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버드·스탠포드·MIT의 AI윤리교육, 한국 대학에 들어오다
AI는 이제 인간의 결정을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라, 결정 자체를 내리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채용 후보를 1차 선별하고, 환자의 영상을 판독하며, 학술 논문의 통계와 표절을 검수하고, 산업 설비의 이상을 감지하는 결정의 상당 부분이 이미 알고리즘 위에서 일어난다. 사람을 평가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위험을 판단하는 일이 AI에게 빠르게 위임되고 있다.
문제는 이 결정들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데이터를 학습시킬지, 어떤 변수에 가중치를 둘지, 정확도와 공정성 중 무엇을 우선할지, 모델의 임계값을 어디에 둘지, 모든 단계에 누군가의 가치 판단이 새겨진다. AI 윤리(AI ethics)는 그 새겨진 판단을 가시화하고, 더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작업이다.법과 규제는 본질적으로 사후적이다. 그러나 AI의 결정은 사람보다 빠르고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사고가 터진 뒤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윤리가 사후 보완이 아니라 설계 시점부터 작동해야 한다는 합의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AI 사고는 빠르게 늘고 있다. 스탠포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 2026’ 보고서에 따르면, AI 관련 사고(incident)는 2012년 한 자릿수에서 2025년 362건으로 폭증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세계는 거버넌스 체계를 빠르게 갖춰가고 있다. AI 윤리 가이드라인은 200개를 넘었고, 유럽연합(EU)의 AI Act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규제로 시행됐으며,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AI 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AI RMF)와 국제 표준 ISO/IEC 42001 같은 표준이 잇따라 등장했다. 교육 현장도 빠르게 움직였다. 영국의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매년 발표하는 ‘QS 세계대학 학문분야별 랭킹’ 중 컴퓨터과학·정보시스템 분야 톱 10 대학의 75%는 AI 윤리를 전공 정규 과목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버드의 임베디드 에틱스(Embedded EthiCS)는 2017년부터 약 10년 가까이 운영 중이며, 스탠포드의 임베디드 에틱스와 MIT의 SERC(MIT 산하 사회기술시스템 연구센터)는 2020년경부터 운영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AI 모델·산업 경쟁력에서는 글로벌 상위권이지만, 윤리 인프라에서는 격차가 크다. NC문화재단과 GIST AI정책전략대학원, 이화여자대학교 인공지능대학 인공지능전공이 주도한 <예비 개발자를 위한 인공지능 윤리교육 연구>는 이 격차를 정면으로 진단한 국내 첫 보고서다. 하버드·스탠포드·MIT의 임베디드 에틱스 모델을 벤치마킹해, 국내 대학에 이식 가능한 4가지 윤리교육 내재화 유형(분리교과형·비연계모듈형·연계모듈형·통합교과형)과 5개의 시범 교안을 제안했다. 임베디드 에틱스는 윤리를 별도 교양 과목이 아닌 컴퓨터공학 전공 커리큘럼의 ‘세포 수준’에 녹여, 학생들이 모델을 설계하고 평가하는 기술적 맥락 안에서 윤리적 판단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제 막 시작된 한국형 임베디드 에틱스 교육과 그 너머의 풍경을 살펴봤다.
왜 지금, 윤리 ‘교육’인가…임베디드 에틱스의 출발점
Q. AI 윤리 가이드라인은 이미 200개를 넘었고, 유럽연합(EU)의 AI Act 같은 법적 규제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새로운 ‘교육 모델’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별도의 윤리 과목이 아니라 컴퓨터공학 전공 수업 안에 윤리를 직접 녹이는 ‘임베디드’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박명진 이사장 AI 기술은 우리 삶의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과 가이드라인만으로 AI가 가져올 모든 문제에 대응하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법과 원칙이 만들어지는 동안에도 기술은 계속 앞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도적 장치를 넘어, 기술을 만드는 설계자 스스로가 윤리적 판단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면, 임베디드 에틱스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치는 ‘도덕’ 교육이 아닙니다.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윤리적·사회적 이슈를 학생들이 스스로 포착하고, 논리적으로 검토하고, 자신의 입장을 표현·소통하며,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도록 돕는 것이 목적입니다. 2024년 NC문화재단이 주최한 FAIR AI 컨퍼런스에서 스탠포드대 컴퓨터공학과 메흐란 사하미(Mehran Sahami) 교수는 “컴퓨터 공학 전공자들은 ‘0과 1’, ‘옳고 그름(right or wrong)’이라는 이진법적 사고와 최적화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실제 세상에는 단순한 정답이 아닌 ‘더 나은 선택과 더 나쁜 선택(better and worse)’ 사이의 복잡한 가치 판단이 존재합니다. 임베디드 에틱스는 바로 그 판단 역량을, 학생들이 전공 수업의 기술적 맥락 안에서 갖추도록 하는 교육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NC문화재단은 2020년부터 하버드·스탠포드·MIT의 임베디드 에틱스와 같은 다학제적 연구와 교육을 후원해 왔고, 이번 연구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대학 상황에 적합한 교육 모델과 파일럿 모듈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김준하 원장 법과 원칙은 본질적으로 사후적입니다. 그러나 실제 위험은 코드를 작성하고, 훈련 데이터를 선별하며, 모델의 임계값을 설정하는 개발자의 미시적 의사결정 순간에 발생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설계 단계에서 사전 개입할 수 있는 역량, 곧 교육입니다. 이 접근의 목적은 윤리적 개발자 한 명을 더 만드는 데 있지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윤리적 설계 자체가 기본값인 개발자’를 양성하는 방식입니다.
김수경 교수 윤리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가르친다’는 접근은 오히려 특정 가치관을 주입하거나 학생들의 판단을 제한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윤리를 정답처럼 전달하기보다, 데이터셋을 구성하고 모델을 설계·평가하는 과제 안에서 편향과 공정성·안전성 문제를 학생들이 직접 발견하고 고민하게 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봤습니다. 결국 임베디드 에틱스는 규범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Q. 전 세계 컴퓨터과학 톱10 대학의 75%가 AI 윤리를 전공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고, 60%가 다학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21~31위권에서도 약 20퍼센트가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대학은 이 비율에 한참 못 미치는데 국내 교원의 80퍼센트가 ‘윤리교육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같은 공감과 실행의 격차, 어디서 비롯된다고 보십니까.
김수경 교수 이 역설은 결국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국내 컴퓨터공학 전공의 수업 밀도가 매우 높고 취업과 직결되는 실용 기술 교육에 대한 요구가 강한 데 비해, 윤리 교육은 효과가 단기적으로 가시화되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산업 현장도 채용 과정에서 윤리적 판단 능력을 명시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교수 입장에서도 새 과목 개설이나 윤리 통합의 인센티브가 부족합니다. 해외 상위 대학들은 인문사회와 공학 간 협업이 자연스러운 반면, 국내는 학과 간 경계가 뚜렷한 점도 다학제 접근을 어렵게 만듭니다.
김준하 원장 저는 이 역설이 개인의 인식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지난 5년간 한국은 AI 패권 경쟁 속에서 양적 성장과 기술 추격에 자원을 쏟았고, 윤리적 대응은 항상 ‘나중 문제’로 밀려났습니다. 현장의 가장 큰 한계는 교수진의 절대적 부족입니다. 공학과 인문사회과학적 통찰을 함께 가르칠 수 있는 인력 자체가 부족합니다. 이제는 산업의 양적 팽창을 넘어, AI 신뢰성을 담보하는 내재적 윤리 인프라 구축으로 국가적 우선순위를 재설정해야 할 시점입니다.

Q. 하버드와 MIT가 운영하는 임베디드 에틱스는 개인의 권리,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같은 서구 자유주의 가치를 기본 전제로 합니다. 이는 한국 사회와 안 맞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데. 이 차이가 한국형 AI 윤리교육에 어떤 충돌과 기회를 만든다고 보십니까.
김준하 원장 하버드와 MIT 모델은 개인의 권리·프라이버시·표현의 자유 같은 서구 자유주의 가치를 강하게 전제합니다. 반면 한국은 압축 산업화 경험과 비교적 높은 사회적 응집 속에서 공동체 안전·공공성·기술 수용 속도를 함께 중시해 온 맥락이 있습니다. 저는 이 경험에서 형성된 상호책임의 감각을 ‘K-에틱스(K-ethics)’라고 정의합니다. K-에틱스는 개인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사고가 아닙니다. 자유와 권리의 토대 위에 공동체 안전·상호책임·공공성을 함께 중첩하는 윤리입니다. 압축하면 ‘개인의 권리 + 공동체의 안전 + 국가적 책임 + 기술 실행력’입니다. 의료 AI에서는 진단 정확도만이 아니라 지역·계층 간 접근성 격차를 함께 보아야 하고, 공공 비전 AI에서는 범죄 예방의 효용을 인정하더라도 감시 범위와 오탐의 피해를 엄격히 통제해야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규제 모델이 혁신을 위축시킬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서, K-에틱스는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기술의 공공적 활용을 극대화하는 균형 잡힌 거버넌스의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김수경 교수 미국에서 박사를 마치고 7년 정도 현지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한국과의 차이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미국에서는 마이너리티의 의견도 의사결정에 의미 있게 반영되고, 윤리적 토론과 다른 관점의 표명이 안전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반면 한국은 위계가 강하게 작동하고 다른 의견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문화가 있어, 그 전제가 충분치 않으면 윤리 교육이 형식에 그칠 수 있습니다. 다만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공동체 안전이나 사회적 조화를 중시하는 관점은 AI의 안전성과 사회적 영향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서구 모델이 개인 권리 중심이라면, 한국적 맥락은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사회적 영향까지 확장해 고려할 여지를 줍니다.
Q. 이번 연구의 가장 독자적인 성과는 5개의 시범 교안입니다. GIST에서는 법학, 정책학, 공학 교수진이 함께 3가지 유형을, 이화여대에서는 NLP·강화학습에 윤리 모듈을 삽입했습니다. 기술 토픽에 윤리 쟁점을 매핑하는 기준과, 학문 간 관점의 충돌이나 예상치 못한 발견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수경 교수 강화학습 과목에 윤리 모듈을 삽입하면서 먼저 고민한 것은 “어떤 기술에 어떤 쟁점을 연결할 것인가”였습니다. 강화학습은 본질적으로 목표 지향적 최적화 프레임워크이므로, 목표 함수 설정이 모델의 행동을 크게 결정합니다. 특정 사용자 만족도만을 극단적으로 최적화하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학습되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과정에서 중요한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공학적으로는 문제를 ‘발견’하고 설명할 수 있지만, 이를 윤리적 개념이나 가치 체계로 정교하게 ‘개념화’하는 데는 지식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용어도,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이 지점에서 법학이나 정책학, 철학적 관점과의 협업이 왜 중요한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서로 다른 학문 배경이 결합되면 공학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가치의 층위를 명확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학제 협업은 선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윤리 교육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김준하 원장 김 교수님의 경험에 공감합니다. AI를 일괄적 기준 하나로 접근하면 학문 간 소모적 충돌만 낳습니다. 거시적으로는 “AI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명제에 모두 동의하지만, 진짜 딜레마는 현장에서 어떤 가치에 더 큰 가중치를 둘지 결정하는 미시적 순간에 발생합니다. GIST의 법학·정책학·공학 교수진은 바로 이 미시적 질문들을 함께 풀어냈습니다. 비전 AI의 감시 시스템과 개인정보 보호 상충, Energy AI의 효율성과 형평성 간 가치 충돌을 다루었고, 네덜란드 SyRI·호주 Robodebt 같은 실제 사례를 통해 자동화 의사결정의 공정성 문제를 직시하게 했습니다. 초기에는 법학자는 위험 최소화를, 공학자는 혁신을 강조해 충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충돌이 기술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는 순간 생산적 융합으로 전환됐습니다. 이것이 이 연구의 가장 탁월한 성과입니다.

교실에서 현장으로…평가, 책임, 그리고 미래
Q. 공학에서는 ‘모델 성능’, 즉 정확도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정확도를 일부 포기하더라도 공정성이나 안전성을 우선하는 설계를 했다면, 학점 체계는 그 선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김수경 교수 공학에서는 정확도나 보상 최적화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작동해 왔기에, 공정성을 이유로 성능을 일부 희생한 선택을 어떻게 정당화할지가 핵심 딜레마입니다. 이번 강화학습 교안에서 시도한 방식은 이 두 가지를 단순한 트레이드오프로 두기보다 평가 기준 자체를 확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상 함수 설계 실습에서 학생들이 보상값이나 성능 지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정책이 어떤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까지 함께 분석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확도를 일부 포기하고 공정성을 선택한 설계는 ‘덜 좋은 모델’이 아니라 ‘다른 목적 함수를 최적화한 모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최적화할 것인가 자체가 이미 설계자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설명할 수 있다면 학술적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입니다. 결국 이 교안이 묻는 것은 성능과 윤리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성능의 정의 자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입니다.
김준하 원장 AI가 인간보다 빠르게 코드를 짜고 답을 도출하는 시대에, 정답률만을 높이려는 학점 중심 평가는 의미를 잃고 있습니다. 평가 체계도 ‘턴오버(Turn-over) 수준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학생이 정확도를 일부 포기하고 사회적 편향을 줄이는 공정성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회적 비용을 선제적으로 줄인 설계’로 정당화하고 더 높은 학술적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평가의 축은 결과 중심에서 의사결정 과정 중심으로, 단일 점수에서 다차원 평가로 이동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평가는 ‘왜 특정 성능을 포기했고 어떤 사회적 비용을 줄였는지 설명하는 능력’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게 될 것입니다.
Q. AI가 사람보다 빠르게 코드를 짜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인간 개발자의 차별적 경쟁력이 기술적 숙련도가 아니라 ‘윤리적 성찰과 설계 역량’이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또 외부 파운데이션 모델을 API로 가져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일반화된 환경에서, 개발자는 그 모델에 내재된 편향에 대한 책임을 어디까지 져야 할까요?
김준하 원장 AI가 코딩을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 개발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술적 숙련도가 아니라 윤리적 성찰과 비판적 설계 역량입니다. 외부 파운데이션 모델을 API로 가져와 쓰는 환경에서는 책임의 경계를 모델 제공자·통합 개발자·배포 조직의 세 계층으로 구분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이 문제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모델을 몰랐던 것은 면책 사유가 아니라 책임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API 모델 내부의 편향이나 환각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시스템을 설계했다면, 그것은 통합 개발자로서 다해야 할 전문가적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임베디드 에틱스를 이수한 학생들은 AI 거버넌스, 모델 리스크 관리, 트러스트 앤드 세이프티(Trust & Safety) 같은 직무로 이어지는 시장 경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김수경 교수 실제 취업 시장은 아직도 기술적 역량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지지만, LLM이나 파운데이션 모델을 API로 활용하는 환경에서는 모델을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보다 ‘어떻게 문제를 정의하고 시스템을 설계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교안에서도 학생들이 외부 모델을 API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책임이 완전히 외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했습니다. 많은 시스템이 블랙박스 모델 위에 구축되지만, 어떤 모델을 선택하고 어떤 입력·출력 필터링을 두며 어떤 환경에 배포할지는 여전히 개발자의 설계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모델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책임을 외부로 넘기기보다, 그 모델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구조를 설계한 사람으로서의 책임 범위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Q. 하버드와 MIT 같은 해외 명문대는 윤리·기술이 통합된 자체 연구·교육 기구를 두고 10년 가까이 운영해 왔습니다. 한국 대학의 AI 윤리교육은 5년, 10년 뒤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그리고 이번 연구를 진행하며 가장 강하게 느낀 문제의식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박명진 이사장 최근 발표된 스탠포드 AI 인덱스 2026 보고서에 따르면, AI 관련 사고(incident)는 2012년 한 해 한 자릿수 수준에서 2025년에는 362건으로 폭증했습니다. 앞으로 5~10년 동안 AI가 우리 삶에 더 깊이 스며들수록 이러한 문제의 발생 빈도와 파급력도 커질 것입니다. 이에 따라 AI 윤리 교육의 중요성 또한 커질 것이며, 임베디드 에틱스 교육이 하나의 주요한 대안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합니다.

다만 AI 윤리 교육은 대학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초·중·고 학생, 일반 시민, 전문가 등 각 수준에 맞는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미래세대에게는 AI 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 능력뿐 아니라 이를 윤리적으로 사용하는 역량까지 아우르는 ‘AI 리터러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딥페이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처럼, 기술의 오남용을 예방하려면 각 단계에 적합한 AI 기술과 윤리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때 기술과 윤리를 분리해 가르치기보다 임베디드 에틱스처럼 융합해 교육한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AI 네이티브인 미래세대에게는 자기주도적 창의성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기술을 만드는 이들에게 윤리를 가르치는 임베디드 에틱스처럼, 기술을 만들고 사용할 미래세대에게는 창의성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AI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할수록 ‘무엇을, 왜 할 것인가’를 스스로 묻는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NC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프로젝토리(Projectory)’가 바로 그런 공간입니다. 각자의 프로젝트(Project)를 자유롭게 펼치는 실험실(Laboratory)이라는 이름처럼, 미래세대가 마음껏 도전하고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입니다. 미래세대의 자기주도적 창의성과 윤리적 성찰이야말로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에 균형을 더하고, 더욱 인간적인 미래를 만들어가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김준하 원장 한국 대학의 AI 윤리교육은 5~10년 내에 개별 교수의 열정에 의존하는 단계를 넘어 시스템적 거버넌스로 진화해야 합니다. 5년 안에 모든 AI·컴퓨터공학 전공생이 학부 과정에서 최소 세 차례 이상 서로 다른 교과목에서 임베디드 에틱스 모듈을 경험해야 하며, 10년의 관점에서는 하버드 티칭랩(Teaching Lab)이나 MIT SERC 같은 독립 전담 기구가 대학마다 설치되고, 대학 간 모듈·평가 도구를 공유하는 국가 차원의 오픈 리포지토리가 구축돼야 합니다. 한국의 압축 산업화 DNA는 AI 전환의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그에 비례해 윤리적 갈등도 커집니다. K-에틱스는 그 성장통의 완충재가 되어야 하며, 한국적 맥락을 품은 AI 윤리가 국제 표준을 선도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수경 교수 저는 한국 대학의 AI 윤리교육이 독립된 교과가 아니라 전공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임베디드 에틱스’ 형태로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5년 정도를 보면, 머신러닝·NLP·강화학습 같은 핵심 과목 안에서 기술적 의사결정과 윤리적 고민이 함께 다루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다만 이번 연구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공감과 실행 사이의 간극’이었습니다. 윤리 교육의 필요성에는 교수자들도 동의하지만, 실제 커리큘럼 변경이나 다학제 협업에는 시간·평가·제도적 제약이 크게 작용합니다. 거창한 목표보다도 전공 수업 안에서 학생들이 최소한 한 번이라도 ‘이 설계가 어떤 영향을 만들까’를 고민해보는 경험이 반복되는 구조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 작은 변화들이 쌓여야 교육과 연구 문화가 함께 바뀔 수 있습니다.
박명진 이사장은 NC문화재단에서 우리 사회의 창의적이고 포용적인 성장을 위한 문화예술 지원과 사회공헌 활동을 이끌고 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 박사로, AI 윤리 교육과 임베디드 에틱스(Embedded EthiCS) 사업을 통해 한국의 AI 생태계에 윤리적 기초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준하 원장은 GIST AI정책전략대학원 원장이자 국가 전략경제자문단 AI-로보틱스 위원장으로, 한국의 AI 정책과 거버넌스를 주도하고 있다. UC Irvine 생명화학공학 박사로, AI 윤리 교육 프레임워크와 책임 있는 AI 개발 체계 마련을 주도 중이다.
김수경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인공지능대학 인공지능전공 조교수로, 생성형 AI와 강화학습 기반 LLM 연구를 전문으로 한다. Palo Alto Research Center, SRI International, 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NeurIPS, ICLR 등 최상위 학술 회의에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