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모바일 컴퓨팅에서 공간 컴퓨팅으로의 진화 시사하는 ‘애플 비전 프로’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 세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 접하는 면이 확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의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이라는 또 다른 개념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2024년 2월 2일(현지 시간) 애플은 자신들의 첫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 기기인 비전 프로(Apple Vision Pro)를 오프라인 매장을 통하여 출시했다. 이 날 팀 쿡(Tim Cook) 애플 CEO는 비전 프로 출시를 기념해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서 “비전 프로가 오늘 이용할 수 있는 내일의 기술”이라며 “엄청난 기회와 함께 공간 컴퓨팅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실 공간 컴퓨팅은 2000년대 초반에 처음 등장한 오래된 개념이긴 하지만, 당시만해도 AI와 AR, 각종 센서 기술의 한계로 인해 실제로 구현하기는 힘들었다. 최근 급격히 성장한 AI 기술, 그리고 디스플레이 기술 등에 힘입어 본격적인 공간 컴퓨팅의 구현이 가능해졌으며, 애플이 비전 프로를 선보이면서 공간 컴퓨팅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다시 한번 되살려냈다.

여기에 애플은 과거 공간 컴퓨팅의 핵심 영역인 도로나 도시, 혹은 공장과 같은 공간적 위치를 파악하고 확인해 컴퓨팅을 확장하는 개념을 일반 사용자들도 사용할 수 있는 범용적인 기술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주방의 냄비 위에 달걀이 익는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를 표시한다거나, 제조 현장에서 AR 방식의 설명을 통한 효율적인 교육을 지원하고, 정원을 가꾸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피트니스 등에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확장된 스크린으로 각종 게임이나 콘텐츠를 즐기거나, 노트북의 스크린을 옮겨와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것 또한 물론이다.

팀 쿡 애플 CEO는 뉴욕 맨해튼 5번가 애플스토어에서 비전 프로를 선보이며, 공간 컴퓨팅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출처: Apple)

공간 컴퓨팅은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경계를 없애는 공간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애플은 자사의 비전 프로를 공간 컴퓨팅 기기라 정의하고 있다. 과연 공간 컴퓨팅은 메타버스나 XR과 같은 유사 기술과 무엇이 다른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공간 컴퓨팅은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한다. 과거 팬데믹 시절 주목받았던 메타버스는 로블록스, 제페토 등 디지털 공간과 아바타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엔데믹과 함께 사람들의 일상이 물리적 공간으로 돌아오면서 관심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공간 컴퓨팅은 그 출발점이 냉전시대 사진정찰 위성으로 물리적 공간 데이터를 확보하고 분석하는 목적에서 시작된 만큼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간 매핑과 그래픽화를 거쳐서, 지금은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을 연결시키는 인터페이스 기술로 거듭나고 있다. 이 새로운 인터페이스 기술이 물리적, 디지털 공간의 경계를 없애며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둘째, 공간 컴퓨팅은 몰입감을 넘어서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 사이의 경계를 없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데 집중한다. 이 점이 애플이 메타(Meta)와 차이나는 부분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비전 프로도 결국 XR 기기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우선 방향성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메타는 물입감에 집중한다. 메타의 오큘러스 기기 안에서 만들어지는 디지털 현실이나 이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기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디지털 세상에 집중하고 또 더 머무르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더 많이 머무르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애플은 물리적 공간에서 디지털 공간으로 접속하는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기기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애플은 스마트폰을 대체할 기기로써 완성도에 더 집중하고 있는 반면, 메타는 기기의 보급에 더 주목하고 있다.

애플의 비전 프로, 부족할 수 있어도 새로운 변화의 촉발점이 될 것이다.

이번에 출시된 비전 프로가 사람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까? 유튜버 등 전문 리뷰어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지금까지 출시된 기기 중 가장 만족스러운 기기임은 분명하나 무겁고 또 아직은 제스처 인식이나 배터리, 지원 앱의 부족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평이다.

이는 이와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첫 제품은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 2007년 출시된 애플의 첫 아이폰은 당시로서는 스마트폰의 미래를 보여주는 혁신적인 제품이었지만, 앱스토어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출시돼 사용할 수 있는 앱도 부족했고 도 완성도 측면에서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첫 제품은 시장 진입에 대한 선언이자 다음 제품으로 발전을 위한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애플은 2024년 생태계 경쟁 관점에서 비전 프로를 반드시 출시해야 했다. 애플은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생태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자체 칩셋으로 차별화를 해 왔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2처럼 컴퓨팅 기능이 없는 XR 기기를 제외한, 컴퓨팅 기기 관점에서 XR 기기를 살펴본다면 운영체제와 칩셋은 거의 독점 상황이다. 운영체제는 거의 100% 구글 안드로이드이거나 파생버전이다. 그리고 칩셋은 메타의 오큘러스를 비롯한 주요 XR 기업들의 플래그십 기기들이 퀄컴 칩셋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XR 기기는 메타의 오큘러스가 시장을 거의 독점적으로 선도하고 있다. 이러한 운영체제-칩셋-기기 모두 독과점 시장으로 고착되고 있는 상황에 애플은 더 늦기 전에 XR 기기를 출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애플이 XR 기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지 거의 10년을 향하고 있는 시점이라, 하루빨리 결과물을 선보여야 한다는 내부적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발표된 메타의 퀘스트3는 안드로이드와 퀄컴 칩셋을 채택한 XR 기기의 대표적인 예이다. (출처: Meta)

공간 컴퓨팅은 XR의 몰입감을 넘어선 그 다음 단계이며, 애플이 공간 컴퓨팅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삼성전자 등 다른 거대 기기 경쟁사들의 시장 진출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XR의 첫번째 시장 확대 모멘텀은 메타가 오큘러스를 20억 달러에 인수한 2014년이었다. 그 다음 해인 2015년 애플도 XR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으며, 페이스북의 경쟁 서비스인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낸스가 인수한 피코 인터펙티브도 설립되었다.

오큘러스 인수와 같은 이벤트처럼 애플의 비전 프로 출시는 XR의 두번째 모멘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애플 공간 컴퓨팅 도전은 이제 시작이고 계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할 것이기 때문에, 애플과 경쟁 관계에 있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들이 공간 컴퓨팅 시장, 산업, 생태계로 더 많이 진입을 시도할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몇가지 선결 과제 또한 남아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선 가격이다. 애플의 비전 프로에 대한 평가는 아직 ‘비싸고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요약될 수 있다. 뭔가 재미있지만, 재미만을 위해 구입하기에는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활용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또한 AR 기기와 달리, 카메라를 통해 외부의 영상을 표현하는 방식을 채택해 타 기기에 비해 지연을 굉장히 줄였다고는 하지만,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비전 프로를 항상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크고 무거운 배터리 문제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명확한 킬러 앱이나 서비스가 없으며, 생태계 구성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돼, 애플이 지향하는 공간 컴퓨팅을 완성할 수 있을지는 조금 지켜볼 일이다.

앞으로 세상은 공간 컴퓨팅 세상으로 반드시 간다.

애플 비전 프로를 비롯해 현재까지 출시된 XR 및 공간 컴퓨팅 기기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기술에 대한 성향에 따른 수용도를 적용한 ‘기술 수용 곡선’에 따르면, 지금은 혁신가나 초기 수용자 시장이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다만 애플이 출시한 공간 컴퓨팅 제품이라는 점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갖고 싶어한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또 마이크로 OLED 수율 문제로 출시 물량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전 프로에 대한 수요를 공급이 당분간은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람들의 관심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또한 이런 부분이 XR 즉 공간 컴퓨팅에 대한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과 연구개발 투자를 이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 테크 산업의 틀을 잡아주는 이동통신망은 이미 공간 컴퓨팅 세상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다. 이동통신망은 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면 자전거가 돌아다니고, 아우토반은 자동차들이 최고의 속도를 내면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 처럼, 이동통신망은 그 위에서 운영될 기기와 서비스를 위해 구축, 운영된다. 3G와 4G는 멀티미디어를 위한 망으로 스마트폰을 위한 망이었고, 5G부터는 XR을 비롯한 공간 컴퓨팅을 위한 이동통신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끊김 없이 스트리밍으로 보는 데는 4G로도 충분하다. 이론적으로 4G 대비 20배 빠른 5G, 4G 대비 1,000배 빠른 6G에 대한 투자로 인해 XR 기기를 통해 3차원 360도 콘텐츠가 사용자를 감쌀 수 있게 되면서 공간 컴퓨팅을 위한 인프라는 이미 갖춰져 있으며, 이 또한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이제 메타가 촉발시킨 XR의 변혁을 애플이 비전 프로를 통해 2차 촉발을 시작했으며,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 생태계에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또 이동통신망은 스마트폰을 넘어 XR, 즉 공간 컴퓨팅의 시대로 사람들의 일상과 혁신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 글을 쓴 신동형 RSUPPORT 전략기획팀장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LG경제연구원 등에서 기술과 산업 분석은 물론 거시적 관점의 분석과 전략수립론을 익혔다. 또한 그는 ‘게임덕’이라는 게이머용 비디오 소셜미디어 스타트업 대표이사 역할을 하면서 현장을 경험했고, 지금은 ‘알서포트’에서 전략기획팀장으로서 기업과 사업 성장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는 기술이 어떻게 사업과 기업, 산업 및 세상을 변화시키는지에 관심을 갖고 5G와 6G가 기반이 되어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술 혁신 테마로 XR(확장현실), IoT(사물 인터넷), AI(인공지능)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정리해 《화 너머》라는 2040년까지의 새로운 혁신과 세상 변화를 담은 미래 전망서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