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버스에서 활약하는 패션 스타일리스트들
내가 제니 스보보다(Jenni Svoboda)를 만났던 어느 날, 그녀는 머리에 쓰는 비니를 녹아내린 컵 케이크의 토핑, 스프링클, 귀덮개용 도넛 모양으로 디자인하고 있었다.
그녀는 “실제로는 절대 입지 않을 것 같은 옷이다”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현실 세계를 위한 디자인이 아닌, 메타버스를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녀는 가상 공간에서 사람들을 위한 의상을 만들거나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다. 아바타를 위한 패션 시장은 메타버스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디지털 옷감은 손으로 만질 수 없으며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나 로블록스(Roblox) 같은 가상 플랫폼에 접속하지 않는다면 볼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바타를 가꾸는 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단골 고객들이 생기면서 메타버스 스타일리스트의 수요 또한 점차 늘어났다. 이들은 종종 개인적인 기대, 사회적 기준, 때로는 심지어 물리적 차원을 넘는 실험적이고 매우 창의적인 모습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디지털 스타일리스트들은 메타버스의 고객들을 상대하지만 현실세계의 임시적 일(gigs)도 해가면서 균형을 잡는다. 예를 들어 미카엘라 라이츠아슬라크센(Michaela Leitz-Aslaksen)은 플러스 사이즈 고객들에게 스타일링을 제공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3D 가상 플랫폼 디센트럴랜드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낯선 사람들이 그녀의 의상을 호의적으로 평가해주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 이후 그녀는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를 위한 패션 스타일링 서비스를 하기로 결심했다.
스타일리스트이자 영국의 리얼리티 TV패션 전문가 젬마 셰퍼드(Gemma Sheppard)는 디지털 공간에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3년 전에 그녀의 대녀(goddaughter)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로블록스 아바타에 신기려고 60달러 짜리 반짝이 신발을 사달라고 졸라댔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모든 메타버스 스타일리스트들이 실제 스타일리스트 직업을 그만두고 메타버스로 넘어온 것은 아니다. 스보보다는 로블록스에서 디지털 의류와 액세서리를 디자인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녀의 독특한 패션 감각은 그녀를 매력적인 잇걸(it-girl)로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돈을 써가며 그녀의 패션 스타일을 배우려고 줄을 선다.
현재로서는 메타버스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되더라도 생활비를 충당할 정도로 금전적 소득을 올리지는 못한다. 라이츠아슬라크센가 메타버스에서 스타일링 해주면서 버는 돈은 많아봐야 월 소득의 2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그녀와 셰퍼드는 현실세계에서 여러 일들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기법들을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라이츠아슬라크센은 몇 년 전에 게이머들이 주로 사용하는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Discord)에서 고객들을 만나 메타버스의 스타일링 사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디센트럴랜드, 드레스엑스(DressX), 오로보로스(Auroboros) 등의 플랫폼에서 자신들의 아바타에 입힐 수 있는 패션 아이템들을 담은 룩북(lookbook)을 만들었다.
라이츠아슬라크센의 고객들은 전문적 큐레이션을 받고 그녀에게 암호 화폐로 49달러를 지불한다. 고객들은 아바타를 위한 패션 큐레이션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은 “이례적인 의상을 입혀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녀는 “그런 시도들이 좋다”고 본다.
스보보다는 주로 로블록스 아바타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디자인하는 크리에이터로서 고객의 아바타를 스타일링 해주기 시작했으며 그 방법을 세심하게 연구하고 있다.
그녀는 이런 작업에 있어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종종 고객들의 패션 히스토리를 살펴보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인플루언서가 누구인지 물어본다. 그리고 나서 미학적 관점에 맞추어 아바타용 패션을 제작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쪽지를 보내오면 나는 로블록스 카탈로그에 접속하여 고객에게 맞는 패션 아이템들을 골라준다”고 말한다. 스보보다는 자신의 고객들이 인플루언서들의 패션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낚아챌수 있도록 ‘인플루언서가 입은 옷(what they wore)’ 페이지를 상세하게 따로 만들었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고 있지만, 잠재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메타버스 의상 큐레이션에 매력을 느낀 일부 스타일리스트들은 이 시장에 일찍 뛰어들어 경쟁에서 앞서 나갈지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메타버스 패션 사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로블록스와 같은 회사는 이미 디지털 옷으로 수억 달러를 벌고 있다. 올해 로블록스 플랫폼에서는 1,150만 명이 넘는 크리에이터가 6,200만 개의 의류 및 액세서리 아이템을 만들었다. 온라인 디지털 패션 마켓플레이스 드레스엑스(DressX)는 2020년 출시 이후 시드 펀딩으로 420만 달러를 모금하였다. 드레스엑스는 호라이즌 월드(Horizon Worlds)를 위한 자체 아바타 패션 마켓플레이스를 출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들 중 하나다. 고가의 의류를 만드는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브랜드들은 구찌 볼트(Gucci Vault)이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들 위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례를 참고하여 독립적인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구찌 볼트에서 고객들은 디지털 패션을 둘러보고 게임들을 즐길 수 있다.
메타버스에서 거래되는 모든 의상의 가격이 비싼 것은 아니며 실제로 많은 의상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취재했던 세 명의 스타일리스트들에 의하면, 로블록스에서는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출시되는 최고급의 독점적 패션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의상들은 수백 달러에서 수천 달러에 달한다. 메타버스의 패션 시장은 통계적으로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나이와 사회경제적 지위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만일 원하는 의상을 구할 수 없다면,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는 중고시장을 찾아보면 된다. 패션 스타일링 이외에도 현재 로블록스에서 메타버스 경험을 개발하고 찰리XCX(Charli XCX) 및 그래미(Grammys) 등 수많은 브랜드 및 아티스트와 협력하고 있는 더빗 스튜디오(Dubit Studio)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패션 디렉터인 셔퍼드는 “메타버스에서는 종종 처음 구매한 가격보다 더 비싸게 물건을 판매할 수 있다”라고 한다.
캐롤리나 헤레라(Carolina Herrera)의 2022년 봄/여름 드레스가 바로 그 전형적 사례이다. 칼리 클로스(Karlie Kloss)는 뉴욕에서 열린 패션위크 쇼케이스에서 화창한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나왔고, 스보보다는 헤레라의 후원으로 그 드레스의 디지털 버전을 만들었으며, 클로스는 이 드레스를 홍보했다. 이 디자인은 로블록스의 가상 화폐로 500로벅스(Robux) 또는 5달러로 총 432개가 출시되었고 4시간 만에 매진되었다. 오늘날 이 드레스는 5천 달러 이상의 가치로 평가된다.
셔퍼드는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가상 의상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것이 이상하고 심지어 꼴불견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메타버스에서 아바타의 의상을 큐레이션하기 위해 전문가를 찾는 데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이는 온라인에서의 안전한, 소셜 공간과 관련이 있다.
라이츠아슬라크센은 메타버스가 사람들이 아바타 의상을 마음껏 꾸밀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녀는 “현대사회는 틀 안에 있는 스타일을 강요하지만, 메타버스에서는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고객들은 현실 세계에서 소화하기엔 너무 모험적이거나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아방가르드(avant-garde)하고 기이한 패션을 기꺼이 시도한다고 한다. 그녀는 스타일리스트로서 그런 패션의 자유성을 좋아한다. 그래서 패션에 있어 훨씬 더 제한이 많고 절제된 현실 세계에서의 경험이 비교 상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심지어 가상 의상을 사용하여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고 분별하기 어렵게 하거나,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다른 모습을 탐색한다. 라이츠아슬라크센이 몇 주 전 디스코드에서 만난 한 남성 고객은 그녀에게 성별과 관습에 구애받지 말고 원하는 대로 꾸며 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그물 모양의 소매를 지닌 무지갯빛의 푸른 날개 요정 드레스, 푸른 덩굴로 꼬인 장미 왕관, 라벤더색 키튼 힐(kitten heels)이 만들어졌다. 남성 고객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지만 어쨌든 그는 마음에 들어 했다.

스보보다는 트랜스젠더이다. 그녀는 디지털 패션이 신체 이형증을 가진 사람들이 심리적 위축을 이겨내고 외모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디지털 패션은 사람들의 모습과 의상이 가상 플랫폼에서 어떻게 보일까에 온전하게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스보보다는 “내가 드레스를 만들면 그 드레스는 아바타의 몸에 잘 맞을 것이며 아바타의 성별에 상관없이 아름다울 것”이라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트렌스젠더 수술 전이든, 수술 이후든지 무관하게 한 벌의 드레스가 될 것이고 몸에 딱 맞을 것”이라고 한다. 이 점에 대해 라이츠아슬라크센도 동감한다. 그녀는 통통한 몸매나 덩치 큰 사람들과 종종 일하는 데 그들은 자신들의 신체 이미지 때문에 사회적으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론상으로 메타버스에서는 누구나 어떤 옷이든 입을 수 있다. 디지털 버전의 자아는 인간의 형태를 취하거나 몸 자체를 가질 필요가 없으므로 물리적 세계에서는 할 수 없는 자기표현이 가능하다. 스보보다와 라이츠아슬라크센은 인간이 아닌 아바타를 스타일링 했으며 이는 두 스타일리스트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실험 영역이다. 사람들은 메타버스에서는 옷에 대한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케타우로스 괴물이나 거미 같은 다리를 가진 뱀파이어 모두 가능하다.
스보보다가 메타버스에서의 스타일링에서 유난히 흥미롭게 여기는 점은 바로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바비 코어(Barbie-core), 밀레니엄(Y2K), “판타지 핑크”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전화했을 때, 그녀는 고객을 위한 완전히 색다른 모습의 스타일인 “파란 피부를 가진 조이 샐다나(Zoe Saldana)와 비슷하게 생긴” 공상과학(sci-fi) 스타일을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