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꿀벌 소멸 위기 속 식량안보·생물다양성 보전 모델 제시…98% 사라진 한국 토종벌, 1년 만에 4배 복원
전 세계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 토종 꿀벌은 더 심하다. 2010년 전국으로 퍼진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약 98%가 사라진 뒤 자생 회복이 어려운 멸종위기 단계에 진입한 그 토종벌이, 기업과 양봉 명인의 협업으로 1년 만에 4배 복원되는 가시적 성과가 나왔다.
수분 매개체 곤충의 감소는 한 생물종의 멸종에 그치지 않고 작물 생산성과 생물다양성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식량안보 위기로 평가받는다. 유엔이 2018년부터 매년 5월 20일을 ‘세계 꿀벌의 날(World Bee Day)’로 지정한 배경이다. 같은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한국 토종 꿀벌은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약 98%가 사라진 뒤 자생 회복이 어려운 멸종위기 단계에 진입한 상태다.
LG는 LG상록재단이 운영하는 곤지암 화담숲 인근 정광산에 조성한 한라 토종벌 서식지의 개체수를 지난해 100만 마리에서 200만 마리로 증식한 데 이어, 올해 400만 마리로 1년 만에 4배 늘리는 데 성공했다고 20일 밝혔다. 대한민국 토종벌 명인 1호 김대립 명인과의 협업으로 진행된 사업의 1년 성과로, 사라져가는 자생 수분 매개체를 자생 가능한 규모까지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가시적 결실을 맺은 사례다.
1년 만에 100만→400만 4배 복원…정광산 서식지서 한라 토종벌 증식 성공
LG가 지난해 한라 토종벌 서식지로 선택한 곳은 LG상록재단이 운영하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생태수목원 ‘화담숲’ 인근 정광산이다. 한라 토종벌 100만 마리에서 사업을 출발해 지난해 200만 마리로 증식한 데 이어, 올해 400만 마리로 1년 만에 4배 늘리는 데 성공했다.
사업은 대한민국 토종벌 명인 1호 김대립 명인과의 협업으로 진행됐다. 김 명인은 충북 청주를 기반으로 40여 년간 토종벌을 사육해 온 양봉가로, 2003년 분봉(벌통 나누기) 효율을 극대화한 ‘토종벌 인공 분봉법’을 특허 등록했고 농촌진흥청의 낭충봉아부패병 저항성 토종벌 육성 사업에도 참여한 인물이다. LG는 김 명인의 사육 노하우를 바탕으로 서식지 환경을 조성하고, 인근에 꿀과 화분의 공급원이 되는 밀원 식물(꿀과 화분을 공급하는 식물)을 확대해왔다.
김대립 명인은 “꿀벌 소멸은 식량 위기로 이어진다는 LG의 위기감에서 출발한 사업이 1년 만에 개체 수 4배 증식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양사는 2027년까지 매년 개체 수를 2배씩 늘려 자생 가능한 규모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토종벌 서식지의 적정 사육 규모로 보는 400만 마리에 도달한 만큼, 이후 증식된 토종벌은 양봉 피해 농가 분양으로 흘러갈 예정이다.

낭충봉아부패병에 98% 사라진 한국 토종벌…서양벌이 못하는 자생 식물 수분 책임지는 매개체
이번 4배 증식 성과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한국 토종벌이 처한 상황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한국 토종벌(재래꿀벌)은 서양벌(양봉꿀벌)과 별개 종으로, 우리나라 자생 식물의 수분을 담당해온 자생 수분 매개체다. 서양벌이 잘 도달하지 못하는 한국 자생 식물 군락의 수분을 책임지는 토종벌의 역할은,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한국 자연 생태계 유지의 한 축이다.
그런 토종벌이 멸종위기에 놓인 결정적 계기는 2010년 전국적으로 확산된 ‘낭충봉아부패병(토종벌 애벌레의 소화기관에 바이러스가 침입해 봉군 전체를 폐사시키는 질병)’이다. LG에 따르면 이 질병으로 한국 토종벌 개체수가 약 98% 감소했다. 농촌진흥청 발표를 보면 2009년 국내 첫 발생 이후 약 2년 만에 토종벌의 75%가 감소했고, 토종벌 사육국에서 발생할 경우 일반적으로 90% 이상의 봉군이 폐사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2008년 4만 가구에 가까웠던 국내 토종벌 사육 농가도 2019년 기준 약 3,800가구로 10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들며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렸다.
최근에는 기후 위기까지 겹치면서 자생적 회복이 더 어려워졌다. 서식지 환경이 변하고 밀원 식물의 분포·개화 시기가 흔들리면서, 남은 토종벌 군집도 안정적으로 번식하기 힘든 상황이다. 낮은 개체수와 불안정한 서식 환경이 맞물려, 자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멸종위기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꿀벌 감소는 식량안보 위기…양봉 농가·발달장애인 자립까지 연결되는 응답 모델
꿀벌 감소는 한국만의 이슈가 아니다. 꿀벌은 전 세계 농업과 자연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야생 개화 식물의 약 90%, 세계 식량 작물의 75% 이상이 동물 매개 수분(꽃가루를 곤충·새 등 동물이 옮겨 수정시키는 자연 과정)에 의존한다. 사과·아몬드·커피·토마토·카카오 등 인류 식단의 핵심 작물 상당수가 꿀벌 없이는 결실을 맺기 어렵다. 유엔이 2018년부터 매년 5월 20일을 ‘세계 꿀벌의 날(World Bee Day)’로 지정한 것은 이 같은 위기 의식의 반영으로, 슬로베니아 정부 제안으로 2017년 유엔 총회 결의를 거쳐 채택됐다.
LG의 토종벌 보호 사업은 이 같은 글로벌 환경 의제에 대한 기업 차원의 응답을 사회적 가치와 연결한 모델로도 주목할 만하다. LG는 국내 양봉 사회적 기업 ‘비컴프렌즈’와 협력해 증식된 토종벌을 양봉 피해 농가에 분양하는 한편, 발달장애인 양봉가 육성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멸종위기 종 복원이 농가 회생·사회적 약자 자립과 직접 연결되는 구조다.
김지영 비컴프렌즈 대표는 “LG와의 협업이 발달장애인들에게 사회와의 소통과 자립의 길을 열어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발달장애인들에게 양봉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회와의 소통의 창구”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업은 1997년 故 구본무 회장이 설립한 이래 두루미·저어새·황새 등 토종 동물 보전 활동을 이어온 LG상록재단의 28년 생태 보전 흐름 위에 놓여 있으며, 화담숲은 지난해 1월 산림청 국가 희귀·특산 식물 보전기관으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