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英 스타트업, 승용차와 승합차 모두 운전 가능한 ‘스마트’한 AI 모델 첫선
런던에 본사를 둔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웨이브(Wayve)가 승용차뿐만 아니라 승합차까지 두 종류의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머신러닝(machine-learning) 모델을 만들었다. 동일한 인공지능(AI) 모델이 한 가지 차종이 아니라 다른 차종까지 운전하는 법을 학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소식은 웨이브가 런던 시내에서 학습한 AI 모델로 영국의 네 개 도시에서 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발표됐다. 일반적으로는 한 도시에서 학습한 AI 모델을 다른 도시에서 운전하게 하려면 상당한 조정과 재학습이 필요하다. 웨이브의 기술 담당 부사장 제프 호크(Jeff Hawke)는 자사의 AI 모델에 대해서 “우리가 새로운 장소에 가서 렌터카를 빌리더라도 운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웨이브는 자율주행차(autonomous vehicle, AV) 개발을 위해 딥러닝(deep learning)을 활용하여 AI 모델에 운전을 처음부터 가르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번 성과는 기존 업체와 다른 방식을 선택한 웨이브의 결정이 크루즈(Cruise)나 웨이모(Waymo), 테슬라(Tesla) 같은 선도적인 자율주행차 기업들보다 빠르게 기술 규모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웨이브는 더 크고 자본력도 더 탄탄한 경쟁사들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회사이다. 그러나 이곳은 와비(Waabi), 고스트(Ghost) 등 ‘AV2.0’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새로운 세대의 스타트업 중 하나이며 이들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매우 정교한 3차원 지도를 바탕으로 주변 감지와 운전 계획을 위한 별도의 모듈에 의존하는 1세대 자율주행차 회사들의 ‘로봇공학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있다. 기존 방식 대신에 새로운 스타트업들은 전적으로 AI에 의존하여 차량을 운전한다.
물론 로봇공학을 기반으로 하는 접근법을 채택한 자율주행 기술 덕분에 미국 피닉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일부 도로에는 로보택시(robotaxi)가 도입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보택시 운영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며 이른 시일 내에 이 서비스가 시범 단계를 넘어 다른 곳까지 확산될 듯한 징후도 거의 없다. 웨이브를 비롯한 스타트업들은 이러한 상황을 바꾸고자 한다. 이들은 딥러닝이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과 자연어 처리를 학습할 때 사용했던 방식을 자율주행차에 도입하여 자율주행차가 계속해서 복잡한 지도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거나 수작업으로 제작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거리와 시나리오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한다.
나는 런던에 있는 웨이브 본사에 방문하여 회사가 기존에 사용하던 재규어 I-페이스(Jaguar I-PACE) 자동차들 옆에 주차된 새로운 맥서스 e9 밴(Maxus e9 van)을 확인했다. 이 승합차에는 승용차들에 설치되어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웹캠 크기의 센서 여섯 개가 더 높은 위치에, 다른 각도로 장착되어 있었다. 이는 승용차를 제어할 때와 승합차를 제어할 때 AI 모델에 입력되는 영상의 각도가 다른데도 모델이 다른 차종을 운전하는 법을 배웠음을 보여준다. 차량에 장착된 각 카메라는 1초에 약 30번씩 AI 모델에 영상 자료를 입력한다. 웨이브의 AI는 영상의 각도뿐만 아니라 승용차와는 다른 승합차의 크기와 무게에 적응해야 했다. 승합차는 승용차와 회전하는 각도도 다르고 정차할 때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AI 모델은 승용차와 승합차를 운전할 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승합차에는 AI 모델의 명령을 AI가 제어하고 있는 특정 자동차에 맞춰 변환하는 복잡한 전선과 맞춤 제작된 컴퓨터 부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웨이브의 AI 모델은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과 인간 운전자의 행동을 모방하는 모방학습(imitation learning)을 조합해서 학습했다. AI 모델이 자동차를 운전하도록 학습시키는 데에는 수천 시간에 달하는 운전 데이터가 필요했다. 그러나 웨이브가 처음에 시뮬레이션에서 AI 모델에 승합차 운전법을 추가로 학습시킬 때는 고작 80시간 정도에 해당하는 데이터만 필요했다.
이는 연구팀을 놀라게 했다. 웨이브의 과학자 베키 골드먼(Becky Goldman)은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는 시스템을 일반화하는 데 얼마나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결과를 보면 AI 모델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차종에 적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웨이브는 또한 AI가 승합차 운전법을 배우자 승용차에서도 AI의 운전 성능이 향상한 것을 발견했다.
AI 모델이 시뮬레이션에서 승용차뿐만 아니라 승합차 운전하는 법까지 학습하자 웨이브는 모델을 도로로 꺼냈다. 웨이브의 안전 운영자(safe operator) 나오미 스탠다드(Naomi Standard)는 AI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한다. 스탠다드는 AI가 처음 승합차를 운전할 때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나는 AI를 도로에 처음 데리고 나갔을 때 운전 강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AI 모델은 승합차를 운전하면서도 런던의 좁은 길에 잘 적응했고 도로 공사하는 곳, 횡단보도, 버스, 이중 주차된 차량까지 잘 대응했다.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본사가 있는 스타트업 고스트의 제이 지라크(Jay Gierak)는 웨이브의 시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스트는 전반적으로 웨이브의 관점에 동의한다. 그는 “로봇공학을 이용한 접근법은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한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딥러닝에 완전히 의존하는 웨이브의 방식을 신뢰하지 않는다. 고스트는 하나의 대형 모델을 사용하는 대신에 수백 개의 더 작은 모델을 각기 다른 전문성을 바탕으로 학습시킨다. 그러고 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델을 사용해야 하는지 자율주행 시스템에 알려주는 간단한 규칙을 손으로 코딩한다. (이러한 고스트의 접근방식은 이스라엘의 AV2.0 업체 오토브레인스(Autobrains)와 비슷하다. 그러나 오토브레인스는 규칙 학습에 또 다른 신경망을 사용한다.)
고스트의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기술경영자(CTO) 폴크마어 울리그(Volkmar Uhlig)에 따르면 AI를 각각 특정 기능을 가진 작은 조각들로 나누면 자율주행차가 안전하다는 것을 더 쉽게 보여줄 수 있다. 그는 “운전을 하다 보면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런 일이 생기면 ‘앞에 사람이 있으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적힌 코드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리그는 코드를 작성하면 계속해서 학습이 가능하지만 웨이브의 모델 같은 대형 모델에서는 그렇게 명시된 부분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두 회사는 상호보완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고스트는 고속도로에서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소비자용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한편 웨이브는 100개 도시에 자율주행차를 보급하는 첫 번째 회사가 되기를 바란다. 웨이브는 현재 영국의 거대 식료품 회사인 아스다(Asda), 오카도(Ocado)와 협력하여 두 회사가 사용하는 배달 차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두 회사는 자율주행차 시장의 선두 업체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 크루즈와 웨이모는 이미 수백 시간 동안 무인 자동차를 주행했고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대중에게 로보택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호크는 “우리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도전의 규모를 굳이 축소하고 싶지 않다”며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