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 엔비디아와 차세대 AI 메모리 공동개발 나선다
AI 시대의 성능은 연산을 맡는 그래픽처리장치(GPU)뿐 아니라, 그 옆에서 데이터를 저장하고 공급하는 메모리에도 크게 좌우된다. AI 반도체의 양대 축에 선 두 회사가 그 메모리를 함께 설계하기로 했다.
AI를 구동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이른바 ‘AI 팩토리’에 들어갈 차세대 메모리를 엔비디아와 함께 개발하고,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 자체에도 AI를 적용하는 장기 협력이 시작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글로벌 AI 팩토리(AI factory, AI 모델을 학습·운영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차세대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반도체 설계 및 제조를 가속화하는 장기 기술 파트너십을 강화한다고 8일 발표했다. 양사는 지난 수년간 이어 온 협업을 바탕으로 파트너십을 한층 고도화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이번 장기 파트너십은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첨단 메모리의 특성을 고려해, 엔비디아의 인프라 로드맵에 맞춰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토대를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차세대 AI 플랫폼에 들어갈 메모리를 함께 만든다
이번 협력의 중심은 차세대 메모리(memory, 데이터를 저장하고 연산 장치에 빠르게 공급하는 반도체)의 공동 개발이다. 양사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슈퍼컴퓨터 베라 루빈(Vera Rubin)을 비롯해 베라 CPU, RTX 스파크 PC, 로봇용 컴퓨팅 플랫폼 젯슨 토르(Jetson Thor)에 들어갈 메모리를 함께 개발할 예정이다. 데이터센터급 슈퍼컴퓨터부터 개인용 PC, 로봇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기기에 맞춘 메모리를 폭넓게 다루는 셈이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가 개척하는 새로운 영역에도 발을 들인다. 데이터센터 중심의 AI 인프라뿐 아니라, 개인 기기에서 작동하는 퍼스널 AI(personal AI)와 로봇 등 물리적 세계에서 작동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가상 공간을 넘어 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는 AI)까지 메모리 공급 대상으로 넓히는 것이다. 특히 첨단 메모리는 개발 주기가 길어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는데, 이번 장기 파트너십은 그 긴 호흡에 맞춘 안정적 공급을 뒷받침한다.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창업자 겸 CEO는 “AI 팩토리는 차세대 산업혁명의 엔진이고 첨단 메모리는 그 성능의 핵심”이라며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AI 컴퓨팅 플랫폼을 위한 첨단 메모리 기술 제공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뛰어난 파트너”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양사가 AI 팩토리용 차세대 메모리를 공동개발하고 반도체 설계와 제조에 AI를 적용함으로써 AI 인프라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설계·제조에 AI를 입힌다
협력의 두 번째 축은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AI로 가속하는 것이다. 반도체 개발에는 방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한데,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CUDA-X 라이브러리와 PhysicsNeMo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설계·제조 과정에서 필요한 시뮬레이션의 처리 속도와 효율을 높이고 있다. 계산을 더 빠르게 처리해 개발 시간을 단축하려는 시도다.
여기에는 반도체 개발의 까다로운 단계들이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공정 특성을 분석하는 TCAD(기술 컴퓨터 지원 설계)와, 반도체 회로를 미세하게 구현하기 위한 계산 리소그래피(computational lithography, 미세 회로 패턴을 정밀하게 그려 내기 위한 계산 기술) 등이 가속 대상이다. 회로가 점점 미세해질수록 이런 계산의 부담이 커지는 만큼, AI 컴퓨팅으로 이를 덜어 내겠다는 것이다.
양사는 이 협력을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반도체 설계 과정을 소프트웨어로 자동화하는 기술)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나아가 반도체 제조사와 AI 컴퓨팅 플랫폼을 제공하는 엔비디아, 그리고 EDA 소프트웨어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삼각 협력 체계를 구축해 반도체 개발 환경의 혁신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완전 자율 공장’을 향한 디지털 트윈
세 번째 축은 반도체 공장 운영의 고도화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Omniverse 라이브러리와 OpenUSD 기술을 활용해 실제 반도체 공장을 3차원 가상 공간에 똑같이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현실의 공장·설비를 가상에 그대로 옮긴 모델)을 만들고 있다. 복잡한 제조 환경을 가상에서 정밀하게 시각화·분석·최적화하기 위해서다.
운영 효율을 높이는 데도 AI가 동원된다. GPU 가속 기반의 의사결정 최적화 엔진인 cuOpt와 Metropolis 플랫폼을 활용해, 공장 안을 스스로 돌아다니는 자율 이동 로봇(AMR, autonomous mobile robot)을 비롯한 주요 설비와 자산의 운영 효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양사는 이 디지털 트윈 환경을 기존 제조 시스템 및 AI 기반 업무 프로세스와 연계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한다. AI가 공장 운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업무를 자동화하면 생산성과 운영 효율이 높아지고,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완전 자율 팹(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반도체 공장) 운영에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