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연, 오가노이드가 실제 장기와 얼마나 닮았는지 점수로 매기는 기술 개발
사람 장기를 본떠 만든 ‘오가노이드’는 약을 사람에게 직접 쓰지 않고도 효과와 부작용을 가늠하게 해준다. 문제는 그 오가노이드가 진짜 장기와 얼마나 닮았는지 잴 공통의 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실험실마다 다르게 판단하던 오가노이드의 완성도를, 실제 장기와의 닮음 정도를 점수로 환산해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하는 평가 기술이 국제표준이 됐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줄기세포융합연구센터 조현수 박사와 디지털바이오연구센터 김대수 박사 공동연구팀은 인간만능줄기세포(피부·간·심장 등 인체의 거의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에서 만든 오가노이드가 실제 인체 장기와 얼마나 비슷한지를 백분율 점수로 산출하는 정량 평가 기술을 개발해 국제표준 절차로 확립했다고 7일 밝혔다. 오가노이드(organoid)는 사람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유사하게 재현한 3차원 세포 집합체로, ‘장기유사체’라고도 한다. 이 평가 기준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공식 기술시방서(ISO/TS 24932)로 제정돼 2026년 8월 전 세계에 발간됐다.
‘공통 잣대’가 없던 오가노이드 평가
오가노이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투여하지 않고도 신약의 효과나 부작용을 알아내기 위해, 사람 장기를 본떠 만든 오가노이드 연구가 활발하다. 질병 기전 연구에서 신약 개발, 독성 평가, 재생 치료제 개발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품질을 재는 방법이 제각각이었다. 기존에는 오가노이드가 실제 장기와 얼마나 비슷한지 보기 위해, 특정 장기의 분화 마커를 생화학적 방법으로 확인하는 ‘정성 평가’에 의존했다. 이 방식은 연구실마다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방법도, 평가 기준도 서로 달라 장기 유사도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웠다.
활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이 문제는 커졌다. 질병 연구를 넘어 신약·독성·재생치료제 개발로 쓰임새가 확대되면서, 고품질 오가노이드를 가려낼 ‘공통 잣대’가 필요해졌다. 서로 다른 기관에서 만든 오가노이드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방법이 없으면, 그 결과를 신뢰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장기와의 닮음을 0~100% 점수로
연구팀의 해법은 ‘점수화’다. 오가노이드의 유전자 발현 정보를 실제 정상 장기와 비교해, 둘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0~100%의 수치로 산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장기마다 그 특성을 대표하는 유전자들을 골라 패널로 구성한 뒤, 오가노이드의 유전자 발현이 실제 장기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애매한 판정 대신 숫자로 완성도를 보여주는 셈이다.
핵심은 전 과정을 하나의 절차로 묶었다는 데 있다. 데이터 구성부터 유전자 패널 선정, 유전자 데이터의 신뢰도 및 품질 관리, 유사도 계산에 이르기까지를 통합해, 누구나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표준 절차를 만들었다. 한 연구실의 방법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같은 방식으로 적용해 같은 결과를 얻도록 한 것이다.
실제 적용에서도 작동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위(胃) 오가노이드에 이 기술을 적용해, 줄기세포가 위 오가노이드로 분화해 가는 과정에서 정상 위 조직과의 유사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수치로 확인했다. 분화와 성숙의 진행 정도를 점수의 변화로 추적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결과다.
ISO 공식 문서로 등재…”바로 쓸 수 있다”
이 기술은 국제 무대에서 공식 문서로 자리 잡았다. 평가 기준은 국제표준화기구(ISO) 보건의료정보 기술위원회(ISO/TC 215) 산하 유전체정보 분과위원회(SC 1)에서 제정돼, 2026년 8월 ‘ISO/TS 24932:2026’으로 발간됐다. 조현수·김대수 센터장이 공동 프로젝트 리더로 참여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연구자와 제약회사는 동일한 기준으로 오가노이드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번 표준은 정식 국제표준(IS)이 아니라 기술시방서(TS) 단계다. TS는 기술이 발전 중이거나 정식 표준 제정에 필요한 합의가 충분히 모이기 전, 산업과 연구 현장에서 바로 활용하도록 기술적 요구사항과 절차를 제시하는 공식 문서다. 이미 발간된 표준 문서이므로 현장에서 곧바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며, 향후 기술적 검증과 국제적 합의를 거쳐 정식 국제표준으로 전환될 수 있다.
활용처는 여러 갈래로 뻗는다. 신약의 독성·효능 평가에 쓰이는 오가노이드의 품질관리, 세포치료제 개발, 오가노이드 기반 시험 서비스의 신뢰성 확보 등에 적용될 수 있다. 조현수·김대수 센터장은 “이번 국제표준 제정은 생명연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오가노이드 유사도 평가 기술을 전 세계 연구·산업 현장에서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식화한 성과”라며 “표준화된 평가 체계를 통해 오가노이드의 분화와 성숙 수준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됐고, 향후 질환 연구와 신약·치료제 개발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