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IST·성균관대, AI도 예측 못한 ‘분자 뭉침’ 효과로 친환경 태양전지 19.67% 효율 구현
AI가 분자 구조만 보고 예측한 효율보다 더 높은 성능의 유기태양전지가 나왔다. 분자 구조 데이터로 학습된 AI 모델이 놓친 ‘분자 간 응집’ 현상이 고성능의 비결이었다. 독성 용매 없이 19.67%를 기록한 친환경 공정도 함께 입증됐다.
유기태양전지는 원료 분자를 용매에 녹여 잉크처럼 코팅해 만드는 차세대 태양전지로, 가볍고 휘어지는 특성 때문에 건물 외벽이나 웨어러블 기기에 적용할 후보로 꼽혀왔다. UNIST는 에너지화학공학과 양창덕 교수팀이 성균관대학교 고두현 교수팀과 함께 친환경 공정에서도 19.67%의 광전변환효율을 기록한 유기태양전지를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새로 설계한 유기태양전지 원료(YBOV) 분자가 용액 속에서 미리 뭉치고, 이 뭉침이 박막 형성 과정에서 결정 성장의 씨앗처럼 작용해 광활성층의 분자 배열을 더 질서 있게 만들면서 효율이 올랐다. 750개 유기태양전지 데이터를 학습한 AI 모델이 YBOV 기반 전지의 개방전압을 낮게 예측했던 영역에서 나온 결과로, 분자 구조만 보는 AI 분자 설계가 놓치는 ‘집단적 응집 현상’을 새로운 설계 인자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 결과는 에너지 소재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터리얼즈(Advanced Energy Materials)’에 4월 20일 게재됐다.
친환경 오쏘자일렌 용매로 19.67% 효율…유기태양전지 원료 분자가 끌어올린 차세대 유기태양전지 성능
유기태양전지는 유기 분자를 용매에 녹여 기판에 코팅하는 방식으로 제조하는 차세대 태양전지다. 무거운 기존 패널과 달리 가볍고 휘어질 수 있으며, 넓은 면적으로도 만들 수 있어 건물 외벽·창문·웨어러블 기기 등에 통합할 가능성으로 주목받아왔다. 다만 효율과 친환경 공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상용화의 핵심 과제로 남아 있었다.
UNIST·성균관대 공동 연구팀은 유기태양전지 원료 분자의 곁가지 구조를 새롭게 설계한 YBOV 분자로 이 과제에 접근했다. YBOV는 유기태양전지 광활성층(태양빛을 받아 전하 입자를 만드는 물질 층)의 전자받개 분자다. 광활성층은 전자주개 분자와 전자받개 분자의 조합으로 이뤄지는데, YBOV가 전자받개 자리에 들어간다.
실제 YBOV 분자로 제조한 유기태양전지는 독성 염소 용매가 아닌 친환경 오쏘자일렌(o-xylene) 용매로 분자를 녹여 제조했을 때도 최대 19.67%의 광전변환효율(Power Conversion Efficiency, 태양빛을 전기에너지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바꾸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을 기록했다. 친환경 용매 공정에서 20%에 근접한 효율을 달성한 사례로, 차세대 유기태양전지의 상용화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게 연구팀의 평가다.

용액 속에서 미리 뭉쳐 결정의 씨앗으로…sp² 곁사슬이 만든 사전 응집과 시딩 효과
고효율의 비결은 분자 설계 그 자체보다 ‘분자들끼리 뭉치는 방식’에 있었다. 연구팀이 YBOV에 도입한 핵심 구조는 sp² 혼성화 가지형 곁사슬(sp²-hybridized branched side chain, 이중결합 성질을 가져 일반 곁사슬보다 덜 휘고 덜 비틀리는 가지 모양 구조)이다. 이 곁사슬이 YBOV 분자들이 용액 속에서 서로 더 잘 맞물려 뭉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이 뭉침은 박막을 만드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원료 분자가 박막으로 굳기 전 용액 상태에서 이미 서로 모이기 시작하는 ‘사전 응집(pre-aggregation)’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사전 응집체가 박막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결정 성장의 씨앗 역할을 하는 ‘시딩 효과(seeding effect)’로 이어진 것이다. 광활성층은 결정 배열이 반듯할수록 전지 성능이 좋아지는데, 사전 응집이 분자 배열을 미리 정돈해두는 셈이다. 연구팀은 in-situ 분광 분석 등을 통해 용액 상태에서 형성된 분자 집합이 고체 박막의 미세구조로 이어지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YBOV의 또 다른 강점은 범용성이다. 광활성층의 전자주개 조합을 바꾸거나, 다른 전자받개를 주로 쓰고 YBOV 분자를 첨가제처럼 소량만 더한 경우에도 모두 대조군보다 효율이 올라갔다. 한 가지 조합에서만 성능이 좋은 것이 아니라 여러 광활성층 시스템에서 일관된 성능 향상을 보여, 범용 설계 인자로서의 가능성도 확인됐다.
분자 구조만 보는 AI는 못 잡은 ‘집단 응집’…AI 분자 설계의 사각지대 새 설계 인자로
흥미로운 대목은 이 같은 성능 향상이 AI 예측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750개의 유기태양전지 데이터를 학습시켜 분자 구조에서 소자 성능을 예측하는 AI 모델을 만들었다. 모델은 대체로 실험값과 잘 맞는 예측을 내놨지만, 유독 YBOV 분자가 들어간 유기태양전지의 개방전압(Open-circuit voltage, 전류가 흐르지 않을 때 전지 양단에 걸리는 전압으로 광전변환효율의 핵심 지표 중 하나)을 낮게 예측했다.
이유는 AI 모델이 본 정보의 종류에 있다. AI는 분자 하나의 구조만 보고 예측하기 때문에, 그 분자가 용액 속에서 다른 분자들과 어떻게 뭉치는지, 그 뭉침이 박막의 결정 배열을 어떻게 바꾸는지 같은 집단적 물리 현상까지는 계산해내지 못한다. 실험적으로는 분명 효율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인 사전 응집과 시딩 효과가, 분자 구조 기술자(descriptor)에 기반한 AI의 시야 밖에 있었던 것이다. 논문 제목 ‘디스크립터 기반 AI 설계를 넘어(Beyond Descriptor-Based AI Design)’가 가리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공동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분자 구조 자체뿐 아니라 용액 상태에서의 집합 거동까지 고려한 새로운 설계 전략을 제시한 것”이라며 “친환경 공정과 결합해 고효율 전지를 만든 만큼 차세대 유기태양전지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연구는 UNIST 정석환·원동후·쑨 저(Sun Zhe) 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