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엑사원’, 산업 데이터 예측 특화 AI…텍스트 넘어 표·시계열 공략
텍스트나 이미지가 아니라, 공장·병원·금융 현장에서 쌓이는 표와 시계열 같은 ‘산업 데이터’를 예측하는 데 특화된 AI 기반 모델이 글로벌 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LG AI연구원은 자사 AI ‘엑사원(EXAONE)’의 두 모델, 표 형태 데이터를 예측하는 ‘엑사원 Tabular’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미래를 예측하는 ‘엑사원 Forecast’가 각각 글로벌 리더보드에서 세계 최고 성능(SOTA)을 달성했다고 7일 밝혔다. 이 성과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AI 경쟁의 무게중심 이동이 있다. 구글·오픈AI 같은 빅테크는 그동안 사람의 언어를 다루는 대형 언어모델과 이미지 처리에 집중해 왔지만, 정작 산업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의 대부분은 화려한 텍스트가 아니라 행과 열로 정리된 표, 그리고 시간에 따라 값이 변하는 시계열이다. 불량률, 원자재 가격, 환자 데이터, 주가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정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LG는 빅테크가 상대적으로 덜 파고든 이 영역을 겨냥해, 텍스트·이미지를 넘어 산업 데이터 예측으로 승부를 걸었다. 임우형 LG AI연구원 공동 연구원장은 “글로벌 빅테크의 관심이 범용 언어모델에서 실제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산업 특화 AI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며 “제조업을 비롯한 여러 산업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가 한국 AI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라고 말했다.
빅테크가 덜 본 ‘표 데이터’를 겨냥하다
산업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의 상당수는 표(테이블) 형태다. 제품의 검사 수치, 고객 명단, 거래 내역처럼 행과 열로 정리된 정형 데이터가 실제 업무의 뼈대를 이룬다. 그런데 기존의 범용 언어모델은 이런 표를 직접 다루지 못하고, 표를 일단 텍스트로 바꾼 뒤 분석해야 했다. 이 변환 과정에서 표 특유의 구조가 흐트러지고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엑사원 Tabular’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표 형태의 합성 데이터를 대규모로 학습한 ‘정형 데이터 파운데이션 모델(TFM)’로, 표를 텍스트로 바꾸지 않고 행과 열의 구조, 데이터 사이의 관계를 직접 이해한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로 미리 학습해 여러 작업에 두루 쓰는 기반 AI를 말하는데, 이를 표 데이터 전용으로 만든 것이다.
성능은 글로벌 리더보드에서 확인됐다. LG AI연구원에 따르면 엑사원 Tabular는 표 데이터 예측 능력을 평가하는 대표 리더보드 ‘탭아레나(TabArena)’의 범주형 데이터 예측 부문에서 종합 1위를 기록했다. 평가 점수(ELO)는 1,760점으로, 구글이 지난달 공개한 최신 모델 ‘TabFM’의 1,749점을 근소하게 앞섰다. 정상·불량을 가리는 이진 분류와 세 개 이상의 범주를 나누는 다중 분류 부문에서 모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실무적 강점도 있다.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올 때마다 모델 전체를 다시 학습할 필요 없이, 적은 양의 데이터만으로 새 문제에 빠르게 적응해 예측할 수 있다. 데이터가 넉넉하지 않은 현장에서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일부 값이 비어 있는 ‘결측치’가 있어도 남은 정보들의 관계를 분석해 정확도 높은 예측을 수행한다. LG AI연구원은 하반기에 제조, 바이오·헬스케어, 금융 3개 분야에서 개념검증(PoC)을 진행해 실제 사업으로 연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없는 미래까지 학습한다
또 다른 축은 ‘엑사원 Forecast’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값이 변하는 시계열 데이터를 예측하는 ‘시계열 파운데이션 모델(TSFM)’이다. 제품 수요, 원자재 가격, 전력 사용량, 주가처럼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정보가 여기 해당하며, 이는 기업의 투자·생산·공급망 전략을 좌우하는 핵심 자료다.
시계열 예측에는 오랜 난제가 있었다. 산업마다 데이터의 특성과 변화 양상이 달라, 하나의 범용 AI로 여러 산업의 미래를 한꺼번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업별로 별도의 예측 모델을 반복해서 만들어야 했다. LG AI연구원에 따르면 엑사원 Forecast는 금융·에너지·제조·의료 등 서로 다른 산업의 시계열을 하나의 모델로 예측할 수 있어, 이 비효율을 줄였다.
성적은 세일즈포스가 운영하는 시계열 예측 리더보드 ‘GIFT-Eval’에서 나왔다. AI가 처음 접하는 분야의 데이터를 추가 학습 없이 예측하는 ‘제로샷’ 부문에서 1위(SOTA)를, 실제 업무 환경에서 AI가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해 예측하는 ‘에이전틱 AI’ 부문에서 2위를 기록했다. 구글·알리바바 등을 앞선 결과로, 범용성과 실제 활용 가능성을 함께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기술적 핵심은 ‘가상 데이터’에 있다. 실제 데이터만으로는 과거에 없던 새로운 상황을 학습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넘기 위해, 연구팀은 현실 세계를 본뜬 대규모 가상 시계열을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추세와 계절성, 변동성, 구조적 변화 등을 다양하게 조합해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미래 시나리오를 만들어낸 것이다. 250억 개의 실제 시계열과 2조 개 규모의 가상 시계열을 함께 학습해, 관측된 적 없는 변화에도 대응하는 일반화 성능을 확보했다. 이 기술은 이미 현장에 적용돼, LG는 계열사와 함께 원자재 가격을 예측하고 코스콤·런던증권거래소그룹과 한·미 상장 약 8,000개 종목을 분석하는 증시 예측 서비스를 내놨다.
언어를 넘어 병리·로봇까지
이번 성과는 LG가 그려온 큰 그림의 일부다. LG AI연구원은 범용 언어모델을 넘어, 특정 산업의 데이터와 업무 특성에 최적화된 ‘산업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로 엑사원의 적용 범위를 넓혀 왔다. 표 데이터용 Tabular, 시계열용 Forecast가 그 대표 사례다.
의료 분야에서는 이미 발을 넓혔다. 2024년 병리 이미지를 분석하는 ‘병리학 파운데이션 모델(PFM)’인 ‘엑사원 패스’를 공개했고, 현재는 암종을 진단하고 전문 의료진의 의사결정을 돕는 ‘암 에이전틱 AI’를 개발하고 있다. 병리 이미지처럼 전문성이 높은 데이터를 다루는 것은 범용 모델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물리 세계로도 확장 중이다. LG AI연구원은 시각 정보를 이해해 로봇이 실제 작업을 수행하도록 제어하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을 개발하고 있다. 물류·제조·가정용 로봇 등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텍스트에서 표, 시계열, 병리 이미지, 로봇 제어로 처리하는 데이터의 종류를 계속 넓혀가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바탕에는 ‘데이터 차별화’라는 판단이 있다. 이순영 LG AI연구원 데이터인텔리전스랩장은 “LG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다양한 산업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산업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에 있다”며 “여러 산업 분야에 특화된 파운데이션 모델군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글로벌 AI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의 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다만 리더보드 성적이 실제 산업 현장의 성과로 이어질지는 하반기부터 진행될 개념검증과 사업화의 결과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