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암호화폐의 미래
2022년 11월, 유명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갑작스럽게 붕괴하면서 암호화폐의 존재 의미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2023년에 이 다툼은 미국 법정과 의회로까지 번질 예정이다. 금융의 미래와 관련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싸움의 전선은 복잡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양립하는 두 진영이 두드러진다. 저명한 정치인들과 규제당국을 비롯한 회의론자들은 암호화폐 업계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암호화폐 업계에 사기 행위가 넘쳐나고 있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재정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FTX의 파국적 종말을 지켜보며 이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그리고 반대 진영에는 ‘탈 중앙화 금융’의 옹호자들이 있다. 이 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 네트워크가 미래에 개인의 금융 프라이버시와 경제적 자유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암호화폐는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고, 기업이나 정부, 은행이 아니라 공개 네트워크에 의해서 제어된다.
탈 중앙화 주장 진영은 잘못된 규제로 인하여 암호화폐 산업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FTX 붕괴를 오히려 중앙화 통제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암호화폐의 존재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기존의 금융거래 방식보다 접근성이 좋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삼는다. 즉, 은행 같은 중개인들이 이용자들을 감시하고, 중개 수수료를 부과하는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사실 정책 입안자들은 FTX가 붕괴하기 훨씬 전부터 암호화폐를 겨냥해왔다. 그러므로 2023년에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암호화폐를 둘러싼 법정 다툼과 의회에서의 입법 논쟁은 필연적인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미국이 떠맡고 있는 중차대한 역할을 고려할 때, 암호화폐를 둘러싼 싸움의 결과는 전 세계 금융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개방형 블록체인의 사용이 미래의 금융거래에 결정적이라고 보는 이들에게 이 논쟁은 지난 그 어떤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들이 과연 자기 입장을 유지하면서 전통적인 규제에서 벗어나 탈 중앙화 금융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정책 입안자들이 입법을 통해 중앙 집중적 통제를 가하여 암호화폐 플랫폼들을 길들이게 될까? 암호화폐를 둘러싼 이런 질문들은 지난 수년간 해결되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한 대답을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든 암호화폐”
FTX가 붕괴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막은 복잡하다. 파산에 관련된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 검찰은 최근 FTX의 설립자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를 사기 및 자금 세탁 혐의로 기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암호화폐 자체가 FTX 사태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을지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암호화폐의 열렬한 지지자들조차 당장 FTX와 거리를 두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MIT의 디지털 통화 이니셔티브(Digital Currency Initiative)의 디렉터 네하 나룰라(Neha Narula)는 FTX 사태가 “우리가 창조한 암호화폐(the crypto we created)”의 특성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나룰라는 현재의 암호화폐 산업이 FTX 같은 주요 거래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중앙 집중화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암호화폐 시장이 토큰으로 돌아가는 카지노 경제(casino economy)의 특성을 가지는 것도 문제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다른 암호화폐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FTX 역시 자체적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11월 초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CoinDesk)가 기사 하나를 게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기사는 FTX의 관계사 알라메다 리서치(Alameda Research)가 보유한 자본금의 상당 부분이 FTT라고 불리는 가상화폐로 이루어져 있다고 폭로했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알라메다가 보유한 약 100억 달러(약 13조 원)에 달하는 자본의 상당수는 ‘법정 화폐나 다른 암호화폐와 같은 독립적 자산이 아닌 자매회사가 발행한 코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폭로는 결국 FTT의 가치 폭락으로 이어졌다.
나룰라는 암호화폐 산업은 자신들이 어째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하여 근거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생겨나 실체가 불분명한 수많은 가상화폐들로 이루어진 자기 참조적(self-referential) 생태계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FTT는 이러한 수천 가지 암호화폐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암호화폐 토큰이 가지는 가치의 모호함은 규제당국이 오늘날 탈 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즉 ‘디파이(DeFi)’라고 알려진 암호화폐 세계의 새로운 영역에 집중하는 가장 큰 이유다.
탈 중앙화하기
계속해서 FTT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서는 중앙화된 거래소에서 FTT를 구입할 수 없다. 거래소가 이를 판매할 경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관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위원회의 임무는 금융 자산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자산을 판매하는 회사들은 증권거래위원회에 기관 등록을 마쳐야 하고 재정상태에 대한 포괄적 공시도 제출해야 한다.
게리 겐슬러(Gary Gensler)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수많은 암호화폐가 증권(securities)이므로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즉, 갠슬러의 입장은 미국에서 암호화폐 자산을 판매하는 조직들을 불법적이라고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FTT의 특징은 FTX 주식과 유사하기 때문에 규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현재 중앙거래소에 등록되지 않은 증권이 상장되는 일을 막을 수는 있어도, 순수하게 블록체인으로 운영되는 거래소에서 사람들이 이 증권들을 매매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탈 중앙화 거래소(decentralized exchanges), 즉 DEX는 빠르게 성장하는 디파이 세계의 중심이다. 가장 눈에 띄는 DEX는 유니스와프(Uniswap)로 하루 거래량이 10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유니스와프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저장 및 실행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규제당국의 통제 밖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누구든 다양한 암호화폐를 매매할 수 있게 해준다.
디파이 지지자들은 FTX 사태가 오히려 대안적이고 ‘개방적’이며 탈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디파이 앱은 암호화 방식으로 거래를 검증하며, 이 모든 것이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따라서 중개인이 없으며, 중개인이 부패할 위험도 없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탈 중앙화 금융 앱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중간 매개자가 없다는 의미는 규제하는 사람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규제당국이 탈 중앙화 플랫폼에서의 증권 거래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불법 자금이 유용되고 있지 않은지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
이것이 2022년에 미국 연방 의회가 ‘디파이 프론트엔드(front ends)’와 관련된 논쟁으로 떠들썩했던 이유다. ‘프론트엔드’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파이 프로토콜에 접근하기 위해 사용하는 웹 기반의 이용자 인터페이스를 뜻한다. 유니스와프의 경우는 한 스타트업이 프론트엔드를 구축하여 관리하고 있다.
로펌 브라운 루드닉(Brown Rudnick)의 파트너이자 같은 회사의 디지털 커머스 그룹 공동 회장인 스티븐 팰리(Stephen Palley)는 “이제 문제는 디파이 프론트엔드를 운영하는 측이 정부로부터 면허를 받아야 하는지”라고 말한다. 그는 적어도 모든 디파이 프론트엔드가 면허를 받아야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그는 “만약 내가 웹 사이트를 하나 개설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만든 사이트는 단순히 사람들이 특정 소프트웨어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개발한 것인데, 전 세계적으로 분산된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고 이미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와 상호 작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내가 증권 거래소를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디파이는 지난 2년 동안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아직까지 시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대부분 단기 투자자들만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아직까지 디파이가 약속했던 밝은 미래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디파이 지지자들은 프론트엔드 규제가 당초 블록체인이 없애고자 했던 진입 장벽을 오히려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디파이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규제당국의 주요 디파이 프론트엔드 규제 여부는 향후 기반 기술의 진화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팰리는 조만간 규제당국이 관련 조치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앞으로 약 2년간 법정 및 의회에서 이 논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토네이도 주의보
디파이 옹호자들이 규제당국에 맞서고 있는 또 다른 주요 이슈는 프라이버시 문제다. 토네이도 캐시(Tornado Cash) 규제는 탈 중앙화 금융 시스템의 미래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유니스와프과 마찬가지로 토네이도 캐시도 이더리움 생태계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암호화폐를 토네이토 캐시의 디지털 화폐 풀(pool)에 예치한 뒤 다른 주소로부터 인출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토네이토 캐시 측은 ‘제로 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s)’이라는 첨단 암호화 기법을 사용해 입금 주소와 인출 주소 간의 연결이 공개되지 않도록 한다. 즉 사용자의 과거 거래 내역과 블록체인 상에 돈에 대한 정보가 더 이상 남지 않기 때문에 자금 추적이 어려워진다.
지난 8월 미국 재무부 산하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해당 플랫폼과 관련된 이더리움 주소 45개를 제재하였고, 미국인들의 접근을 사실상 금지했다. 해외자산통제국은 북한의 해커들이 훔친 수억 달러를 포함하여 토네이도 캐시가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세탁’하는 데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해외자산통제국은 종래에 외국인 개인과 연관된 블록체인 주소를 제재한 사례는 있었지만, 스마트 계약을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워싱턴 D.C.의 코인 옹호단체 코인 센터(Coin Center)의 책임 연구원 피터 반 발켄버그(Peter Van Valkenburgh)은 해외자산통제국에게는 스마트 계약을 금지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한다. 코인 센터가 지적하듯 해외자산통제국이 토네이도 캐시의 계약들을 규제했지만, 이 계약들은 심지어 토네이도 캐시의 개발자조차도 수정 또는 차단하거나 해제할 수 없다. 이 계약들은 인간의 개입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반 발켄버그는 해외자산통제국이 특정 개인이나 외국 단체들을 제재할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인들 모두가 토네이도 캐시와 같은 도구를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해외자산통제국에게 권한을 부여한 연방 법령이 시민들이 어떤 소프트웨어 도구를 사용할 수 없는지 지정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미국 의회가 의도한 입법 취지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코인 센터는 재무부를 상대로 제재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고 시민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코인 센터는 해외자산통제국에 소프트웨어 도구의 이용을 금지하는 법적 권한이 없다는 주장과 제재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유명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 베이스(Coinbase)는 마찬가지로 재무부를 상대로 한 다른 소송 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당국의 제재가 내려진 이후 깃허브(Github)는 해당 프로젝트의 소스코드를 삭제하였으며, 프로젝트의 웹 사이트인 토네이도닷캐시(tornado.cash)는 폐쇄되었다. 해외자산통제국의 조치와 별도로 네덜란드 당국은 토네이도 캐시의 개발에 참여했던 알렉세이 페르세프(Alexey Pertsev)를 구금했다. 검찰은 페르세프에게 자금 세탁 방조 혐의를 적용했다.
페르세프는 토네이도 캐시의 설립 멤버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암호화폐 프로젝트처럼 토네이도 캐시는 오픈소스 기반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기여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또 다른 공동 설립자 로만 세메노프(Roman Semenov)는 논평 요청에 회신하지 않았다.
암호화폐 업계는 토네이도 캐시를 둘러싼 논란의 진행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지 그것이 온라인 금융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룰라는 “코드를 짜서 인터넷에 올린다는 이유만으로 암호화폐 개발자를 금융 중개인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암호화폐 개발과 실제 서비스 운영 사이에는 수많은 단계들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금융 앱은 어느 지점부터 인터넷의 코드에서 금융 서비스로 전환되는 것일까? 바로 이것이 디파이 프론트엔드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에 있는 질문이다.
두 논쟁에는 정부에게서 허가를 얻지 않고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자유가 걸려있다. 우리의 예측에 따르면 암호화폐 신봉자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아마도 모든 것을 걸고 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