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가톨릭 지도 제작자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에 수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가 소유한 부동산 자산을 지도화하여 해당 토지들을 기후변화에 맞서는 데 활용할 수는 없을까? 처음에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몰리 버핸스(Molly Burhans)는 당연히 누군가가 이미 이런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지도 제작자인 버핸스는 당시 지리정보시스템(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GIS) 지도 제작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환경디자인 전공 대학원생이었다. 버핸스는 수녀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다. 어느 날 토지 활용도가 낮은 광활한 잔디밭에 위치한 수도원을 방문하게 된 버핸스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지, 그런 땅을 책임감 있게 관리한다면 기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버핸스는 “가톨릭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정부 의료 기관이자 가장 큰 비정부 교육 기관이고, 유엔(UN)의 모든 산하 기구를 다 합쳐야 겨우 능가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세계 제2의 인도주의적 지원 네트워크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성인인 중세의 박식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of Bingen)의 초상이 담긴 목걸이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버핸스는 “나는 가톨릭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큰 보전 네트워크(conservation network)를 구축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 네트워크를 누가 관리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작업에 착수한 2014년에 버핸스는 가톨릭교회에 그런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버핸스가 접촉한 교구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소유한 땅에 대한 기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가톨릭교회의 오랜 역사 및 분권화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가톨릭교회의 중심인 바티칸에서도 발견됐다. 버핸스는 예일대 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공공 데이터를 사용해 구축하기 시작한 지도를 보강하기 위해 바티칸에 있는 기록에 접근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지만, 해당 기록을 확인해본 결과 바티칸이 보유한 자체 지도 중 그 어느 것도 1901년 이후로 업데이트된 적이 없음을 발견했다.
이제 33세가 된 버핸스는 자신이 설립한 조직 굿랜드(GoodLands)를 통해 바로 이러한 공백을 메우고 싶다고 말했다. 버핸스는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 건축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버핸스는 GIS 프로그램 아크맵(ArcMap)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활용해서 교회의 부동산 자산을 지도화하고 해당 토지들을 유형에 따라 분류한 후 책임감 있는 토지 관리 방법을 제안한다. 전 세계 교회가 얼마나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일부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총 72만㎢ 정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GIS는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종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시스템이다. GIS 프로그램 아크맵을 사용해서 굿랜드는 어떤 지역의 부동산 가치, 분수계, 토지 소유권 경계, 토양의 유형, 토착지, 녹지 면적, 멸종 위기종 서식지 등에 대한 별도의 지도를 보유하는 대신에, 이러한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하나의 ‘슈퍼맵’에 나타낼 수 있다.
유명한 GIS 기업 에스리(Esri)의 설립자이자 사장인 잭 댄저먼드(Jack Dangermond)는 “인간의 활동과 지구를 서로 연결하는 작업은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 이는 지도 제작과 분석을 통해 가능한 한 분야”라면서, “버핸스의 작업은 이러한 기술을 더 지속가능한 토지 관리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고 말한다.
환경 보전 목적으로 지도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 굿랜드는 우선 특정 교구가 소유한 토지를 식별한다. 그러고 나서 해당 토지를 범주(병원, 대학, 기도원, 또는 도시 및 평지나 시골 및 산악 지역 등)에 따라 분류한 다음 머신러닝을 사용해 책임감 있는 토지 관리 옵션을 제안한다. 이는 사제나 수녀원장 등 교회의 결정권자들이 지역사회를 위한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할 때 시작점 역할을 한다.
굿랜드는 나무를 심을 장소를 정하는 것 정도의 간단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교구에서 한정적인 자금으로 지역에 나무를 다시 심고자 한다면, 굿랜드는 GIS 지도를 사용해서 교회 지도자들이 교구의 보유 자산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면서, 어느 장소에 집중해야 환경에 가장 이로울지 제안할 수 있다. 버핸스는 “이미 숲이 울창한 교외 교구에 나무 500그루를 심는 것보다는 주변에 숲이 전혀 없는 도시 교구에 나무 15그루를 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2015년 굿랜드를 설립한 이래로 버핸스는 교황과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관심을 얻어왔으며, 유엔의 지구의 영챔피언(Young Champion of the Earth)상, 아쇼카 펠로십(Ashoka Fellowship), 시에라클럽(Sierra Club)의 어스케어(EarthCare)상 등 다양한 상을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의 건축 조경 및 계획 전공 명예교수 칼 스타이니츠(Carl Steinitz)는 “버핸스는 세계를 국가 중심으로 보지 않고 기관 중심으로 본 유일한 사람이다. 버핸스의 작업은 매우 젊고 지적이며 적극적인 연구원이 가톨릭교회라는 거대한 기관을 위해 내놓은 대단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바티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매우 이로울 것이다”라고 평한다.
“우리에게는 바티칸에서 내놓는 정책이 필요하다. 내가 가톨릭교회의 유일한 여성 국가지리정보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몰리 버핸스
버핸스는 “처음에 나는 각 교구에서 자신들이 소유한 토지를 지도화하고 환경을 보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앞으로 우리는 ‘국립공원’처럼 ‘가톨릭공원’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버핸스는 컴퓨터과학 교수와 분자종양학 연구원 사이에서 태어났고, 과학과 데이터분석 언어들이 버핸스의 어린 시절을 형성했다. 어린 나이부터 시각적 사고를 했던 버핸스는 포토샵(Photoshop)과 드림위버(Dreamweaver)를 가지고 놀았으며, 14세에는 과학 그래픽을 디자인해서 아버지의 학술 논문과 함께 발표하기도 했다.
버핸스는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노화에 대한 아버지의 연구를 읽고 과학이 언젠가 노화 과정을 늦추거나 역전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종교에 이끌리게 되었다. 버핸스는 “나는 우리가 사랑으로 이 세상에 놓였으며, 그 뒤에는 어떤 의도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버핸스는 그 존재가 하느님이라고 생각했다.
버핸스는 2년간의 고대 그리스어 공부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오래된 표현을 담은 니케아 신경(Nicene Creed)을 번역하고 나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가톨릭은 버핸스가 7살이 될 때까지 가족과 함께 미사에 참석하곤 했던 종교였다.
버핸스 인생의 사명은 곧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사랑하는 법”을 알아내는 것이 되었다.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버핸스는 6개월 동안 과테말라를 여행하며 벽화를 그리고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런 다음 고향인 뉴욕 버펄로로 돌아가서 캐니시어스 대학(Canisius College)을 다니며 철학과 무용을 공부한 후 졸업했다.
버펄로에서 버핸스는 도시의 수많은 공터와 버려진 건물에 살면서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곳들을 재단장하며) 쓰레기통을 뒤져서 버려진 음식을 먹고 사는 펑크족, 불법 거주자, 프리건(freegan)들과 어울렸다. 버핸스가 ‘부동산의 힘’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곳에서였다. 이 무렵 버핸스는 첫 번째 벤처를 공동 설립했다. 낡은 산업 공간에서 출발한 첫 번째 회사 ‘그로옵(Gro-Op)’은 노동자 소유의 실내 아쿠아포닉(aquaponic: 물고기 양식과 수경재배를 융합한 기술) 수직농장으로, 신선한 음식을 구하기 어려운 ‘식품 사막(food desert)’에 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생선과 농작물을 제공했다. 이제 버핸스는 이 회사와 관련이 없지만, 그로옵은 여전히 버펄로 주민들을 위한 틸라피아와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버핸스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매사추세츠의 콘웨이 스쿨(Conway School) 환경디자인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버핸스는 이곳에서 GIS를 처음 접한 순간을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날’로 기억한다. 버핸스는 GIS에 대해 “마치 누군가가 내 생각을 그대로 가져다가 소프트웨어에 집어넣은 것 같았다”고 말한다. 버핸스는 2015년에 졸업하면서 학자금으로 대출받은 7,000달러(약 900만 원)로 굿랜드를 설립했으며,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잠재력과 가치를 이해시키기 위해 초기 프로젝트들을 무료로 맡았다.
굿랜드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가톨릭교회가 소유한 토지와 공립 학교 지구의 지도를 결합함으로써 가톨릭 기관들이 새 학교를 어디에 건설해야 해당 지역의 교육적 필요를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을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굿랜드의 서비스는 종교 단체들이 자신들이 소유한 토지를 보전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미래에는 교회의 위치와 도움이 가장 절실한 곳의 위치 데이터를 결합함으로써 구호 단체들이 재난 지원금을 가장 잘 지출할 수 있는 지역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스타이니츠는 버핸스가 수행하고 있는 작업이 기술적인 부분보다도 정치적인 부분에서 더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수많은 자료를 파헤쳐야 하고, 지도가 전혀 없는 장소들을 다뤄야 한다. 제대로 분류되지 않은 토지들도 있다. 이런 작업을 중앙아프리카에서 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나이 많은 남자들이 가장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에서 젊은 여성인 버핸스는 “완전한 아웃사이더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핸스는 그런 높은 직위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버핸스가 교회의 토지 지도를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경에 대한 역사적인 회칙인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발표했다. 이 회칙에 대해 기후 활동가이자 작가인 빌 맥키번(Bill McKibben)은 “지난 10년간 발표된 문서 중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 말한 바 있다. 유엔과 세계 지도자들에게 기후 행동의 필요성을 촉구하며 교회 내부와 세계 무대에서 기후 문제에 대한 리더십을 보여준 이래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 교황’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처럼 ‘우리 모두의 고향인 지구를 보살피는 것’에 대한 강한 가치관을 공유한 덕분에 버핸스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바티칸의 공식적인 승인을 구할 수 있었다. 버핸스가 로마에 여러 차례 방문한 이후 2018년에 교황은 지도 제작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버핸스의 요청을 승인했다. 바티칸에서 제안한 예산이 너무 적어서 지도 제작 연구소를 실제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버핸스는 바티칸에서 어떤 종류든 연구소를 이끄는 최초의 여성이 되었을 것이다.
굿랜드는 항상 한정적인 예산으로 운영되어왔기 때문에 그 역사는 경제적인 불안정의 순간과 그 뒤에 이어진 ‘신의 섭리’라고 부를만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초기에 버핸스의 학생 소프트웨어 라이선스가 만료되려고 할 때 에스리의 댄저먼드는 그 소식을 듣고 300만 달러 상당의 자사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다(그러고 나서 에스리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팀을 이끌어달라며 당시 26세 불과했던 버핸스를 초빙했다). 버핸스가 바티칸 고위 인사들과의 회의를 앞두고 로마에서 빈털터리가 된 채로 노숙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을 때는 바티칸 직원의 도움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는 성녀 마르타의 집(Domus Sanctae Marthae)에 초대받을 수 있었다.
버핸스에 대한 국제적인 인정의 수준을 볼 때, 버핸스는 아마도 어떤 시점에서든 거대 기술 기업에서 ‘진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버핸스가 끊임없이 행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발적 빈곤’을 수용했던 도로시 데이(Dorothy Day) 같은 종교적 인물이나 수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하려던 버핸스는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가장 권위 있는 환경상을 받으러 유엔에 가기로 되어 있던 날에 버핸스는 갑작스럽게 굿랜드의 자금 모금에 실패하면서 직원 10명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 이후로 굿랜드는 업무를 분담해줄 다른 직원이 전혀 없는 1인 조직 상태로 되돌아갔다. 게다가 가족의 잇따른 사망에 이어 코로나19 후유증 및 베스파 스쿠터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게 되면서 지난 2년 동안 버핸스가 추진하려던 모든 일의 속도가 상당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굿랜드의 서비스 수요는 가라앉지 않았다. 버핸스에 따르면 현재 굿랜드는 ‘대기 중인 프로젝트만 1,400만 달러 이상’에 달한다. 그러나 버핸스를 도와줄 팀을 다시 고용할 자본을 미리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프로젝트를 수행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버핸스는 즉각적인 수익을 노리며 버핸스의 사명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르는 투자자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버핸스는 팀을 다시 모아서 운영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일단 그 난관만 극복하면, 굿랜드를 비영리 단체에서 영리 컨설팅 업체로 전환해서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단체들과도 협력하여 그들의 토지를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줄 계획이다. 버핸스는 또한 최근에 바티칸에 지도 제작 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한때 포기했던 꿈에 다시 불을 붙였다. 버핸스는 특히 기후 문제에 민감한 교황의 지도 아래, 기후 행동에 박차를 가할 엄청난 잠재력이 교회에 있다고 믿는다. 버핸스는 “우리에게는 그곳에서 내놓는 정책이 필요하다. 내가 가톨릭교회의 유일한 여성 국가지리정보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어떤 식으로든 버핸스는 기후 행동에 대한 바티칸의 약속이 교회가 소유한 모든 땅에서 실현되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버핸스는 “더 큰 비전은 가톨릭교회의 환경 보전이 다음 세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글로벌 네트워크로서 가톨릭의 의료 서비스와 같은 규모에 도달하는 것”이라며 희망을 드러냈다.
이 글을 쓴 휘트니 바우크(Whitney Bauck)는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기후 및 환경 기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