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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공학연구원, 단백질-약물 결합 원자 수준에서 가려내는 초고해상도 나노포어 센서 개발

질량 차이가 2.5 달톤에 불과한 유사 약물까지 단일 분자 수준에서 구별해, 나노포어 기반 단백질 분석에서 세계 최고 해상도를 달성했다.

약물 후보 물질이 표적 단백질에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분자 단위로 들여다보는 나노포어 센서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구조가 비슷한 저분자 약물을 가려내기 어려웠던 신약개발 단계의 병목을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권석윤·이하 생명연)은 AI바이오의약연구소 지승욱 박사와 정기백·황성보·김진식 박사 공동연구팀이 단백질과 약물의 결합 상태를 한 분자 단위로 직접 들여다보는 초정밀 나노포어(nanopore, 수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 구멍을 통과·체류하는 분자의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센서) 기술을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팀이 BRD4(Bromodomain-containing protein 4,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항암제 개발의 핵심 표적 단백질)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질량 차이가 단 2.5 Da(달톤, 원자나 분자의 질량을 나타내는 단위)에 불과한 유사 약물들까지 단일 분자 수준에서 구별해냈다. 이는 기존 나노포어 기술이 88~116 Da 수준의 차이를 가르는 데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수십 배 향상된 정밀도이자, 나노포어 기반 단백질 분석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해상도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ACS Nano(IF 16.1) 온라인판에 4월 27일 게재됐다.

신약 후보 선별의 난제…구조 유사 저분자 약물 식별의 한계

신약개발은 수많은 후보 물질 가운데 실제 치료 효과를 가진 물질을 빠르고 정확하게 선별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약물이 우리 몸에서 제대로 작용하려면 특정 표적 단백질과 정확히 결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조가 매우 비슷한 저분자 약물들의 경우 단백질과 결합한 상태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고 분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연구팀이 활용한 기술은 나노포어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 분의 일 크기에 해당하는 이 구멍은 단백질이 통과하거나 머무를 때 전기 신호가 미세하게 변하는 특징이 있다. 연구팀은 이 신호를 정밀 분석하면 단백질이 어떤 약물과 결합한 상태인지까지 판별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존의 나노포어 기반 단백질 분석 기술은 약 88~116 Da 수준의 질량 차이를 구별하는 데 그쳤다. 게다가 단백질의 구조가 크게 변해야만 약물 결합 여부를 식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구조적 차이가 미세한 약물 결합을 가려내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연구사진

나노포어 속 전기 신호를 분석해 단백질-약물 결합 ‘지문’ 포착

연구팀은 암 등 다양한 질병의 발생에 관여하며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단백질이자 항암제 개발의 핵심 표적인 BRD4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나노포어로 BRD4에 결합하는 다양한 약물을 분석한 결과, 약물 종류에 따라 전기 신호 패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신호 분석을 통해 질량 차이가 단 2.5 Da에 불과한 매우 유사한 약물들까지도 완벽하게 구별해냈다는 것이다. 이는 수소 원자 약 2~3개 정도의 질량 차이에 해당하는 극미세한 차이로, 나노포어 기술을 이용한 단백질 분석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해상도다. 기존 기술이 단백질 구조가 크게 변해야만 약물 결합을 식별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 기술은 구조적 차이가 매우 미세한 약물 결합까지도 찾아낼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정밀도를 구현하기 위해 표적 단백질이 나노포어 센서 내부에서 보이는 위치 변화, 움직임, 전류 신호 패턴 등 다양한 특성을 동시에 분석하는 다중 파라미터 분석 기법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단백질-약물 결합을 약물별로 구별할 수 있는 고유한 ‘전기적 지문’을 확보했으며, 별도의 형광 표지(label, 분자를 추적하기 위해 형광 물질을 붙여 표시하는 방식) 없이도 매우 적은 양의 시료로 단일 분자 수준에서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신약 발굴 가속, 정밀의료·질병 진단 확장 가능한 플랫폼 기술

연구팀은 이 기술이 수만 개에 달하는 신약 후보 물질 중 최적의 물질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선별할 수 있게 해, 신약개발의 기간을 단축하고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했다.

기존 신약개발이 어려웠던 표적 단백질들에 대해서도 미세한 결합 차이를 정밀하게 가려낼 수 있게 된 점도 의미가 크다. 형광 표지 없이 단일 분자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은 시료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정밀한 검증을 가능하게 한다.

연구책임자인 지승욱 박사는 “이번 연구는 원자 수준에서 단백질-약물 결합을 분석할 수 있는 나노포어 센서 기술 개발 성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고해상도를 달성한 의미가 있다”라며 “본 나노포어 기술은 고효율 신약 발굴을 가속화하는 것은 물론, 정밀의료 및 질병 진단 분야로도 확장 가능한 플랫폼 기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