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원자력연구원, 작은 원자로로 대형 화물선 움직이는 자동차운반선 설계 첫 승인
바다를 누비는 대형 화물선을 작은 원자로로 움직인다는 구상이 첫 관문을 넘었다. 아직 실제로 만든 배가 아니라 설계 단계에 대한 평가지만, 해상에서 원자력 추진의 가능성을 글로벌 선급이 인정했다는 신호다.
디젤 같은 연료 대신 작은 원자로를 동력원으로 삼는 대형 자동차운반선(PCTC, 완성 차량을 대량으로 실어 나르는 화물선)의 개념설계가 글로벌 선급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HD현대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현대글로비스, 지마린서비스와의 공동개발 프로젝트(JDP, joint development project)를 통해 개발한 용융염원자로(MSR) 적용 자동차운반선 개념설계가 글로벌 선급협회 로이드선급(LR)으로부터 기본승인(AiP, Approval in Principle)을 획득했다고 8일 밝혔다. AiP는 선급이 새로운 선박의 설계나 기술이 국제 규정과 안전기준에 적합한지 심사해 인정하는 절차로, 실제 선박 개발로 나아가는 첫 단계다. 이번 수여식은 지난 2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조선·해운 박람회 ‘포시도니아 2026’에서 진행됐다.
‘바다 위 원자력’의 첫 관문을 넘다
이번 성과의 핵심은 기본승인(AiP) 획득이다. AiP는 선박의 설계나 기술이 국제 규정과 안전기준에 부합하는지를 선급(船級, 선박의 설계·건조·운항 안전성을 심사하고 인증하는 기관)이 심사해 인정하는 상징적 절차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선박이 실제 개발로 나아가기 위해 거치는 첫 관문에 해당한다.
이번 AiP는 용융염원자로를 적용한 자동차운반선의 안전성과 운항성 등 기술적 가능성을 글로벌 선급으로부터 확인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만 이는 완성된 선박이나 가동 중인 원자로에 대한 인증이 아니라, 개념설계 수준의 가능성을 평가받은 단계라는 점에서 출발점에 가깝다.
승인 수여식은 지난 2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조선·해운 박람회 ‘포시도니아 2026’에서 열렸다. 원자력 기술을 개발해 온 연구기관과 선박을 짓고 운항·관리해 온 기업들이 공동으로 만든 설계가, 국제 무대에서 선급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이 함께 부각됐다.

액체 핵연료 ‘MSR’과 다섯 기관의 역할 분담
이 선박의 심장은 용융염원자로다. MSR(molten salt reactor)은 핵연료와 냉각재를 섞은 용융염(molten salt, 고온에서 녹아 액체 상태가 된 소금 형태의 물질)을 액체 핵연료로 사용하는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작은 원자로)의 일종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MSR은 안전성이 높고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 차세대 선박용 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다.
개발에는 분야별 전문성을 가진 다섯 기관이 참여했다. HD현대중공업과 HD한국조선해양은 선박 개념설계와 주요 기술 검토를 맡았고, 현대글로비스는 대형 자동차운반선 운항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운항 현장의 환경적 요소와 안정적 운항을 위한 유연성 확보 방안을 제시했다. 지마린서비스는 선박관리 관점에서 선내 안전, 유지보수성, 승무원 지원, 장기 운항 신뢰성 등 실제 운용에 필요한 요소를 검토했으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자력 기술 개발기관으로서 MSR 기술 검토를 담당했다.
심사를 맡은 로이드선급은 위험요소 식별(HAZID, Hazard Identification)과 예비 위험성 평가 작업을 주도했다. 특히 기존 선박 시스템과 SMR 사이의 인터페이스, 해상에서 원자력 기술을 적용할 때 따르는 제약사항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익숙하지 않은 ‘바다 위 원자력’을 기존 선박 체계에 어떻게 안전하게 결합할지가 평가의 초점이었던 셈이다.
기술적 가능성 확인…’K-문샷’으로 가속
이번 AiP 획득은 MSR을 적용한 자동차운반선의 기술적 가능성을 글로벌 선급으로부터 확인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안전성과 운용성, 규제 적합성을 모두 갖춘 실제 선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추가 검증 과정이 남아 있다.
이에 참여 기관들은 차세대 선박 추진 기술 검토를 이어 가면서, 원자력 추진 선박의 안전성과 운용성, 규제 적합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할 계획이다. 이번 개념설계 승인을 발판으로 실증을 향한 후속 연구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책적 동력도 더해졌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기반 과학기술 혁신 프로젝트 ‘K-문샷’의 12대 미션 중 하나로 ‘용융염원자로 기반 SMR 선박 개발’이 선정되면서, 관련 연구에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조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진원자로연구소장은 “이번 성과는 실제 선박 운항 환경을 고려해 해양 분야에서 MSR의 적용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해양용 원자력 기술의 안전성 검증과 실증을 위해 관련 연구와 협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