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폭로를 위해 모든 걸 건 한 여성의 이야기
소피 장(Sophie Zhang)이란 여성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지금으로부터 근 1년 전인 2020년 9월이었다. 당시 미국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 뉴스(BuzzFeed News)가 장이 페이스북 사내 게시판에 올린 약 8,000 단어 분량의 ‘메모’ 요약본을 입수해 주요 내용을 정리해 게재한 게 계기가 됐다.
장은 해고되기 전 페이스북의 하급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다. 공식 직책은 그랬으나 장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에 몰두했다. 세계 각국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 불법적으로 악용되고 있던 가짜 계정과 가짜 ‘좋아요’를 찾아내서 없애는 일이었다.
장은 한국, 인도, 멕시코, 아프가니스탄 등 수십 개국에서 정치인들이 악용할 소지가 다분한 가짜 계정과 ‘좋아요’를 발견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경영진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려고 애썼지만 회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장은 “나도 이제 이런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퇴사 전날 장은 문제의 메모를 쓸지 말지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때가 플랫폼 오남용 문제를 페이스북 경영진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내부에서 압박할 수 있는 장의 마지막 기회였을 수 있었다. 사실 장은 메모를 작정하려고 이미 비방 금지 합의(nondisparagement agreement)에 서명한 후 받게 되는 6만 4,000달러의 퇴직금도 거부해놓은 상태였다. 그는 회사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할 자유를 갖길 원했다.
그러나 장은 2020년 미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 이 메모가 너무 일찍 언론에 공개된다면 선거 과정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까 내심 걱정했다. 장은 “내가 2020년 제임스 코미(James Comey)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고 말한다.
제임스 코미는 2016년 미 대선 며칠 전 의회에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 수사를 재개했다고 밝힌 전 FBI 국장을 말한다. 클린턴은 두고두고 자신의 대선 패배를 코미 탓으로 돌렸다.
장에겐 매우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선이 끝난 뒤 장은 원래대로 계획을 진행했다. 지난 4월 장은 두 건의 가디언 기사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서 자신이 밝혀낸 정치 조작과 이에 대한 페이스북의 태만에 대해 더 상세한 기록을 공개했다.
장의 설명은 외부 비평가들이 오랫동안 제기해왔던 문제들을 뒷받침해주는 구체적 증거가 되었다. 즉, 페이스북이 선거 개입을 쉽게 만들고 있으며, 이런 선거 개입 활동이 회사의 사업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굳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 말이다.
페이스북의 조 오즈번(Joe Osborne)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장의 주장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오즈번은 “페이스북 퇴사 후 소피 장이 가진 수많은 언론 인터뷰에서, 플랫폼의 오용을 근절하기 위한 당사의 우선 순위와 노력에 대해 장이 내린 평가에 당사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사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용을 적극적으로 추적하고 있으며, 이 업무에 주력하는 전담팀도 두고 있다. 그 결과, 당사는 이미 150개 이상의 ‘조직화된 조작 행위(coordinated inauthentic behavior)’ 네트워크를 삭제 조치한 바 있다… ‘조직화된 조작 행위’를 방지하는 일은 당사의 최우선 과제이다”라고 오즈번은 설명했다.
장은 자신의 신원을 공개함으로써 회사로부터 법적 조치를 당할 위험, 향후 경력에 손해를 입을 위험, 내부고발 과정에서 자신이 폭로한 정치인들로부터 혹시 모를 보복을 당할 위험까지 무릅썼다. 장의 폭로 기사를 실은 가디언 기자 줄리아 캐리 웡(Julia Carrie Wong)은 “장은 매우 용감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1년 가까이 개인적 질문에 답을 피해온 장은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됐다. 장은 어떻게 전 세계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일에 관여하게 됐는지, 그리고 이 일에 왜 그렇게 깊이 관심을 가졌는지 세상이 이해하기를 바랐다. 장은 또한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진실을 숨기는 일에도 지쳤다. 이 정체성은 페이스북 근무 시와 퇴사 후 장이 한 행동에 영향을 미친 핵심 요소였다.
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페이스북이 세계 각국에서 선거 방해를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 지금 우리가 이토록 잘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운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런 유형의 정치 조작과 싸우는 사람이 장 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건 장의 업무도 아니었다. 장은 남다른 기량과 열정을 함께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런 뒤에 비범한 도덕적 책임감으로 이 문제를 스스로 떠맡기로 결심했다.
페이스북을 어떻게 통제할지 고심하고 있는 전 세계 규제 기관에 이는 경종을 울릴 것이다.
장이 계획적으로 그렇게 한 건 아니었다. 장은 매우 내성적이고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일도 싫어했다. 장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시간제 계약직으로 일하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2018년에 페이스북에 입사했다. 페이스북의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 장은 채용 담당자에게 이 회사가 세상을 나아지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를 바로잡는 일을 돕기 위해 동참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담당자는 ‘얼마나 많은 페이스북 직원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알게 된다면 놀랄 것이다’라고 내게 말했다”고 장은 회상했다.
말은 쉬워도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많은 신입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장도 특정 부서에 배정되지 않은 채로 입사했다. 장은 ‘선거의 무결성(election integrity)’에 관한 업무를 하고 싶었다. 이는 선거와 관련된 플랫폼의 오남용을 완화하는 방법을 찾는 업무였다. 그러나 장이 원하는 곳에 자리가 나지 않아서 대신 장은 ‘가짜 참여 활동(fake engagement)’을 적발해내는 신생팀에 합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가짜 참여 활동이란 페이스북 플랫폼에서 대가를 주거나 허위로 좋아요, 공유, 댓글 등을 생성하는 걸 말한다. 이 신생팀은 이런 활동 중 특히 ‘각본대로 하는 허위 활동(scripted inauthentic activity)’을 적발해내는 데 집중했다. 이는 누군가의 인기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자동화된 봇(bot)을 이용해 가짜 ‘좋아요’와 ‘공유’를 생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식의 허위 활동은 대부분 단지 허영심을 채우려고 좋아요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년 만에 장은 정치인들도 같은 수법을 써서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고 페이스북 플랫폼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음을 직감했다. 이런 사례를 브라질과 인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두 곳 다 총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각본대로 하는 허위 활동을 찾는 과정에서 장은 훨씬 더 우려되는 사례를 발견하기도 했다. 온두라스 대통령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Juan Orlando Hernández)의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는 마치 진짜 사용자처럼 보이도록 가짜 이름과 가짜 프로필 사진이 있는 페이지를 수백 개씩 만들고, 이를 온두라스 대통령의 게시물에 좋아요와 댓글, 공유가 쇄도하도록 만드는 데 이용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여러 개의 프로필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업 및 공인을 위한 페이지에는 이 같은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이 행위가 각본대로 하는 허위 활동으로 간주되진 않았지만 효과는 동일했다. 이는 일반 사용자들에게 에르난데스가 원래보다 더 유명하고 더 인기가 있다고 믿도록 오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에르난데스의 게시물이 사용자들의 뉴스피드 상단에 자리 잡도록 만들고 있었다. 2017년의 재선 승리가 부정 선거로 빚어진 일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는 정치인의 후안무치와 그 영향은 놀라웠다.
“이것이 끔찍한 행위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심지어는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이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회사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는 게 장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페이스북 페이지의 오남용을 다루는 ‘페이지 무결성팀(pages integrity team)’은 실제 사용자처럼 보이도록 한 페이지의 대량 생성을 차단하지 않았다. 사용자들의 뉴스피드에 표시되는 내용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뉴스피드 무결성팀(newsfeed integrity team)’은 순위 알고리즘(ranking algorithm)의 고려 사항에서 가짜 좋아요와 댓글을 제거하지 않았다. 장은 “이것이 악랄한 행위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심지어는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동의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1년 동안 장이 압력을 가한 뒤에야 마침내 이 가짜 페이지 네트워크가 삭제됐다. 몇 달 후 페이스북은 실제 사용자로 가장하는 가짜 페이지를 금지하는 새로운 ‘허위 행위 정책(inauthentic behavior policy)’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변경으로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즉, 이 정책에 따르라는 요구를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점 말이다.
그래서 장이 직접 나섰다. 장은 허영심 충족을 목적으로 한 좋아요를 없애는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데이터 스트림을 부지런히 뒤져가며 가짜 페이지, 가짜 계정, 그리고 정치인 페이지에서의 기타 ‘조직화된 허위 활동’들을 찾아다녔다. 장은 수십 개국에서 이러한 사례를 발견했다. 가장 심각한 사례는 아제르바이잔에서였고, 여기서는 정적을 괴롭히는 일에 이 페이지 기법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례를 찾아 신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장은 가짜 페이지나 가짜 계정의 네트워크를 제거하려면 관련 팀에 끈질기게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조작 활동이 페이스북 홍보에 그다지 위험이 되지 않는 국가에서는 강제 조치가 반복적으로 미뤄질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이 비판에 이의를 제기한다.) 책임감이 장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인구 1,160만 명의 볼리비아 사례에 대한 조치 요청이 더 중요할까, 아니면 인구 약 7,000만 명의 인도 라자스탄 사례에 대한 조치 요청이 더 중요할까?
그 후 2019년 가을, 볼리비아에서 시민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몇 주간 시위를 이어갔고, 진압 과정에서 3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 불과 몇 주 전에 장은 더 시급해 보이는 다른 사례들을 처리하느라 볼리비아 사례의 우선순위를 실제로 낮췄었다. 이 소식을 듣고 장은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이성적으로는 자신의 결정과 이 사건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을 끌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허위 활동은 너무 보잘것없어서 그 효과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는 그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장은 “그때부터 잠이 안 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다른 누군가는 이런 힘든 일을 그만두거나 어쩌면 대처할 요령으로 책임을 회피하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지만 장은 개인적 희생을 크게 치르면서 혼자 힘으로 잘못을 바로잡아보려고 분투했다.
볼리비아 사건과 해고 조치 사이의 1년 동안 장은 갖은 노력을 다 하다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이미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증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또 위험해졌다. 늘 세계 뉴스를 탐독하던 장은 외국의 정치적 혼란 상황과 더는 거리를 둘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압박감 때문에 친구와 연인과도 멀어졌다. 장은 점점 고립되어갔고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진정제와 항우울제를 계속 늘렸고 복용량은 6배까지 증가했다.
장의 관점에서 이 작업에 왜 그토록 그가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건 그의 정체성과 연관돼 있다. 장은 미시간주 앤아버에서, 중국 본토에서 이민 온 부모의 딸로 자랐다. 어려서부터 장은 높은 학업 수준을 유지했고 조숙한 학생임을 입증해 보였다. 예닐곱 살에 그는 물리학 입문서를 읽었고 우주의 구성 요소에 매료되었다. 이런 열정으로 미시간대학에서 우주론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장은 두 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고, 그 중 한 편은 단일 저자로 집필했다.
학부 때 장의 지도교수였던 드라간 후테러(Dragan Huterer)는 “장은 월등하게 총명했다. 내가 함께 연구했던 학생들 중 가장 똑똑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대학원생보다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장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다섯 살 때부터 그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장은 한 소년에 관한 동화책을 읽었다. 동화책 속 소년은 친구에게서 자기 팔꿈치에 입을 맞추면 소녀로 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그 후로 오랫동안 내 팔꿈치에 입을 맞춰보려고 노력했다”고 그는 말한다.
장은 이를 감추려고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부모님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은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중학교 2학년 봄이었다. 이제 막 비가 내렸었다. 장은 욕실에 웅크리고 앉아, 아버지가 욕실 문을 두드려 부술 때, 창문으로 뛰어내릴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장은 결국 뛰어내리지 않기로 결심했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그저 아버지에게 맞고만 있었다. “근본적으로 나는 불완전한 상황 속에 머물러 문제를 고쳐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말한다. 다음날 장은 멍든 곳을 가리기 위해 긴팔 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고 선생님이 눈치챌 경우를 대비해 핑계도 생각해두었다. 그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장은 말한다.
(이메일로 연락을 취했을 때 장의 아버지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내가 딸아이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알게 된 후 어린 딸을 구타했다고 주장했다니 서글프다. 그건 정말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장의 아버지는 썼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부터 장을 알고 지낸 여러 사람들이 아버지의 학대 행위에 대한 장의 설명이 맞다고 입증해주었다.)
“이들을 포기하고 내팽개치는 것은 나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에 대한 배신일 것이다.”
대학 때 장은 성전환수술을 하기로 결심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그와 의절했다. 그러나 곧 장은 마침내 여자로 제대로 인식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남자로 생각할 때 어떻게 대해줬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가 되니 모든 게 달라졌다.” 장이 말했다.
최고의 물리학 박사 과정에 전부 합격한 장은 그중에서 프린스턴 대학을 선택했다. 그런데 오리엔테이션 도중 기계 가공실 안내를 맡은 사람이 다른 학생들 앞에서 장을 지목하며 그가 마치 실력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그를 소개했다. 한두 번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프린스턴 대학에 공식적으로 그렇게 소개됐다. 뭐, 아주 적절한 소개인 것 같기도 했다”라고 장은 말했다.

그때 사건 이후로 성차별은 날로 심해졌다. 거의 곧바로 한 남자 대학원생이 장을 스토킹하고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장은 생물물리학과에서 논문 지도교수를 선택했다. 이로써 다른 건물에서 연구를 수행하게 되면서 장은 성추행 가해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장이 사실 생물물리학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든 또는 다른 이유로든 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매우 불행했던 장은 3년 만에 박사학위 과정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마침내 대학 당국에 성추행 사실을 알렸다. “대학 당국은 ‘이건 그 사람 말에 반대하는 당신의 말이다’라고 했다. 이제는 왜 내가 줄리아와 인터뷰하면서 내가 했던 모든 말을 기록해놨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가디언의 줄리아 캐리 웡을 언급했다. “나는 또 다시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더라’라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고 장은 설명한다.
(프린스턴대 대변인은 개별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면서도 “포용적이고 따뜻한 교육 및 연구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대학의 약속을 언명했다. “프린스턴 대는 성추행을 포함한 성적 위법행위를 겪은 모든 대학 구성원을 지원하고자 한다”고 밝혀왔다.)
“이런 경험의 공통점은, 책임 질 주체가 수수방관하는 것을 내가 거듭해서 겪어왔다는 점이다”라고 장은 퇴사 메모에 썼다. “나는 내가 필요로 한 권위자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은 적이 없다… 각각의 경우, 그들은 그들의 의무를 적은 서한을 작성했지만 진정한 뜻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결정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고 장은 썼다.
“그러니 처음부터 이 일이 나에게 왜 그렇게 개인적인 일로 느껴졌는지, 온두라스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을 방치하지 않으려고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싸웠는지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장은 썼다. “이들을 포기하고 내팽개치는 것은 나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에 대한 배신일 것이다”라고 그는 역설했다.
장이 내부고발에 나서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 때는 2019년 가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쇠약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장은 페이스북의 공식 시스템이 작동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장은 자신이 실패자가 봐 걱정스러웠다. “‘내가 다음날 버스에 치이면 이 일은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했다”고 장은 말한다. 장에게는 이 동일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가 필요했다.
우연히 장은 받은 편지함에서 기자가 보내온 이메일 한 통을 발견했다. 가디언의 기술 담당 선임 기자였던 웡은 당시, 새로운 취재원을 발굴하기 위해 페이스북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장은 이 기회를 잡았고 함께 만나 비공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그날 장은 예방책으로 회사에서 지급 받은 전화기와 컴퓨터를 전 동거인의 집에 맡겨두었다. 페이스북이 자신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동거인인 네스 이오 카인(Ness Io Kain)은 장이 돌아왔을 때 조금은 안심한 듯이 보였다고 회상한다. “장이 뭔가를 해냈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주 차분한 반응이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고 카인은 말한다.
잠깐은 페이스북의 일이 진척되는 것처럼 보였다. 장은 페이스북의 정책 변경과 온두라스 대통령의 가짜 네트워크 삭제 조치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추진력으로 보았다. 장은 긴급 상황에 대한 대처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받았고, 장이 하는 일이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찬사도 들었다.
그러나 장이 더 많은 지원을 거듭 요구했음에도 경영진은 다른 우선 순위를 내세웠다. 또한 회사 정책을 상습적으로 위반하는 정치인 계정에 대한 사용 중지나 벌칙 부과와 같은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해보려는 장의 제안도 일축했다. 이로 인해 장은 끝없는 파이어호스(firehose)*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장이 삭제한 조작 네트워크는 종종 불과 몇 시간만이나 아니면 며칠 후에 재빨리 다시 돌아왔다. “갈수록 소쿠리 하나로 바닷물을 다 비워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장은 말한다.
*‘컴퓨터 통신망에서 흐름 제어(flow control) 메커니즘이 없거나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여 수신측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패킷을 송신측에 보내는 현상.’
“페이스북에 근무했을 때만큼 내 자폐증이 싫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러다 2020년 1월, 흐름이 바뀌었다. 장의 상사와 또 그 위의 상사가 모두 장에게 정치 관련 작업을 중단하고 배정된 업무에 충실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회사에 근무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그 위의 상사가 말한 것을 장은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계속할 팀이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은 비밀리에 그 작업을 계속했다.
압박이 가중되고 건강이 악화되자 장은 결국 자신이 퇴사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렸다. 미 대선이 끝난 후에 떠날 계획을 세웠다. 왜냐하면 미 대선을 자신이 처리해야 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진의 계획은 달랐다. 지난해 8월, 장은 성과 부진을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근무 마지막 날 내부 게시판에 퇴사 메모를 게시한 지 몇 시간 만에, 페이스북은 이를 삭제했다(비록 직원들의 분노가 확산하자 나중에 편집본을 복구하긴 했지만 말이다). 몇 시간 후, 인사과 직원은 전화를 걸어와 장이 개인 웹사이트에 게시한 비밀번호로 보호되어 있는 사본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장은 협상을 시도했다. 즉, 내부 게시판에 올린 메모를 복구시켜준다면 요청대로 하겠다고 말이다. 다음날, 대신에 장은 페이스북의 항의로 그의 웹사이트 전체를 삭제했다는 호스팅 서버 업체의 통지를 받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업체는 그의 도메인까지 삭제했다.
페이스북 때문에 겪은 이 모든 곤경에도 불구하고 장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책망한다. 메모에서 그는 회사 동료들에게 어쩌면 자신이 누를 끼쳤을지도 모르겠다고 사과했고, 더 잘해내지 못하고 떠나게 돼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몇 달 후 레딧 AMA(Ask Me Anything) 질의응답 게시판에서 장은 여러 국가의 시민들에게, 자신이 충분히 빠르게 행동하지 못한 것과 장기적인 해결책에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자폐증인 장은 나에게 만약 자신에게 자폐증이 없었다면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을까 하고 묻기도 했다. “나는 남을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데 재주가 없다”며 “만약 내가 달변가로 태어났더라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장은 말한다.
“페이스북에서 근무했을 때만큼 내 자폐증이 싫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고 장은 말한다.
내부 고발을 준비하면서 장은 마지막 희생을 감수했다. 즉, 자신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었다. 이는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트랜스젠더의 권리가 대단히 정치적인 논쟁거리인 미국에서, 장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일이 당파적 이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몇몇 국가들의 경우 트랜스젠더를 징역형이나 심지어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로 취급하는 해외에서, 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부고발을 들으려 하지 않는 일을 원치 않았다.
이는 세계 각국의 선거 개입을 단속할 때 장이 반복적으로 치러왔던 희생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장은 모든 정치인을 동등하게 대했다. 예를 들어, 어느 아제르바이잔 정치인의 가짜 활동을 삭제하면서 불가피하게 동성애 혐오를 옹호하는 상대 정치인의 뒤를 밀어주는 형국이 될 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인간으로 보든 보지 않든 간에,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가디언 기사가 게재되던 날 밤, 장은 대중의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자신이 언론의 주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장이 페이스북 퇴사 후 만난 여자친구 리사 단즈(Lisa Danz)는 “장이 실제로 인터뷰에서 얼마나 잘했는지에 대해 스스로도 놀란 것 같다”고 말한다. “장은 아주 잘 아는 자료가 있고 그것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단즈는 말한다.
궁극적으로 결과는 장이 상상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 미국의 여러 언론 매체에서 후속 보도를 냈고, 마찬가지로 조작 활동으로 영향을 받은 국가들의 언론 매체에서도 후속 보도를 냈다. 그러나 장이 아는 한, 그가 바라던 바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즉, 페이스북이 마침내 장이 남기고 간 일을 최우선 과제로 처리하도록 만들 수 있는 대형 스캔들이란 목표 말이다.
페이스북은 다시 한 번 이런 비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기활동팀(fake-engagement team)’이 장의 작업을 계속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은 다른 증거를 내놓는다. 바로 아제르바이잔의 가짜 페이지 네트워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장은 “페이스북이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은 내부고발에 나서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 일을 책임지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주저 없이 더 적대적인 국가에서 권력자와 맞서느라 다른 이들이 직면해온 결과에 대해 장은 술술 이야기한다. 정부 부패를 조사했다는 이유로 살해된 기자들,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총살된 시위대 등을 말이다.
“이들에 비하면 나는 새발의 피일 뿐이다”라고 장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