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연, 뇌암 ‘성장 스위치’ 단백질 찾았다…내성 교모세포종 병용치료 단초
난치성 뇌암인 교모세포종이 끊임없이 증식하도록 만드는 ‘성장 스위치’ 단백질을 찾아, 이를 꺼서 암 성장을 억제하는 치료 전략이 규명됐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은 바이오신약중개연구센터 한태수 박사 연구팀이 뇌에 생기는 악성 종양(뇌암)의 한 종류인 교모세포종 세포의 증식을 유발하는 핵심 단백질 ‘NMUR2’를 발견하고, 이 스위치를 차단해 암 성장을 억제하는 방법을 규명했다고 22일 밝혔다.
교모세포종은 뇌에 생기는 악성종양 중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난치성 질환으로, 표준 치료제인 테모졸로마이드(TMZ)에 환자 과반수가 내성을 갖게 돼 결국 재발하는 것이 오랜 문제였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암세포의 성장 과정을 여러 갈래로 막는 대신, 그 명령을 내리는 ‘시작점’ 단백질 하나를 차단해 여러 성장 신호를 한꺼번에 낮추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약이 안 듣고 재발하는 뇌암, 새 공략점이 필요했다
교모세포종은 뇌와 척수를 이루는 신경교세포에서 생기는 종양 가운데 가장 악성도가 높은 암이다. 진행 속도가 빠르고, 주변 정상 뇌 조직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는 침습성이 강해 수술로 완벽히 제거하기 어렵다. 그만큼 재발이 잦아 치료가 매우 힘든 대표적인 난치성 뇌종양으로 꼽힌다.
현재 표준 치료제는 ‘테모졸로마이드(TMZ)’라는 화학 항암제다. 하지만 여기에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처음에는 약이 듣더라도 환자의 절반 이상에서 암세포가 약에 내성을 갖게 되고, 결국 다시 재발하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새로운 치료 표적과 전략을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던 이유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G단백질 결합 수용체(GPCR)’라는 단백질군이다. 세포 표면에 안테나처럼 서서 외부 신호를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수용체로, 다양한 질환의 약물 표적으로 널리 쓰인다. 하지만 뇌종양에서의 역할과 치료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덜 연구돼 있었다. 연구팀은 뇌에 주로 분포하는 GPCR인 ‘NMUR2’가 교모세포종의 성장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고들었다.
암을 계속 자라게 하는 ‘시동 스위치’를 찾다
연구팀은 환자의 뇌암 조직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뚜렷한 단서를 발견했다. 정상 뇌 조직에 비해 암 조직에서 NMUR2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존재했고, 특히 악성도가 높은 암일수록 이 단백질의 양이 늘어났다. 실제로 암세포에서 NMUR2를 인위적으로 늘리자 암세포가 더 빠르게 자라고 활발하게 이동했으며, 반대로 줄이자 증식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 단백질이 어떻게 암을 키우는지도 밝혀냈다. NMUR2는 암세포 내부의 신호 전달 과정을 거쳐 칼슘 이온을 방출시키고, 이 신호가 ‘STAT5’라는 단백질을 활성화한다. 활성화된 STAT5는 세포핵으로 들어가 세포 분열을 촉진하는 유전자(PIM1, FOXM1)를 계속 작동시킨다. 즉 NMUR2는 암세포를 끊임없이 분열하게 만드는 일종의 ‘시동 스위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발견의 핵심은 ‘어디를 공략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는 데 있다. 세포 분열이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신호가 이어지는데, 그 각각을 따로 막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반면 맨 앞의 시동 스위치인 NMUR2 하나를 끄면 그 뒤로 이어지는 여러 성장 신호를 동시에 낮출 수 있다. 게다가 NMUR2는 세포막에 있어 약물이 접근해 조절하기 쉬운 표적이라는 점도 유리했다.
기존 약물 다시 써서 스위치 끈다…항암제와 시너지
스위치를 끌 약물을 찾기 위해 연구팀은 약 6,331종의 약물을 하나하나 탐색했다. 그 결과 ‘NNC 05-2090’이라는 물질이 NMUR2에 강력하게 결합해 신호 전달을 완벽히 차단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흥미롭게도 이 물질은 원래 뇌경련·발작을 막는 항경련제 관련 연구에 쓰이던 화합물이었다.
여기서 활용된 것이 ‘약물 재창출’ 전략이다. 기존 신약 개발은 보통 10~15년 이상 걸리지만, 약물 재창출은 이미 안전성과 약리 정보가 쌓인 기존 화합물에서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찾기 때문에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세포막에 위치한 GPCR인 NMUR2는 이런 전략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표적이었다.
효과는 실험으로 확인됐다. NNC 05-2090을 교모세포종 세포와 뇌암을 유발한 생쥐 모델에 투여하자, 암세포의 신호 체계가 꺼지면서 세포 분열이 멈추고 암 크기가 크게 줄었다. 특히 기존 항암제 TMZ와 함께 투여했을 때 단독 투여보다 훨씬 뛰어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TMZ에 내성이 생겨 재발하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병용 치료의 길을 열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성과가 약물 가능성을 검증한 단계임을 분명히 했다. 실제 치료제가 되려면 약물이 뇌를 보호하는 ‘혈액-뇌 장벽’을 통과하는지, 몸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을 환자 유래 모델로 추가 검증해야 한다. 한태수 박사는 “교모세포종의 악성 증식을 유발하는 새로운 원인을 밝히고 이를 제어할 약물 가능성을 검증한 성과”라며 “뇌혈관 장벽 투과력을 높이고 약물 전달 체계를 개선한다면 실제 적용 가능한 혁신 신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