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더리움도 한 지분증명 방식, 비트코인은 왜 거부할까?
지난해, 이더리움(Ethereum)이 친환경 암호화폐로 거듭났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암호화폐 플랫폼 이더리움이 새로운 거래 블록과 NFT, 기타 정보들을 블록체인에 추가하는 에너지 효율적 프레임워크인 ‘지분증명(proof of stake)’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일명 ‘더 머지(The Merge)’라는 이름의 업그레이드를 완료한 이더리움은 직접적으로 소비되는 전력량을 99%까지 줄였다. 반면, 비트코인은 필리핀 전체에 맞먹는 양의 전력을 소비하면서 여전히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은 새로운 코인을 창출하고 처리하는 계산 집약적 과정으로 어느 순간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2021년 중반 중국이 비트코인 채굴을 단속하기 시작하면서 채굴업자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찾아 떠났다. 전력의 생산방식이 청정하진 않지만 가격만큼은 저렴한, 예를 들면 카자흐스탄 같은 곳이었다. 채굴업자들은 탄소 집약적인 석탄 발전소에 의존하는 전력망에 부담을 가해 국지적인 정전을 일으키고 카자흐스탄인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미국 뉴욕주 북부에서도 채굴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 채굴업자들이 폐쇄된 공장과 빈 창고를 점거하면서 지역 주민들은 전력 요금 인상은 물론 데이터 센터의 팬에서 나오는 고주파 소음에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채굴이 지역 환경에 미치는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의 38%가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1개를 거래할 때 미국의 한 가구가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전력이 소비된다. 대체 왜 이런 방식을 고수해야 할까? 그동안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변화에 격렬하게 저항해 왔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엄청난 탄소 발자국에 신물이 난 규제 기관들과 환경론자들이 그 입장을 재고하도록 압력을 넣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자흐스탄, 이란, 싱가포르를 포함한 여러 국가들은 암호화폐 채굴에 제한을 걸었다. 유럽의회는 암호화폐 기업의 환경 공시를 의무화하는 획기적인 암호화폐 법안, ‘암호화폐 자산 시장 법률안(Markets in Crypto Assets, MiCA)’을 올해 4월에 통과시킬 계획이다. 이 법안은 2024년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에 있어 이 규제는 단지 시작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유럽중앙은행은 여러 국가들이 전기차의 활성화를 위해 내연기관 차량에 금지령을 내린 것과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의 지속적인 탄소 배출에도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과거에 언급한 바 있다. 암호화폐의 전력 사용을 추적하는 웹사이트 디지코노미스트(Digiconomist)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알렉스 드 브리스(Alex de Vries)는 “유럽의회의 일부 의원들은 비트코인이 왜 이더리움의 절차를 밟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라고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비트코인의 전력 소비를 단속하려는 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11월, 뉴욕주는 화석연료 발전을 이용한 암호화폐 채굴을 잠정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한 최초의 주가 됐다. 또한, 이 법안은 암호화폐 채굴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주 정부의 노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을까?
작업증명 vs. 지분증명
암호화폐는 은행처럼 공공 원장(블록체인의 모든 거래를 공유하는 디지털 기록)을 감독하는 중앙 관리자가 없다. 대신 그들은 업데이트에 동의하기 위해 합의 매커니즘을 사용한다. 비트코인의 합의 매커니즘, ‘작업증명(proof of work)’ 방식에서는 전 세계의 컴퓨터 네트워크인 ‘채굴자(miners)’가 일종의 복권에 당첨되기 위해 전력을 사용한다. 당첨된 채굴자는 블록체인에 다음 블록을 추가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코인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당첨 확률은 채굴자가 수행한 계산의 수와 정비례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복권 당첨만을 전담하는 대규모 서버들이 전 세계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더리움의 합의 매커니즘, ‘지분증명(proof of stake)’ 방식은 엄청난 전력 소모가 필요하지 않다. 여기에는 채굴자 대신 수많은 ‘검증인(validators)’이 존재한다. 검증인이 되려면 정해진 액수의 코인(이더리움의 경우 32 이더리움)을 지분으로 예치, 이른바 ‘스테이킹(staking)’해야 한다. 스테이킹한 검증인은 새로운 거래 블록을 확인해 이를 블록체인에 추가할 기회를 얻고 스테이킹한 코인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더 많은 코인을 스테이킹할수록 거래 블록을 추가하는데 선택될 가능성도 더 커진다.
작업증명과 지분증명 모두 목표는 동일하다. 그러나 작업증명이 한 국가의 사용량에 맞먹는 전력을 사용하는 반면, 지분증명은 참가자들이 단순히 코인을 보유하도록 요구한다. 두 방식 모두 이론적으로는 탈중앙화(decentralize)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늘날 비트코인 채굴의 대부분이 5개의 대규모 채굴 풀에서 이루어진다. 지분증명은 코인이 많이 보유한 사람이 블록체인을 지배한다.
이더리움이 직면한 압력
비트코인은 하나의 암호화폐일 뿐이며 개발자와 채굴자로 구성된다. 반면, 이더리움은 탈중앙화된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스마트 계약 플랫폼이다. 수많은 프로젝트, 암호화폐, NFT 및 NFT 플랫폼들이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항상 이더리움에 지분증명을 적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탈중앙화된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한 지분증명 알고리즘 개발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어떤 이들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그에게 말했다) 작업증명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이더리움은 지분증명으로 전환하는데 거의 7년이 걸렸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 스테이블 코인 회사 서클(Circle)과 테더(Tether), NFT 프로젝트 유가랩스(Yuga Labs)와 오픈씨(OpenSea) 등 이더리움의 주요 프로젝트들 상당수가 지분증명으로의 전환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실제로 지분증명은 작업증명보다 이점이 많았다. 환경적인 측면만 아니라 거래 수수료도 낮출 수 있다. 이더리움의 전환에는 이 프로젝트들의 도움이 컸다. 이더리움 플랫폼을 감독하는 비영리단체, 이더리움 재단(Ethereum Foundation)이 비상상황을 선언하지 않고도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더리움 채굴자들이 경쟁 체인을 만들어 작업증명 방식을 존속시킬 위험이 있었다. 즉, 현 체인에 존재하는 모든 스마트 계약과 코인 및 NFT가 새로운 체인으로 자동으로 복제되는, 이른바 ‘포크(forked)’될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이더리움의 경쟁 버전을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관심을 끌지 못했고 지분증명 방식이 결국 승리했다.
정치적인 문제
원칙적으로는 주도권을 잡고 비트코인을 지분증명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한 소규모 집단이 존재한다. 비트코인은 오픈 소스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누구든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 코드 업데이트는 ‘메인테이너(maintainers)’로 알려진 소규모 개발자 팀이 진행한다. 메인테이너는 비트코인 스타트업 블록스트림(Blockstream),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 MIT 미디어랩(MIT Media Lab)의 연구 프로젝트인 MIT 디지털 통화 이니셔티브(MIT Digital Currency Initiative) 같은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다.
이 메인테이너들은 이더리움이 그랬던 것처럼 비트코인을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보수적인 집단이다. 비트코인은 최초의 작업증명 방식 암호화폐다. 비트코인은 수시로 코드의 수정과 업데이트가 이루짐에도 기본적으로는 2009년의 오리지널 버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더리움의 경쟁 암호화폐 ‘아발란체(Avalanche)’의 창시자 에민 귄 시러(Emin Gün Sirer)는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급진적인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설명했다. 그는 “그들은 어떤 위험도 감수하려 하지 않고, 이 변화가 궁극적으로 다른 알고리즘 규제에 대한 신뢰까지 깨뜨리는 상황을 우려한다”라고 말했다. 알고리즘 규제에는 채굴 가능한 최대 비트코인 수량 등이 포함되는데 현재 2,100만개로 한정해 둔 상태다.
비트코인이 창시될 때부터 그 행적을 쫓아온 브라질 캄피나스 주립대학교의 컴퓨터 공학 교수 호르헤 스톨피(Jorge Stolfi)는 “비트코인이 지분증명 방식으로 전환하는데 어떤 기술적 장애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톨피 교수는 메인테이너만으로는 전환이 불가능하며 채굴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채굴자들은 하루 평균 900개의 새로운 비트코인(2,000만 달러, 한화 기준 약 261억 원 이상)을 모으고, 채굴한 신규 블록의 거래 수수료를 챙긴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포기할 위기에 처한다면 “그들은 “비트코인의 작업증명 방식을 유지하려 할 것이며, 작업증명이 진정한 비트코인이고 지분증명은 쓰레기 코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스톨피 교수는 설명했다.
스톨피 교수는 새로운 지분증명과 전통적인 작업증명 간의 싸움은 결국 비트코인 가격이 두 코인 사이에서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마케팅의 몫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비트코인 캐시가 준 교훈
비트코인이 겪었던 최근의 큰 변화는 비트코인 캐시(Bitcoin Cash)였다. 이는 블록 크기를 늘려 비트코인을 실제 화폐로서 더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2015년부터 비트코인은 1블록(1메가바이트)마다 거래내역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트워크는 갈수록 혼잡해져 처리 시간이 늘어나고 거래 수수료도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일부 개발자와 채굴자들은 비트코인이 초당 더 많은 거래를 처리할 수 있도록 블록 크기를 2메가바이트, 또는 8메가바이트로 높이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러나 실행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50피트 블록체인의 습격(Attack of the 50 Foot Blockchain)》의 저자 데이비드 제라드(David Gerard)는 “간단한 해결책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커뮤니티의 분열, 코드 포크, 보복적 디도스(DDOS) 공격, 살해 위협, 중국 채굴자들과 미국 프로그래머 간의 분열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비트코인 프로토콜의 문제들은 합의 절차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캐시는 2017년 8월 비트코인 소프트웨어의 포크를 통해 생성된 화폐다. 그러나 대부분의 채굴자와 개발자는 기존의 체인을 고수했고, 비트코인 캐시는 비트코인의 또 다른 스핀오프 버전으로 남았다. 비트코인 캐시는 비트코인의 유용성을 높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었지만,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이 캐시를 ‘반란’, 그리고 ‘기업인수’라고 부르며 적대감을 표시한다.
지분증명은 비트코인 캐시보다 훨씬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표면적으로 비트코인이 지분증명을 채택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연구원이며, 암호화폐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니콜라스 위버(Nicholas Weaver)는 비트코인은 절대 지분증명으로 전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위버는 비트코인 채굴자들이 작업증명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한, 기존 방식을 고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트코인의 심각한 전력 소비를 줄일 유일한 방법은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뿐이다. 비트코인이 가치가 없어지면 채굴도 중단될 것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아마도 비트코인은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다면, 에너지 소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정부나 지역사회에 의해 규제가 이뤄질 수도 있다.
디지코노미스트의 드 브리스는 “비트코인 관계자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지는 싸움이 될 뿐”이라며, “그들이 이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우리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