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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MIT, 전기 신호로 기능 바꾸는 광학 칩 세계 최초 개발…’소프트웨어 정의 센서’ 시대 연다

하나의 초소형 광학 칩이 전기 신호만으로 열영상 센서, 분광기, 적외선 카메라 등 여러 역할을 번갈아 수행하도록, 빛의 투과를 픽셀 단위로 독립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빛을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제어하는 초소형 광학 칩이 나왔다.

KAIST는 항공우주공학과 김현정 교수 연구팀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주에이전 후(Juejun Hu) 교수 연구팀과 함께, 전기 신호만으로 빛의 통과를 픽셀 단위로 독립 제어하는 투과형 중적외선 공간광변조기(SLM, Spatial Light Modulator, 빛이 얼마나 통과하고 어떤 형태로 전달될지를 화면의 최소 단위인 픽셀별로 조절하는 광학 소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지금까지 위성이나 우주탑재체는 임무가 바뀔 때마다 광학 필터와 센서를 새로 설계해야 했다. 이번 성과는 하드웨어를 교체하지 않고도 전기 신호만으로 센서 기능을 바꾸는 ‘소프트웨어 정의(Software-defined) 센서’의 기반을 제시한 것으로, 위성과 발사체, 우주정거장의 센서 방식을 바꿀 기술로 기대된다.

연구 이미지 | AI 생성

임무가 바뀔 때마다 센서를 새로 만들던 문제

위성이나 우주탑재체는 그동안 임무가 바뀔 때마다 광학 필터와 센서를 새로 설계해야 했다. 열을 감지하는 임무와 빛을 파장별로 분석하는 임무가 각각 다른 하드웨어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겨냥한 것은 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 즉 하나의 광학 칩이 전기 신호만으로 여러 센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연구팀이 개발한 장치는 메타표면(Metasurface, 머리카락보다 훨씬 작은 미세 구조를 이용해 빛의 세기와 방향, 파장 등을 자유롭게 제어하는 초박형 광학 구조) 기반의 투과형 중적외선 공간광변조기다. 공간광변조기는 빛이 얼마나 통과하고 어떤 형태로 전달될지를 픽셀 단위로 조절하는 광학 소자인데, 연구팀은 각 픽셀을 전기적으로 따로따로 제어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 지점이 기존 기술과 갈리는 대목이다. 기존 중적외선 SLM은 대부분 빛을 반사시키는 방식이거나, 많은 픽셀을 각각 독립적으로 제어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위성 센서나 초소형 분광기(빛을 파장별로 분석하는 장치), 적응형 광학계(환경 변화에 맞춰 광학 성능을 자동 조절하는 시스템)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전기적으로 개별 제어 가능한 2차원 메타표면 어레이 구조와 제작 소자

전원 꺼져도 상태 유지…우주에 맞는 두 가지 열쇠

문제 해결의 첫 번째 열쇠는 소재였다. 연구팀은 전기 신호를 받으면 빛이 통과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광학 상변화 소재(PCM, Phase Change Material)인 GSST(게르마늄-안티모니-셀레늄-텔루륨)를 활용했다. 이 소재는 전기 신호를 한 번 받으면 상태가 유지돼, 전원이 꺼져도 계속 같은 성능을 유지하는 비휘발성(Non-volatile) 특성을 갖는다. 지속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필요가 없어, 전력 사용이 제한적인 위성이나 우주탑재체에 적합하다.

두 번째 열쇠는 픽셀을 정확히 골라 제어하는 문제였다. 광학 칩의 픽셀 수가 많아질수록, 선택한 픽셀 외에 다른 픽셀에도 전류가 흘러 원하지 않는 픽셀까지 함께 작동하는 기생 경로(Sneak Path) 문제가 생긴다. 연구팀은 각 픽셀에 실리콘 PIN 다이오드(PIN Diode, 원하는 픽셀에만 전류가 흐르도록 하는 반도체 소자)를 적용해, 원하는 픽셀만 정확하게 선택해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6×6 픽셀 배열의 모든 픽셀을 독립적으로 제어하고 원하는 광학 패턴을 구현했다. 또한 약 1만 6,700회 이상 반복 구동한 뒤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해, 기존 기술보다 약 13배 높은 내구성을 입증했다.

‘광학도 소프트웨어처럼’ 바꾸는 개념, 우주로 향한다

이번 소자는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 반도체 공정을 이용해 광학 소자를 제작하는 기술) 기반으로 만들어져, 향후 수백~수천 개 이상의 픽셀을 갖는 대형 광학 칩으로 확장하기 쉽다. 현재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을 구현한 단계이지만, 앞으로 메타표면 구조를 더 정교하게 설계하면 빛의 방향과 편광까지 제어하는 범용 재구성 광학(Universal Reconfigurable Optics)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미를 ‘광학도 소프트웨어처럼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데서 찾는다. 하나의 센서를 여러 종류의 센서처럼 쓸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하나의 광학 칩이 상황에 따라 열영상 센서, 분광기, 적외선 카메라, 광통신 장치 등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센서’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위성과 우주탑재체는 물론 발사체 상태진단, 우주정거장 열 감시, 우주제조 공정 계측, 적외선 영상, 광통신 등 다양한 광학 시스템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김현정 교수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2018년 시작한 MIT-NASA 공동연구를 KAIST에서 발전시킨 성과다. 김현정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새로운 광학 소자를 하나 더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광학 칩이 임무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센서’ 시대의 기반을 제시한 것”이라며 “MIT의 나노포토닉스와 KAIST의 우주 센서 기술을 결합해 실제 우주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7월 7일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