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IST, 유전자 가위로 원하는 자리에 DNA 손상 심는 복구 연구 도구 개발
우리 몸속 세포 하나에서만 하루에 수만 건의 DNA 손상이 생긴다. 복구 단백질이 이를 수선하지만, 그 과정을 들여다보려면 ‘상처 난 DNA’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야 했다. 그게 늘 걸림돌이었다.
DNA의 원하는 자리에 일부러 ‘상처’를 내, 복구 단백질이 그 손상을 어떻게 찾아 처리하는지 관찰하는 연구 도구가 개발됐다. UNIST 생명과학과 이자일 교수팀은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DNA의 특정 위치에 원하는 손상을 넣는 기술 ‘CGRID’를 개발했다고 30일 밝혔다.
사람 세포 하나에서는 하루 수만 건의 DNA 손상이 생기는데, 이를 수선하는 복구 단백질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손상이 쌓이면 노화나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복구 원리를 연구하려면 손상의 종류와 위치가 정확히 정해진 DNA가 필요하지만, 원하는 손상을 원하는 자리에 넣는 일 자체가 그동안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병목이었다. CGRID는 이 부담을 크게 줄여 준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핵산연구(Nucleic Acids Research)’에 10월 28일 출판됐다.
손상 DNA 만들기, 왜 그렇게 번거로웠나
DNA는 염기 분자들이 늘어선 긴 실 두 가닥이 꽈배기처럼 꼬인 이중나선 구조다. 여기에는 염기 하나가 빠지거나 변형되는 작은 손상부터, 한 가닥 또는 두 가닥이 모두 끊어지는 심각한 손상까지 다양한 형태가 생긴다. 복구 단백질이 이 손상들을 어떻게 알아보고 고치는지 연구하려면, 원하는 손상이 정확한 위치에 박힌 DNA를 실험용으로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그 ‘만들기’가 까다로웠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손상을 포함한 DNA 전체를 처음부터 합성하거나, 여러 조각을 일일이 이어 붙여야 했다. DNA가 길어질수록 제작 과정이 복잡해지고 시간과 비용이 불어났으며, 방법에 따라 손상을 넣을 수 있는 위치마저 제한됐다.
연구팀은 ‘통째로 다시 만들기’ 대신 ‘필요한 구간만 갈아 끼우기’로 발상을 바꿨다. CGRID는 DNA 한 가닥만 자르는 유전자 가위 효소(Cas9 니카제) 두 개로 특정 구간을 도려낸 뒤, 그 자리를 원하는 손상이 담긴 짧은 합성 DNA 조각으로 교체하는 방식이다. 긴 옷감을 새로 짜는 대신, 해진 부분만 오려내고 원하는 천을 덧대는 식이다.
위치를 바꾸기도 쉬워졌다. 손상을 넣을 자리는 가이드 RNA(유전자 가위가 자를 위치를 안내하는 짧은 유전물질)가 결정하기 때문에, DNA 전체를 새로 설계·제작하지 않고도 삽입 위치만 바꿀 수 있다. 손상의 종류와 위치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복구 단백질이 ‘상처’를 찾아가는 순간을 포착하다
성능은 수치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약 1000개의 염기쌍(이중나선에서 마주 보는 두 염기의 쌍) 길이 DNA에서 약 90%의 높은 삽입 효율을 달성했고, 약 4만 8500개 염기쌍에 이르는 긴 DNA에서도 원하는 위치에 손상을 넣는 데 성공했다. 짧은 DNA뿐 아니라 긴 DNA에도 두루 통한다는 뜻이다.
실제 복구 과정도 눈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긴 DNA에 염기 하나가 빠진 손상(AP 자리)을 넣고, 이를 복구하는 단백질 ‘APE1’이 손상을 찾아가는 움직임을 관찰했다. 두 가닥이 끊어진 DNA의 끝부분을 본뜬 구조를 넣은 실험에서는, 또 다른 복구 단백질 ‘Ku70/80’이 그 자리에 결합하는 것을 확인했다. 손상을 만든 뒤 그것을 고치는 단백질의 작동을 직접 들여다본 것이다.
더 까다로운 환경에서도 쓸모가 입증됐다. 평상시 DNA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 뭉치에 실처럼 감겨 있는데(뉴클레오솜), 손상이 바깥으로 드러났을 때와 히스톤 쪽으로 가려졌을 때 복구 단백질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연구팀은 CGRID로 손상의 위치와 방향을 달리한 DNA를 만들어, APE1이 손상을 알아보는 효율이 실제로 달라진다는 점을 밝혔다. 히스톤에 가려진 손상은 잘 처리되지 못한 반면, 입구 쪽에 놓인 손상은 비교적 잘 처리됐다.
이 도구의 쓸모는 한 종류의 손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자일 교수는 “기존에는 연구자가 보고 싶은 손상을 원하는 자리에 삽입하는 일 자체가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연구의 병목이었다”며 “CGRID를 이용하면 DNA가 특정 손상을 입었을 때 복구가 잘되거나 어려워지는지 살펴볼 수 있어, 암과 노화로 이어지는 DNA 손상이 왜 제대로 복구되지 않는지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