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엑스터시 임상시험 참가자의 고백
네이선 맥지 씨(사진)가 엑스터시(MDMA) 임상시험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처음으로 겪은 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그가 불과 네 살 때였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겪어온 ‘끔찍한’ 경험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것을 힘들어할 정도로 PTSD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왔다.
그동안 그는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해야 했다. 의사들마다 진단 결과가 달랐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서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 난독증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진단을 받았다. 네이선씨는 2019년이 돼서야 PTSD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PTSD란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사건을 당하거나 목격해서 극심한 스트레스, 즉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을 말한다.
네이선씨는 치료를 위해 우울증약, 신경안정제, ADHD 약 등 여러 약을 복용했지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위해 매일 다량의 약을 복용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살면서 단 한 순간도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마음이 늘 어딘가 불편하고 한 구석이 무거웠다. 생각이 온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누군가 머릿속 회로를 끊고, 나는 끊어진 회로를 다시 이으려고 발버둥치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이선씨는 엑스터시가 중증 PTSD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인 3상 임상시험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단계를 통과하게 되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치료제로 승인 받을 수 있게 된다.
흔히 ‘엑스터시’로 불리는 MDMA는 향정신성 합성 물질로 클럽이나 파티에서 환각을 경험하기 위해 사용돼 일명 ‘클럽 마약’으로 알려져 있다. MDMA를 투여하면 뇌에서 쾌감을 유발하는 화학물질 세로토닌이 대량 분비되는데, MDMA가 감정적 반응을 통제하는 대뇌 변연계(邊緣系)의 활동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MDMA 치료법이 PTSD 환자가 그동안 트라우마를 일으켰던 경험을 다시 해도 공포나 난처함이나 슬픔 같은 격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이론이 맞는지 검증해보기 위해 캘리포니아 기반 비영리단체 MAPS(Multidisciplinary Association for Psychedelic Studies)가 무작위 이중맹검(double blind) 방식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이중맹검 방식이란 실험이나 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험 진행자나 실험 참여자의 편향성을 배제하고 실험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진행자와 참여자 모두에게 실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네이선씨가 참가한 게 이 시험이다. 참가자들은 8시간씩 걸리는 치료를 총 세 차례 받았다.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그룹은 위약(僞藥)을, 그리고 다른 한 그룹은 엑스터시를 2회 투여한 뒤 전문 상담사와 심리치료를 병행했다.
2021년 5월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지에 발표된 임상시험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참가자 90명 중 엑스터시 투여 그룹에서 증상이 현저히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엑스터시 투여 그룹의 67%는 참가 두 달 만에 PTSD 증상이 사라졌다. 위약 그룹에서는 32%가 증상이 사라졌다.
“이제 나에게 삶은 더 이상 견뎌야 할 대상이 아니라 탐구와 감사의 대상이다 .”
영국 최초로 브리스톨의 한 병원에서 환각요법 도입에 참여한 영국 출진 연구자 벤 세사(Ben Sessa)는 FDA가 2023년 말까지는 MDMA를 정신질환 치료제로 승인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미국과 영국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는 실로시빈(psilocybin)과 케타민(ketamine) 등과 같은 다양한 환각제의 치료 효능을 알아보기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되고 있다.
네이선씨에게 MDMA 치료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물었다. 다음은 그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Q: 그 동안 정신적 문제로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
A: 예전부터 일이 잘 안 풀렸다. 하는 일마다 잘 안됐다. 무엇을 해도 효과가 없었다. 다양한 치료를 받고 상담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2018년 1월에 회사에서 쫓겨났다. 우울감이 몰려왔다. 전에도 해고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그것이 만약 내 안의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면 이번에는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만약 상담사가 쇼핑몰에서 발가벗고 돌아다니라고 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Q: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A: 어느 날 밤 늦게까지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PTSD에 관한 글을 몇 시간째 뒤적거리다가 임상 참가자 모집 공고까지 보게 된 것이다. 공고를 보자 지원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원을 해놓고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내에게 말도 안 했다. 그런데 두 달 후에 갑자기 연구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나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Q: 치료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 차례대로 설명해주면 좋겠다.
A: 치료를 받는 건물은 밖에서 보면 다른 건물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밖에서 보면 그 안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엑스터시를 투여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들어가면 직원이 나와서 치료실로 안내한다. 직원을 따라 들어가면 소파와 침대, 이불, 베개가 준비되어 있다. 음악도 나온다. 음악은 치료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스파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방에는 햇살이 가득 비치고 창 밖으로 나무와 운하도 보인다. 평화롭다. 조금 있으면 상담사가 두 명 들어온다. 제일 먼저 체온, 혈압, 심박수 같은 것을 잰다. 상담사가 오늘 할 치료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해 주기도 한다. 상담사가 의식을 치르는 느낌으로 초에 불을 붙이면 치료가 시작된다. 조금 종교적이고 신비로운 느낌도 든다. 초에 불을 붙이면 상담사 중 한 명이 어딘가로 가서 알약 한 알을 작은 그릇에 담아 가져온다. 물 한 컵을 주며 약을 먹으라고 한다. 약을 먹고 그냥 앉아서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가벼운 대화를 하기도 한다.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내가 불쑥 “이건 MDMA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엑스터시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조금 예민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가 먹은 약이 MDMA인지 아닌지 알려주지 않았다. 수석 상담사는 대부분 거의 다 아는 얘기들만 늘어놓았다. 그런데 내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냥 알 수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눈동자가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했다. 묘하게 차분해졌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활짝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약을 먹기 전에 상담사가 약효가 나타나면 넘실대는 파도 같은 느낌이 들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눕는 것이 좋겠다 싶어, 침대에 누운 다음 음악에 집중하려고 눈에 천을 덮어 빛을 가렸다. 헤드폰도 있었다. 소리까지 전부 차단하고 싶으면 헤드폰을 쓰면 됐다. 머리 속에 온갖 것이 떠올랐다. 준비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고 상담사에게 알렸다.
그동안 겪은 그 모든 손가락질과 압박, 감정에서 벗어나 내가 겪은 일에 대해 거의 다 털어놓았다. 영화를 보면서 음향효과나 조명, 분장에 대해 얘기하듯, 나에게 일어난 사건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것을 분석하는 기분이었다. 그러자 마침내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마음을 억누르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내적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외적으로 상담사와 대화하거나 빛과 소리를 모두 막고 그냥 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시간이 좀 지나 약을 한 번 더 먹었다. 두 번째 약은 효과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어서 알이 조금 작았다. 효과가 거의 떨어지면 상담사들이 그날 치료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려 주었다.
아내가 나를 데리러 왔다. 아내는 치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내 상태가 좋아진 것이 눈에 보였다고 말한다. 훨씬 차분해 보였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하루가 꼬박 걸리는 치료를 총 세 번 받았다. 그 후 그 동안 알게 된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consolidation) 치료’를 몇 번 더 받았다.
Q: 지금 상태는?
A: 놀랄 만큼 호전됐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후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이제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구름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도 이제 없다. 물론 우울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우울해도 세상이 끝나거나 꼼짝 없이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그냥 오늘 하루 운이 좀 나빴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전에는 늘 스트레스에 치이고 내 인생에 좋은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것이 있으면 감사함을 느낀다. 나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고, 가족과 친구가 있다. 함께 있으면 정말 즐겁다. 나 자신에 대한 걱정도 훨씬 덜하게 되었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정말 많이 좋아졌다.
나는 올해 만으로 마흔 네 살이다. 내게 트라우마를 남긴 그 일은 겨우 네 살 때 일어났다. 그 일이 평생 나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 일 이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던 것이다. 이제 나는 그 일의 영향을 받았던 ‘나’는 사실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도 진짜 나 자신은 사실 늘 존재했다. 그렇지만 진짜 나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이제는 아니다. 네 살 때의 나 자신과 친해지는 중이다. 이제 나에게 삶은 더 이상 견뎌야 할 대상이 아니라 탐구와 감사의 대상이다.
Q: 환각요법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A: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승인을 받으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아주 조금의 위로와 위안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것을 단순히 마약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개인적으로는 쾌락을 위해 마약을 하는 것에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광란의 축제를 하듯 마약을 하면서 우울증을 고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실망할 것이다. 자격을 갖춘 상담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고 기운을 차릴 수 있다. 아주 좋은 치료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환경에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