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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硏, 새 소재 없이 유연 광센서 감도 5배…웨어러블·의료용 핵심기술

새로운 광흡수 소재를 개발하는 대신, 도핑과 전기장 설계만으로 잘 휘는 근적외선 광센서의 감도를 5배 이상 높였다. 수천 번 굽혀도 성능이 유지된다.

피부나 곡면에 밀착해 쓸 수 있으면서도 빛에 대한 민감도가 높고 반복해 휘어도 성능이 유지되는 유연 근적외선 광센서가 개발됐다.

한국재료연구원(KIMS, 재료연) 에너지·환경재료연구본부 권정대·김용훈·윤종원 박사 연구팀은 인(P) 도핑과 소자 내부 전기장 설계만으로 광감도를 5배 이상 높인 ‘유연 근적외선 광검출기’를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근적외선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피부와 생체조직을 비교적 잘 통과해, 스마트워치의 심박수·혈중산소 측정부터 의료 진단, 야간 영상, 광통신까지 폭넓게 쓰이는 빛이다. 이 성과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유연 센서가 오랫동안 안고 온 딜레마가 있다. 지금까지 웨어러블 기기의 근적외선 센서는 대부분 단단한 실리콘 광센서를 유연한 기판에 얹는 방식이라 반복적으로 휘는 환경에 취약했고, 이를 대체하려던 유기반도체나 양자점 소재는 내구성이나 환경 안정성이 떨어졌다. 잘 휘는 성질과 높은 성능·내구성을 동시에 잡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값비싼 새 소재를 개발하는 대신, 기존 반도체의 재료 품질과 내부 전기장 구조를 정밀하게 다듬는 방식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결과 빛에 반응하는 정도(광응답도)를 약 5.1배 높이면서, 4,000번 반복해 굽힌 뒤에도 초기 성능의 90% 이상을 유지했다. 연구 결과는 재료·에너지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지난 6월 게재됐다.

잘 휘는 근적외선 센서의 딜레마

근적외선 센서의 쓰임새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스마트워치가 손목에서 심박수와 혈중산소를 재고, 병원에서 몸속을 들여다보고, 어두운 환경에서 영상을 잡아내는 일이 모두 이 보이지 않는 빛으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피부에 붙이거나 곡면에 감싸는 형태의 수요가 늘면서, 딱딱한 센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유연 센서’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문제는 기존 방식의 한계다. 현재 웨어러블 기기에 쓰이는 근적외선 센서는 대부분 단단한 실리콘 광센서를 유연한 기판 위에 장착하는 구조다. 이 경우 센서 자체가 휘지 못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접히거나 구부러지는 환경에서는 손상되거나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품은 딱딱한데 몸체만 유연한, 절반의 유연성인 셈이다.

이를 해결하려는 대안도 여럿 나왔지만 저마다 약점이 있었다. 잘 휘는 유기반도체를 쓰면 유연성은 확보되지만 내구성이 부족했고, 빛을 잘 흡수하는 양자점 소재는 환경 안정성이 낮아 시간이 지나면 성능이 저하됐다. 유연하게 만들려다 성능이나 수명을 희생하는 구조였다.

결국 관건은 세 가지, 즉 잘 휘는 성질(유연성)과 빛에 대한 높은 민감도(감도), 그리고 반복해 휘어도 견디는 내구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이 세 조건을 함께 잡는 것을 목표로, 소재 자체를 새로 만들기보다 이미 검증된 반도체를 정밀하게 설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근적외선 센서 소자 구조 단면 사진과 광센서 특성 및 굽힘 테스트 결과

새 소재 대신 ‘도핑’과 ‘전기장’을 손봤다

연구팀이 택한 재료는 두 가지다. 반도체 제조의 표준 공정(CMOS)과 호환되는 ‘비정질 실리콘’과, 근적외선을 잘 흡수하는 ‘텔루륨(Te)’이다. 비정질 실리콘은 원자 배열이 규칙적이지 않은 실리콘으로, 낮은 온도에서 얇은 막 형태로 만들 수 있어 유연 소자에 적합하다. 연구팀은 잘 휘는 무색 폴리이미드 기판 위에 텔루륨과 비정질 실리콘 등을 층층이 쌓은 이종접합 구조를 만들었다. 텔루륨이 근적외선을 흡수해 전자를 만들면, 비정질 실리콘이 이를 전극으로 전달하는 역할 분담이다.

첫 번째 열쇠는 ‘인(P) 도핑’이었다. 도핑은 반도체에 소량의 불순물을 넣어 전기적 특성을 조절하는 기술로, 여기서는 인(P)을 쓴다. 연구팀은 비정질 실리콘에 넣는 인의 농도를 정밀하게 제어해 내부 결함을 줄이고 전자가 더 잘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빛이 만든 전자를 손실 없이 전극까지 나르는 통로의 품질을 끌어올린 것이다.

두 번째 열쇠는 ‘전기장 설계’다. 연구팀은 투명전극과 비정질 실리콘 사이에 ‘전면 전기장층(FSF)’이라는 얇은 층을 넣었다. 이 층은 텔루륨에서 만들어진 전자가 전극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도록 밀어주는 동시에, 전자와 정공(전자가 빠진 자리)이 다시 만나 사라지는 ‘재결합’ 현상을 억제한다. 어렵게 만들어낸 전기 신호가 도중에 손실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장치다.

두 가지 최적화를 결합한 결과는 뚜렷했다. 개발된 광검출기는 기존 구조보다 빛에 반응하는 광응답도가 약 5.1배, 미세한 빛까지 잡아내는 검출도가 약 2.6배 향상됐고, 400~1,600나노미터의 넓은 파장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빛을 감지했다. 특히 4,000번 반복해 굽힌 뒤에도 초기 광응답도의 90% 이상을 유지해, 유연성과 내구성을 함께 입증했다. 이 방식의 강점은 새로운 광흡수 소재를 개발하거나 복잡한 공정을 추가하지 않고도 성능을 크게 높였다는 점이다. 기존 CMOS 공정과 호환되는 무기반도체 기반이어서 대면적 제조에도 유리하다. 권정대 책임연구원은 “반도체 재료의 미세구조와 소자 내부 전기장을 동시에 제어해 유연 근적외선 광검출기의 성능을 향상한 사례”라며 “대면적 제조와 저전력 구동 기술을 접목해 차세대 플렉서블 광전자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