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 프로는 수술실을 어떻게 바꿔 나가나

애플 비전 프로가 꺼져가던 XR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성능과 디스플레이 품질의 향상을 앞세워 XR이 의료 분야, 그것도 수술실과 같은 민감한 부분에까지 도입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AR(Augmented Reality)이나 MR(Mixed Reality)과 같은 기술의 의료 분야에 대한 적용은 상당히 초기부터 기대를 모아왔다. 이는 지금까지 2차원 영상으로 밖에 확인할 수 없었던 신체나 장기의 구조, 그리고 병변의 형태들을 본격적인 3차원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와 가상의 정보를 동시에 투영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환자의 신체 위에 수술 등의 치료 방법을 투영해 수술 방법이나 이후의 처치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알아보게 해줘 의료 관련된 교육이나 수술 방법의 사전 점검 등에 활용이 기대됐던 것이다.

이런 기대감이 고조됨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MR 기기인 홀로렌즈(HoloLens)를 2015년에 발표하면서 게임과 교육 외에 의료 분야의 활용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었다. 또한 실제로 의료 분야에서 교육 등에 AR이나 MR을 포함한 XR(Extended Reality) 기술의 적용은 끊임없이 시도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R 기기의 의료 분야 적용은 환자의 생명이 오가는 수술실 등 민감한 부분에 적용까지는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는 아직 XR 기술의 제한된 시야와 화질 등이 수술과 같은 세밀하고 민감한 부분에 적용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의료 현장에서 XR 기술은 앞서 설명한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돼 왔다. 더구나 기존의 XR 기기에 비해 화질과 성능 측면에서 많은 발전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애플의 비전 프로(Vision Pro) 또한 최근 애플이 발표한 의료 애플리케이션 관련 보도자료를 살펴봐도 기존의 XR 헤드셋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수술 현장과 같은 민감한 영역에 대한 XR 기술의 도입은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최근 의료 현장에서 활용을 위한 애플 비전 프로의 앱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출처: Apple)

애플 비전 프로로 수술팀의 효율성 향상

하지만 최근 발표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애플 비전 프로와 같은 XR 기기를 수술실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가 시도되고 있으며, 조만간 수술실과 같은 민감한 의료 현장에서도 애플 비전 프로를 비롯한 다양한 XR 기기들의 활용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영국 런던의 크롬웰 병원(Cromwell Hospital)의 수술팀이 최근 출시된 애플 비전 프로를 척추 수술에 활용해 두 건의 미세 척추 수술을 시행한 것은 수술 과정에서 XR 기술이 어떤 효용성을 제공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크롬웰 병원 수술팀은 집도의 대신 보조 간호사가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eXeX라는 헤드셋 통합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필요한 각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수술과 관련된 각종 가이드나 설정 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운용됐다. 이런 방식은 헤드셋과 eXeX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수술실의 의료진이 수술과 관련된 각종 데이터와 정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수술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수술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의료진의 피로도는 물론, 환자의 치료 효과 또한 높일 수 있었다. 수술을 주도한 크롬웰 병원 복합 척추 그룹 소속 외과의사 사이드 아프탑(Syed Aftab)은 “이 기술은 환자 치료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복잡한 척추 수술팀 내의 효율성을 향상시켜 결과적으로 환자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이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고 영국 병원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집도의가 직접 착용한 상태에서 수술 진행

이보다 조금 더 급진적인 사례인 스탠퍼드 의과대학(Stanford Medicine) 병원의 사례에선 직접 집도의가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한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했다.

스탠퍼드 의과대학의 의사와 생의학(Biomedical) 엔지니어로 구성된 팀은 애플 비전 프로를 이용한 XR 기술을 수술실에 도입했다. 최근 스탠퍼드 병원에서 진행된 심방세동 치료를 위한 절제술에 환자의 사전 동의하에 심장 전문의가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한 상태에서 수술을 집도한 것이다.

스탠퍼드 헬스케어의 심장 전기생리학자인 알렉산더 페리노(Alexander Perino) 박사는 시술 중에 심장 박동이 빠르거나 불규칙한 심장 부정맥을 치료하는 일반적인 시술인 절제술을 시행했다. 절제술을 하는 동안 페리노 박사는 일반적으로 환자의 심장을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게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모니터와 부정맥을 일으키는 심장 부위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는 장비를 포함한 다양한 모니터를 사용해야 한다. 이외에도 초음파 이미지, 엑스레이, 환자의 활력 징후 등 시술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페리노 박사는 “최대 8개의 실시간 데이터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데, 실제 수술실에는 이런 화면을 배치하고 검토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현재 시스템에서는 외과의와 집도의가 데이터와 직접 상호 작용할 수 없기 때문에 보조하는 직원이 데이터 조작과 처리를 도와야 하는데, 이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집도의는 애플 비전 프로를 이용해 주변의 도움 없이 가상 모니터를 신속하게 조작하고 수술 과정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헤드셋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이런 데이터와 함께 평소처럼 환자와 수술실을 볼 수 있다.

헤드셋은 그의 눈 움직임을 추적하여 그의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분석하고 또한 손가락을 꼬집거나 빠르게 손을 움직여 주요 데이터를 확대하거나 화면을 재구성할 수 있다.

수술팀은 집도의가 헤드셋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페리노 박사는 “XR은 기존의 기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완하기 위해 추가로 사용하는 기술이라고 봐야 한다”며 “우리의 목표는 새로운 기술의 성능을 경험하고 현재 사용 중인 설정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이상의 성능을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탠퍼드 대학병원 의료진은 집도의가 직접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한 상태에서의 수술에 성공했다. (출처: Fred Hizal)

장기적으로 환자에게도 도움

엔터테인먼트 등 미디어 콘텐츠 소비에서부터 교육이나 소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XR은 이후 교육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의료 현장에서도 가장 민감한 영역까지도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수술 과정을 더 매끄럽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다양한 데이터의 교차 검증을 현장에서 바로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수술의 성공률은 향상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치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아직은 비교적 초기 단계에서 여러 가지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조만간 수술실에서 집도의가 의료용 확대경 대신, XR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수술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XR 헤드셋의 안정성과 보안, 그리고 관련 소프트웨어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얼마 전 기사화됐던 헤드셋의 해킹이 의료 현장에서 발생할 경우 그 여파는 엄청날 것이며, 해킹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오류나 서비스 중단 사태가 벌어질 경우에도 인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페리노 박사가 말한 것처럼 기존의 기술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XR 기술을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당분간 최선의 방식이 될 것이다. 페리노 박사는 “수술실 내에서 XR 기술의 활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도전이 필요하다”며 “이번 수술을 통해 외과의와 집도의가 수술 중 데이터를 빠르고 쉽게 검토하고 조작하는 할 수 있도록 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기술의 도입은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XR 기술이 향후 의료 현장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