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의 재정의
‘설계(design, 또는 디자인)’라는 단어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건축물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디세뇨(disegno)’, 즉 ‘그림(drawing, 또는 도면)’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적어도 1990년대 말 건축학과 학생으로서 내가 들었던 열정적인 설명에 따르면 그렇다. 물론 역사 속 이야기는 조금 더 복잡하다. 1300년부터 1500년 사이 ‘설계’의 의미에 실제로 중요한 변화가 있었지만, 그 변화는 언어보다는 사물을 만드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과 더 관련이 있었다. 그림과 설계의 관계는 단어를 탄생시키지도, 그 의미를 확장시키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전에 사용됐던 것처럼 단어의 의미를 축소시켰고, 이제는 그렇게 축소된 의미를 다시 되돌리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design’의 라틴어 어원인 ‘데 시그노(dē-signo)’는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Cicero) 같은 사람들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통해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의미들을 전달했다. 데 시뇨의 뜻은 문자적인 의미에서부터 투사(tracing)와 같이 소재와 관련된 의미, 목표를 구상하고 달성한다는 전술적인 의미를 지나, 사람과 사물을 전략적으로 ‘지정(designation)’하는 것처럼 단어 자체에 ‘design’이 포함되어 있는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의미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의미에는 만들고 배치하면서 세계에 형태를 부여한다는 넓은 개념을 포괄한다.
그러나 13세기와 14세기에 직접적으로 구조를 형상화하기 위해 그림을 활용하면서 언어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설계(design)’라는 그림과 연관된 의미가 다른 모든 의미를 가려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초기의 모습이 1340년에 만들어진 어떤 양피지 문서에 나타나 있다. 못 구멍이 뚫린 채로 접히고 구겨진 이 양피지 문서는 이탈리아 중부 도시 시에나(Siena) 중심지에 있는 ‘팔라초 산세도니(Palazzo Sansedoni)’ 건축의 후원자와 세 명의 건축자(builder) 간의 계약을 기록하고 있다. 문서 하단에는 팔라초 건축을 둘러싼 법적, 재정적 합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상단에는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의 정면도, 즉 그림이 주석과 치수와 함께 그려져 있다.
1340년보다 훨씬 전에도 그림은 필요할 경우 건축자들의 의도를 기록하는 데 사용됐고, 이러한 그림은 지면이나 벽에 그려지다가 결국에는 더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사물의 표면에 그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은 건축 과정에서 부수적인 것이었다.
1300년대의 시에나에서처럼 경제가 번영하게 되자 저명하고 뛰어난 건축자들은 동시에 여러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건축 현장에서의 활동을 감독하려면 ‘그림이 그려진 문서’(당시에는 이것도 ‘design’이라고 불렀다)의 권위에 의존할 필요성이 생겼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산세도니 양피지 문서의 역할 중 하나도 계약서에 서명한 세 명의 건축자가 다른 곳에서 바쁠 경우, 현장에서 업무를 감독할 (지정되지 않은) 네 번째 건축자의 역할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건설 현장의 ‘지휘자(maestro)’는 ‘아르키테토(architetto)’, 즉 ‘건축가(architect)’로 대체되었다. 건축가는 주로 문서와 그림을 통해 주어진 권위를 가지고 건축물에 대한 ‘설계’를 생산하고 기록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 결과로 건축가들은 ‘설계’라는 단어에 소유권이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건축가들이 그런 느낌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설계’를 실행한 최초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현대적인 의미의 설계란 직접적인 제작과 별개로 어떤 대상이나 환경에 형태를 부여하는, 그림 기반의 전략적인 방식을 말한다. 건축은 독립적인 직업과 연구 과정으로서 ‘설계(디자인)’의 선구자였다. 그 이후 다른 역할을 하는 설계도 등장한다. 프랑스 파리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 Beaux-Arts)의 건축과 학생들은 교육과정에서 우리가 현재 ‘설계과정’이라고 부르는 ‘도면(dessins)’을 제작하지만, 파리의 제조 공장들은 물질세계의 경제와 그 안에서의 ‘설계’라는 개념으로 이를 사용했다.
오래전 가정용 도자기의 그림과 견본이 중국 징더전(Jingdezhen)시의 가마에서 유럽까지 이동했다. 무려 16세기에 특정 시장을 위해 제작할 장식의 형태와 패턴을 구체화(우리는 이제 이 작업을 ‘디자인’이라고 부른다)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18세기에 영국의 선구자 조시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는 예술가와 ‘장인(master)’ 도예가들을 이용하여 일러스트와 견본품을 제작했다. 웨지우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작 의도는 ‘인간 기계’가 실수하지 않고 품질이 균일한 도자기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작업자가 실수할 여지만 제거한 것이 아니라 작업자의 개인적인 표현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그 후에 이어진 문자 그대로의 ‘생산의 기계화’는 디자인 작업과 실제 제작 과정을 확실하게 분리시키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로서 그리고 한 단어로서의 디자인의 정의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디자인의 개념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경제 전반에 걸쳐 확장되고 있다. 한 가지 산업을 예로 들어 보자. 바로 헨리 포드(Henry Ford)가 만든 모델 T(Model T)이다. 포드의 모델 T는 1907년에 만든 단순한 디자인을 통해 휘발유 엔진 자동차가 부유층의 맞춤형 장난감으로서의 위치를 벗어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1924년 그만큼 중요한 혁신이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GM)의 알프레드 슬론(Alfred P. Sloan)을 통해 일어났다. 그가 이루어낸 혁신은 쉐보레(Chevrolet)에서 캐딜락(Cadillac)까지 기계적으로는 유사한 차량들을 새로운 연식 변경 모델과 다양한 가격대, 지위로 구분하는 지표로 디자인을 도입한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디자이너(designer) 브랜드’라고 부를 때에는 물질적인 가치 대신 피상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현대의 현실을 헤쳐나가도록 도와주는 몇 안 되는 활동의 하나로 ‘디자인’을 소중히 여긴다. 테슬라, 애플, 심지어 예전의 IBM 등 혁신적이면서도 접근성 높은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기업들이 우아한 표면 마감이라는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스타일과 지위의 상업적 가치를 이용하면서 전반적인 기술적 정교함을 보여주기 위해 디자인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전 세계의 기술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새로운 건물이 여전히 14세기 시에나에서도 인식할 법한 도면과 시방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설계(디자인)’라는 단어가 건축을 훨씬 넘어 다른 영역까지 확장됐었음에도 수백 년 전의 정의를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설계(디자인)는 과거의 유일한 설계 수단이었던 ‘그림 또는 도면’이라는 의미에서는 멀어지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건축을 비롯한 직업들은 상세한 묘사에서 벗어나 설계(디자인)를 더 용이하게 하는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3D 프린팅과 로봇을 이용한 건물 조립 같은 기술들은 개념과 제작 사이의 전통적인 거리감을 일부 해소한다. 이러한 발전과 동시에 (우연은 아니겠지만) 소위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라는 개념의 마케팅 및 사고방식 채택이 일어났다.
디자인 씽킹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제도용 책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아이러니는 그림과 관련된 ‘디자인’의 의미에서 유래한 도구들(포스트잇 등 스케치하고, 도표를 그리고, 그림을 이용해서 관계를 재정비하는 수단들)이 시각적 환경보다 추상적인 문제에 적용될 때 종종 더 성공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디자인을 더 확장된 시각으로 다시 봐야 하는 것은 디자인 회사의 성공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 이후에 축소된 디자인의 의미는, 시에나의 팔라초 건설을 위해 쌓아 놓은 돌들이든 아이폰 같은 문화적 아이콘을 유지시키는 희토류 금속이든, 지구의 한정된 자원이 필연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디자인은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원천이 될 수 있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기도 한다.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보다 항상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디자이너 또는 설계자들은 묘사부터 원형 제작을 거쳐 직접적인 제작 과정에서 훨씬 후반부에 자리잡고 있다. 만일 이전처럼 설계를 더 앞단계로 이동시킨다면 우리는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제품 창작과 관련된 포커스 그룹과 설문조사, 건설 분야에서의 법적·개발관련 결정사항, 설계된 세계가 의존하는 자원과 그에 대한 결정들을 의미한다.
‘순환경제(circular economy)’에서의 지속적인 소재 재사용부터 재생 건축으로의 건축적 전환, 육류의 지속 불가능성에서 벗어나 식량 재설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물건뿐만 아니라 그러한 물건을 만드는 문화와 제도까지 재구성해야만 한다. 그러한 작업이야말로 더 균형 잡힌 형태를 찾을 뿐만 아니라 더 아름답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형성하면서 ‘데 시그노(dē-signo)’의 원의미를 되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글을 쓴 니콜라스 드 몽쇼(Nicholas de Monchaux)는 MIT의 건축과 교수이자 학장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매거진
포스트 디자인 씽킹 (Volume 7)
본 기사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 매거진 2023년 3·4월 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