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원자력연구원, 요르단 연구로에 반도체 소재 생산시설 구축…NTD 기술 첫 수출
고순도 실리콘에 원자로의 중성자를 쬐어 전력용 반도체 소재로 바꾸는 중성자변환도핑(NTD, Neutron Transmutation Doping) 기술을 갖춘 시설이 중동 요르단에 들어선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자력 엔지니어링 전문기업 ㈜미래와도전(FNC)과 컨소시엄을 꾸려, 요르단 원자력위원회(JAEC)가 운영하는 요르단 연구용원자로(JRTR)의 ‘NTD 시설 구축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13일 밝혔다. 국내 NTD 장치 기술이 해외로 수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0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시스템 수출 사례였던 요르단 연구용원자로 자체를 내보낸 데 이어, 그 원자로를 활용해 산업 소재를 생산하는 핵심 공정 기술까지 함께 수출하는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원자로로 반도체 소재를 만든다…NTD가 뭐길래
NTD는 원자로를 반도체 소재 공장처럼 활용하는 기술이다. 반도체의 바탕이 되는 판(기판)에는 고순도 실리콘(Si)이 쓰이는데, 순수한 실리콘만으로는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리콘에 다른 원소를 소량 섞어 전기적 성질을 부여하는데, 이 과정을 도핑(doping)이라고 부른다.
NTD는 이 도핑을 화학 처리가 아니라 원자로 안에서 핵반응으로 수행한다. 고순도 실리콘에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쬐면, 실리콘 원자 중 일부가 인(P)으로 바뀐다. 인이 섞인 실리콘은 전자가 많아져 전기가 잘 통하는 이른바 N형 반도체(전자가 전기를 나르는 형태의 반도체) 소재가 된다. 화학적으로 인을 섞는 방식보다 도핑이 훨씬 고르게 이뤄져, 소재의 품질이 균일하다는 것이 이 기술의 강점이다.
이렇게 만든 소재는 전력반도체(전기를 효율적으로 변환하고 제어하는 반도체 부품)에 쓰인다. 전력반도체는 전기차와 고속철도, 신재생에너지 설비, 산업용 전력기기 등에 두루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전력을 얼마나 손실 없이 다루느냐가 이들 장비의 성능을 좌우하는 만큼, 소재의 품질이 곧 완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하나로’로 쌓은 실력, 첫 해외 수출로 이어지다
이번 수주의 바탕에는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연구·실험·소재 생산 등에 쓰이는, 발전용이 아닌 원자로)인 ‘하나로’가 있다. 연구원은 하나로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NTD 공정 기술력과 운영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현재도 최대 연간 25톤 규모의 N형 반도체용 실리콘을 꾸준히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JRTR 건설 당시 보여준 안정적인 사업 수행 능력이 더해지면서, 연구원은 국내 NTD 장치 기술을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연구용원자로라는 하드웨어를 넘어, 그 원자로를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할지를 다루는 공정 기술까지 함께 내보낸다는 점에서 이전 수출과는 결이 다르다.
절차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다. 연구원의 하나로이용연구단과 ㈜미래와도전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난 3월 사업제안서를 제출했고, 7월 2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양측은 오는 10월 정식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6·8인치 시설 3기 구축…중동 반도체 소재 거점 겨냥
이번 사업은 JRTR 안에 6인치 2기, 8인치 1기 규모의 NTD 시설을 짓는 것으로, 설계부터 시운전, 운영 교육훈련까지 전 과정을 수행한다. 인치는 실리콘 웨이퍼의 지름을 가리키며, 크기가 클수록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소재의 양이 늘어난다. 사업 기간은 최종 계약 체결 후 36개월이다.
역할은 나뉘어 있다. 연구원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설계와 핵심 조사장치(실리콘에 중성자를 쬐는 장치)의 설계·제작을 맡고, ㈜미래와도전은 부대시설의 설계·제작과 시설 설치를 담당한다.
현재 JRTR은 방사성동위원소 생산과 중성자방사화분석(중성자를 쬐어 물질에 담긴 원소의 종류·양을 분석하는 기법), 교육훈련 등에 활용되고 있다. NTD 시설이 구축되면 여기에 고품질 반도체 소재 생산 기능이 더해져, 요르단이 중동 지역의 반도체 소재 생산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명섭 하나로이용연구단장은 “이번 수주는 우리나라가 수출한 연구용원자로의 우수성과 첨단 중성자 이용 기술력을 다시 한번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성과”라며 “향후 요르단과 긴밀히 협력해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국내 원자력 기술의 해외 진출을 지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