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고의 유명 국립공원이 비트코인 채굴을 시작한 이유
한 남자가 숲이 우거진 산을 정찰하고 있다. 손에 쥔 AK-47 소총은 정글에서의 전투를 위해 추가 클립을 장착해 제법 무게가 나가지만 그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다.
이곳 콩고민주공화국(이하 ‘민주콩고’) 동부에서는 소련군의 구식 무기를 단돈 40 달러(약 5만 원)에 암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다와(Dawa)라는 미신과 마법을 믿는 민주콩고의 반군들은 토지, 목재, 상아, 그리고 이 지역의 오랜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한 희귀 광물들을 약탈한다.
그러나 피로에 찌든 이 남자는 반군이 아니다. 그는 멸종 위기에 처한 마운틴 고릴라로 유명해진 비룽가 국립공원(Virunga National Park, 이하 ‘비룽가’)의 경비 대원으로 이 무법지대에서 힘을 가진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오늘 이 경비 대원의 임무는 조금 다르다. 그는 공원 외부의 작은 마을 루비로(Luviro)에서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이 운영하는 비트코인 광산을 지키고 있다. 이 광산은 청정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한다. 이 새로운 시도는 공원 자체와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전문가들은 암호화폐와 환경보전의 연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22년 3월 말의 어느 무더운 날, 그는 수천 대의 강력한 컴퓨터로 가득 찬 컨테이너 10대의 앞을 서성이고 있다. 한낮의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러다 갑자기 수평선 너머에서 무엇인가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는 베레모를 고쳐 쓰고 세스나 비행기가 착륙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인다.
비행기는 곧 위험할 정도로 가파른 경사의 착륙대에 안착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조종하던 52세의 비룽가 국립공원 소장 에마뉘엘 드 메로드(Emmanuel de Merode)가 내린다. 정기적인 점검을 위해 컨테이너를 방문한 드 메로드는 한 손으로 가방의 가죽끈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경비 대원들에게 경례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경비 대원들은 가슴을 활짝 펴고 꼿꼿이 서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깨끗하게 면도를 한 드 메로드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무기를 지니지 않은 사람이다. 뒤의 세스나 비행기의 날개에는 총알구멍이 곳곳에 나 있고 은박 테이프로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드 메로드는 맹렬하게 짖는 경비견들을 지나 40피트(약 12미터) 폭의 크롬 마감된 녹색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간다. 전기 배선, 노트북, 사람의 체취로 가득한 내부에는 메쉬 조끼를 입은 기술자 팀이 암호화폐 광산을 관리하고 있다.
컨테이너 안의 장비들은 하루 종일 복잡한 수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 보수로 수천 달러 가치의 디지털 화폐를 수령한다. 장비의 전력은 산의 거대한 수력 발전소에서 공급된다. 푸른 열대우림으로 둘러싸인 이곳의 컨테이너들은 21세기 녹색 기술(green tech)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사실 드 메로드의 전략은 여러 측면에서 가망성이 거의 없었다. 공권력이 부패하고 삼림파괴가 만연하며 전력망과 정부의 상태 모두 불안정한 이 지역에서 해외 자본의 투자 유치는 쉽지 않은 일이다. 민주콩고 고마 대학교(University of Goma)를 졸업하고 암호화폐 광산에서 일하는 24살의 조나스 므바부모자(Jonas Mbavumoja)는 “인터넷 연결 불량, 생산성을 낮추는 열악한 기후, 고립된 작업환경 등 많은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근방의 반군들도 큰 위협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폭력, 반군의 침략, 미사일 공격, 유혈사태 등은 이 지역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공원, 비룽가에 중대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지난 4년간 창궐한 질병과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폭력과 유혈사태가 이어지면서 비룽가의 자금은 완전히 바닥났고 지역사회에는 새로운 기회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민주콩고 정부는 국립공원 총예산의 약 1%만을 지원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예산을 국립공원이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비룽가가 비트코인 채굴을 시작한 이유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보통 환경보전이나 지역사회의 발전과 관련이 없고 오히려 그 반대로 알려져 있다. 드 메로드의 전략은 비룽가의 주력 천연자원을 토지에서 수력 에너지로 전환해 공원과 지역사회 모두 혜택을 누리는 큰 그림의 일환이다. 암호화폐 광산 운영은 다소 독특한 발상이지만, 수익성이 높고 친환경적이다.
비트코인 판매로 발생한 수익은 국립공원 직원들의 급여는 물론 도로나 양수장 같은 기반 시설 확충에 사용된다.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수력 발전소의 전력을 사용해 사업 발전을 지원한다.
암호화폐 광산은 우연한 기회로 탄생했지만, 드 메로드는 공원의 청정에너지를 이용해 지속 가능한 경제를 구축할 방법이라고 믿는다.
드 메로드는 원래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전력망을 점진적으로 구축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반군에 의한 납치 사건이 일어나 비룽가의 관광이 전면 중단되었다. 그리고 2019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해 다시 한번 관광을 중단해야 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창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공원 수익의 40%를 차지했던 관광 수익이 완전히 사라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원을 폐쇄하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드 메로드는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BRENT STIRTON/GETTY IMAGES FOR WWF-CANON
2020년 코로나19로 세계가 봉쇄되었을 때 비룽가는 채굴을 시작했고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급격히 치솟았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 같다”라고 드 메로드는 말했다.
지난 3월 말 드 메로드가 정기점검을 위해 컨테이너를 방문했을 때 콩고인 기술자들은 프랑스어로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당시 비트코인은 약 4만 4,000달러(약 5,000만 원)에 거래되었고 월 수익은 약 15만 달러(약 2억 원)로 예상되었다. 이는 전성기 때 관광으로 벌어들였던 수익과 비슷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공원에 운 좋은 날들이 계속될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비룽가는 반군과 거대 석유회사의 위협에 맞서 싸우는 내용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비룽가>(2014년)로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위협이 다가오면서 모든 상황이 위태로워졌다.
민주콩고 정부는 최근 자국 내 석유 매장지와 비룽가 국립공원 주변 지역까지 경매로 내놓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시추 작업이 시작되면 공원 인근의 생명과 야생동물 서식지가 파괴된다. 동시에 지구의 환경도 위험에 직면했다. 콩고 분지는 아마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우림이자 중요한 탄소 싱크(흡수원)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M23이라 불리는 반군이 비룽가의 마운틴 고릴라 서식지를 점령하고 민주콩고군과 전투를 벌이며 마을들을 약탈하고 있다. 과거에 M23는 비룽가와 직접적인 충돌을 피했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 상황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최근 FTX 거래소가 파산하고 이 충격이 암호화폐 산업을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드 메로드의 전략은 성공 확률이 낮은 도박처럼 보인다. 그러나 드 메로드는 매일 채굴을 통해 수익이 창출되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가치가 변동하더라도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드 메로드는 비트코인 광산이 여전히 비룽가의 주요 소득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이타주의자도, 암호화폐 사기꾼도 아니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실용 주의자에 가깝다.
비룽가가 다가오는 위협을 계속 버티는 한 드 메로드의 전략도 유효할 것이다.
혼란 속에서 탄생한 ‘놀라운 해결책’
민주콩고는 아름다운 자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폭우와 풍부한 화산성 토양으로 생성된 에메랄드빛 바다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비룽가의 한쪽 면은 콩고 분지, 다른 한쪽 면은 우간다 및 르완다 국경에 접해 있다. 3,000 평방 마일(약 7,800㎢)에 달하는 공원 내부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마운틴 고릴라의 약 3분의 1을 포함해 아프리카 육지 동물의 절반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약 500만 명의 사람이 공원 외곽에 거주한다. 대부분이 진흙을 바른 집에 살며 요리, 조명, 난방 등에 사용할 전력 부족을 호소한다. 공원 내부에도 약 8만 명이 거주한다. 거주민들은 민주콩고가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시절, 1925년 비룽가 국립공원이 창설되기도 전에 정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폭력사태에서 도망친 난민들도 있다.
이런 연유로 공원에서 농사, 낚시, 사냥, 벌목 등이 모두 불법임에도 주민들은 버젓이 숯과 석탄, 식재료를 구하고 있다. 그 결과 비룽가는 점점 황폐해져 갔고 2001년과 2020년 사이에 전체 삼림의 약 10%를 잃었다. 드 메로드는 매년 1억 7,000만 달러(약 2,100억 원) 가치의 삼림과 상아를 잃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다. 지역 군벌들에게 돈을 지급하지 못하거나 굶어 죽는 것뿐이다. 부패를 위한 완벽한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다.
“민주콩고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에 너무 혼란스러운 곳이다”
19세기 벨기에 군주의 참혹한 통치를 다룬 책 《레오폴드 왕의 유령(King Leopold’s Ghost)》의 저자 애덤 호크실드(Adam Hochschild)는 “민주콩고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에 너무 혼란스러운 곳”이라고 말했다. 호크실드는 “광활한 토지, 수백 개의 언어, 부의 착취를 위해 진행된 식민지화 등 매우 복잡한 사정을 가지고 있다”라며 “이곳에서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는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민주콩고에는 우크라이나에 필적할 정도로 많은 실향민이 있으며 수십 년 동안의 유엔(UN) 평화 유지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쟁이 계속되어 왔다. 주민들이 공원에서 수집한 자원으로 얻은 수익의 대부분은 무장 반군에게 돌아가며, 다른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주민들은 반군에 직접 가입하기도 한다. 1994년에 발생한 르완다 대학살과 같은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종족 간의 분쟁도 있다. 어떤 반군은 이슬람 국가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가장 규모가 큰 반군은 투치족이 이끄는 M23로 유엔은 M23의 배후에 르완다가 있음을 의심하고 있다. (르완다는 부정하지만 그들은 민주콩고의 자원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 비룽가는 직원들을 매장하는 유일한 유네스코(UNESCO) 문화유산이 되었다. 1996년부터 한 달에 한 명 꼴로 살해당한 경비 대원들의 수가 이제 200명을 넘어섰다. 8년간 경비 대원으로 근무한 케루비니 놀레얌바제(Cherubin Nolayambaje)는 이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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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룽가 경비 대원의 수는 여성 경비 대원 35명을 포함해 총 800명 정도다. 그들은 순찰을 돌면서 무장한 반군들이나 불법적으로 농사를 짓거나 거주하는 민간인들과 종종 마주친다. 인근 마을 루추루(Rutshuru)에서 협상가로 활동하는 삼손 루키라(Samson Rukira)는 주민들 대부분이 공원의 경계선이 어딘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곳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경비 대원들은 마주치는 주민들과 대화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드 메로드는 공원의 막대한 자원에 접근할 수 없는 지역사회의 불만을 이해한다. 그는 “수십만, 수백만 명이 고통받고 있지만 우리는 단기간 내 이 공원을 귀중한 자산으로 바꾸어야 한다. 실패한다면 득 보다 실이 많아질 것”이라며 “우리는 이 생태계와 공원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드 메로드의 계획은 2013년부터 운영된 마테베(Matebe), 무트완가(Mutwanga), 루비로(Luviro)의 3곳의 수력 발전소에 의존한다. 네 번째 수력 발전소는 현재 공사 중이다. 수력 발전소에서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면 요리를 하기 위해 나무를 벨 필요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커피나 치아시드 생산과 같은 신규 사업이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신규 사업에는 비트코인 채굴 광산도 빠질 수 없다.
“꼭 풀고 싶은 오해가 있다. 비룽가의 목표는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민주콩고에서 지역사회의 도움 없이 환경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라고 드 메로드는 강조했다.
루비로 수력 발전소도 다른 비룽가 발전소와 마찬가지로 흐르는 강물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즉, 댐이나 저수지와 달리 지속적인 강물의 흐름으로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그러나 발전소는 공사 시작 단계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건설 노동자들은 먼저 산 정상을 깎아내 활주로를 확보했고 기본적인 소도구만을 사용해 바위로 길을 만들었다. 반군의 공격을 받는 와중에도 공사는 계속 진행되었다.
공사 도중 공원의 가장 큰 후원자 중 한 명이자 투자자 워런 버핏의 아들인 하워드 버핏(Howard Buffett)이 드 메로드와 자금 사용에 대한 의견이 충돌하면서 후원을 취소하기도 했다. 하워드 버핏은 드 메로드를 놀라운 남자(amazing guy)라고 불렀지만, 그의 투자금은 고마(Goma)시에 전력 공급망을 구축하는 발전소에 사용하겠다고 전했다.
드 메로드는 버핏의 선택을 인정하면서 제시된 의혹에 대해서는 어떤 자금도 횡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루비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유럽연합(EU)과 영국으로부터 1,700만 달러(약 210억 원)의 보조금과 대출금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에너지 프로젝트에는 발전소는 물론 전력 공급망도 포함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에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면 목표는 물 건너간 셈이다. 우리의 의도는 좋았지만, 전력 공급에 대한 부분은 잘 몰랐다”라고 드 메로는 설명했다.
게다가 루비로는 조금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루비로는 마테베나 무트완가처럼 전력을 구매할 대상이 충분하지 않았다. 원래는 전력 공급망을 구축하고 구매자를 점점 늘려가려 했지만 그 사이 발전소 생산 전력은 넘쳐날 것이 분명했다. 생산적이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이 필요했다.
2019년까지 루비로 발전소는 완공되지 않았다. 공사를 마무리하고 발전소를 가동할 자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꼭 풀고 싶은 오해가 있다. 비룽가의 목표는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마침내 드 메로드와 동료들은 문제를 해결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20만 달러(약 2억 원)의 비트코인 채굴용 하드웨어(rigs)를 구입해 장단기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수력 에너지를 활용할 방도를 찾는 것이다.
“몇 주에 걸쳐 검토한 결과 우리는 암호화폐가 놀라운 해결책임을 깨달았다”고 드 메로드는 말했다.
벨기에 왕자와 ‘비트코인계의 인디아나 존스’의 만남
뜻밖에도 해결책은 비룽가에서 거의 4,000마일(약 6,000km) 떨어진 프랑스 루아르 계곡의 웅장한 성에서 나왔다. 2020년 2월의 어느 날, 암호화폐 투자자 세바스티앵 구스필루(Sébastien Gouspillou)는 특별한 시간을 기대하며 정오 경에 세랑 성(Château de Serrant)에 도착한다.
구스필루는 프랑스에서는 흔히 고성을 빌려 숙박하고 비용도 호텔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성 앞에서 구스필루를 맞이한 사람은 18세기부터 세랑 성을 소유하고 있는 귀족 가문의 공주였다. 조금 후 점심 식사 자리에서 공주는 아들인 에마뉘엘 드 메로드를 데려왔다.
비룽가 국립공원의 소장 드 메로드는 벨기에 귀족의 아들로 튀니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불과 11살 무렵에 케냐의 전설적인 사자 전문가 조지 애덤슨(George Adamson)과 시간을 보냈다. 이후 인류학자가 되기 위한 수련을 거쳤고 1993년 민주콩고로 떠났다. 그는 가람바 국립공원(Garamba National Park)에서 경비 대원들을 도우면서 동시에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부시-미트 트레이드(bush-meat trade, 야생동물을 식용 목적으로 사냥하고 거래하는 것)를 연구했다. 1999년에는 아프리카 중서부의 가봉으로 거처를 옮겼고 로페 국립공원(Lopé National Park)에서 고릴라 서식지 보호 및 생태관광지 구축에 힘썼다. 그곳에서 그는 연구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20년에서 30년의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그 어느 지역보다 민주콩고 동부가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1년 민주콩고에서 내전이 격화되던 무렵 드 메로드는 비룽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종종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비 대원들을 만났다. 그는 유명한 화석 사냥꾼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와 급여를 충당하기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참고로 리키는 나중에 드 메로드의 장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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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드 매 로드는 비룽가 국립공원의 소장이 되었다. 한 무리의 고릴라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진이 세계적인 분노를 일으키며 그 여파로 이전 소장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콩고의 공무원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을 약속했다. 그 결과 ‘벨기에 왕자’는 과거 벨기에 식민지에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드 메로드는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소장직을 맡아 수행한 지 2개월이 되었을 때 반군이 루망가보에 있는 공원 본부를 습격하자 그는 반군과 협상하고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진을 넘었다. 통제권을 되찾은 드 메로드는 기존 경비 대원 수백 명을 해고하고 상급 지휘관들을 체포, 새로운 경비 대원들을 선발해 훈련시켰다. 그는 경비 대원들의 급여를 인상하고 더 나은 식량과 장비를 지급했다. 경비 대원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고 비룽가의 야생동물 개체수도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드 메로드의 이야기는 거의 막을 내릴 뻔했다. 그는 민주콩고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영국의 석유회사 소코(Soco)에 대한 증거를 전달하기 위해 고마로 향했다. 그리고 홀로 랜드로버를 운전해 공원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무장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 드 메로드는 대응 사격을 한 후 숲속으로 급히 뛰어 들어가 숨었지만, 총알이 가슴을 관통하고 갈비뼈 5개가 부러졌으며 폐에 구멍이 났다. 배에도 찢어진 상처를 입었다. 간과 횡격막, 폐, 등까지 이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오토바이를 탄 농부들이 쓰러진 그를 발견해 도움에 나섰다. 고마의 병원에 겨우 도착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인도인과 콩고인 의사 사이에서 소통이 쉽지 않았다. X-레이 촬영 기구도 없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의사들은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
습격으로부터 이틀 후 드 메로드가 여전히 회복하고 있을 때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Tribeca Film Festival)에서 <비룽가(Virunga)>가 초연되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무장단체 M23과 영국의 석유회사 소코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룽가 국립공원의 투쟁을 담았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기획해 더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아카데미상 후보까지 올랐다. 드 메로드와 그의 동료들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다.
암호화폐 투자자 구스필루가 드 메로드를 처음 만났을 때 받은 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세랑 성에서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당시 드 메로드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자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공원을 구하기 위해 비룽가의 넘치는 전력을 이용할 방도가 절실했다. 구스필루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을 하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구스필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드 메로드를 검색해 그의 영웅적인 일화를 보았다. “나는 드 메로드를 돕고 싶었다. 우리는 전력을 사서 암호화폐를 채굴하곤 했는데 효율성이 좋지 않았다. 우리가 낸 대금은 카자흐스탄의 소수 집권층인 올리가르히(oligarchs)들의 배만 불릴지도 모르지만, 비룽가에서는 공원을 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라며 구스필루는 협력의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가 낸 대금은 카자흐스탄의 소수 집권층 올리가르히(oligarchs)들의 배만 불릴지도 모르지만, 비룽가에서는 공원을 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부동산 투자자에서 비트코인 투자자로 전환한 구스필루는 비트코인계의 인디아나 존스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채찍을 들고 멋진 중절모를 쓴 대신 청바지를 즐겨 입고 머리는 벗겨졌지만, 모험가로서의 명성만은 존스와 비견할 만하다. 구스필루가 CEO로 있는 빅 블록 그린서비스(Big Block Green Services)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도시’로 전환하도록 조언하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등 논란이 되는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2020년 초 비룽가는 구스필루의 도움으로 중고 서버를 구입해 비트코인 채굴 광산 구축에 나섰다. 수력 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채굴 광산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마에서 컨테이너와 비트코인 채굴용 하드웨어를 구입한 후 반군이 점령한 정글에서 이틀 동안 흙길을 따라 운송해야 했다.
“이탈리아 대사도 그 길을 다니다가 살해당했다”라고 구스필루는 말했다. 그가 루비로에 도착했을 때 드 메로드가 내어준 방갈로에는 총알구멍이 나 있었다. 차마 부인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그 무렵 비룽가 국립공원에서는 사망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2020년 4월 비룽가는 역사상 최악의 공격을 받았고 경비 대원 12명, 운전사 1명,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그해 10월에는 경비 대원 1명이 사망했고 2021년 1월에 6명, 10월에 1명, 11월에 1명이 차례로 사망했다. 드 메로드는 “가장 힘겨웠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2020년 9월 루비로 암호화폐 채굴 광산이 드디어 운영을 시작했다.
드 메로드는 현지에 취업공고를 올려 질문지 답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콩고인 9명을 광산에 고용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비트코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지역사회에 만연한 사기 때문에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많은 수가 암호화폐 지갑을 보유하고 있다.
고마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광산의 기술자로 일하는 27세의 어니스트 케야(Ernest Kyeya)는 “암호화폐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라고 말한다.
“전문용어에 적응하고 채굴 장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장비를 유지하고 보수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단순히 노동자가 아니라 팀의 일원으로서 대우를 받았다. 책임감을 가지니 일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고 케야는 말했다.
루비로 채굴 광산의 직원들은 21일을 연이어 근무하고 5일간 휴가를 받는다. 캐야는 “멋진 일은 아니지만 즐겁게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마을에서의 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다. 여기서 하루에 13시간, 때로는 더 일할 때도 있는데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 정글 속에서는 달리 할 일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수력 발전소 4개의 터빈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10개의 컨테이너가 탄생했다. 각 컨테이너는 250개에서 500개의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 비룽가는 이 중 3개의 컨테이너를 소유하고 있으며, 여기서 발생한 모든 수익은 공원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나머지 7개는 구스필루의 소유다. 그는 서버를 운영하는 전력 대금을 비룽가에 지불하고, 발생한 나머지 수익을 투자자들과 나눈다.
드 메로드는 공원 소유의 광산이 지난해 50만 달러(약 6억 원)의 수익을 냈다고 추정한다. 코로나19 봉쇄로 인해 공원에 다른 수익이 전혀 없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유인원을 형상화한 NFT가 업계에서 인기를 끌자 공원은 NFT 프로젝트 사이버 콩즈(CyberKongz)와 협력해 크리스티에서 경매를 진행했다. 그 결과 120만 달러(약 15억 원)의 추가 수익을 얻었고 수익금의 일부를 현재 컨테이너 3개 중 2개를 사는 데 사용했다.
구세주가 된 비트코인
“암호화폐를 이용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드 메로드는 말했다.
“에마뉘엘은 암호화폐의 수익성에 놀랐지만, 나는 이미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대화가 암호화폐의 지속가능성으로 전환되자 구스필루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구스필루처럼 확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모든 콩고인들이 급격한 발전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일부가 혜택을 받더라도 대다수는 직업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수년간 전쟁과 외국의 착취에 시달린 지역 주민들은 공원을 칭찬하면서 동시에 저주를 퍼붓는다.
국제 사회에서도 비트코인이 구세주가 되는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어 보인다.
비판의 이유는 코인 채굴에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력은 보통 화석연료에서 생산된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비트코인을 “전례 없는 오염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통신 연결에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 미국 최대의 암호화폐 채굴 회사 7개가 미국 휴스턴의 전체 가구와 맞먹는 수준의 전력을 사용한다. (미국의 암호화폐 회사들은 탄소 배출량을 보고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
ALEX PEñA/GETTY IMAGES
오늘날 세계적인 암호화폐 채굴 회사들이 개발도상국의 지역사회를 착취하고 있다. 일부 채굴 회사들은 빈약한 지역적 규제나 세금 혜택을 이용해 전력을 실컷 이용하고 환경을 훼손한 다음 또 다른 타깃을 향해 떠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 Amsterdam)에서 암호화폐의 지속가능성을 연구하는 알렉스 드 브리스(Alex de Vries) 박사 후보자는 암호화폐는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혜택이 극단적으로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채굴 회사들은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고 드 브리스는 강조했다.
투자에서 이익을 얻으려면 24시간 채굴용 하드웨어를 작동해야 한다. 드 브리스는 “지역사회 입장에서는 채굴 회사들이 없는 편이 낫다”고 잘라 말했다.
드 브리스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영국 노섬브리아 대학교(Northumbria University)의 국제 개발 조교수 피터 하우슨(Peter Howson)도 민주콩고의 청정에너지가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우슨은 “비트코인 채굴 회사들은 민주콩고에서 더 생산적인 형태의 녹색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녹색 산업을 통해서는 전투원, 밀렵꾼, 불법 벌목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채굴 산업은 가장 큰 비트코인 회사조차 소수의 인원만을 고용하며 계약조건도 매우 불안정하다. 그래서야 좋은 사업 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비룽가는 수력 에너지를 다른 곳에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경히 말했다.
2013년부터 민주콩고에서 일하고 있는 네덜란드 출신의 정치 생태학자 에스터르 마레이넌(Esther Marijnen)도 비슷한 생각이다. 마레이넌은 루비로의 채굴 광산이 환경보전 목적과 상충되며 암호화폐가 고릴라 보호구역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의문을 가진다. 특히 수력 에너지를 둘러싼 비룽가의 모든 발전을 놓고 안정성이나 일자리 창출 면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비룽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외딴 지역에 전기를 공급해 공원 주변 거주민들과의 관계를 증진하려 하는가, 아니면 사업을 유치하려 하는가?” 마레이넌은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 뉴욕대학교 콩고 연구그룹의 설립자이자 전직 유엔(UN) 조사관이며 드 메로드의 친구이기도 한 제이슨 스턴스(Jason Stearns)는 반군도 수력 에너지로 이익을 취해 세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스턴스는 “에마뉘엘의 새로운 생각과 인내심을 존경하지만 자유시장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이념은 지난 20년간 민주콩고가 겪은 현실을 통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구스필루는 여전히 비트코인 채굴에 대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이 프로젝트를 비룽가의 미래 사업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암호화폐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우리는 청정에너지를 사용한다. 이 방식은 다른 곳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서 구스필루는 화석연료가 아닌 강의 흐름을 이용한 수력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루비로에 전력을 구입하는 고객이 충분하지 않으니 지역사회에 대한 착취도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가장 큰 비트코인 회사조차 소수의 인력만을 고용하며 계약조건도 매우 불안정하다. 그래서야 좋은 사업 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비룽가는 수력 에너지를 다른 곳에 사용할 필요가 있다”
투자회사 마이크로스트레티지(MicroStrategy)의 공동 설립자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는 비룽가의 사업 모델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세일러는 비룽가 모델을 “청정에너지가 풍부하지만, 그 에너지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거나 서비스를 생산할 수 없는 국가에서 이상적인 첨단기술 산업”이라고 평가했다. 참고로 드 메로드는 다른 주의 국립공원에게도 수로를 수력 발전소로 전환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캐나다 퀘벡에서 수력 에너지로 채굴 광산을 운영하는 아르고 블록체인(Argo Blockchain)의 CEO 피터 월(Peter Wall)은 전력이 광산 운영비의 85%를 차지하기 때문에 저전력 만으로도 수익성을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월은 “비룽가 외에는 어떤 국립공원도 채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채굴 광산을 운영하려면 전력, 장비, 자금의 3가지 조건은 필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룽가는 이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
루비로를 포함한 모든 암호화폐 채굴 광산은 심각한 가격 변동에도 대처해야 한다. 현재 비트코인의 가치는 지난해 최고점을 기록한 후 70% 넘게 폭락했다. 그리고 FTX의 파산으로 320억 달러(약 39조 원)의 가치가 하룻밤에 사라졌다. 이 모든 악재에 암호화폐가 환경을 파괴한 사례들까지 더해지면 비룽가가 의존하는 중요한 후원자들이 당장 후원을 중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드 메로드는 여전히 암호화폐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우리는 비트코인의 가치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 자체를 창출한다. 보통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사고 가치가 하락하면 돈을 잃는다. 그러나 우리는 남아도는 에너지를 사용해 비트코인을 만들어내고 가치가 없는 비트코인은 바로 수익화한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드 메로드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현재 수준의 1%까지 폭락해도 비룽가의 10개의 컨테이너는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것이 드 메로드가 바라는 자체적으로 유지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위해 공원에서는 많은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필자가 드 메로드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광산은 어떻게 되냐고 묻자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내게 문제가 생겨도 암호화폐 지갑은 공원의 재무팀이 관리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어쨌거나 공원의 운영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계속 보유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 문제가 생기거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비밀번호를 분실한다면 잠깐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결국 큰 비용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미래를 건 도전
드 메로드는 암호화폐가 비룽가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며 더 큰 친환경 사업 모델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영국의 경제 자문기관 캠브리지 이코노 매트릭스(Cambridge Econometrics)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커피와 초콜릿 재배를 포함한 비룽가의 녹색 투자가 2025년까지 연간 GDP에 미치는 영향은 2억 200만 달러(약 2,490억 원)에 달한다.
드 메로드는 “우리는 녹색 경제가 품고 있는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다”라며 “수백 개의 산업들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장기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석유에 의존하는 과거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루비로에서 남쪽으로 100마일(약 161km) 정도 떨어진 마테베 수력 발전소의 정상에 올라가면 전선이 그물처럼 루추루 마을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루추루는 대도시는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소소한 성공을 거뒀다. 이 지역은 현재 M23이 영지권을 주장하고 있다. 봄이 지날 무렵 필자는 마을의 루사(RUSA) 비누 공장을 방문했다. 이 공장은 비룽가가 지원하는 소액 대출로 장비를 구입해 하루에 5,000개의 비누를 생산한다. 공장의 주인 크리스토프 바샤카(Christophe Bashaka)는 수력 에너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활짝 웃었다.
비누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옥수수 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엘리아스 해비마나(Elias Habimana)는 두꺼운 가죽 코트를 벗고 계산기를 가져와 얼마나 비용을 절감했는지 필자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수력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그는 비싼 발전기를 버리고 30명의 직원을 고용할 수 있었다.
해비마나는 “드 메로드 덕분에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베니 지역 근방에는 공원이 운영하는 초콜릿 공장이 있다. 이 공장은 카카오를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공정한 가격과 합법적인 시장을 제공한다. 그리고 수력 에너지를 사용해 달마다 1만 개의 초콜릿바를 생산하고 있다. 이 초콜릿바는 배우 벤 애플렉(Ben Affleck)이 창립한 비정부기구(NGO) 이스턴콩고이니셔티브(Eastern Congo Initiative)와의 협력을 통해 미국의 상점에서 판매된다.
드 메로드에 따르면 비룽가의 수력 발전소는 1만 2,000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 민주콩고의 평균 가구는 최소 5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일자리 한 개라도 절망적인 지역에서는 큰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다. 구스필루는 암호화폐 채굴 광산 구축에 참여한 임시 노동자 중 몇 명은 전직 반군이었다고 언급했다.
“우리는 녹색 경제가 품고 있는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다”
루망가보에 있는 비룽가 국립공원 본부에는 지금까지의 희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공원이 압수한 숯 더미 근처에는 마운틴 고릴라들과 최초의 여성 경비 대원이 잠든 묘지가 있다. 전투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별로 가득한 작업장에서 동물 인형과 소총 끈을 만들고 있다. 마마 노엘라(Mama Noella)라는 이름의 여성은 남편이 사망한 후 5개월 동안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작업을 배웠다. 노엘라는 “그이가 생전에 이곳을 참 좋아했다”라며 “내게도 새로운 희망을 준 곳”이라고 말했다.
필자가 공원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아침, 갑자기 포격이 시작되었다. 다음날에는 M23과 민주콩고군이 전투에 돌입했다. 비룽가의 직원들과 수천 명의 주민들의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녔다.
필자가 떠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드 메로드는 루망가보에서 철수를 지시했고 마테베가 그 뒤를 이었다. 이후 유엔의 헬리콥터가 반군이 장악한 지역에 추락하며 루추루와 마테베까지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다. 이 모든 상황에서도 비룽가의 경비 대원들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운이 좋았는지 신의 은총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M23은 결국 산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이 평화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 해 여름에 전투가 재개되었고 반군이 고마를 향해 진격하면서 마을들이 함락되었다. 민주콩고 정부가 석유 매장지를 경매에 부치는 계획을 발표하자 8월 안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이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착취 지역을 공동으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후에는 비룽가 국립공원의 수력 발전소에도 포격이 가해졌고 고마로 연결되는 고압선이 타격을 입었다. M23은 루추루에서 유혈사태를 계속 일으켰고 10월에는 루망가보까지 점령했다. 드 메로드와 공원의 관리대원들은 10년 전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섬뜩한 상황이 다시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올해 1월 초 M23은 루망가보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공원 직원들은 M23이 최근 몇 달 동안 다른 점령지에서도 철수했지만 다시 돌아왔으며, 이 지역에서 아직 반군들이 보인다고 경고한다. M23가 떠난다고 해도 다른 반군들이 남아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경 마이마이(Mai-Mai)라고 불리는 한 무장단체가 경비 대원 2명을 살해했다.
한편 구스필루는 여전히 암호화폐의 희망찬 미래를 전파하며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진행되는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가나에서 머물고 있다. 그리고 루비로에 돌아가기 전에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리는 중이다.
드 메로드도 마찬가지로 예전의 상태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케야와 므바부모자는 여전히 암호화폐 광산에서 열심히 일하며 하드웨어를 가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행운을 거쳐 살아남은 비룽가 국립공원의 소장은 이제 소수의 인원들과 함께 루비로에 갇힌 상태다. 지난해 8월 말 필자와의 통화에서 남긴 말처럼 그는 지금 ‘간신히 버텨 나가는 중’이다.
*이 글을 쓴 애덤 포페스쿠(Adam Popescu)는 미국 LA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