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can’t tech fix its gender problem?

테크 업계는 대체 왜 젠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까?

실리콘밸리를 혁신으로 이끄는 요인이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10년 전 미국의 여성 벤처캐피털리스트 엘렌 파오(Ellen Pao)가 성차별을 당했다며 전 직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의 전 직장은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벤처캐피털 회사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였다. 그로부터 2년 후 여성 혐오가 결국 사회적인 혼란으로 이어진 ‘게이머게이트 논쟁(Gamergate)’이 불거졌고 성폭력 고발운동인 ‘#미투(MeToo)’ 스캔들이 터졌다. 또 테크 업계 유력 인사들의 매우 부적절한 언행이 연이어 폭로되었다. 이 모든 사태는 뒤늦게나마 대중에게 IT 산업의 고질적인 성차별 및 인종차별 문제, 고위층에서의 인종, 성별 다양성(representation) 결여 문제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가 실제 상황의 변화로 이어졌을까?

구색 갖추기식의 다양성 보고서(diversity reports), 즉 사내 성별 및 인종별 구성 현황을 발표하는 보고서가 많이 발표되고, 여성 컴퓨터 공학자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의 얼굴이 그려진 커피잔이 유행을 탔지만 테크 분야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이 산업이 규모 면에서 크게 성장한 것이었다. 2022년 시장이 전반적으로 하락세에 들어섰지만 5대 테크 회사 시가총액의 합은 8조 달러(약 1경 512조 원)에 달했다. 하지만 테크 기업들의 자산이 불어나고 기업들이 요란스럽게 ‘여성, 성소수자(LGBTQ+), 인종적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지원 방안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는 계속해서 백인 이성애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기업 과학기술 부문에서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은 전보다 높아졌지만, 실망스럽게도 25%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코딩 교육기관이 증설되고, 유명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여학생 수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반적으로 이 분야에서는 여성의 비중이 작으며, 특히 유색인종 여성을 중심으로 중도에 커리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다.

더욱이 시스템 변화에 수반되는 부담은 여성 스스로가 짊어져야 했다. 그들은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을 전공하며, 스스로 더 강한 자기 확신을 가져야만 했다. 메타(Meta)의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는 2013년 베스트셀러였던 그녀의 책 《린인(Lean In)》에서 여자들에게 마치 남자들처럼 더욱 강력히 주장하고 완고하게 밀어붙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자신감과 남성적인 허세만으로는 구조적인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었다. 특히 테크 업계에 근무하면서 아이를 가진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어려웠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재택근무를 채택한 회사가 많았지만 일터는 부모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다. 최근 딜로이트(Deloitte)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 분야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여성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더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약 6명이 일-가정 양립 문제를 이유로 직장을 바꿀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20% 이상의 여성은 테크 업계를 완전히 떠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아마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변화가 있었다. 지난 6월 샌드버그가 사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테라노스(Theranos)의 CEO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는 사기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아 형량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렇게 ‘#girlboss(걸 보스)’의 기세는 테크계 거물(techmogul)들의 남성성 과시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카우보이모자를 쓴 우주복 차림으로 남근 모양의 로켓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던 모습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미국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Roe v. Wade)’에 대한 판결을 번복함에 따라, 테크 대기업들은 자사 직원이 다른 주로 넘어가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경우 그에 대한 경비를 지원하겠다고 앞장섰다. 그러나 그들은 판결 자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를 꺼렸다. 메타는 직원들이 사내 게시판에서 이 판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막았고, 심지어 판결이 통탄스럽다는 내용의 샌드버그가 올린 소셜미디어 게시물의 공개 범위를 제한했다. 낙태권 및 이를 지지하는 여성들에 대한 지원은 이 정도 수준에 그쳤다.

테크 업계의 젠더 문제는 상당 부분 미국의 문제와 결부된다. 여성,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유색인종 여성은 모든 분야의 최고위층에서 매우 드물다. 하지만 테크 업계는 남들과 다르게 사고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며, 악마의 탈을 쓰지 않고도 돈을 벌겠다고 이야기하는 산업이다. 또한 이 산업은 오랜 역사에 걸쳐 수많은 여성 과학기술인을 고용해왔다.

한때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은 거의 완전히 여자들의 전문 영역이었다. 1980년까지만 해도 실리콘밸리의 프로그래밍 일자리 중 70%는 여성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비율은 완전히 뒤집혔다. 하드웨어 조립 라인에서도 여성 기술자들은 한때 남성 노동자들보다 2배 이상 더 많았다. 이러한 일자리들은 이제 거의 전부 해외 하청으로 전환되었다. 1986년 컴퓨터과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사람 중 36%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 이후 이 숫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교육에서 일자리까지 파이프라인의 문제, 컴퓨터광(tech-geek)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 추천받아 직원을 고용하는 이 산업 특유의 오래된 관행, 젠더와 상관없이 ‘실력주의(mertocracy)’만을 따른다는 지겨울 정도로 끈질긴 테크 업계의 허구. 하지만 이러한 모든 요소들도 변화를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

테크 업계에서 젠더 문제는 주로 ‘돈’ 때문에 생긴다. 

테크 산업은 커다란, 때로는 거대한 개인의 부를 만들었다. 이 자본 중 대부분은 남자에게 흘렀다. 테크 기업 경영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되었다. 테크 산업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20인 중에서 여자는 단 둘뿐이다. 한 명은 남성 테크 억만장자의 미망인이고, 다른 한 명은 또 다른 남성 억만장자의 전처다.

벤처캐피털 투자사는 테크 생태계에서 다양성이 가장 부족한 분야다. 백인 및 동양인 남자들이 전체 투자 결정의 78%를 책임지고, 전체 벤처 자본의 93%를 관리한다. 몇 년 전에 비해 여성이 주도하는 투자 펀드는 다소 증가했지만, 대다수의 벤처캐피털 회사에는 아직도 여성 제너럴파트너(GP)나 여성 펀드매니저가 단 한 명도 없다.

게다가 이러한 분야에 종사하는 소수의 여성들은 거의 모두가 백인이다. 2021년 미국 벤처캐피털 산업은 3,290억 달러라는 역대 최대 액수를 1만 7,000개가 넘는 거래를 통해 투자했다. 이 엄청난 자본 중 단 2%만이 여성이 단독으로 창업한 스타트업에 투자되었는데, 이는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2021년 상반기 벤처캐피털 투자 금액 중 흑인 여성 창업자의 스타트업에 돌아간 금액은 전체의 0.004% 미만이었다.

투자자와 창업자의 다양성 결여로 인한 영향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는 단지 누가 부자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기술회사들의 연구 목표, 그들이 개발하려는 상품, 진입하려는 시장의 종류를 결정한다.

오늘날 벤처캐피털 업계의 이러한 문제점들은 이미 70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 모습을 드러낸 해묵은 문제들이다. 이는 이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는 따로 있다. 기술 분야나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초기 미국 기술 산업의 성공 비결이라는 점이다.

시작: ‘경계가 허물어진 미래’

테크 산업에서 여자들의 황금기라 부를 수 있는 시기는 여태껏 없었다. 여성 비율이 더 높은 일자리는 주로 임금이 낮고 덜 중요하며, 작업자가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자리였다.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노동을 할 때, 남초 사회 속 그들은 흥미롭고 예외적이라는 시선을 받았다.

1935년 IBM의 최고경영자 토머스 왓슨 시니어(Thomas Watson Sr.)는 대학을 갓 졸업한 35명의 여성을 처음으로 ‘시스템 서비스 여성(Systems Service Women)’으로 고용하며 이를 언론에 널리 알렸다. 그녀들은 새로운 고객들에게 기술적 지원 업무를 할 예정이었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남자 직원들도 있었지만, 여자 직원들만이 입사 첫 주에 왓슨이 주최한 정찬 파티에서 꽃다발을 받으며 마치 사교계 입문자처럼 환대받았다.

1940년대 전시(戰時) 컴퓨터 프로젝트를 프로그래밍했던 여성들은 처음에 ‘오퍼레이터(operators)’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들 업무의 성격은 수천 명의 민첩한 전화 교환원 여성들과 별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1950년대 한 여성이 ‘프로그램 컴파일러(compilers)’를 발명하면서 이들은 ‘코더(coders)’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 명칭은 프로그래밍이 기계적이며 속기술이나 다름없다는 오래된 오해를 잘 보여준다.

당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계산기 ‘IBM SSEC(Selective Sequence Electronic Calculator)’의 조작대에 있는 한 여성 오퍼레이터. 1948년 IBM 뉴욕 사무소 모습. KEYSTONE/GETTY IMAGES

비슷한 시기에 IBM 경영진들은 뉴욕시 본사의 로비에 중앙 컴퓨터를 갖다 놓고, 여성 프로그래머들을 고용하여 그들이 그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길거리의 행인들이 볼 수 있게 했다. 한 상사가 여성 신입 사원에게 설명하기를, 이렇게 하면 ‘컴퓨터 조작이 간단해 보여서 남자들이 컴퓨터를 구입할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사이 기업들은 좋은 보수와 진급 조건을 내세워 남성 기술자들을 공격적으로 채용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성별에 따라 구분된 고용 안내문은 ‘당신의 열정과 전문성의 성장 앞에 무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문구를 통해 남성 엔지니어를 유혹하는 광고들로 가득 찼다.

컴퓨터의 초창기 역사를 살펴보면, 차별금지법이나 현대 페미니즘의 성취가 있기 전까지 미국 기업 문화의 고질적인 성차별주의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숱하게 많다. 특히 이 시기에 시니어 기술직까지 승진한 여성들은 군사기관이나 NASA에서 일했다. 이러한 곳은 승진 기준이 성문화되어 있어 고위직들의 간섭으로부터 좀 더 보호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장: ‘자본주의 올림픽’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주로 큰 단체에 머물러있던 반면, 남성 엔지니어들은 점차 학계나 직장생활을 떠나 스스로 창업의 길에 올랐다. 이러한 사업 모델은 캘리포니아 북부의 산타클라라 밸리(Santa Clara Valley) 지역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훈련받은 엔지니어들은 1930년대부터 동네 차고와 버려진 농장 건물에서 회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테크 업계의 산실로 등장한 것은 1950년대였다. 전쟁 기간 냉전 방위비는 실리콘밸리에 방위산업체가 몰려들게 하고,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새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스탠퍼드 대학 인근 지역을 변모시켰다. 이러한 기업들로 인해 이 지역은 실리콘밸리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이 기업들은 향후 업계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초기 실리콘밸리에서의 삶은 마치 1960년대 뉴욕 맨해튼의 광고 회사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매드맨(Mad Men)>의 등장인물과 비슷했다. 정장을 좀 덜 입고, 밤샘 근무가 더 많았으며, 회로 설계를 두고 이따금 서로에게 소리 질렀다는 점 정도가 달랐다. 직장에서 마주칠 수 있는 유일한 여성은 거의 비서직뿐이었다. 직원들은 8시 이전까지 출근해야 했고, 최대한 오래 근무한 후 같이 맥주를 마시러 가곤 했다. 1960년 대의 대안 문화는 반도체 업계에서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이들은 상호 교류 모임이 아니라 공학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는 이성적 사고방식과 다른 사람의 비난에 대한 무관심 같은 가치가 우대받았다. 내셔널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의 CEO인 돈 발렌타인(Don Valentine)은 한 신입 직원에게 “내가 널 뽑은 이유는 나한테 겁먹지 않은 게 너뿐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의 가정에 전업주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야말로 테크 역사에 숨겨진 주역으로, 전업주부들은 남편들이 업무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도록 자녀와 가정을 돌보았다. 드물게 있던 여성 경영자는 아이들과 몰래 통화하면서, 마치 가정에서의 책무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1964년 페어차일드(Fairchild)사의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THE MERCURY NEWS VIA GETTY IMAGES

1970년대까지 이러한 기업들의 성공으로 수백 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고작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다. 한 최첨단기술 기업가이자 실리콘밸리 투자자는 이를 ‘자본주의 올림픽’이라고 비유했다.

이러한 자본주의 올림픽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산업의 성공에 기여한 사람들도 있다. 수천 명의 여성이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제조사와 기타 제조 설비에서 일했다. 이들 중 일부는 모친이나 조모가 전쟁 전 밸리 지역의 과수원이나 과일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 계층의 동양인 혹은 멕시코계 미국인이었다. 고등 교육을 받고 과학기술직 일자리를 찾고 있던 미 동부 및 중서부 출신 백인 여성들도 이 지역에 몰려들었다.

실리콘밸리에는 기술직이 구할 만한 다른 직장이 거의 없었기에 여성은 더 낮은 임금에도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실리콘밸리 지역 공장의 평균 임금은 미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여성은 첨단기술 공장의 주요 인력이었지만, 지금 대다수의 공장은 해외에 위치하고 있다. 1970년 대 미국인이 소유한 멕시코의 한 공장은 600명의 인력을 고용하였는데 이 중 90%는 여성이었다. 50년이 지난 후에도 이러한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인도의 한 아이폰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90%는 여성이다. 베트남 기술 인력의 80%도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벤처: ‘소년 클럽’

1세대 반도체 백만장자들이 다른 회사에 그들의 경험을 전파함에 따라 이 분야의 치열한 경쟁 및 과로 문화는 곧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였다. 그중에서도 벤처캐피털 업계는 이러한 관행이 가장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곳이다.

밸리 지역의 초기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작은 규모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는데, 주로 젊은 남자가 나이 많고 훨씬 부유한 남자의 자본을 관리하는 형태였다. 이들의 숫자는 별로 많지 않아서, 샌프란시스코의 레스토랑 한 곳에 창업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홍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기에는 이 그룹 안에 기회가 무궁무진해서 거래를 한 번 놓친다고 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 리드 데니스(Reid Dennis)와 같은 창립 회원들은 그것을 ‘더 그룹(The Group)’이라고 불렀지만, 언론인인 존 W. 윌슨(John W. Wilson) 같은 다른 관찰자들은 ‘소년 클럽(The Boys Club)’이라고 불렀다.

실리콘밸리의 첫 번째 반도체 생산 업체인 쇼클리 반도체를 떠나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한 여덟 명은 훗날 ‘8명의 배신자’라고 불리게 된다. / WAYNE MILLER/MAGNUM PHOTOS

시장 하락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웠음에도, 벤처 사업은 1970년대 초반까지 확장했고, 이 시기 반도체 전문가들이 설립해 세운 회사들은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이 되었다. 진 클라이너(Gene Kleiner)는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떠나 클라이너 퍼킨스를 공동 설립했고, 제넨텍(Genentech), 선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 AOL(아메리카온라인), 구글, 아마존에 투자하여 크게 성공했다. ‘모욕의 달인(Master intimidator)’ 돈 발렌타인은 세콰이어캐피털(Sequoia Capital)을 설립하여 아타리(Atari)와 애플에 초기 단계 투자를 하였고, 이후 시스코(Cisco), 구글,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 등 수많은 기업에 투자했다.

세대: ‘패턴 인식’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영향력은 단순히 투자할 기업을 선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이 업계의 선배, 조언자, 전문인으로서, 기술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사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새로운 후배들에게 조언과 사업 감각을 제공한다.

실리콘밸리의 역사가인 레슬리 베를린(Leslie Berlin)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성공한 앞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재정적 지원과 경영 관리를 제공하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에 크게 기여한 숨은 요인이다.” 테크 업계에서도 베를린의 평가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경영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반도체 업계에서 배운 스티브 잡스는 이것을 릴레이 경주에서 배턴을 넘겨주는 모습에 비유하기도 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사람이 제품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벤처캐피털 업계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교수 조지스 도리옷(Geroges Doriot)은 “유능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통의 아이디어가 보통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아이디어보다 훨씬 낫다.”라고 이야기했다.

‘유능한 인재’를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전에 성공적으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다시 고용하거나 그들로부터 추천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실리콘밸리 모델의 다른 성공 요인이다. 이들은 세밀하게 짜인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들 중 다수는 여러 스타트업에서 같이 일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집단 중에는 너무 유명해져서 별명이 붙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의 첫 번째 반도체 생산 업체인 쇼클리 반도체(Shockley Semiconductor)를 떠나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설립한 8명은 훗날 ‘8명의 배신자(the Traitorous Eight)’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스탠퍼드 대학의 보수 학생 신문에 기고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페이팔(Paypal)이라는 기업이 설립되었는데, 이들은 이 기업의 성공에 힘입어 일명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라고 불리고 있다. 이들은 그들의 자금을 이용하여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거나 다른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벤처캐피털 기업들은 여러 벤처 기업 사이에 인적 네트워크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페이팔에 투자한 첫 기업은 세콰이어캐피털이었다.

벤처캐피털 투자자가 모르던 사람에게 투자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그들은 투자 대상의 외모나 느낌에 의존하곤 했다. 이 경우 그들은 이 사람이 기존에 성공했던 사람과 비슷한 성향인지 평가하는 것이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파트너 존 도어(John Doerr)는 이를 ‘패턴 인식’이라고 불렀다. 그는 대부분의 성공한 IT 업계 창업자들이 “모두 백인 남성에 괴짜이며, 하버드나 스탠퍼드를 중퇴했고, 사회적인 활동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존 도어는 이들을 사무실에서 만나보기만 해도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는데, 비록 드러내 놓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이들이 사교적인 자리에서 의도치 않게 저지르는 실수들이었다. 도어는 인텔에서 고위직까지 올랐으며, 여기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 업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벤처캐피털을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넷스케이프의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에게 자금과 경험을 제공했는데, 이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도어를 비롯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엘리트주의의 신봉자들이었으며 실리콘밸리의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들은 이러한 투자에서 배제되었다.

돈: ‘부유한 괴짜들’

1970년대에 걸쳐 하드웨어 업계는 실리콘밸리와 보스턴 지역을 장악했다. 소프트웨어는 독립된 상품으로 팔리기보다는, 대부분 컴퓨터를 살 때 같이 제공되거나 무료로 배포되었다. 이 덕분에 여성들은 프로그래밍 업종에서 직장을 가질 수 있었고, 분야가 전문화되어 많은 기업들이 이를 ‘반사회적, 수학적 사고방식을 가진 남성’에게 적합한 분야로 간주하는 오늘날에도 여성들이 소프트웨어 분야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출시될 무렵, 일부 기업가들은 프로그래밍이 직장을 가진 어머니들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일과 아이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면서도, 비는 시간에 집에서 모뎀만 연결하면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는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곧 끝나고 말았다. 프로그래밍은 더 이상 내향적인 초등학교 학부모를 위한 직업이 아니었다. 프로그래밍 업계에서 백만장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1982년과 1984년에 출판된 <타임>지 표지

이 산업의 중심에는 가장 유명한 소프트웨어 괴짜인 빌 게이츠에 의해 설립된 마이크로소프트가 있다. 1990년대 후반에 이 회사의 제품은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의 90% 이상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빌 게이츠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으며,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는 그 회사의 초기 투자자들이었다. 시애틀 외곽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캠퍼스에서는 소프트웨어 기술자 군단이 휴일 없이 일했다. 이 근로 인력은 대다수가 남성이어서, 누군가는 이들을 ‘외계 행성에서 온 남자 사교 모임(the frat house)’이라고 불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근로자 주식 보상으로 인해 1만 명이 넘은 젊은 남성 백만장자가 탄생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이끌었다. 1982년 <타임>지 표지에는 ‘일확천금 (Striking It Rich)’이라는 제목과 함께 스티브 잡스의 사진이 실렸고, 1984년에는 빌 게이츠가 플로피 디스크를 손에 들고 역시 <타임>지 표시를 장식했다. 1996년에는 넷스케이프의 공동 설립자 안드레센이 뒤를 이었다. ‘부유한 괴짜들’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표지에는 도금된 왕좌에 맨발로 앉아서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24세 백만장자의 사진이 실렸다.

권력: “내가 CEO다… 임마”

2000년 이후 실리콘밸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IT 업계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곳은 단순히 캘리포니아의 한 지역이 아니라 IT 산업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 산업의 새로운 세대들은 배우고 존경할 만한 멘토를 찾고 있었는데, 1997년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귀환하면서 그는 이 분야의 전설이 되었다. 2011년 그의 때 이른 죽음 이후 그의 행보는 더더욱 추앙받았고 IT 업계의 인물들은 그를 모방하고자 했다.

안드레센은 이제 성공한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되었고, 수십 년 전 이전 세대 기업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경영에 관한 그의 지식을 아무런 대가 없이 다음 세대에 전파하고 있다. 페이스북 초창기에 안드레센을 정기적으로 만났던 마크 저커버그는 “그는 어떻게 하면 경쟁력 있는 기술 기업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기업을 경영할지에 대해 자문해주었다. 그는 이 주제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나의 기업관도 확고해졌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IT 기업의 설립자들은 더 젊고 자신만만한 경향이 있었다. 소년기에 컴퓨터 스크린만 쳐다보면서 지냈던 남자들은 이제 권력과 돈,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페이스북의 설립 수개월 후, 마크 저커버그는 명함을 만들기로 했다. 그는 두 가지 버전의 명함을 주문했다. 한 명함에는 단순히 ‘CEO’라고만 적혀 있었다. 하지만 다른 명함에는 이처럼 적혀 있었다. ‘내가 CEO다… 임마!’

현재 테크 대기업들의 기업 문화는 초창기 반도체 생산 기업들만큼이나 직원들이 직장에 헌신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들 기업이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사내 복지를 통해 우리는 이 기업의 직원들이 어떠한 가치를 중요시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2017년 애플은 50억 달러를 들여 건설한 새 본사 건물로 입주했는데, 이 건물에는 2층 규모의 요가 공간과 7개의 카페가 입주해 있었다. 하지만 직원의 숫자가 1만 2,000명이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아동 보육 시설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테크 업계의 공개 비판?

이제 배턴은 암호화폐 열렬 지지자와 Web3.0 전도사들에게로 넘어갔다. 전보다 등장인물의 다양성은 다소 개선되었지만 새 시대의 잠재적인 슈퍼스타들, 예를 들면 코인베이스(Coinbase)의 브라이언 앤더슨(Brian Anderson)이나 FTX의 샘 뱅크맨프라이드(Sam Bankman-Fried) 같은 인물들은 여전히 백인 남성이다.

테크 업계의 젠더 비판은 고용인 운동의 새로운 물결에 기름을 붓고 있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다. 사상 최초로 실리콘밸리의 화이트칼라 직원들이 공개적으로 고용주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실제로 기업 관행을 바꾸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컴퓨터과학자 팀닛 게브루는 연구 결과를 두고 경영진과 갈등을 겪다가 구글에서 해고당했다고 알려졌다. 이후 그녀는 실리콘밸리의 사업과 연구 관행에 관한 영향력 있는 비평가가 되었다. / AP PHOTO/JEFF CHIU

오늘날 활동가, 단체, 내부고발자들에 관해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들 거의 모두가 여성이거나 생물학적 성에 불응하는 사람, 동성애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백인이 아니다. 이들은 테크 업계의 특권층 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 업계의 문제점을 더욱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2018년, 직장 내 성희롱 이슈가 제기된 앤디 루빈(Andy Rubin)에게 9,000만 달러 상당의 퇴직금이 제공된다는 사실에 반발하여 2만 명의 구글 직원이 참여한 파업에서, 여성은 시위 주동자 7명 중 6명을 차지했다. 컴퓨터 과학자인 팀닛 게브루(Timnit Gebru)는 당초 알고리즘의 편견과 관련된 연구 업적을 통해 구글에 입사하였으나, 곧 구글이 그녀의 연구 결과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고되었다. 이후 그녀는 실리콘밸리의 사업과 연구 관행에 관한 영향력 있는 비평가가 되었다. 이전에 구글, 옐프, 핀터레스트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는 데이터 과학자인 프랜시스 호건(Frances Haugen)은 페이스북에 입사한 이후 기업의 악의적인 경영 관행에 대항하여 수천 페이지의 내부 문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호건은 그녀가 직장을 그만둘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에 이러한 내부 고발을 시도할 수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업 내에서 고용인 활동주의는 날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급을 넘어선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지원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여성과 다양한 성별의 고용인들은 이러한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테크 산업은 자신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떠들기 좋아한다. 지금까지는 퇴행적이고 성차별적인 관습들이 이들 기업 속에 만연해 있었다. 이러한 관행을 바꾸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인 일이 될 것이다.

  • 이 글을 쓴 역사가인 마거릿 오마라(Margaret O’Mara)는 《더 코드: 실리콘밸리와 미국의 재건(The Code: Silicon Valley and the Remaking of America》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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