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로체스터대, 독감 백신 강화할 ‘숨은 면역세포’ 규명…코·폐 감염 차단 새 길
독감 백신이 코와 폐에서 감염 자체를 막도록 도울 수 있는, 그동안 간과돼 온 면역세포 집단이 규명됐다.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의과대학 김민수 교수 연구팀은 수명이 짧다고 여겨지던 면역세포 ‘단핵구’의 일부가 감염 후 수개월간 폐에 남아 면역 기억을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지난 8월 말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이뮤놀로지에 발표했다.
인플루엔자는 미국에서만 매년 3만5천 명 이상의 사망을 부르는 주요 질병이다. 현재 대부분의 독감 백신은 근육 주사 방식으로 중증 예방에는 효과적이지만, 정작 바이러스가 처음 침입하는 코와 폐에서의 감염은 일관되게 막지 못한다. 이번 연구는 이 빈틈을 메울 실마리를, 그동안 면역 기억과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세포에서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증은 막아도 감염은 못 막는 독감 백신의 빈틈
독감 백신은 분명 효과가 있지만,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근육 주사 백신은 몸속에 항체를 만들어 중증으로 악화되는 것을 잘 막는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실제로 몸에 들어오는 관문인 코와 폐에서의 감염 자체를 일관되게 예방하지는 못한다. 백신을 맞아도 독감에 걸리거나 남에게 옮기는 일이 생기는 이유다.
이 빈틈을 메우려는 시도가 코로 뿌리는 ‘비강 백신’이다. 바이러스가 처음 침입하는 부위에 직접 면역을 만들어 감염을 초입에서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비강 백신은 그동안 효과가 들쭉날쭉해 안정적인 성능을 내지 못했다.
핵심에는 ‘조직 상주 기억 T세포(TRM)’라는 특수한 면역세포가 있다. 이 세포는 폐처럼 바이러스가 들어오는 자리에 상주하며 첫 방어선 역할을 한다. 감염이 시작되는 바로 그 자리에 있어 즉시 반응해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할 수 있어, 신속하고 국소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차세대 백신의 핵심 목표로 꼽힌다.
문제는 현재의 백신, 특히 주사 백신이 기도에 이런 강력한 면역 기억을 확실하게 형성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초기 감염과 전파를 막을 방어막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기억 T세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를 파고들다가, 예상 밖의 조력자를 발견했다.
수명 짧다던 세포가 남아 돕는다…’갈렉틴-1’이 열쇠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단핵구(monocyte)’라는 면역세포다. 단핵구는 감염 초기에 빠르게 투입됐다가 금세 사라지는 ‘수명 짧은’ 세포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연구팀은 인플루엔자 감염 이후 이 단핵구의 일부가 사라지지 않고 4개월 이상 폐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그냥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 T세포가 폐에서 생존하고 제 기능을 하도록 돕고 있었다.
이는 면역학의 통념을 뒤집는 발견이다. 그동안 면역 기억은 오래 사는 T세포와 B세포, 즉 ‘적응 면역’이 담당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김민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면역 기억이 오직 T세포와 B세포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는 기존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선천 면역 세포도 지속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첫 대응만 하는 줄 알았던 세포가 장기 면역 기억까지 형성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세포들이 T세포와 소통하는 방식도 밝혀냈다. 이 단핵구 유래 세포는 ‘갈렉틴-1(galectin-1)’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데, 이 단백질이 조직 상주 기억 T세포를 활성화하고 그 기능을 유지시킨다. 갈렉틴-1이 CD8+ T세포를 직접 활성화하고 면역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세포끼리 주고받는 일종의 ‘지원 신호’인 셈이다.
이 발견은 곧바로 새로운 백신 전략으로 이어졌다. 연구팀이 생쥐를 대상으로 코에 투여하는 독감 백신에 갈렉틴-1을 첨가하자, 폐에서의 면역 반응이 현저히 강해졌다. 갈렉틴-1을 ‘백신 보조제(adjuvant·면역 반응을 키우는 첨가물)’로 활용해 점막 면역을 강화하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다. 다만 이는 아직 생쥐 실험 단계로, 연구팀은 백신 첨가제로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더 안정적인 형태의 갈렉틴-1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에게도 성공적으로 적용된다면 인플루엔자를 넘어 계절성 질환이나 팬데믹을 일으키는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 백신으로도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했다.