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the oldest part of the metaverse

25년차 게임 <울티마 온라인>으로부터 배우는 메타버스 세계 구축법

올해 25주년을 맞은 게임 <울티마 온라인>은 메타버스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경험한 험난했던 여정을 통해 미래의 메타버스 제작자들에게 교훈을 남기고 있다.

오늘날 언론에서는 메타버스가 아직 실현되지 못한 막연한 꿈이라고 한다. 하지만 메타버스를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가상 세계의 네트워크’라고 정의한다면 이미 25년째 운영되고 있는 세상이 있다.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울티마 온라인(Ultima Online)>의 배경이자 현존하는 메타버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중세 판타지 왕국 브리타니아는 장장 25년 동안 시장 경쟁, 경제적 혼란, 정치적 분쟁을 모두 견뎌냈다. 그렇다면 울티마 온라인의 운영진과 플레이어들은 미래 가상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겼을까?

흔히 ‘울온(UO)’이라 불리는 울티마 온라인이 온라인 판타지 게임의 시초는 아니다. 온라인 판타지 게임의 시작을 말하자면 1980년대 초 ‘다중 이용자 던전(multi-user dungeons)’, 줄여서 머드(MUD)라고 하는 텍스트 기반의 롤플레잉 어드벤처 게임이 주로 언급된다. 인터넷의 조상 격인 아파넷(Arpanet)으로 여러 대의 대학 컴퓨터들을 연결하여 서비스된 머드 게임은 모든 행동을 일일이 텍스트로 입력해야 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게임이었다. 1991년에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탄생한 덕분에 이때부터는 <킹덤 오브 드라카(Kingdom of Drakkar)>나 <네버윈터 나이츠(Neverwinter Nights)>와 같은 그래픽 게임들이 출시되었다. 이들 게임에서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플레이어들은 하나의 디지털 공간에 모여 동시에 괴물을 무찔렀다. 1996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정비된 형태의 ‘대규모 다중 이용자(massively multiplayer)’ 장르가 나왔다. <바람의 나라>, <메리디안 59(Meridian 59)> 같은 MMORPG 게임들은 수만 명의 유료 이용자를 모았다.

1997년 울티마 온라인은 원대한 포부를 갖고 게임 산업을 완전히 뒤엎었다. 바로 온 세상을 시뮬레이션하기로 한 것이다. 기존 게임에서 ‘세계’란 주로 캐릭터가 전투를 펼치는 현장의 배경으로 작은 공간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울티마 온라인은 그 대신 방대하고도 역동적인 왕국을 구축했다. 울티마 온라인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물과 상호작용했다. 플레이어의 캐릭터들은 나무에서 과일을 땄고, 책장에서 책을 꺼내 글을 읽었다. 모든 플레이어가 영웅적인 기사나 마법사였던 이전 게임들과는 달리, 울티마 온라인은 완전한 대안 사회를 구현했다. 이곳에서는 플레이어가 제빵사, 거지, 대장장이, 해적, 정치가 등의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울티마 온라인은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실제로 ‘살게’ 했다. 바로 이점이 울티마 온라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접속해 있을 때만 가상 세계의 공간을 점유했고 오프라인일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한 예로 <퍼카디아(Furcadia)>의 경우에는 이용자가 자기만의 소형 공간을 구축해, 접속했을 때 이를 공유공간에 임시로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울온에서는 한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만들어 놓으면 해당 플레이어가 접속하지 않았을 때도 다른 플레이어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사물이 지속되었다. 플레이어들은 지을 땅만 있다면 어디든 영구적인 주택이나 성을 건설하고, 건물을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었다. 또 마을 정부를 꾸리거나 친구들을 초대해 가상의 맥주와 양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친목을 도모할 수도 있었다. 한 마디로 이 공간은 특정한 ‘장소’로 인식되었다.

이 원대한 계획에는 오리진 시스템즈(Origin Systems) 개발팀의 뜻이 녹아 들어 있었다. 오리진 시스템즈의 창립자인 리처드 개리엇(Richard Garriott)은 플레이어의 자유와 복잡한 선택을 더욱 확장한 싱글 플레이어 울티마 게임 시리즈를 20년 가까이 제작해왔다. 울온의 라프 코스터(Raph Koster) 수석 디자이너와 대부분의 핵심 프로그래머는 텍스트 기반 머드로 경력을 쌓았는데, 머드에서는 엄청난 계산량을 소모하는 그래픽이 없는 덕분에 다른 게임에서 시도할 수 없었던 심도 있는 정량적 모델링에 집중할 수 있었다. 머드 애호가였던 이들은 농업, 날씨, 약초 등의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수년 동안 실험하며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동안 쌓아온 아이디어를 큰 규모에 적용하고 싶었던 코스터, 그리고 코스터와 마찬가지로 오리진의 디자이너였던 그의 아내 크리스틴(Kristen)은 울티마 온라인의 세계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정교한 자원 생태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 세계에서는 들판에 식물이 자라고 초식동물이 풀을 뜯었으며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사냥했다. 용은 가만히 앉아 플레이어에게 죽임당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마치 매슬로의 욕구 위계처럼 처음에는 먹이, 그다음에는 은신처, 마지막으로는 반짝이는 보물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려 했다. 울티마 온라인의 시스템은 진정으로 창의성을 자극하고자 했다. 일례로 플레이어들은 마을의 평화를 위해 약탈자 괴물을 죽이기보다 괴물의 먹잇감인 사슴 무리를 길로 유인할 수 있었다. 개발 초기에 회사 내부에서 이루어진 알파 테스트에서 이 방식은 잘 작동했고, 개발팀은 신중하게 계획하여 탄탄한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면 게임의 흐름을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공개 베타 테스트는 예상을 벗어났다. 5만 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인원이 몰려들어 인당 5달러를 지불하고 사전 체험을 신청했다. 이들은 게임 세계 속으로 메뚜기처럼 뛰어들어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죽였다. 토끼는 늑대에게 사냥당할 만큼 오래 생존하지 못했고, 용은 플레이어가 그 쓰임을 생각하기도 전에 죽임당했다. 생태계는 붕괴되고 말았다. 그리고 어차피 과도한 AI 프로세스 탓에 서버에 과부하가 걸렸던 터라 개발팀은 마지못해 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쳐야 했다. 베타 테스트가 끝날 무렵에는 개발진의 통제력 상실에 쐐기를 박기라도 하듯 한 플레이어가 리처드 개리엇의 아바타인 ‘로드 브리티시(Lord British)’를 직접 암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97년 9월 정식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게임 속 브리타니아 왕국의 온갖 것을 클릭하고 돌아다니면서 개발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게임의 메커니즘을 활용했다. 곧 한 무리의 살기등등한 목수들이 나무 가구가 다른 캐릭터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주요 도시의 성문에 수백 개의 탁자와 수납장으로 바리케이드를 쌓아 막은 다음 탈출하려는 캐릭터들을 기습 공격했다. 피해자들은 오리진에 항의했지만, 라프 코스터는 오히려 시뮬레이션을 더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다. 오리진은 플레이어가 직접 문제를 타개할 수 있도록 도끼로 가구를 부술 수 있게 하는 패치를 서둘러 배포했다.

개발진의 의도에서 벗어난 플레이어의 행동들은 게임 엔진 자체의 약점을 노렸으며 이는 고치기가 훨씬 어려웠다. 무법자들은 교활하게도 수천 개의 사물을 한 곳에 포개 게임을 중단시키는 ‘블랙홀’을 만들었다. 또 일부 이용자들은 중력 시스템이 없는 울온의 약점을 악용하여 의자를 둥둥 띄워 올라타 경쟁자의 집에 침투해 아이템을 남김없이 약탈했다.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오류를 비롯해 게임에 극심한 랙과 수많은 버그가 발생하자 분노를 표출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게임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게임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많은 이용자가 게임을 떠나지 않고 변화를 위해 싸웠다. 같은 해 11월 수많은 군중이 브리타니아 수도에 집결했다. 이들은 로드 브리티시의 성 앞에서 속옷만 입고 술에 취한 채 시위를 벌였다. 분노의 형태이기는 해도 개리엇에게 있어 플레이어들의 이러한 반응은 울온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법자들은 교활하게도 수천 개의 사물을 한 곳에 포개 게임을 중단시키는 ‘블랙홀’을 만들었다.

하지만 오리진이 더 이상 단순한 기술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금세 분명해졌다. 오리진은 하나의 정부’ 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정부는 1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관리하게 되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전체 인구보다 더 많은 인원이었다. 이곳에는 교육청이나 노동조합과 같이 현실에 존재하는 시민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없었다. 그래서 코스터와 개발팀은 ‘하원(House of Commons)’ 세션을 마련했다. 하원 세션에서는 치열한 로비가 벌어졌다. 마법사들은 마법이 더 강해지고 검이 약해지기를 원했고, 전사들은 그 반대를 원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방책도, 탁월한 기술적 해답도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은 오로지 소통, 타협, 투명성 등 실질적인 거버넌스에 더 노력을 기울이는 것뿐이었다.

가장 시급한 정책 문제는 살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개리엇은 울티마 온라인에서 선과 악 역할을 모두 플레이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서로 공격하고 강탈하며 죽일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브리타니아 왕국은 주요 도시를 벗어나기만 하면 강력한 ‘플레이어 킬러(PK)’ 무리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도살장으로 변했다. 컴퓨터로 제어되는 경비병은 도시 안에서만큼은 무적의 수호자로 자리를 지켰지만 관할 구역을 한 발짝만 벗어나면 강도를 문제 삼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가 죽어도 부활할 수 있었지만 죽을 때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아이템을 도난당했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신규 가입자가 숲으로 처음 나섰다가 모든 것을 잃고 로그오프한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코스터는 시뮬레이션을 보강하는 방법으로 플레이어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했다. 오리진은 피해자가 살인자에게 현상금을 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무법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수배 명단을 순위표처럼 여겼다. 이후 플레이어의 행동을 추적하고 벌칙을 적용하여 살인을 억제하는 평판 시스템 등 여러 가지 규칙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소프트웨어가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괴롭힐 수 있는 수많은 허점을 발견했다.

개발자들이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상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2000년에는 개리엇과 코스터가 오리진을 떠나고, 계속해서 신규 가입자가 감소하는 악재가 이어졌다. 이때 오리진은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르네상스 확장팩에서 오리진은 동전의 양면처럼 기존 세계를 두 개의 거울상으로 분리했다. 펠루카라는 대륙에서는 기존처럼 합의되지 않은 폭력이 허용되었지만, 트라멜 대륙에서는 이용자의 교전 의사에 따라 플레이어 간 대전(PvP)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이때 도입된 설정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 변화로 인해 울온만의 특징이었던 위기감이 식어버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곧바로 이 조치에 반응을 보였다. 거의 즉각적으로 대다수의 브리타니아인은 트라멜로 옮겨갔다. 이처럼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자 울온의 가입자는 25만 명으로 급증했다.

전염병처럼 퍼진 플레이어 킬링의 확산과 동시에 울티마 온라인에는 경제 위기가 닥쳤다. 원래 울온의 자원 시스템은 정해진 만큼의 골드와 원자재를 활용할 수 있는 폐쇄적인 순환 구조였다. 게임 서버는 우거진 야생지대나 더러운 던전의 깊숙한 곳에서 다양한 트롤, 좀비, 리자드맨의 형태로 이러한 재화를 생산했고, 플레이어들은 이들을 처치해 보물을 획득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가 자원이나 골드를 소비하면 이는 가상의 풀(pool)로 돌아가 서버가 새로운 괴물을 생성할 때 다시 공급되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거의 즉시 붕괴되고 말았다. 플레이어들이 자원과 골드를 쌓아두기만 하고 소진하지 않아 새로운 보물이 생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리진은 정책을 변경해 순환고리를 끊었지만, 이번에는 괴물 전리품이 부의 화수분이 되어버리면서 초인플레이션이 닥쳤다.

기습
울티마 온라인의 제작자 리처드 개리엇이 1997년 베타 테스트에서 자신의 아바타 로드 브리티시의 무적 설정을 재활성화하는 것을 잊은 사이 레인즈(Rainz)라는 플레이어가 마법의 불 주문으로 로드 브리티시를 암살했다.

치명적 위험
용을 무찌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울온에서 가장 위험한 적은 다른 플레이어다.
홀리데이 파티
2002년 울온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기념 대규모 연회 모습.

DIY
울온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집을 지을 수 있다. 위 사진은 2018년 도트 워너(Dot Warner)의 성.

COURTESY OF BROADSWORD/ELECTRONIC ARTS

플레이어들은 당시 신생 온라인 경매 사이트였던 이베이(eBay)에서 게임 내 재화를 현금으로 판매했다. 초반에는 미화 1달러로 약 200개의 브리타니아골드를 살 수 있었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리라화보다 더 높은 가치였다. 약 1년 후에는 1달러로 1만 골드 이상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골드의 가치가 하락했다. 현실 세계에서는 가상 재화 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중국이나 멕시코 사업가들이 현지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온종일 게임에서 골드를 캐게 하는 ‘골드 채굴’이 큰 사업으로 발전했다.

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원인은 ‘버그를 활용한 아이템 복제(duping)’였다. 운영진은 버그 패치를 하고 복제 아이템을 삭제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골드의 가치가 폭락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복제 아이템이 거래된 이후였다. 리치 보겔(Rich Vogel) 라이브 프로듀서는 고객 서비스팀의 몇몇 ‘게임 마스터’들이 플레이어들과 부정 결탁한 정황이 발견되자 내사 담당 부서를 꾸려 감시를 시작했다.

개발자들이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상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각 정부는 국가 경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관료 체계를 동원한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정보로 이루어진 가상 세계에서는 이러한 일이 문제 되지 않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게임이 출시될 때부터 대부분의 플레이어 자산 통계 정보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도록 서버 백업 파일의 바이너리에 묻혀 있었다. 골드의 가치를 포괄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없었기 때문에 라프 코스터는 이베이 시세에 의존해 인플레이션을 추적했다. 이와 관련하여 분석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의사 결정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자료화하는 데 수개월이 소요됐다.

전체적인 상황이 명확해지자 오리진은 울온 경제의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일정량의 골드를 영구적으로 소멸하기 위한 ‘골드 싱크(gold sinks)’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플레이어들이 축적해 놓은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면 반란이 일어날 위험이 있었다. 부유한 캐릭터들을 대상으로 압도적으로 강력한 무기를 고가에 판매하는 방법도 골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일 수 있었지만, 이렇게 하면 무소불위의 계층이 생겨나 게임 생태계의 균형이 망가질 수 있었다.

마침내 나온 해결책은 매우 기발했다. 순전히 미적인 차원에서 신분의 상징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을 판매한 것이다. 브리타니아의 엘리트들은 작은 성 한 채 값으로 형광의 염색약을 사서 강렬한 녹색의 모히칸 헤어스타일을 서민들 앞에 뽐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2010년에 울온 골드의 가치는 1달러당 50만 골드까지 하락했다.

이 무렵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와 같은 경쟁자가 울온의 플레이어 대부분을 빼앗아 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쟁자가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울티마 온라인은 출시 후 2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약 2만 명에 달하는 탄탄한 핵심 이용자층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지금도 울온을 즐기고 있는 이용자들은 울온을 플레이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자기 정체성과 보람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한다. 골드 싱크와 확장팩 덕분에 복장이나 집을 플레이어의 취향껏 꾸밀 수 있는 기능은 요즘 나오는 게임에 견주어도 독보적이다. 그 결과 울온의 르네상스풍 미적 양식은 특이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늘날 브리타니아를 여행하다 보면 선글라스를 쓴 가고일맨과 형광색 갑옷을 입은 닌자가 거대한 거미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풍스러운 중세 마을은 번드르르한 저택들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러한 난장판이 게임의 핍진성(작품 속 세계의 개연성)을 떨어뜨린다 해도 그것은 모두 ‘플레이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용자가 시스템을 망가뜨릴 모든 가능성을 설계자가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울온 커뮤니티가 유지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힘은 지금껏 모두가 함께 쌓아온 관계와 추억이다. 물론 다른 게임에는 훨씬 더 훌륭하고 화려한 그래픽과 기능이 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와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함께 훔쳤던 희귀한 그림을 마법 생선파이를 먹으며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플레이어들의 애정은 종종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곤 한다. 상당수의 플레이어가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 과거에 함께 지었던 가상의 집을 계속 유지하면서 그들과의 유대감을 느낀다. 또 심야 던전 탐험에서 현실의 배우자를 만난 경우도 있다. 요컨대 브리타니아는 진정으로 만남의 장이 되었고, 플레이어들은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서 특정 장소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은 이유로 브리타니아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향수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인지 일부 울티마 온라인의 골수팬들은 소스코드를 리버스엔지니어링(완성된 제품을 분석해 제품의 설계와 구조, 기술을 파악하고 재현하는 것) 하여 게임 초창기의 정신을 되살린 ‘순수한’ 경험을 강조하는 무료 해적판 서버를 개설하기도 했다. 여기에 과거에 울온을 즐겼던 수천 명의 플레이어들이 몰려들었다. 어떤 팬은 웹브라우저를 통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또 한 프로젝트는 울온을 가상현실에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메타버스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상 세계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브리타니아는 언젠가 일종의 순례지와 같은 곳이 될 것이다. 가상으로 구현된 세계에 대한 빛나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꽃피우고, 가장 어려운 함정을 처음으로 극복한 곳이기 때문이다. 차세대 시뮬레이션 세계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울티마 온라인으로부터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오리진이 경험한 바와 같이 이용자가 시스템을 망가뜨릴 모든 가능성을 설계자가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러한 면에서 시스템 운영을 지속하는 것은 유연한 임기응변 능력이 필요한 끝없는 전쟁과 같다. 이 작업은 이용자에게 큰 자유를 허용할수록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높은 자유도는 이용자가 게임에 대한 기여도와 보람을 더 많이 느끼고, 게임에 더욱 이입할 수 있게 촉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게다가 가상 세계에 거주하는 이용자와 게임 제작자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혁신적인 엔지니어링만으로 커뮤니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현명한 거버넌스를 능가할 수 있는 영리한 알고리즘은 없다. 실제 정부에서 정책을 시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은 장려책에 호응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부작용 없이 억제하기는 쉽지 않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세상을 지탱하는 본질은 어떤 기술적인 묘수가 아닌 인간적인 연결이다. 개발자는 플레이어 경험의 핵심이 그들이 개발한 콘텐츠가 아니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훗날 순례자들이 브리타니아에 도착했을 때도 브리타니아를 세운 수많은 시민은 여전히 그곳에서 순례자들을 맞이할 것이다.

*이 글을 쓴 존-클라크 레빈은 기술, 보안, 정책이 교차하는 영역을 다루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 매거진 Vol.8_2023년 5,6월호
<MIT 테크놀로지 리뷰> 매거진

오픈AI 임팩트 (Volume 8)

본 기사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 매거진 2023년 5·6월 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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