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고려대, 리튬금속 배터리 ‘덴드라이트’ 성장 억제 성공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를 가로막던 최대 걸림돌이 한국 연구진에 의해 돌파됐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최남순 교수팀과 신소재공학과 홍승범 교수팀, 고려대학교 곽상규 교수팀은 협력해 리튬금속 배터리의 가장 큰 난제인 ‘계면 불안정성’을 전자 구조 수준에서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4일 밝혔다.
계면 불안정성은 충·방전 과정에서 전극과 전해질이 맞닿는 경계면이 고르게 유지되지 못하는 현상으로, 이로 인해 리튬이 바늘처럼 자라나는 덴드라이트가 형성되어 배터리 수명 저하와 내부 단락, 화재 위험으로 이어진다. 연구팀은 배터리 전해질에 ‘티오펜(Thiophene)’을 첨가해 전극 표면에 리튬 이온이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지능형 보호막’을 구현했으며, 12분 내 빠른 충전과 8mA/cm² 이상의 고전류 구동을 동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재료·에너지 분야 학술지 《인포맷》에 2월 2일 게재됐다.

전자 구조가 스스로 재배열되는 ‘지능형 통로’
리튬금속 배터리는 음극에 흑연 대신 리튬 금속을 직접 사용하는 전지로, 동일한 무게의 흑연에 비해 10배 이상의 용량을 제공하여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 저장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충·방전 과정에서 리튬이 비균일하게 전착되어 나뭇가지 모양의 덴드라이트(Dendrite)를 형성하며, 이는 배터리의 수명 단축과 열 안정성 저하를 야기하는 핵심 원인이 되어 왔다. 덴드라이트는 배터리 충전 시 리튬 이온이 음극 표면에 균일하게 퍼지지 못하고 특정 부분에 뭉쳐서 전착되며 나타나는 나뭇가지 모양의 결정체로, 계속 자라나면 배터리 분리막을 물리적으로 손상시켜 양극과 음극이 만나는 단락을 유발하고 화재나 폭발 등 배터리 안전성을 악화시킨다.
연구팀이 개발한 핵심 기술은 티오펜 첨가제를 통한 ‘지능형 보호막’ 구현이다. 티오펜은 황 원자를 포함하는 오각형 고리 구조의 유기 화합물로, 이번 연구에서는 전해질 첨가제로 사용됐다. 연구팀은 티오펜의 전자 구조적 특성을 활용하여 리튬 이온 이동 시 전하 분포를 유연하게 재배열함으로써, 리튬 이온이 통과할 수 있는 ‘지능형 통로’를 형성했다. 이 보호막은 마치 교통량에 따라 차로를 조정하는 스마트 교통 시스템처럼, 리튬 이온이 이동할 때마다 보호막 내부의 전하 분포가 유연하게 변하며 최적의 통로를 만들어준다.
고려대 곽상규 교수 연구팀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된 DFT(밀도범함수이론) 시뮬레이션은 이 ‘지능형 통로’의 작동 원리를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티오펜의 π-공액(π-conjugated) 구조 내 궤도가 리튬 이온의 이동에 실시간으로 반응하여 피막 내부의 전하 분포를 유연하게 재배열함을 확인했다. π-공액 구조는 단일 결합과 이중 결합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화학 구조로, 전자가 분자 내에서 넓게 퍼져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특히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FEC(Fluoroethylene carbonate) 및 VC(Vinylene carbonate) 첨가제와 비교 분석한 결과, 티오펜 기반 고체 전해질 계면층은 높은 전류 밀도 구동 환경에서도 물리적 균열을 억제하고 압도적으로 우수한 계면 안정성을 보였다.

나노 스케일 실시간 관찰로 입증한 안정성
연구팀은 기술적 완성도를 검증하기 위해 KAIST 신소재공학과 홍승범 교수 연구팀과 협력해 원자간력 현미경(AFM) 분석을 수행했다. AFM은 나노미터 수준의 미세한 탐침을 이용해 시료 표면의 형상과 물리적 특성을 분석하는 고해상도 현미경이다. 특히 in-situ AFM(실시간 원자간력 현미경)은 배터리가 실제 구동되는 과정 중 리튬금속 표면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in-situ AFM 분석을 통해 높은 전류밀도 조건에서 티오펜 첨가제에 의해 형성된 고체 전해질 계면층이 리튬의 균일한 전착 및 탈리 거동을 유도함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고체 전해질 계면층(Solid electrolyte interphase, SEI)은 배터리 구동 시 전해질이 전기화학적으로 분해되며 음극 표면에 형성되는 얇은 보호막으로, 리튬금속의 부식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 전해질이나 FEC, VC 첨가제 환경에서는 리튬이 표면에서 거칠고 불균일하게 성장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티오펜 첨가제를 사용한 경우 리튬이 매우 매끄럽고 균일하게 쌓이고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나노 스케일의 실시간 관측을 통해 지능형 계면층의 기계적 안정성을 직접 입증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실제 배터리 성능 테스트에서도 탁월한 결과가 나왔다. 기존 전해질 시스템은 40회 사이클 이전에 수명이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 티오펜 포함 전해질은 100회 이상의 사이클 동안에도 초기 용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100%에 육박하는 높은 쿨롱 효율을 보여줬다. 또한 이 기술은 리튬 인산철(LiFePO₄), 리튬 코발트 산화물(LiCoO₂), 리튬 니켈-코발트-망간 산화물(LiNiₓCoᵧMn₁₋ₓ₋ᵧO₂) 등 현재 널리 쓰이는 다양한 배터리 양극 소재에 사용할 수 있어, 특정 배터리 유형에 한정되지 않고 기존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 전반에 폭넓게 적용 가능하다.
최남순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순한 소재 개선이 아니라 전자 구조를 설계해 배터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한 성과”라며 “고속 충전과 긴 수명을 동시에 구현하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기반 기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초장거리 전기차는 물론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차세대 고밀도 에너지 저장 시스템 등 고성능 배터리가 필요한 다양한 미래 산업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