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감각 전달하는 ‘생체모방 자극’으로 진화하는 신경보철

신경보철 기술은 기존의 의수나 의족에 장착된 센서를 신경과 연결하는 기술로, 보철물을 보다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마치 실제 신체의 자극을 전달해주듯 이를 좀 더 개선한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

지금까지의 의수나 의족은 사지 절단 환자의 형태나 기능을 보완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져 왔다. 예를 들어 의족의 경우는 서로 다른 길이의 다리를 보완해 걷거나 서는 동작을 가능하도록 보완하고, 의수의 경우는 손의 형태를 갖춰 보기에 어색하지 않게 하거나 물건을 잡는 등의 최소한의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춰 왔다.

유명한 SF 영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Star Wars: Episode V The Empire Strikes Back)>에서는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커(Luke Skywalker)가 다스 베이더(Darth Vader)에게 잘린 팔을 자연스러운 형태와 기능을 갖춘 의수로 대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바꾸는 클리셰는 수많은 SF 소설과 영화, 만화, 게임에서 보이고 있다. 특히 사이버펑크 장르에서 이런 로봇화된 의수나 의족, 혹은 신체의 일부를 대체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수와 의족을 실제 손이나 발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센서로 수집된 정보를 신경에 전달하고, 뇌로부터 전달된 명령을 의수나 의족의 액추에이터로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직도 SF에서나 볼 수 있는 먼 미래의 이야기로 느껴지지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센서의 정보를 신경으로 전달하는 신경보철

의수나 의족에 센서를 달고, 이 센서에서 수집된 정보를 사용자의 신경에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보철 기술이 등장한 것은 극히 최근이지만, 이 기술을 적용하면 의수나 의족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직접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에게 보철물을 보다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게 해 주는 획기적인 기술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수 년 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ETH Zurich) 신경공학 연구소의 스타니사 라스포포비치(Stanisa Raspopovic) 교수와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 신체를 이용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의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의족은 발바닥 부분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전극을 이용해 사용자의 허벅지에 있는 좌골 신경에 연결해, 사용자가 걸을 때 발바닥에 감지되는 지속적인 압력 변화에 대한 정보를 사용자의 뇌에 전달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사용할 경우 사용자는 의족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까다로운 지형에서도 훨씬 빠르고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타니스 라스포포비치 교수는 “실험용 의족은 감각을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는 성공했지만, 현재의 신경보철(Neuroprosthetics) 기술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불쾌한 감각을 생성하고 전달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라스포포비치 교수와 연구진은 지난 2019년 신경보철 기술로 의족과 신경을 연결하는 기술을 발표했다. (출처: ETH Zurich)

발바닥의 신경 활성화를 시뮬레이션하는 모델

현재의 신경보철물이 신경계를 자극하기 위해 주기적인 전기 펄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이런 사용자들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ETH 취리히의 연구진은 차세대 신경보철물에 생체 모방 자극(Biomimetic stimulation)의 적용을 시도했다.

연구진이 지난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우선 생체 모방 신호를 생성하기 위해 연구진은 풋심(FootSim)이라는 컴퓨터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캐나다의 공동 연구진이 진동자로 피험자의 발바닥 여러 곳에 자극을 주면서 기계수용체(Mechanorecoptor)의 활동을 기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바닥에 있는 수많은 기계수용체의 동작을 시뮬레이션해,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고 몸의 무게가 발 바깥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발가락이 다음 걸음을 내딛기 위해 땅을 밀어내는 과정 동안 발생하는 자극을 뇌로 전달하기 위한 신호를 생성한다.

모델에 의해 계산된 생체 모방 신호가 실제 뉴런에서 생성되는 신호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평가하기 위해 연구진은 독일, 세르비아, 러시아 연구진과의 협력해,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움직임을 처리하는 고양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201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블로프 생리학 연구소(Pavlov Institute of Physiology)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연구진은 전극을 다리 신경과 척수에 연결해 신경계를 통해 신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확인한 결과, 고양이의 발바닥에 압력을 가해 고양이가 발을 디딜 때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신경 반응과 척수에 기록된 신호 패턴이, 실제로 연구진이 생체 모방 신호로 다리 신경을 자극했을 때 척수에서 유도된 패턴과 유사했다.

이와 반대로, 고양이에게 기존의 주기적인 전기 펄스를 사용하는 방식을 적용할 경우에는 척수에서 현저히 다른 활성화 패턴을 보여줬다. 이런 현상은 척수의 신경 네트워크에 정보 과부하를 일으키며, 결과적으로 일부 신경보철물 사용자들이 경험하는 불쾌한 감각이나 마비 증상의 원인으로 추측된다.

풋심은 피험자의 발바닥을 자극했을때의 신호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한 컴퓨터 모델이다. (출처: Giacomo Valle, ETH Zurich)

신경계의 언어 학습

다리 절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에서 연구진은 생체 모방 자극이 기존의 주기적인 전기 펄스를 사용하는 방식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험자들은 계단을 더 빨리 오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단어를 거꾸로 쓰면서 같은 계단을 오르는 과제에서도 실수를 줄일 수 있었다.

스타니사 라스포포비치 교수는 “생체 모방 신경 자극은 더 자연스럽게 처리되고, 뇌에 부담을 덜 주기 때문에, 피험자가 걷는 동안에도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새로운 발견이 단지 의수나 의족 외에도 다양한 곳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신경계가 서로 소통하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러면 뇌가 실제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뇌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존의 부자연스럽고 일정한 주기 지속적인 자극에서 벗어난 생체 모방 신경 자극은 뇌가 실제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뇌와 소통함으로써, 척추 임플란트나 뇌 자극용 전극은 물론이고, 다양한 신체 보조 기구나 장치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