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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서울대, 촉매 안 바꾸고 주변 전기장만 조절해 배터리·연료전지 효율 높였다

촉매 자체를 바꾸지 않고 주변에 양이온을 배치해 작은 전기장을 만드는 것만으로, 원하는 반응이 일어나는 비율을 기존 12%에서 최대 52%까지 끌어올렸다.

배터리와 연료전지의 성능은 그 안에서 전기를 만드는 화학 반응을 돕는 촉매가 좌우한다. 그동안은 촉매의 재료나 구조 자체를 바꿔 성능을 끌어올렸지만, 이번에는 촉매는 그대로 둔 채 주변 환경만 손봤다는 점이 다르다.

촉매를 새로 만들지 않고도 그 주변의 전기적 환경만 조절해 배터리와 연료전지의 전기 생산 효율을 높이는 촉매 설계 전략이 나왔다. KAIST 화학과 황승준 교수팀은 서울대학교 화학부 류재윤 교수팀과 공동으로, 배터리와 연료전지 내부에서 전기를 만드는 핵심 반응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촉매 설계 전략을 제시했다고 1일 밝혔다.

촉매의 활성점 주변에 양이온(+의 전하를 띤 이온)을 배치해 아주 작은 전기장을 만들면, 전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반응이 더 안정적으로 일어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성과는 미국화학회지(JACS,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4월 12일 온라인 게재됐다.

촉매 ‘재료’를 바꾸는 대신 ‘주변 환경’을 바꾸다

촉매(catalyst)는 화학 반응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어나도록 돕는 물질이다. 배터리나 연료전지에서는 전기를 만드는 반응을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촉매는 보통 가운데 금속과 그 주변을 둘러싼 분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 연구는 반응 성능을 높이기 위해 촉매 자체에 손을 댔다. 금속 종류를 철(Fe) 대신 코발트(Co)나 니켈(Ni)로 바꾸거나, 금속 주변의 분자 구조인 리간드(ligand, 가운데 금속을 둘러싸는 분자 구조)를 새롭게 설계하는 방식이 주로 쓰였다. 촉매의 재료나 형태를 바꿔 더 잘 반응하도록 만드는 접근이다.

이번 연구는 촉매 자체를 크게 바꾸지 않고, 촉매 주변의 전기적 환경만 조절해 성능을 높였다는 점에서 다르다. 연구팀은 이를 요리에 빗대 설명한다. 기존 방식이 프라이팬의 재질을 바꾸거나 모양을 새로 만드는 것에 가깝다면, 이번 연구는 프라이팬은 그대로 두고 주변의 온도와 공기 흐름을 정교하게 조절해 음식이 더 잘 익도록 만든 것에 해당한다. 도구가 아니라 환경을 다듬어 같은 촉매에서 더 나은 결과를 끌어낸 셈이다.

양이온 기반 ORR 촉매 활성 제어 그림

양이온이 만드는 ‘작은 전기장’이 반응을 바꾼다

연구팀은 촉매의 반응이 일어나는 자리 주변에 양이온을 배치해 국소적인 전기장을 만들었다. 촉매 활성점 가까이에 의도적으로 양전하를 두면 그 주변에 아주 작은 전기장이 형성되는데, 이 전기장이 전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반응을 더 안정적으로 일어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촉매의 화학 구조를 손대지 않고도 반응 특성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원하는 반응이 일어나는 비율은 기존 12% 수준에서 최대 52%까지 높아졌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기존보다 더 적은 에너지로 원하는 반응을 효율적으로 유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의 효율과 수명,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가 다룬 반응은 산소 환원 반응(ORR, 산소가 전자를 받아 전기를 만드는 핵심 반응)이다. 이 반응은 수소차용 연료전지(fuel cell, 수소와 산소의 화학 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와 금속-공기 전지(metal-air battery, 금속과 공기 중 산소를 이용해 전기를 저장·생산하는 차세대 배터리) 등 차세대 에너지 장치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핵심 반응이다. 황승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촉매 자체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주변의 전기적 환경만으로 반응 특성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금속 양이온 전기장에 의한 Fe 포피린 촉매 반응성 향상 시각화 | AI 생성

12%에서 52%로…차세대 에너지 촉매로 확장

이번 성과는 ‘촉매를 새로 만든다’는 기존 발상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양이온의 종류와 농도만 조절하면 촉매를 다시 합성하지 않고도 반응 특성을 바꿀 수 있어, 하나의 촉매로 다양한 조건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적용 범위도 산소 환원 반응에 그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번 원리가 이산화탄소(CO₂)나 수소를 다른 유용한 물질로 전환하는 촉매 기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이산화탄소 저감 기술이나 친환경 수소 생산 기술 등 다양한 차세대 에너지 촉매 개발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황승준 교수는 “차세대 배터리와 연료전지, 친환경 에너지 촉매 기술 개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