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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전기차를 ‘개조 플랫폼’으로…특장차 제작 사전공정 없앤 PBV 선봬

기아가 전기차 한 대를 용도별로 개조하는 목적기반차량 플랫폼을 확장했다. 특장차 제작 때 부품을 뜯고 배터리를 다시 다는 사전공정을 없앤 것이 핵심이다.

완성된 전기차를 파는 대신, 하나의 전기차 뼈대를 용도에 맞게 개조해 쓰도록 설계한 ‘목적기반차량(PBV)’ 플랫폼이 본격 확장된다.

기아는 전용 PBV인 ‘PV5’의 상품 체계를 넓히고, 이를 상품·구매·보유·잔존가치 전 주기에 걸친 고객 맞춤형 솔루션과 함께 전개한다고 3일 밝혔다. PBV(Purpose Built Vehicle)는 승객 수송이든 화물 운반이든 특수 장비 탑재든, 하나의 표준 차체를 목적에 맞게 변형해 쓰는 차량을 말한다. 스마트폰 하나에 여러 앱을 얹듯, 같은 전기차 플랫폼 위에 서로 다른 쓰임새를 구현하는 개념이다.

이번 발표에서 기술적으로 주목되는 지점은 완성차의 종류를 늘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전기차를 ‘개조를 전제로 한 플랫폼’으로 재정의했다는 데 있다. 특히 특장차 제작용으로 새로 내놓은 ‘샤시캡 도너모델’은, 기존 상용차를 개조할 때 반드시 거쳐야 했던 부품 탈거와 배터리·전자장치 재장착 같은 낭비 공정을 없앤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주행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고장을 미리 잡아내는 예측 정비, 중고 전기차의 배터리 상태를 수치로 공개하는 투명화까지 더해, 차량을 파는 시점을 넘어 데이터로 관리하는 소유 경험으로 무게를 옮겼다. 기아는 이를 통해 ‘구매-보유-관리’로 이어지는 전 주기 혁신으로 국내 전동화 시장의 대중화를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전기차를 ‘개조 가능한 뼈대’로

PBV의 발상은 자동차를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기반(플랫폼)’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상용차는 대개 완성된 형태로 출고된 뒤, 필요에 따라 개조 업체가 뜯어고치는 방식으로 특장차가 됐다. 문제는 이 개조 과정이 비효율적이라는 데 있었다. 이미 달려 있는 부품을 떼어내 폐기하고, 특장 작업에 맞춰 배터리와 전자 제어 장치를 새로 장착하는 사전 작업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기아가 새로 선보인 ‘PV5 샤시캡 도너(donor)모델’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처음부터 개조를 전제로 설계된 전용 모델로, 컨버전(개조) 업체가 특장 작업과 인증을 마친 뒤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구조다. 사다리차, 푸드트럭처럼 다양한 특수 차량 제작에 곧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사전 공정을 대폭 걷어냈다.

이런 접근이 전기차에서 특히 의미를 갖는 이유가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배터리와 전자 제어 장치가 차량 성능의 중심을 이룬다. 개조 과정에서 이 핵심 부품을 뜯었다 다시 붙이면 안전성과 인증에 부담이 커진다. 처음부터 개조를 염두에 둔 ‘도너모델’로 출고하면, 업체는 이 위험한 재작업 없이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특장차를 만들 수 있다.

플랫폼 전략의 확장성은 라인업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PV5는 가족용 다인승, 택시 등 모빌리티 서비스용, 좁은 도심 운송용 등 쓰임새별로 파생 모델이 갈린다. 예컨대 카고 컴팩트는 휠베이스(앞뒤 바퀴 축 간격)는 그대로 두면서 차 길이만 200mm 줄여 좁은 골목에서의 기동성을 높였다. 같은 뼈대에서 필요한 치수만 조정해 새로운 용도를 만들어내는, 플랫폼 방식의 전형적인 응용이다.

기아는 앞으로도 카고 하이루프, 냉동탑차 등 파생 모델을 순차 출시해 PBV 생태계를 넓혀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완성차 판매 경쟁을 넘어, 그 뒤에 이어지는 개조·특장 산업까지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흡수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전기차를 ‘제품’이 아니라 ‘기반 기술’로 다루는 접근이 이 전략의 기술적 축이다.

PV5 패신저(1-2-2) 모델 외장

데이터로 관리하는 전기차

두 번째 기술 축은 차량을 파는 순간이 아니라, 타고 되파는 과정 전체를 데이터로 관리하는 데 있다. 그 출발점이 연내 시범 도입되는 ‘선제적 차량진단 시스템’이다. 고장이 난 뒤 정비소를 찾는 기존 방식과 달리, 이상을 미리 감지해 대비하는 예측 정비 개념이다.

작동 방식은 데이터의 흐름을 따라간다. 차량이 운행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수집한 진단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이상 징후가 잡히면, 관련 고장 정보와 예상 정비 항목이 정비소 담당자에게 자동으로 전달된다. 담당 정비사는 차량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정비 방향을 세워둘 수 있어, 입고 즉시 신속하게 수리가 이뤄진다. 기아는 우선 사업용 고객과 일부 EV를 대상으로 하반기부터 시범 운영한 뒤 적용 대상을 단계적으로 넓힐 계획이다.

이 시스템이 전기차와 잘 맞물리는 이유는 전기차가 본질적으로 데이터를 많이 생성하는 기기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상태, 전력 흐름, 각종 전자 제어 신호가 끊임없이 기록되므로, 이를 분석하면 고장의 조짐을 사전에 포착할 여지가 커진다. 차량이 스스로 상태를 알리고 정비를 준비시키는 방식은, 자동차를 ‘기계’에서 ‘연결된 데이터 단말’로 다루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데이터 관점은 중고차 단계에서 더 뚜렷해진다.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큰 요인 중 하나가 배터리 수명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중고 전기차는 배터리가 얼마나 닳았는지 겉으로 알기 어려워, 시세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다. 기아는 인증중고차의 ‘EV 품질등급제’를 고도화해, 종합 등급에 더해 배터리 건강 상태(SoH·State of Health), 누적 충·방전 횟수, 배터리 온도 같은 세부 수치까지 공개하기로 했다.

배터리 상태를 숫자로 드러낸다는 것은, 그동안 ‘블랙박스’처럼 여겨지던 중고 전기차의 핵심 가치를 투명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소비자가 실제 배터리 상태를 정밀하게 확인한 뒤 살 수 있게 되면, 중고 전기차 시장의 신뢰가 높아지고 이는 다시 신차 구매 부담을 낮추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정원정 부사장은 “상품·구매·보유·잔존가치 전 분야에서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전략의 기술적 핵심은 개별 신차가 아니라, 전기차를 플랫폼과 데이터로 다루는 방식의 전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