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기업의 AI 에이전트 도입과 레슨
코딩, 데이터 분석, 회의록 정리, 보고서 작성, 사내 지식 검색까지 생성형 AI와 에이전트형 도구는 이미 업무 곳곳에 들어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의뢰한 2025년 조사에 따르면, 685개 기업 가운데 37.1%가 AI를 실제 업무에 활용 중이었고 대기업의 도입률은 65.1%에 달했다. 하지만 도입률이 곧 성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먼저 에이전트를 들여온 기업들이 주로 마주한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운영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에 있었다.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사람의 판단과 책임으로 남겨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에이전트는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실험 프로젝트로 남는다.
채널코퍼레이션, 야놀자, 우아한형제들, LG전자, 신세계라이브쇼핑등 국내에서 AI 에이전트를 실제 업무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살펴 보았다. 어떤 특징이 있을까?
많이 쓰는 것이 곧 성과는 아니다
AI 에이전트를 도입하는 조직이 쉽게 빠지는 함정은, AI 에이젼트를 많이 만들고 많은 유저를 양산하는 것을 곧 ‘성과’로 착각하는 것이다. 코딩 에이전트를 전사적으로 확산시킨 채널코퍼레이션은 토큰 사용에 사실상 제한을 없애 버렸다. 조직 전체가 ‘무언가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에 휩싸이는 시기가 있는데 이를 채널코퍼레이션은 “도파민이 분비되는 단계”라고 표현한다.
문제는 이렇게 만든 도구가 3개월 뒤에도 실제로 사용되느냐는 것이다. AI로 만든 사내 도구 상당수는 정작 만든 사람조차 다시 쓰지 않는다. 필요한 것보다 만들기 쉽고 재미있는 것부터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채널코퍼레이션은 평가의 잣대를 바꿨다. 인사 평가에 AI 활용을 반영하되, 토큰을 얼마나 썼는지가 아니라 AI로 얼마나 큰 임팩트를 냈는지를 봤다. 활동량에서 성과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같은 함정은 시장 전체에서도 보인다. 가트너는 2025년 6월 내놓은 전망에서, 시중 에이전트의 상당수가 기존 챗봇이나 자동화 도구에 이름표만 바꿔 단 ‘에이전트 워싱’이라고 지적하며, 불분명한 사업 가치와 비용 탓에 2027년 말까지 에이전트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중단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도입 초기의 가장 큰 착시는 ‘많이 쓰는 것’을 ‘잘 쓰는 것’으로 오인하는 데 있다.
에이전트 도입 성과를 평가할 때도 기준은 단계별로 달라져야 한다. 초기에는 반복 사용 여부를 보고, 이후에는 프로세스 변화와 오류 감소를 봐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실제 사업 성과와 연결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처음부터 매출을 묻는 것도, 1년이 지나도록 접속률만 세는 것도 모두 잘못된 잣대다.
도구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정의
에이전트 도입의 성패는 도구를 얼마나 많이 보급했느냐가 아니라, 구성원이 풀어야 할 문제를 스스로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야놀자는 이 사실을 시행착오를 통해 확인했다. 전사 차원에서 기초 교육을 대대적으로 진행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교육이 끝나 현업으로 돌아갔을 때, 특히 비개발 직군에서는 AI활용이 ‘채팅’ 수준을 넘지 못했다. 전사 차원의 교육은 개인의 동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발전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무언가 묻고 답을 받는 데서 멈출 뿐, 자기 업무의 구조를 바꾸는 데 까지는 가지 못한다.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AI로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다. 도구 사용법을 아무리 가르쳐도 풀어야 할 문제를 스스로 찾지 못하면 채팅창에서 멈춘다. 그래서 야놀자는 교육 대신 ‘업무 자동화 워크숍’을 열었다. 팀의 어떤 흐름을 AI로 바꿀 수 있을지 구성원이 직접 찾아내는 자리를 마련했다.
노코드로 풀리는 문제도,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문제도 그 과정에서 드러난다. 교육은 ‘아는 사람’을 늘리지만, 워크숍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늘린다. 비개발자가 45% 참여한 사내 해커톤이 끝난 뒤, 한 마케터는 소속 팀의 업무 자동화를 직접 설계해 구현했고, 한 기획자는 원래 외주로 맡겨야 했던 프로그램을 코딩 에이전트로 만들어 현재는 팀에서 쓰고 있다. 외주 의존을 스스로 끊은 첫 사례가 되었는데, 두 경우 모두 출발점은 도구가 아니라 ‘내가 풀 문제’였다.
교육을 전담하는 인력이 부족한 것도 한계였다. 야놀자는 교육을 한 팀의 인원이 7명인데 국내 임직원수가 2천여 명에 달해 감당할 수 없어, 각 팀에서 전도사 역할을 맡을 자원자를 모아 확산을 맡기는 ‘AI 챔피언’ 제도를 도입했다.
검색창에서 동료로 진화하는 AI 에이전트
에이전트는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단순한 ‘검색창’에서 복잡한 문제를 함께 푸는 ‘동료’로 역할이 바뀐다. 우아한형제들의 사내 에이전트는 그 궤적을 그대로 밟았다. 처음 출발점은 단순한 데이터 질의였다. 구성원의 95%가 데이터의 중요성은 알면서도 정작 찾고 해석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사용자의 질문은 곧 조회의 범위를 넘어섰다. 사내 정책을 묻고 문서를 뒤지더니, 급기야 ‘시즌 메뉴의 주문 전환율이 기온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까지 물었다. 관련 문서를 찾아 답하는 검색증강생성RAG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리드 에이전트가 문제를 종합하고 여러 전문 에이전트가 협업하는 멀티 에이전트 구조로 옮겨갔다. 단순한 지식 응답을 넘어 복잡한 사업 문제를 함께 푸는 업무 시스템으로 자리가 바뀐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 구조가 기술 로드맵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던지는 질문을 따라 진화했다는 것이다. 기술이 사람을 이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질문이 기술 발전을 이끌었다.
사람들이 AI를 잘 쓰게 되자 이번엔 리터러시의 격차가 벌어졌다. 같은 교육을 받아도 유튜브까지 뒤지며 파고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산성이 확연히 달랐다.
우아한형제들이 AI를 유독 적극적으로 쓰는 이유는 “여유가 없어서”다. 어제의 고객이 오늘의 고객이 아닌 환경에서는 늘 시간에 쫓기고, 그럴수록 AI에 더 기대게 된다. 가장 큰 성과는 “커뮤니케이션 코스트가 제로로 가는 것”이다.
실제로 팀의 주간 회의를 없앴다. 에이전트로 팀원들의 업무 상황을 파악하니 따로 보고받을 이유가 사라졌고, 팀원은 보고 부담 없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한다. 다만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없앨 수는 없기에 그 ‘제로’에도 범위는 정해야 한다.
자동화하지 말아야 할 것
자동화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 자동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LG전자 가전사업본부가 던진 질문은 방향이 정반대다. “무엇을 자동화하지 말아야 하는가”이다. 가전제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보통 1~2년이 걸리며, 그중 절반 이상이 기획과 검토 과정에 쓰인다.
LG전자는 업무를 둘로 나눈다. 설계·분석·코딩처럼 자기 일을 직접 수행하는 업무와, 그 결과물을 다른 조직에 검토받고 설득하고 승인받는 업무다. 정작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쪽은 후자, 즉 미팅과 기다림과 회의와 설득이다. 캘린더만 들여다봐도 금방 드러난다. 병목을 줄이려면 이 영역부터 손대야 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마크다운 문서다. 코드를 저장소에 올리고 리뷰와 테스트를 거쳐 배포하듯, 일반 문서도 정해진 형식으로 쓰고 변경 이력을 남기며 비동기로 검토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사람도 AI도 읽을 수 있는 문서를 매개로 회의록과 기획서, 검토 과정을 자동화하는 방식(Docs-as-Code)이다. AI가 문서를 읽고 요약하고 수정안을 제안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에는 번번이 실패했던 이 방식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경계선이 바로 여기서 그어진다. 모든 것을 에이전트화하려다 발견한 것은 자동화해서는 안 되는 일의 목록이었다. 회의 요약은 AI가 대신할 수 있지만, 동료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건네고 신뢰를 쌓는 일까지 넘기면 협업은 형식만 남는다. 관계와 신뢰 위에서만 작동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에이전트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조직일수록, 에이전트에 넘겨서는 안 될 일의 목록도 더 길어졌다.
그래서 LG전자는 이를 분명히 했다. AI가 맡는 것은 문서 구조화, 회의 요약, 반복 보고, 우선순위 초안이다. 사람이 계속 쥐는 것은 지속적인 피드백, 투명한 소통, 원팀 협업, 학습과 회고다. 판단이 개입되는 일은 사람이, 형식과 구조화는 AI가 한다. 이 분할이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하다. 성숙한 조직일수록 무엇을 자동화하지 ‘말아야’ 할지를 더 진지하게 묻는다는 것, 그리고 그 경계선은 도입의 한계가 아니라 도입이 성숙해지는 과정에 가깝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