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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데이터 속도 맞춰 반응 바꾸는 ‘카멜레온 AI 반도체’…엣지 AI 정조준

입력되는 데이터의 변화 속도에 맞춰 스스로 반응 속도를 조절하는 AI 반도체가 개발됐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데이터의 예측 오류를 최대 40배 줄였다.

한 번 만들어지면 반응 속도가 고정되던 기존 AI 반도체와 달리, 입력되는 데이터의 변화 속도에 맞춰 스스로 반응 특성을 바꾸는 새로운 AI 반도체 소자가 개발됐다.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반도체공학대학원 최신현 석좌교수 연구팀은 데이터의 변화 속도에 따라 반응 특성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블 동적 멤트랜지스터(PDM)’와 이를 집적한 어레이를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이 성과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현실의 데이터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변한다는 사실이 있다. 심장 박동이나 음성처럼 순식간에 바뀌는 정보가 있는가 하면, 날씨나 공장 설비 상태처럼 천천히 변하는 정보도 있다. 그런데 기존 AI 반도체는 신호에 반응하는 속도와 그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이 고정돼 있어, 빠른 데이터와 느린 데이터가 섞여 있으면 이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반도체가 스스로 데이터의 속도를 읽고 가장 적합한 반응 속도를 선택하도록 만들어 이 한계를 넘었다. 실제로 빠른 정보와 느린 정보가 함께 담긴 시계열 데이터 예측 실험에서, 이 소자는 기존 고정형 반도체보다 예측 오류를 최대 40배 줄였다. 데이터를 외부 서버로 보내지 않고 센서 근처에서 바로 처리하는 자율주행차·로봇·웨어러블 기기 등 차세대 ‘엣지 AI’의 성능을 끌어올릴 핵심 원천기술로 기대된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지난달 게재됐다.

세상의 데이터는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다루는 정보에는 저마다 고유한 ‘변화 속도’가 있다. 음성이나 심전도 신호는 1초에도 여러 번 출렁이며 빠르게 바뀐다. 반면 날씨나 산업 설비의 상태는 몇 시간, 며칠에 걸쳐 서서히 변한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속적으로 생성되는 데이터를 ‘시계열 데이터’라고 부른다.

문제는 실제 환경에서는 이 빠른 정보와 느린 정보가 뒤섞여 함께 발생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웨어러블 기기는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과 천천히 변하는 체온을 동시에 다뤄야 하고, 자율주행차는 순간적인 장애물 신호와 서서히 바뀌는 도로 상황을 함께 읽어야 한다. 서로 다른 속도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려면, 각 속도에 맞는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기존 AI 반도체의 한계가 드러난다. 반도체 소자는 신호에 반응하는 속도와 그 상태가 유지되는 시간, 이른바 ‘시간 응답 특성’을 갖는데, 대부분 이 특성이 제작 단계에서 고정된다. 빠른 신호에 맞춰 만든 소자는 느린 정보를 놓치고, 느린 신호에 맞춘 소자는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나의 고정된 반응 속도로는 다양한 데이터를 모두 잘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려는 기존 시도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입력 신호를 별도로 변환하는 전처리를 하거나, 외부에서 전압을 계속 걸어 소자의 반응 특성을 바꾸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추가 연산이나 주변 회로를 필요로 해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에너지 소모가 늘어난다. 연구팀이 겨냥한 지점이 바로 이 한계다.

기억하는 트랜지스터, 두 개의 층

해법의 출발점은 ‘멤트랜지스터’라는 소자다.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Memory)와 계산을 수행하는 트랜지스터(Transistor)의 기능을 하나로 합친 차세대 반도체 소자로, 이름도 두 단어를 결합해 만들었다. 데이터를 계산하면서 동시에 이전 정보를 기억할 수 있어, 입력에 맞춰 반응 속도를 조절할 잠재력을 지닌다.

연구팀은 여기에 두 개의 기능 층을 하나의 트랜지스터 안에 결합하는 새로운 구조를 설계했다. 하나는 전기적 정보를 처리하는 ‘전하 저장층’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를 가둬 반도체의 반응 속도를 조절하는 ‘전자 포획층’이다. 데이터가 들어오면 전하 저장층이 정보를 처리하고, 전자 포획층이 반도체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속도를 조절한다.

작동 원리는 운전에 비유할 수 있다.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는 속도를 높이고 좁은 골목에서는 속도를 줄이듯, 이 소자도 데이터의 변화 속도에 맞춰 가장 적합한 반응 속도를 스스로 선택한다. 빠른 데이터가 들어오면 빠르게, 느린 데이터가 들어오면 느리게 반응하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데이터의 속도에 따라 몸의 반응을 바꾼다는 점에서 연구팀은 이를 ‘카멜레온 AI 반도체’로 표현했다.

핵심은 이렇게 맞춰놓은 반응 특성이 ‘기억된다’는 점이다. 전자 포획층에 저장된 전하량을 조절하면 반응 속도를 여러 단계로 설정할 수 있는데, 한 번 설정한 특성은 전원을 계속 공급하지 않아도 그대로 유지된다.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남는 ‘비휘발성’ 덕분에, 외부에서 전압을 계속 걸어줄 필요가 없어 에너지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40배 줄어든 예측 오류, 그리고 엣지 AI

연구팀은 이 소자의 성능을 여러 실험으로 확인했다. 반도체가 신호에 반응한 뒤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시간을 약 5배 범위에서 조절했고, 빠르게 반복되는 신호를 처리하는 능력도 10배 이상 폭넓게 조절할 수 있었다. 50나노초 수준의 짧은 입력에도 반응했으며, 반복 동작은 1,000만 회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여러 소자를 만들었을 때 소자 간 편차도 작아, 대량 생산에 필요한 균일성도 확인됐다.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예측 정확도다. 서로 다른 속도의 정보가 섞인 복합 시계열 데이터를 예측하는 실험에서, 하나의 고정된 반응 특성만 썼을 때보다 다양한 반응 특성을 함께 활용했을 때 예측 오류가 약 40배 줄었다. 여러 소자를 16×16 격자로 집적한 어레이로 복잡한 카오스 신호를 예측했을 때도, 고정형 방식보다 4배 이상 성능이 향상되며 소프트웨어 기반 AI에 근접한 결과를 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에너지 효율이다. 그동안 다양한 시간 척도의 정보를 처리하려면 소프트웨어에서 많은 연산을 반복해야 했는데, PDM은 빠른 응답부터 느린 응답까지 여러 특성을 하드웨어에 직접 구현해 동시에 활용한다. 그 결과 소프트웨어 기반 시스템과 비슷한 정확도를 유지하면서도 훨씬 적은 에너지로 동작했다. 복잡한 데이터 전처리 없이도 다양한 속도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응용 무대는 ‘엣지 AI’다. 엣지 AI는 데이터를 멀리 있는 서버로 보내지 않고 센서 가까이에서 곧바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빠른 판단과 낮은 전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웨어러블 기기의 생체 신호 분석, 자율주행 시스템의 환경 인식, 로봇의 실시간 센서 처리, 산업 설비 상태 모니터링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소자는 현재 널리 쓰이는 상용 반도체 공정(CMOS)과 호환돼 대량 생산 가능성이 높다. 최신현 석좌교수는 “데이터의 변화 속도에 맞춰 반도체가 스스로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AI 반도체를 구현한 것”이라며 “다양한 AI 기기의 성능은 높이고 전력 소모는 줄이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