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연, 수명 깎던 리튬 걸러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수명 늘렸다
차세대 태양전지로 꼽히는 페로브스카이트는 효율은 높지만 덥고 습한 환경에서 금세 늙는다. 효율을 끌어올리려 넣은 첨가제가 거꾸로 수명을 깎는다. 그 모순을 ‘쓰고 나서 걸러내는’ 방식으로 풀었다.
효율을 높이는 데는 필요하지만 수명을 단축시키던 물질을, 반응이 끝난 뒤 촉매째 걸러내 제거하는 공정이 나왔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너지연) 태양광연구단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신개념 촉매 공정 기술을 개발했다고 15일 밝혔다.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는 빛을 효과적으로 흡수해 차세대 태양전지 소재로 주목받는 물질로, 다른 태양전지와 겹쳐 효율을 높이는 탠덤 태양전지의 윗부분 셀로 주로 쓰인다. 이 기술을 쓰면 수명 단축의 주원인인 리튬 이온을 원천 제거할 수 있어 상용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5월호 표지논문으로 실렸으며, 에너지연과 UNIST 김동석 교수 연구팀의 공동 연구로 수행됐다.
효율에 필요한 첨가제가 거꾸로 수명을 깎는 모순
문제의 뿌리는 ‘정공수송층’에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는 만들어진 전기가 밖으로 흐르도록 돕는 정공수송층이 들어가는데, 전기 운반 효율을 높이려고 여기에 리튬염과, 그 리튬염이 잘 녹도록 돕는 첨가제를 넣는다. 효율을 위해 꼭 넣어야 하는 재료들이다.
그런데 이 재료들이 수명을 깎는다. 첨가제가 덥고 습한 실제 작동 환경에서 증발하면서, 태양전지를 이루는 막 사이에 불필요한 틈을 만든다. 이 틈이 막과 막이 맞붙는 부위에 결함을 일으켜 태양전지의 수명을 떨어뜨린다.
리튬도 말썽이다. 덥고 습한 환경에서 리튬염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리튬 이온이 태양전지 내부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수명을 더 짧게 만든다. 효율을 올리려 넣은 재료가 오히려 전지를 빨리 늙게 하는 모순인 셈이다.
그동안의 해법은 벽에 부딪혔다. 리튬염과 첨가제를 아예 쓰지 않거나, 다른 물질로 완전히 대체하면서도 효율을 유지하는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연구가 첨가제 양을 최적화하거나 대체 소재를 찾는 데 매달렸지만, 성능과 수명을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했다.

산화니켈로 반응만 끌어낸 뒤 ‘통째로 걸러낸다’
연구진의 발상은 ‘쓰되 남기지 않는다’였다. 필요한 화학 반응만 유도하고, 반응이 끝나면 리튬 이온을 촉매째로 걸러내는 ‘촉매 반응 후 필터링 추출 공정’을 개발했다. 핵심은 산화니켈(NiOx) 촉매다. 산화니켈 분말을 정공수송층 제조 용액에 넣으면, 두 물질의 반응으로 산화니켈 표면이 리튬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상태로 바뀐다. 이 덕분에 기존 공정에 꼭 필요했던 첨가제 없이도 리튬염에서 리튬을 떼어내 산화니켈 표면에 붙일 수 있다.
다음 단계는 물리적으로 걸러내는 것이다. 연구진은 반응이 끝난 산화니켈 분말을 필터로 걸러냈다. 입자가 큰 산화니켈 촉매가 필터에 걸리면서, 그 표면에 붙은 리튬 이온도 함께 빠져나간다. 이렇게 걸러낸 용액으로 막을 만들면, 성능 저하를 일으키던 첨가제도, 리튬 잔류물도, 촉매로 쓴 산화니켈마저도 남지 않는 ‘무결점 정공수송층’이 된다. 쓸 만큼 쓰고 원인 물질을 통째로 들어낸 것이다.
성능은 가혹한 시험으로 입증됐다. 연구진은 이 공정으로 만든 태양전지를 85도의 고온과 상대습도 85% 환경에서 검증했고, 1000시간이 지나도 초기 효율의 95%를 유지했다. 첨가제가 남아 있는 기존 공정이 600시간 만에 초기 성능의 59%로 떨어진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효율도 더 높았다. 받은 빛을 전기로 바꾸는 비율인 광전변환효율이 기존 공정(25.21%)보다 높은 25.24%를 기록해, 첨가제 없이도 효율을 올릴 수 있음을 보였다.
이 성과는 뜻밖의 과정에서 나왔다. 안세진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기존 페로브스카이트 제조 공정의 틀을 깨고, 필요한 반응만 촉매로 유도한 뒤 원인 물질을 걸러내는 새로운 공정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고질적인 수명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페로브스카이트 및 탠덤 태양전지 상용화를 앞당기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실험실 규모에서 성능 평가를 마친 단계(TRL 4)로, 연구진은 대면적화와 장기 안정성 확보를 후속 과제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