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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고려대, 이산화탄소 연료로 바꾸는 ‘구리 독점’ 비밀 풀어…표면 원자 배열이 핵심

이산화탄소를 에틸렌·에탄올로 바꾸는 능력은 구리만의 것이었다. 그 비밀이 촉매 표면 원자들이 늘어서 있는 '배열 구조'에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이산화탄소를 전기로 에틸렌·에탄올 같은 연료와 플라스틱 원료로 바꾸는 데 사실상 구리(Cu)밖에 쓸 수 없었다. 그 이유가 한국 연구진에 의해 풀렸다. 답은 촉매가 가진 전자 성질이 아니라, 촉매 표면에서 원자들이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에 있었다.

이산화탄소를 전기로 에틸렌·에탄올 같은 산업 원료와 연료로 바꾸는 반응은 차세대 탄소중립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KAIST는 신소재공학과 오지훈 교수 연구팀이 고려대학교 화학과 스테판 링에(Stephan Ringe) 교수 연구팀과 함께, 이 반응에서 ‘왜 구리(Cu)만 에틸렌·에탄올 같은 복잡한 다탄소 화합물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고 21일 밝혔다.

구리와 전자 성질이 비슷한 금·은·팔라듐 합금을 직접 만들어도 다탄소 화합물이 전혀 생성되지 않았고, 촉매 표면에서 원자들이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가 핵심임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그동안 촉매 설계의 표준으로 쓰여온 전자 구조 지표만으로는 복잡한 다탄소 전환 반응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입증한 결과로, 구리를 대체할 차세대 촉매 설계의 새 기준이 될 전망이다.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카탈리시스(Nature Catalysis)’ 2026년 5월호에 게재됐다.

구리와 전자 성질 비슷한 합금 만들어도 다탄소 화합물은 0… 기존 촉매 이론의 한계 짚어

전기화학적 이산화탄소 환원 반응은 전기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다른 화학물질로 바꾸는 반응이다.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이산화탄소를 에틸렌(플라스틱 원료), 에탄올(연료·화학원료), 포름산, 일산화탄소 같은 산업 원료로 전환할 수 있어 탄소중립 시대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이 가운데 에틸렌·에탄올처럼 탄소가 두 개 이상 연결된 ‘다탄소(C2+) 화합물’은 부가가치가 가장 높지만, 지금까지 이 반응을 효율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금속은 사실상 구리뿐이었다.

그동안 학계는 ‘왜 구리만 가능한지’를 촉매 표면 전자의 반응성으로 설명해왔다. 대표 지표가 ‘d-밴드 센터(d-band center, 촉매 표면 전자가 화학 반응에 얼마나 쉽게 참여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와 ‘일함수(work function, 금속이 전자를 밖으로 내보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다. 이 두 값이 구리와 비슷한 금속을 만들면 구리처럼 다탄소 화합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기존 촉매 이론의 예측이었다.

KAIST·고려대 공동 연구팀은 이 가설을 직접 검증해봤다. 공동-스퍼터링(co-sputtering, 여러 금속을 동시에 얇게 입혀 원하는 비율의 합금을 만드는 기술) 기법으로 금(Au)·은(Ag)·팔라듐(Pd)을 다양한 비율로 섞은 합금 촉매 16종 이상을 제작하고, d-밴드 센터와 일함수가 구리와 매우 유사한 삼성분계 합금까지 정밀하게 만들어냈다. 결과는 예측과 달랐다. 이 합금은 일산화탄소·포름산 같은 단순 생성물은 만들었지만, 에틸렌·에탄올 같은 다탄소 화합물은 전혀 생성하지 못했다.

같은 이산화탄소에서 서로 다른 생성물을 만드는 촉매 반응 | AI 생성

비밀은 표면 원자 배열에…전자 성질만 맞춰선 안 되는 다탄소 전환 반응의 메커니즘

그렇다면 구리만 가능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연구팀은 실험 결과를 범밀도함수 이론(DFT, 원자 단위에서 전자의 거동을 계산하는 양자역학 기반 시뮬레이션 기법) 계산과 함께 분석해 답을 찾아냈다. 핵심은 촉매 표면에서 원자들이 어떻게 배치돼 있는지를 가리키는 ‘국소 원자 배열(local atomic arrangement)’이었다. 같은 d-밴드 센터·일함수 값을 가지더라도 표면에 어떤 원자들이 어떻게 늘어서 있느냐에 따라 반응 중간체가 머무는 자리와 이동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일산화탄소나 포름산처럼 비교적 단순한 생성물이 만들어지는 단계까지는 기존 이론이 잘 들어맞았다. 한두 단계 반응만 거치는 단순 생성물에는 촉매 표면 전자의 반응성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틸렌·에탄올처럼 탄소와 탄소를 새로 결합시켜야 하는 다단계 반응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반응 중간체가 촉매 표면 위에서 옆자리로 옮겨가 다른 중간체와 만나 결합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표면의 원자 배열과 불균일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구리는 이 다단계 반응에 알맞은 표면 원자 배열을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금속이라는 의미다. 즉, 구리가 다탄소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진짜 이유는 단순한 전자 성질이 아니라, 구리 결정 표면 위에서 원자들이 늘어서 있는 그 ‘구도’ 자체에 있었던 셈이다. 다른 금속으로 같은 d-밴드 센터·일함수 값을 만들어내더라도, 표면 원자 배열까지 똑같이 흉내 내지 못하면 구리의 성능을 재현할 수 없다.

탄소중립 핵심 ‘CO₂→연료 전환’ 촉매 설계 새 기준…그린수소·암모니아 합성으로도 확장

이번 연구는 그동안 표준으로 통하던 촉매 설계 방식의 한계를 실험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는 d-밴드 센터나 일함수 같은 전자 구조 지표를 구리와 비슷하게 맞추면 원하는 촉매 성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다탄소 화합물처럼 복잡한 반응에는 이 접근법만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새로 제시된 설계 방향은 ‘전자 성질 + 표면 원자 배열’을 함께 고려하는 정밀 촉매 설계다. 연구팀은 구리를 대체하거나 구리보다 우수한 이산화탄소 전환 촉매를 개발하기 위한 새 기준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 분석 방식은 이산화탄소 환원 반응뿐 아니라 그린 수소 생산(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반응), 질소 환원(암모니아 합성), 산소 환원 등 다양한 전기화학 반응의 촉매 설계에도 확장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오지훈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존 촉매 이론만으로는 복잡한 다단계 탄소 전환 반응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앞으로는 전자의 특성과 국소 원자 배열을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촉매 설계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