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커스 같았던 ‘약물 올림픽’이 드러낸 우리 문화의 민낯
지난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스포츠계의 금기를 정면으로 깨는 대회가 열렸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을 금지하기는커녕 공개적으로 허용하고 장려한 ‘인핸스드 게임’이다.
수영·단거리 육상·역도 선수 수십 명은 각종 경기력 향상 약물을 투여한 채 기록 경쟁을 벌였다. 근육 성장을 촉진하는 테스토스테론, 메테놀론, 난드롤론 같은 합성 스테로이드부터 인간성장호르몬(hGH),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을 높이는 에리트로포이에틴(EPO), 에너지 대사에 영향을 주는 멜도늄, 각성과 집중력을 높이는 모다피닐과 암페타민 혼합염까지 사용된 약물도 다양했다. 여기에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클로미펜과 아나스트로졸, 갑상샘호르몬 제제인 레보티록신과 리오티로닌도 포함됐다. 패치와 크림, 캡슐, 알약 등 투여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대회 운영사인 인핸스드는 약물의 도움을 받아 세계기록을 경신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류(superhumanity)’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내건 상금은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
5월 24일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 주차장에 5,000만 달러(약 690억 원)를 들여 세운 임시 경기장에서 열린 이 대회는 개인의 선택을 국가와 제도보다 우선시하는 자유지상주의 철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인핸스드는 기존 스포츠의 낡은 규범에 도전하고, 과학기술을 통해 인류를 더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험한 약물 사용을 미화하고 선수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실험이라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