도만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체복사르스크 저수지의 수위를 낮게 유지하기로 했다. 그 저수지는 결국 계획보다 984제곱 킬로미터 더 작게 유지됐다.

더는 강줄기를 따라 흐르지 못하는 강

volga map
볼가강과 볼가강에서 가장 큰 지류인 카마강에는 무려 11개의 저수지와 함께 러시아 전체 전기 생산량의 5% 정도를 책임지는 수력발전소가 있다.

체복사르스크 저수지의 실패로 인해 볼가강-카마강 수력발전소는 서류상 여전히 미완성인 상태다. 어떤 면에서는 소련이 더 흥미로운 냉전 경쟁 중 하나에서 패배했다고도 할 수 있다. 1930년대에 뉴딜(New Deal)정책의 일환으로 미국 정부는 미국 워싱턴주 컬럼비아강 유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말에 잠시 볼가강의 쿠이비셰브스카야 발전소가 세계에서 가장 용량이 큰 발전소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 타이틀은 워싱턴의 그랜드 쿨리 댐(Grand Coulee Dam)으로 넘어갔다. 폴 조지프슨은 “이 두 프로젝트는 두 강을 정말로 기계처럼 바꿔놓았다”고 평했다.

소련 붕괴 이후 새로 형성된 러시아 정부는 소련이 만들어 놓은 그 기계를 고치려고 했다. 1996년에 볼가강의 보존과 복원을 위해 출범한 ‘연방 볼가강 복원 프로그램’은 심각한 경제위기와 정치적 혼란을 겪고 나서 2년 후에 취소됐다. 그 이후 새로 나온 ‘건강한 볼가강(Healthy Volga)’ 프로그램은 2018년에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은 6년 동안 약 29억 달러를 투자하여 볼가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폐수를 정화하려는 정부 계획이다.

그러나 ‘건강한 볼가강’ 프로그램은 이미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있다. 2020년 말에 러시아 감사원은 ‘건강하지 않은 ‘건강한 볼가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프로그램 관리자들이 특정 지점 오염과 복잡한 관리 구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을 질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볼가강의 수질은 지난 30년 동안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역사학자 조지프슨은 볼가강을 살리기 위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이 규정을 제대로 시행하고, 처리되지 않은 폐수를 강으로 흘려보내는 소련 시절의 습관을 버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빅 볼가’ 같은 프로젝트의 위험성에 관해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조지프슨은 주장했다. 많은 ‘좀비’ 소련 프로젝트들이 현대 러시아에서 다시 생명을 얻고 있다. 러시아의 극동 지역 캄차카 근처에서는 한때 너무 비싸다고 여겨졌던 100기가와트의 조력발전소가 잠재적인 수소 공장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역시 소련 시절에 논의됐던 두 개의 거대한 수력발전소도 시베리아 동부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유일한 강인 안가라강에 건설될 예정이다. 활동가들은 총 여섯 개의 수력발전소 시설로 인해 안가라강이 ‘죽은 저수지’로 이루어진 강이 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국경에 접해 있는 아무르강은 최근에 범람하여 거의 75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냈는데, 저지대에 댐과 발전소를 건설하여 재건하는 계획이 1970년대와 80년대에 만들어진 바 있다.

man peeks out of ship port
STOYAN VASSEV

2017년에 모스크바 운하가 80주년을 맞았을 때, 운하를 운영하는 국영 기업의 CEO는 언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모스크바강의 80% 정도는 이제 볼가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계속해서 운하 건설 전, 1930년대 초반에는 상황이 매우 심각해서 모스크바강이 크렘린 궁전 바로 근처에서 거의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얕은 시냇물이 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볼가강 하류 근처 도시들은 강물로 인한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고 있지만, 모스크바 수도 당국은 모스크바에는 가까운 미래에 어떤 위험도 없을 것이라고 보도한다.

그들의 보도는 마치 볼가강이 모스크바를 위해서만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지프슨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다른 누군가가 돈을 벌게 하려고 누구의 땅을 파괴하고 누구의 물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인가? 볼가강은 크렘린을 위해 존재한다. 볼가강은 모스크바의 것이다. 볼가강은 더는 볼가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 소유가 아니다.”

Olga Dobrovidova는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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